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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된 희망, 유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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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여느 때보다도 보수화되어 가고 있었다. 지배 계층의 머리 속엔 민중의 피폐한 삶에 대한 고민보다는 중국을 보다 잘 섬기고자 하는 욕구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현실은 외면한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물질적 곤궁함보다도 더욱 시급했던 것은 어쩌면 지배층으로서의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오랑캐라며 업신여겼던 세력의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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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여느 때보다도 보수화되어 가고 있었다. 지배 계층의 머리 속엔 민중의 피폐한 삶에 대한 고민보다는 중국을 보다 잘 섬기고자 하는 욕구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현실은 외면한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물질적 곤궁함보다도 더욱 시급했던 것은 어쩌면 지배층으로서의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오랑캐라며 업신여겼던 세력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 시기, 우리의 문학사에 등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군담소설이었다. 탄생에서부터 비범한 등장인물들은 성장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련을 겪지만, 그 때마다 인간 아닌 신의 도움을 얻어 위기를 극복하고 영웅으로 등극하게 된다. 물론 현실에서의 전쟁은 단 한 명의 영웅에 의해 승리와 실패가 결정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생활로부터 희망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영웅은 현실의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해줄 수 있는, 당대 사람들이 바라는 희망이었다. 그러한 심리는 지배계층의 승리에의 욕구와 맞물려 강렬해졌다. 실제로는 패배했지만 허구적 세계에서만은 승리를 꿈꾸는, 지배계층의 비참함(!)에 대한 보상심리를 군담소설은 제공해주었다. 소설을 통해 민중들은 영웅의 출현을, 즉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며, 지배계층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잠시나마 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충렬전>은 대표적인 군담소설이며, 앞서 언급한, 군담소설의 전형적인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부모의 자식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에 대한 신의 응답으로 충렬은 태어났다. 청룡을 타고 내려온 선관과 과실을 들고 나타난 선녀 등의 존재는 충렬이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대다수의 고대 소설이 그러하듯 <유충렬전>에서도 주인공은 시련을 겪는다. 권력욕으로 충만한 정한담과 최일귀의 모함으로 충렬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게다가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던 명나라는 멸망 직전의 위기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유충렬이라는 인물은 명나라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으니, 숱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남았다. 죽음을 결심하는 순간 아버지의 막역한 친구인 강희주를 만났다. 간신들로 들끓는 조정에 맞서던 강희주마저 위기에 빠졌을 때 방랑하던 충렬의 눈 앞에 나타난 광덕산 백룡사라는 절이 나타났다. 게다가 그 절의 노승은 충렬에게 기이한 옥함을 얻었는데, 그 안에 들어있던 무수한 보물들과 용인갑, 장성검, 거기에 충렬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주인 따르듯 복종하는 천사마까지, 그러잖아도 뛰어난 충렬의 능력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주었다. 예상대로 유충렬은 전장에서 승리만을 거듭한다. 적진에 포로로 잡혀갔던 황후와 태자를 구출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와 어머니와도 재회한다. 이 모든 과정에 충렬이 미친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옥새를 적에게 넘겨줄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는 천자의 무능력함은 마치 충렬의 뛰어남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기제처럼 느껴진다. 승리가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천자와 태자가 보여주는 승리 앞에서의 잔인함 역시 충렬의 넓은 도량을 드러내기 위한 것 같아 보인다. 그들의 무능력함과 나약함은 도망치기에 바빴던 조선 왕조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소설 속 이야기는 유충렬의 존재로 인하여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고, 망해가던 나라와 궁핍함에 찌든 민중들 역시 충렬을 통해 번영했던 과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유충렬은 시대에 변화를 가져다 줄 영웅을 애타게 기다렸던 사람들에게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가공된 것일 뿐 현실이 아니었다. <유충렬전은> 소설일 뿐이며, 소설 속에선 충렬의 도움을 통해 재기(?)에 성공한 명나라 역시 현실에서는 청에 밀려 역사 저 편으로 사라진 과거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이달의 사락 q*****2 2006.05.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