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으면서 저도 장자를 생각했습니다. 작은 인간의 시선을 넘어서 커다란 세상을 보는 시각에 서양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지게 되는 생각은 비슷하지만 그것이 드러나지 못했거나, 내가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보게 되면서 내가 그 대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만을 가지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많은 것에 대해 판단을 하게 됩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부터 나의 가족까지 내가 매일 접하는 식사에서부터 문득 떠오르는 무언가에 대해서서까지...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판단이라는 것이 결국은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선을 넘어서지 못하는 판단이고, 이 책에서처럼 인간이 가지는 5감을 가지고 우주적인 8감, 9감을 넘어서야만 보이는 세상을 재단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이자 자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정확한 판단을 절대 진리인양 믿고, 말하고 떠드는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허기... 히딩크의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단순한 동물적 배고픔을 넘어선 인간이 가지는 욕구에 대한 배고픔과 인간의 세상이 아닌 우주적 질서에 대한 허기는 어떨까요? 인간이 가지는 허기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우주적 질서로 넘어서면 인간의 허기라는 것이 아마도 자기보존을 위한 생물학적 욕구와 다를 것이 없고 그것은 다른 동물의 욕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허기입니다. 신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했지만 인간의 어리석음이 막아버린 그 뜻에 대한... 그것을 찾고자 하는 허기는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가 그 허기를 채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허기를 채웠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실의 모습에서 집단 자살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최성희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 존재의 의미는 인간의 적극적인 능동성에서 신의 뜻에 따라야하는 수동성으로 넘어가고, 이것이 정치적으로 변할 경우 생길 홀로코스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아직까지 신의 뜻을 인간이 알지 못한다는 것과 그래서 더욱더 안타까운 환경, 인간중심의 세계관, 문명의 병 등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너희 율법교사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렸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루가복음11장 52절)에서 처럼 사제는 그 본래의 역할을 망각했고, 우리를 거짓, 찬양, 감동, 어리석음의 숲에서 길을 잃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더 생각할 문제는 진실로 지식의 열쇠로 열 문이 어디에 있냐는 근원적인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에 대해 “신은 그가 창조한 부분 속에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느끼고 있을까요? 신이 도처에 존재하기에 신에게로 가는 문도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에서부터 저 멀리 보이는 산과 바다에서도 존재하는 것이고 바로 나 ‘자신’에게도 존재하는 것이지요. 신의 온전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 곳에 가야하는 문도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허기’라는 것이 바로 이것은 아닐까 합니다. 우리 모습에서 신에게 다가가는 문을 찾고 열쇠로 열어 신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지여할 ‘허기’는 아닐까요? 아니 모든 생명체와 우주가 가져야할 ‘허기’는 아닐까요? 그래서 양의 허기와 호랑이의 허기가 같아지는 것이고, 인간의 허기와 우주의 허기가 같은 것은 아닐까요? 생물학적 허기를 넘어서 존재론적 허기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허기’... 우리가 깨달아야하는 허기는 우리속의 신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되는 모든 대상 속에서 신을 찾아 그 뜻을 따르고자 하는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닌 우리속의 신이 아닌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찬양하고 따르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더욱 ‘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도 이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 같습니다. 나의 신성을 깨닫고 세상의 신성을 깨닫고, 그 속에서 공존을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와 세상은 별개가 아니고, 연결된 질서와 인과관계속에 있으며, 내의 작은 행동이 세상에게로 갔다 다시 나에게로 오는 깨달음과 나의 정신을 풍성하게 하고, 나만의 욕심을 채우고자하는 것을 경계하고,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현재의 나의 모습이 절대적 모습이 아니며, 시간 속에서 변할 수 있는 것이며, 나의 모습 속에 세상의 모습이 있고 세상의 모습 속에 나의 모습이 있음을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허기를 깨닫는 것이 바로 우리의 허기를 채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바로 깨달은 허기로 그 허기를 달랬을 때 우리는 집단자실이라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이것이 정치적으로 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인간의 자율적 의지로 세상을 살아가며, 자연의 질서에 따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의 자손과 그들의 손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고 말한 것도 올바른 ‘허기’의 본질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