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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위력은 대단하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킬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것은 곧 소멸되고 만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태풍이 올 것이다. 해가 바뀌어도 항상 계절은 돌아오듯이... 이 소설은 작가 이상운씨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시험결과가 환경계시판에 공개된 것을 보고 경악하는 김민기의 모습에서 시작되는 이 책은 자신만의 꿈을 펼칠 수 없는 억압된 교실, 오직 성적만을 강요하며 개인의 인격을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 괴물같은 선생님들(단 불어 선생님만은 그 당시 사회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자유를 존중하는,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이다)을 통해 작게는 이 학교를 크게는 그 당시 박정희 유신체제의 억압된 사회를 슬픈 자화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김민기의 주도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소년시인 한경민, 여자를 밝히지만 항상 명랑한 윤재국, 공부도 잘하고 다른 학생들보다 어딘지 모르게 생각이 깊은 김정희와 함께 그들은 동인지 태풍을 만든다. 하지만 이 동인지를 만듦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태풍'을 만든 뒤 그들은 바닷가의 벼랑에서 '뒷풀이'를 하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갑자기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습격을 당해 구타를 당하고 불순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모두 빼앗기려는 순간 순정파이자 소년 시인인 한경민은 자신의 꿈이 담겨있는 그 것을 가지고 벼랑에서 떨어진다. 결국 그들의 축제는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태풍은 다시 불어올 것이다. 김정희가 나중에 괴물들의 소굴이었던 학교에 윤리선생님으로 다시 돌아와 그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나는 책을 읽고 문 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그 당시와 지금의 학교는 입시지옥이라는 면에서 거의 달라진게 없으며 지금도 괴물같은 선생님과 김민기, 한경민, 윤재국, 김정희와 같은 소년들은 분명!! 어딘가에 존재 할 거라고......
P.S :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한번 드라마로 만들어 졌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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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설과 낭만적 상상력 - 이상운의 『내 마음의 태풍』
이상운의 『내 마음의 태풍』(사계절, 2009)은 청소년들의 낭만적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우리들만의 세계. 우리를 가둬놓고 있는 검은 교복과 얼룩무늬 교련복을 벗어던지고, 제멋대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그런 세계”(17)는 이 소설의 중심인물들(김민기-한경민-김정희-윤재국)이 꿈꾸는 ‘자유로운 세계’를 대변한다. 그들은 감옥 같은 학교에서 벗어나 바다처럼 드넓은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그 꿈은 ‘낭만’이란 말에 드러나는 바, ‘학창 시절’에는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꿈’이다. 현실의 비정함을 알기에 그들은 낭만적인 꿈을 꾸지만, 현실의 비정함을 알기에 그들은 또한 현실 속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도 안다.
『내 마음의 태풍』에 묘사되는 학교생활의 폭력적 상황은 1970년대 한국 사회의 군사 문화적 상황을 표현한다. 7~8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군사교육(교련 과목)을 받았다. 학생을 학생이 아니라 (어린) 군인으로 생각하는 세상은, 말 그대로 자율보다는 통제를 중시하는 세계가 될 수밖에 없다. 교과서에는 청춘을 예찬하는 글이 난무하지만,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정작 ‘예찬된 청춘’의 삶이 불가능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공부 이외의 현실을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공부에 ‘미친’ 청소년들은 자유를 ‘청춘의 사치’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들은 이렇게 공부에 ‘미친’ 학생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 학창 시절의 값진 추억을 만들려는 생각으로 주인공 ‘나’(김민기)는 뜻이 맞는 동지들을 모아 ‘문집’을 만들려고 한다. 원래는 학급의 문집으로 계획되었지만 담임(김 화백)의 무조건적 반대로 무산되어 버린다. 시에 관심이 있는 한경민, 그리고 학교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는 김정희, 윤재국과 의기투합한 주인공은 자신들의 소중한 꿈을 간직하기 위해 문집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문집 제작은 그러나 ‘담임’에게 강력한 제재를 당하면서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나’에게 문집 제작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담임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문집 제작을 포기할 것을 강요한다. 나와 윤재국은 문집 제작을 강행하면 ‘처벌하겠다’는 말에 ‘겁을 먹고’ 담임의 말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김정희와 한경민은 담임의 일방적인 처사에 끝까지 저항한다.
“좋아. 다음, 김정희.” 문제는 그 친구였다.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안 들리나, 김정희?” 정희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담임은 노한 얼굴로 정희를 노려보다가 다음 타자로 넘어갔다. “한경민.” “네.” “너부터 대답해 봐. 너는 어쩔 거야?” 경민이는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만하겠습니다.’ 나는 경민이가 당연히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저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겠습니다.” 경민이는 그렇게 말했다. “뭐라고?” “이건 제 사생활입니다.” (135~136쪽)
문집 제작은 이처럼 ‘학교 권력’에 맞서는 구성원들의 대응 방식에 차이가 발생함으로써 위기에 봉착한다. 김정희가 나와 윤재국을 두고 “비겁한 새끼들”(138)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들 사이는 쉽게 화해할 수 없는 상태로 변질된 것이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내 마음의 태풍』은 다소 손쉬운 해결책을 찾는다. “유신헌법이 강요한 ‘한국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짜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자유주의자”(66)인, ‘나’의 아버지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응원은 내 마음을 묶어놓고 있던 담임에 대한 두려움을 한순간엔 날려버렸다”(143)고 이야기한다. ‘착한 어른-나쁜 어른’의 이분법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나’의 인식 변화는 곧바로 독자적으로 문집을 제작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을 정도로 비밀리에 이루어진 문집 제작은 결국 아버지와 인쇄소 아저씨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학교 권력의 탄압을 뚫고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책(문집)’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산에서 문집 발간 기념(5권 한정이긴 하지만)을 진행하던 그들 앞에 또 다른 권력의 하수인(형사)들이 나타나면서 상황은 비극적으로 급변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몽땅 태워버리”(168)는 화형식을 치르며 ‘미친 듯이’ 춤추던 그들은 “낯선 손님들”의 폭력에 하나하나 무너지기 시작한다. 문집이라는 “불온 유인물”(172)은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때리면 맞아야 하는 현실은 ‘문집’의 발간이라는 낭만적 현실과 상관없이 <지금 이곳>에 엄존하는 실제적 현실이었던 셈이다. 또 다시 닥친 이 난관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내 마음의 태풍은 ‘한경민의 죽음’을 제시함으로써 비극적 상황의 고조를 선택한다.
내 얼굴을 그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남자가 오히려 나에게 지독히도 불온한 말을 했지만, 그것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 윤재국과 김정희가 동시에 “어어!” “한경민!” 하고 막힌 가슴을 제 스스로 찢으며 간신히 토해 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급히 돌아보니 시인이 문집을 가슴에 꼬옥 품은 채 허공에 떠 있었다. 나는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녀석의 하얀 운동화를 보았다. 그 다음엔 갑자기 아래로 쑥 꺼져내리며 사라져 버린 검은 교복의 잔상뿐이었다. (176쪽)
시인을 지망하던 한경민이 죽었다. 한경민의 죽음은 사실 문집을 통해 청소년들이 꿈꾸었던 낭만적 상상력의 비극적 현실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이 낭만적 세계를 꿈꾸는 순간, ‘죽음’이라는 비극의 세계가 낭만과 더불어 다가온 것이다. 『내 마음의 태풍』은 낭만적 상상력의 극점을 철저하게 반영한다. 비극적인 상황이 고조될수록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그만큼 더 아름다워진다. 정신 이상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비극의 강렬도를 더욱 높여준다. 주인공은 동요를 부르는 동생을 보며 “언젠가는 아프게 깨져버릴 그 아름다운 세계”(183)의 비극을 가슴 깊이 아파한다. 그는 전혀 변하지 않은 세상(학교)으로 다시 나아가지만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이미 달라졌다. 아버지는 지극한 슬픔은 “포도주처럼 숙성시켜야”(191) 한다고 말한다.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주인공의 슬픔은 포도주처럼 숙성될 수 있을까? 작은 바람이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태풍처럼, 작가는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작은 낭만’을 강조하고 있다. 낭만적 상상력의 전형적 서사구조에 얽매인 감이 있지만, 군사문화가 지배하던 시기에 ‘작은 낭만’을 꿈꾸었던 학생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읽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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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8시리즈도 벌써 3권째이다. '열일곱살의 털.' '몽구스 크루.' 그리고 이번에 '내 마음의 태풍.'
'열일곱살의 털'은 누구나 한번 즈음 고민해 봤을 '두발자유화'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몽구스 크루.'는 우리나라 청소년 사회에서 아웃사이더들이 하는 '브레이크 댄스.'를 중심으로 전개를 하며, '내 마음의 태풍.'은 1970년대의 억압된 교육 환경 속에서 '시집.' 아니 '문집.'을 해방구로 삼아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열일곱살의 털.'에서는 누구나 겪었을 경험을, '몽구스 크루'에서는 소수의 문화를, 그리고 '내 마음의 태풍.'에서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을 이야기로 삼았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 그것은 암울한 현실에 대한 '탈출구'이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3년이라는 세월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울고 싶을 때가 너무 많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울지않으려면 뭔가가 필요했다.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우리들만의 세계. 우리를 가둬 놓고 있는 검은 교복과 얼룩무늬 교련복과 삼류 벽화를 불태워 버리고 제멋대로 자유롭게 떠들 수 있는 그런 세계.'
그런 세계가 바로 한경민, 김민기, 김정희, 윤재국의 문집 '태풍'이다.
나의 세계는 책이고, 여행이고, 글이다. 나만의 세계이자, 세상으로부터 독립된 세계. 삶에 지치면 언제나 숨어버릴 수 있는 세계. 그 세계와 현실이 부디 어느쪽으로 쏠림없이 균형을 잡아나갈 수 있기를 난 빌어본다.
시리즈3개 중, 주제면에서는 '내 마음의 태풍.'이, 재미면에서는 '열일곱살의 털.' 소재면에서는 '몽구스 크루'가 뛰어났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아무래도 공감이 가는 '내 마음의 태풍.'이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지만 스토리는 약간 그렇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