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10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6.0
  • 50대 0.0
리뷰 총점 종이책
아름다운 흉터인지, 안타까운 스크래치인지
"아름다운 흉터인지, 안타까운 스크래치인지" 내용보기
나의 두 손등과 손가락들에는 세 종류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첫 소풍을 가기 전날 오후 마음이 들뜨다 못해 토방 아래에 엎드려 있는 누렁이 놈의 목을 졸라 대다 졸지에 숨이 막힌 녀석이 내 왼손을 덥석 물어뜯어 생긴 세 개의 개 이빨 자국 세트가 하나.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쯤 남의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조급한 도둑 톱질 끝에 내 쪽으로 쓰러져
"아름다운 흉터인지, 안타까운 스크래치인지" 내용보기

나의 두 손등과 손가락들에는 세 종류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첫 소풍을 가기 전날 오후 마음이 들뜨다 못해 토방 아래에 엎드려 있는 누렁이 놈의 목을 졸라 대다 졸지에 숨이 막힌 녀석이 내 왼손을 덥석 물어뜯어 생긴 세 개의 개 이빨 자국 세트가 하나.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쯤 남의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조급한 도둑 톱질 끝에 내 쪽으로 쓰러져 오는 나무둥치를 피하려다 마른 가지 끝에 손등을 찍혀 생긴 기다란 상처 자국이 그 둘,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방학이 되면 고향 집으로 내려가 논밭 걷이와 푸나무를 하러 다니며 낫질을 실수할 때마다 왼손 검지와 장지 손가락 겉쪽에 하나씩 더해진 낫 상처 자국이 나중엔 이리저리 이어지고 뒤얽히며 풀려 흐트러진 실타래의 형국을 이루고 있는 것이 그 세 번째 흉터의 꼴이다.

 

그런데 내가 시골에서 광주로 중학교 진학을 나오면서부터 한동안 그 흉터들은 나에게 큰 부끄러움거리가 되고 있었다. 도회지 아이들의 희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손에 비해 일로 거칠어지고 흉터까지 낭자한 그 남루하고 못생긴 내 손꼴새라니. 그러나 그 후 세월이 흘러 직장 일을 다니는 청년기가 되었을 때 그 흉터들과 볼품없는 손꼴이 거꾸로 아름답고 떳떳한 사랑과 은근한 자랑거리로 변해 갔다.

 

아무개 씨도 무척 어려운 시절을 힘차게 살아 냈구먼. 나는 그 흉터들이 어떻게 생긴 것인 줄을 알지.”

 

직장의 한 나이 든 선배님이 어떤 자리에서 내 손등의 흉터를 보고 그의 소중스러운 마음속 비밀을 건네주듯 자신의 손을 내게 가만히 내밀어 보였을 때, 그리고 그 손등에 나보다도 더 많은 상처 자국들이 수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였다. 그렇다. 그 흉터와, 흉터 많은 손꼴은 내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요, 그것을 힘들게 참고 이겨 낸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내 삶의 한 기록일 수 있었다.

 

 나이 든 선배님의 경우처럼, 우리 누구나가 눈에 보이게든 안 보이게든 삶의 쓰라린 상처들을 겪어 가며 그 흉터를 지니고 살아가게 마련이요, 어떤 뜻에선 그 상처의 흔적이야말로 우리 삶의 매우 단단한 마디요 숨은 값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직 나만의 자랑이나 내세움거리로 삼을 수는 없으리라. 그것은 오히려 우리 누구나가 자신의 삶을 늘 겸손하게 되돌아보고, 참삶의 뜻과 값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비춰 보는 거울로 삼음이 더 뜻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생각 속에서도 때로 아쉽게 여겨지는 일은 요즘 사람들 가운데엔 작은 상처나 흉터 하나 지니지 않으려 함은 물론, 남의 아픈 상처 또한 거기 숨은 뜻이나 값을 한 대목도 읽어 주지 못하는 이들이 흔해 빠진 현상이다. 아무쪼록 자기 흉터엔 겸손한 긍지를, 남의 흉터엔 위로와 경의를, 그리고 흉터 많은 우리 삶엔 사랑의 찬가를 함께할 수 있기를!


 

최근에 세월호가 인양이 되고(대선 때문에 추적 보도가 자꾸 묻히는 게 아쉽다.) 3주기가 지나고 하다 보니 덩달아 세월호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을 조롱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본의 아니게 다시 접하게 된다. 단원고 교복을 구입해 입고 다니면서 학생 행세를 한다든가 사망자들을 어묵에 비유한다거나 하는 인간 이하의 짓을 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공감 능력이 정말 너무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차마 그렇게까진 못할텐데. 결국 고소를 당하고 경찰서 출입을 좀 해야 생각이 짧았다며 입에 발린 사과를 지껄이는 꼴을 보면서 대체 어떻게 저런 자식들이 생산이 되었을까 싶다가도 나와 함께 하는 학생들이 혹시나 그러면 어떡하나 싶어 가슴이 섬뜩해지기도 한다.

 

위의 글은 이청준의 '아름다운 흉터'라는 수필의 전문이다.  이번 고등학교 1학년 시험 범위기도 하다. 내용이 쉬워서 평균 점수 깔아주는 서비스 문제들을 여기서 내려고 했다. 글의 내용이 단순하다. 주인공의 손에는 어릴 적 생긴 흉터들이 있다. 고생 안 하고 자란 아이들의 희고 깨끗한 손과 대조되어 부끄러워 했었지만, 직장 선배님의 격려와 공감을 통해 흉터가 생기게 한 자신의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나 살면서 상처를 받고 그로 인해 생긴 흉터를 지니고 살아가는데, 그것이 삶을 더 단단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된다. 또 그 흉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남의 아픈 상처도 헤아려 주면서 살자는 그런 내용이다. 어묵 운운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이 글을 함께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참 좋은데, 요즘 아이들은 이 내용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뜬금없이 토방 밑에 있는(토방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음) 누렁이의 목은 왜 조른 건지, 그게 왜 삶의 단단한 마디가 되는 건지 납득하기 어려운 점. 두 번째와 세 번째 흉터가 생긴 경위는 요즘 아이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과정이라 글쓴이의 심정에 공감하기 어려운 점.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기는 커녕 등산도 생전 한 번 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 태반이고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낫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절반쯤, 서양의 사신(해골 얼굴에 시커먼 보자기 뒤집어 쓴)이 들고 다니는, 자루가 사람 키만한 그 낫을 떠올리며 벼가 다 자란 논에 난장질을 하는 상상을 하는 녀석들이 나머지 절반쯤 된다.

 

이 작품이 실려 있는 단원은 '개성적인 삶, 효과적인 표현'이다. 수필이라는 갈래의 관습 즉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얻은 깨달음을 개성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을 학습할 자료다. 따라서 이 글을 읽을 때는 글쓴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 경험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적절한 읽기 방법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어려움들 때문에 자신의 삶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보니 이 글이 전하고자 하는 감동이나 메시지도 도식적,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만다. 그러니 내용도 기억에 잘 남지 않고, 덕분에 서비스 점수는 커녕 평균 점수 하락의 복병이 된다. 아름다운 흉터가 아니라 성적표에 스크래치만 낸 셈이다.

 

며칠 전 점심 때 급식소에서 교감 선생님과 같이 밥을 먹는데 마침 텃밭 이야기가 나와서 이 작품 얘길 했더니 벼를 벨 때와 보리를 벨 때의 다른 점, 낫을 쥐는 그립과 벼 줄기를 쥐는 방법, 못줄을 잡는 요령에다가 농사일이 싫어서 공부를 했노라는 비사(?)까지 줄줄 흘러나왔다. 내가 설명을 하고 밑줄치고 하는 식으로 수업할 게 아니라 그냥 교감선생님 모셔다 놓고 한 1~20분쯤 인터뷰 형식으로 그 시절 이야기를 들었어도 참 좋을 뻔했다. 이래서 좋은 선배가 필요하고 그 사람들과의 다양한 대화가 중요한 것 같다. 마침 다음 단원이 대화의 원리를 배우는 단원이니 진짜로 한 번 모셔서 인터뷰 연습을 하는 시간을 한 번쯤 가져봐야겠다.

 

 

 

 

s*************k 2017.04.27. 신고 공감 2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