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형도가 떠올랐다. 갑자기 왜 그가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지 알 수 없었다. 서른 아홉의 죽음... 그리고 타인에게 이해되기를 강요하지않았던 그의 변명같은 이야기들... 그의 고뇌가 불발탄처럼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패배와 몰락 그리고 갈증과도 같은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주절거림... 허무주의적 비애가 끈끈하게 묻어나와 가슴 한 구석에 두툼한 거미줄을 친다. * 사양 ★★★★ 전쟁 후 몰락한 귀족 집안의 딸 카즈코는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잃지않은 어머니와 뿌리째 귀족이기를 거부하며 사상과 마약중독에 빠진 동생 나오지의 중심역할을 한다. 어머니가 죽고, 나오지마저 자살을 한 후, 나오지의 문학선생이였던 유부남 우에하라를 찾아가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살아간다"라며 그와 관계를 갖는다. 몰락이 가져다주는 허무주의와 퇴폐주의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한다. 우에하라의 아이는 새로운 희망의 불씨이다. *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다. 생존과 생활사이, 이념과 이상사이, 허위와 속박사이, 존재의 본질과 탐닉사이에서 방황하며 삶을 탕진해버린 요조를 통해 그가 자살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를 독백처럼 듣는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그는 무엇에도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지 못한 채, 책 제목 그대로 실격당한 패배자의 최후를 그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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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에 수원을 다녀왔다. 버스 운행 시간표에 맞추다 보니 약속 시간이 무려 네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다행히 내 쉴 곳이 있었으니, 수원버스종합터미널 옆의 서점!
이상문학상수상집이었던가. 수상자 김경욱의 소설을 읽었다. 수상작에 이어 자전적 소설이 있었다. 작가 자신이 짙은 눈썹과 매우 가까운 눈썹과 눈과의 거리 때문에 일본인으로 오해받는다는 내용이 나오고 수상 후기에는 '인간 실격'이 등장한다. 내 좋아하는 소설가 윤성희가 쓴 작가론을 통해 김경욱의 참 재미없는(?) 일상을 읽을 수 있었는데 윤성희가 쓴 김경욱인지라 그가 몹시 궁금해졌다.
집에 돌아와 '죽음'에 관한 책을 두 권을 읽었다. 읽는 내내 김경욱이 '인간 실격'을 원어로 다섯(?) 번을 읽었다고 한 것이 계속 떠오르고 다자이 오사무의 '죽음'이 며칠 끝없이 내 뇌리를 지배했다. 읽던 책을 제쳐두고 '사양, 인간 실격'을 꺼내 읽었다. 아마 대여섯 번을 읽었으리니~
사양 - 어머니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그녀의 딸의 삶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그녀의 아들의 삶처럼 우리네 현재의 젊은이들의 '죽고 싶음'과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은 삶'과 '죽는 것이 최선의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이 여전히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시대 불문하고 국가 불문하고 민족 불문하고 아, 신분 불문하고 계급 불문하고 이것 저것 여러, 움푹질푹 세워졌다가 사라지고 그 비슷하게 다시 세워지고 무너지는 여러 사조들을 불문하고 인간계, 숙명이지 않을까 싶은 그런 삶의 지속을 여지없이 살아내고 있는 우리네 인간들.
인간 실격 -
단순히 데카당스한 취향의 인간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요조의 삶이 너무 안쓰러운 것 아닌가? 글 속 자신이 그렇게 읊었을지언정 그것은 범속의 세사에 맞춘 어쩔 수 없는 들먹임이지 않을까? 데카당스란 병적인 감수성, 탐미적 경향, 전통의 부정, 비도덕성 등의 '퇴폐·쇠락’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라고 사전에는 명명되는데 그 데카당스한 생활을 사는 삶이야말로 참 용기인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단지 관능이며 퇴폐 취향이라고 단정짓지 말자. 데카당스한 삶을 사는 데에는 어쩌면 더 더욱 농축된 지식이며 지혜며 도덕 등의 중무장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정 데카당스야 말로 지식이며, 지혜며 철학이며 사상이며 미학 등이 튼튼하게 바탕이 된 다음, 그 위에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기존의 지식이며 지혜며 철학이며 사상이며 이들을 감싸고, 소위 공유하고들 사는, 인간계 상식 선의 규범이며 법에의 저항을 마침내 실행에 옮기는 것이야 말로 데카당스가 아닐까? 하, 물론 무저항으로 내리막길을 가게 되지만 말이다. 미치지 않았으므로 '그래, 나 미쳤다.'라고 내뿜을 수밖에 없는 현실. 요조는 이미 현실에 깔린 베이스라는 것들이 모두 다 옳다는, 진부하다 못해 무척이나 지저분한 우리네 일상사에 사사건건 저항을 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살아봐야 할 세상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다자이 오사무에게는 자라고 어른이 되면 이에 맞춰 당연히, '성숙된 삶'이어야 한다는 우리네 보통의 삶의 규준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인간계 거짓놀음'이지 않았을까? 그 규준에 맞춰 사는 우리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그저 사는 것! 이미, 태생적으로 미리 젖어있는 이 현실을 우리는 너무나 감개무량한 태도로 받들어 모신 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허, 그러나, 함께 일어서 같이 하고자 하는 용기를 만들어 제 스스로를 세울 수 없다면 그만, 그만 놔둘 일이다. 그만 오리무중의 독후일랑 멈춰라.
네이버 검색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다시 또 읽는데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