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읽은 때 : 1997년 (광고문구만 보고도 비웃었다. 그러나 리포트를 내라는...ㅠㅠ) * 총평 : 허접(쓰레기에 가까운 허접). 1. 아버지의 애인 '소령'이 때문에 허접. 2. 둘이 가던 포장마차 집 주인 때문에 허접. 3. 가족에게 평생을 무관심했던 아버지때문에 허접. 4. 죽기 전에야 해보고자 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혹은 하지않은 아버지 때문에 허접. 5. 보험인가 뭔가를 가족에게 남기려는 눈물어린 그러나 그 역시 과거 보상심리였으므로 허접. 6. 가족과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생을 포기했으므로 허접. 7. 가족에게 병 사실을 늦게 알려 그래도 가족인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했으니 허접. 8. 남겨진 사람들 더 괴롭게 했으니 허접. 9. 그리고 모든 것을 미화했으니 허접. 무엇보다, 10. 본질은 관두고 눈물샘이나 자극하여 돈이나 벌어먹으려는 작가 때문에 허접.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참고로 울 막내는 눈물 콧물 흘리며 읽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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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아온 아버지. 그를 외면했던 가족. 갈등과 화해 속 슬픈 이별. 이런 내용이 이제는 진부하지만 30년 전에 암 말기 환자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고자 안락사와 존엄사를 의사인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은 이 시대에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살아있으나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나마 그 모습을 인지하고 있을 때, 가족, 친구, 지인 들과 이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정수와 친구와 아내의 반대는 여전히 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소설 속에서는 끝내 의사인 친구에게 무릎을 꿇고 제발 죽여달라는 정수의 부탁에 남 박사는 과도한 진통제를 주사하여 정수가 생을 마감하지만. 소설의 좋은 점은 다양한 입장이 되어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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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의 '아버지'는 몇 년동안 책꽂이에 방치되어 있었다. 아무도 그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손이 잘 안갔다. 내가 알기로는 당시 꾀나 많이들 사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읽는 내내 우리 아빠가 생각났다. 아들하나 없는 집에서 이 주인공 처럼 외로웠을 아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이 책의 문제점은 독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한 것 같다. 몸이 아파 마음 둘 곳이 없어 잠깐 다른 여자를 만나 의지하는 내용에서는 어느정도 공감이 갔지만 그 것을 생동감 있게 와닿게 표현을 못 한것 같다. 나중에 남편의 병을 알게 된 후 가족들의 반응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읽다가 책을 덮을 뻔 했을 정도였으니깐. 이유는 오랫동안 각방을 써오고 깊어질 데로 깊어진 서로의 감정들이 한 순간 가면을 바꿔쓴 것처럼 바뀔 수 있을까? 그걸 남편도 쉽게 받아들이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더더욱 철없는 자식들까지도. 이 부분에서만 독자들을 설득 시켰다면 더 훌륭한 작품이 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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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나이가 칠순을 넘으셨으니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있을지 모르지만 요즘 꽃할배들이 해외로 여행다니시며 청년들 못지않게 젏게 사는 것과 비교하면 왜 저리 빨리 기운이 쇠하시나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풍성한 머리숱에 늘 꼿꼿하게 허리를 피시며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언제나 열심히 일하시던 분이었다.그런데 부모님댁에 가끔씩 들를때마다 뵙는 아버지의 모습은 머리숱은 다 빠지시고 허리도 구부정한 노인네가 다 된 모습으로 이제는 다리가 아파 밖에 나가 식사를 사드릴적에도 방에는 앉지 못하시고 의자에만 앉는 모습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아버지와 나는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단 둘이 있으면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무슨 말을 해야될지 당혹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물론 특별하게 나와 아버지가 서로 다툼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물론 내가 살아오면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아버지가 실망하셨고 그에 대한 반발로 아버지를 멀리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아마 다른 가정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오히려 그 당시 아버지들은 대부분 가부장적 권위를 가지고 자녀들에게 엄하게 대하셨는데 그건 유교적인 관습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어려웠던 시절 가족들을 먹여살리려는 아버지들의 어깨에 얻혀졌던 무거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와 아버지의 어색함은 아마도 어려웠던 경제적 사정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국제시장이란 영화에서 덕수가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독일로 광부로 파견나가는 것처럼 아버지 역시 지방 공사판을 전전하셨다. 덕수가 장남이란 책임감 때문에 독일에 광부로 나가듯이 아버지 역시 장남이란 무게감 때문에 지방 공사판에서 힘들게 일하시면서도 동생의 대학 학비는 한번도 빼먹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물론 그것 때문에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가슴아픈 기억도 있다. 가난한 시골 농사꾼의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관계로 새어머니와 관계가 원만치 않았고 또한 할아버지 역시 흔히 보는 과거 시골 농사꾼의 전형처럼 현재의 친구 같은 부자지간이 아닌 폭력적인 분이셔서 아버지가 어린시절 참 많이 고생했다는 것을 커서 어머니께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선지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매를 절대 들지 않았다.그건 워낙 어린시절 매를 많이 많고 자랐기에 당신 자식들에게는 절대 매를 들지 않겠다는 무언의 다짐이었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정 다감한 분은 아니셨다.어려서 사랑을 듬뿍받고 크지 못해서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셨기도 했지만 자식들의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한것도 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결혼하고 나서도 언제난 지방 공사판을 전전하셨다.집에 오는 것은 언제나 몇 달에 한번씩이었다.내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를 보는 날은 언제나 목욕하러 가는 날이었다.아버지는 몇 달에 한번 올라오실 적마다 나를 목욕탕에 데려가서 때를 밀어주면서 자식이 얼마나 컸나 살펴보셨던것 같다. 몇 달만에 뵙는 아버지는 반갑기 보다는 언제나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늘 힘든 일을 하셨기에 얼굴에는 밝은 미소보다는 늘상 힘든 기색이 역력했고 그래선지 자식들에게 항상 엄격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셨다.지방을 전전하시면서 혼자밥을 드시면서도 허투른 낭비없이 외로운 삶을 묵묵히 이겨나가며 가족들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다. 어렸을적에 우리 가족은 정말 단칸방에 살았었다.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어도 단칸방을 벗어나기 힘들었는데 나는 항상 아버지가 입었던 옷을 어머니가 줄여서 입혀주셨기에 언제나 새옷을 입고 다닌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었다. 지방에서 일하면서 보낸 돈을 어머니께서 한푼 두푼 모으시면서 드디어 중학교 시절에 우리집을 가졌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께서 집으로 오셨는데 회사가 어려워져서 아마 대기발령 비슷한 것을 받으셨던것으로 기억한다.그 당시 아버지는 갑작스레 늙어보이셨고 난 처음으로 아버지의 뜨거운 눈물을 봤다.아마 그건 가족들을 잘 보살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자괴감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 눈물로 우리 가족은 모두 힘을 합쳐 아버지를 돕기로 했다.나와 동생들은 신문돌리기등을 했고 어머니도 부업을 하셨다.다행이도 아버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실수 있었고 우리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도 해소되었다. 그후 나는 대학을 가게되었고 다시 아버지와도 떨어져 살게 되었다.나의 진로와 관련해 아버지와 의견차이도 있고해서 그당시에는 오히려 더 다행이도 싶은 생각을 가졌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고 커서도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 아버지와는 차츰 데면데면하게 지낼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면서도 도대체 그런 말을 입에 올릴수가 없었다.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더 툴툴거리면서 아버지를 불편케 해드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바쁘게 지내고 새로 가정을 꾸미게 되면서 차츰 부모님께 관심을 덜 쏟게 되었다.항상 마음은 잘 보살펴드리지 못해 죄송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맘을 표현하기 힘들었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나 역시 피치못하게 회사를 나올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누가 말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와 사별하거나 이혼하는 스트레스 못지않는 것이 바로 직장에서 짤리는 거라는데 나역시도 그 엄청난 스트레스에 한동안 방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다행이 아내의 용기를 붇돋는 말과 자식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일어설 용기를 낼수 있었는데 이 때 문든 아버지 생각이 났다.직접 묻지는 못했지만 지금 나의 상황과 당시 아버지의 모습이 묘하게 중첩되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쉴적에 많은 책을 읽었다.물론 먹고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나 고민하면서 여러 종류의 책을 읽었는데 그때 다시 읽은 책중의 하나가 바로 아버지란 소설이다. 사실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적에는 왠 신파 소설??? 하면서 작가를 무시한 적이 있었다.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말기암 선고를 받은 어느 평범한 50대 가장이 죽음을 맞는 애절한 스토리다. 주인공 한정수는 지방대 출신으로 늦게 행시에 합격해 공무원을 하면서 부유한 가정의 부인을 만나 1남 1녀를 두게된다.외관상 화목한 가정같지만 대학생인 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주인공은 그리 존경도 신뢰도 받지 못하는 아버지였다. 어느날 한정수는 친구인 의사에게서 췌장암 선고를 받게되고 가족을 위해 보험금과 퇴직금을 정리하면서도 술에 취해 방황을 하게된다.하지만 그런 그의 괴로움도 모른체 가족들은 독설과 경멸을 보낼 뿐이다.가족들을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족들의 차가운 시선뿐에 그는 더욱 화가나고 방황을 하게된다. 하지만 남편과 아버지의 사형선고를 알게된 부인과 자녀는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고 뒤늦게 뉘우지치지만 주인공은 가족들에게 희미한 사랑의 미소만을 남긴채 떠난다는 내용이다. 아버지란 책은 소설로만 보았을적에는 뭘랄까 독자들에게 너무 눈물만을 강요하는 3류 신판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소설로서는 크게 가치가 없단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선지 크게 반향을 못얻었는지 절판이 된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읽는 내내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수가 없었다.이 소설속의 한정수는 바로 내 아버지와 같았고 또한 현재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다. 아버지는 내 기억에 늘 밤 늦게까지 일하셨고 또한 항상 술을 마셨던 것 같다.그래선지 몰라도 아버지는 가족들의 생일이나 체육대회 같은데 오시지 못했고 나와 동생들은 그런 아버지를 별로 반기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보니 가족을 보살펴야 된다는 무게감,직장생활의 고단함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지만 약해 보이고 싶지않아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힘든 삶을 이해할수 있게 되었고 당시에 왜 그런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절절히 들었다. 얼마전에 아버지께서 걷다가 다리 힘이 풀려 그만 아스팔트에 얼굴을 부디지쳤다.그 소식을 듣고 내려가 아버지의 상처를 드레싱 해드리면서 정말 맘 한구석에 찡한 생각이 들었다.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아버지가 이제는 몸도 제대로 가누시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내 자식들에게 알게 모르게 든든한 받침목이 되도록 노력했던 것처럼 아버지 역시 내가 힘들 때, 언제나 그 한 편에서 날 따뜻하게 지켜보고 계셨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절판된 이 책을 굳이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든다.뭐 문학적으로 큰 가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소 마흔전에 이 책을 읽어봐야 그다지 마음속에 와 닿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과 영화 국제 시장을 보면서 아버지란 이름속의 무게감과 고도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뭐 갑작스레 아버지 사랑합니다하고 낮 부끄러운 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하지만 아버지가 자식들한테 말없이 보여졌던 사랑에 대해 하나씩 둘씩 갚아나가야 겠단 생각이 절실히 든다. 그리고 또한 자식들에게 우리 아버지처럼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이 아닌 내가 그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표현해주는 사랑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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