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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의 여정, 현대 스페인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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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예술가는 대개 대표작으로 통용되는 작품이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피카소는 의외로 누구나 최고작이라 인정하는 대표작이 없다. 입체파의 화풍이 너무나도 독특하고 독창적인 나머지, 화풍의 아우라가 개별 작품의 존재감을 앞서버린 것이다. 아마 피카소가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이라, 유명세가 예술세계를 가려버린 탓도 없지는 않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피카소의 작품 중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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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예술가는 대개 대표작으로 통용되는 작품이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피카소는 의외로 누구나 최고작이라 인정하는 대표작이 없다. 입체파의 화풍이 너무나도 독특하고 독창적인 나머지, 화풍의 아우라가 개별 작품의 존재감을 앞서버린 것이다. 아마 피카소가 너무나도 유명한 인물이라, 유명세가 예술세계를 가려버린 탓도 없지는 않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피카소의 작품 중 한 작품만을 꼽으라면, 유명세로 보나 사회적 파장으로 보나 아마 <게르니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게르니카>를 다루고 있지만, <게르니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게르니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뒤에 어떤 운명을 겪었는지에 초점을 두어 조명하고 있다.

 

<게르니카>는 유명한 작품 중 가장 정치적인 작품일 것이다. 어쩌면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 중, 사실상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목적이 있는 예술이란 목적성이 예술성을 잠식하여 형편없는 작품이 될 때가 많았고, 정치적인 목적일 때라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게르니카>는 아니었다. 처음 공개되었을 때부터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그 이미지가 수없이 복제된 현대에서도 의미를 잃지 않고 있다.

 

피카소가 위대한 화가라서 그랬을까? 출중한 능력이 목적성을 통제해서 예술성도 성취한 것일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게르니카>의 정치성은 특정 정치정파를 편드는 정치성이 아니라, 전쟁에 일방적으로 희생된 민간인들을 추모하는 정치성이었기 때문이다.

 

<게르니카>의 사람들은 울부짖고 있다. 싸우지 않고,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럴 겨를이 없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건물이 무너지는데, 힘 없는 민간인이 울부짖으며 주저앉거나 도망치는 것 말고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조용한 게르니카 마을을 폭격한 프랑코 세력은 정치싸움의 승자가 되었고, 스페인을 통치하게 되었다. 피카소는 프랑코 정권을 인정할 의사가 없었고, 프랑코도 피카소를 용납할 의사가 없었다. 결국 피카소는 고국을 그리워하면서도 망명하듯이 외국에서 지내야 했고, 스페인을 그린 <게르니카>도 스페인 밖에 있어야 했다. 피카소는 결국 프랑코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스페인이 민주화되는 날 <게르니카>를 스페인에 귀환시켜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그저 <게르니카>가 아니라 <게르니카, 피카소의 전쟁>인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스페인의 정치사를 비중있게 다룬다. 스페인이 민주화되는 과정은 겉으로는 밋밋할 정도로 평탄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웬만한 극영화를 능가하는 드라마다. 프랑코는 다른 독재자들이 죽은 이후 하나같이 뒤끝이 좋지 못한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후계자가 자리잡는 데 실패하거나, 후계자가 자리잡은 뒤에는 선임자 격인 독재자를 폄하하거나, 정치투쟁 이후 완전히 다른 인물이 그 뒤를 잇게 되는 등, 독재자가 생전에 원했던 방향으로 굴러간 적이 없었다. 프랑코는 그것이 못내 걱정스러웠고, 자신이 죽은 뒤에도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기발한 방책을 생각해낸다. 바로 스페인에 왕실을 복고하는 것이었다.

 

수십 년 전 스페인 왕실은 쫓겨나듯이 망명했는데, 그 후손 중에서 새 왕을 세우고 자신은 왕조의 조력자쯤 되는 위치로 남겠다는 계획이었다. 일단 한 번 세워지면, 왕실처럼 확고부동한 후계자는 없다. 게다가 대대로 세습되는 것이 보장된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후계자로 선택되었고, 후안 카를로스 1세는 파시스트 교육을 충실하게 받으면서 프랑코를 만족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프랑코가 죽어도 프랑코 체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미래를 두려워했을 정도로 말이다.

 

프랑코가 죽고 후안 카를로스 1세가 통치자가 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 제도를 순차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평화적으로 입헌군주국 체제를 구축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가 처음에는 찬탄했고, 나중에는 존경스러웠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대체 몇 년간을 절치부심하면서 본심을 숨기고 지낸 걸까. 아무리 자기보다 훨씬 나이많은 프랑코가 죽기만을 기다리면 된다고는 해도, 그런 상황을 기꺼이 감내하고 충실하게 연기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아니었다면, 스페인은 과연 민주화될 수 있었을까. 새로운 독재자가 나타나 지금껏 군림하고 있었거나, 설사 민주화되었다 해도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피를 흘려야만 했을 것이다.

 

스페인은 민주화되었다. 그리고 <게르니카>는 돌아왔다. <게르니카>의 귀환이다.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게르니카>의 고향은, 피카소의 고향은 언제나 스페인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게르니카>는 새로운 논쟁에 휘말린다. <게르니카>를 게르니카 지역의 미술관에 전시할지, 스페인 중앙미술관에 전시할지 이견이 생긴 것이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후보지가 거론되었고, 현재에도 논란이 완전히 가라앉기는 않았다고 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라 겪는 비애일까.

 

그러나 설사 <게르니카>의 전시 장소에 대한 논의가 종식된다고 해도, 민간인 마을에 전투기 부대를 끌고 폭격을 가한 게르니카의 슬픔이 남아 있는 한 '게르니카의 전쟁, 피카소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게르니카의 수난과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게르니카의 참상을 생생히 보여주는 <게르니카>가 있는 한 슬프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p*******1 2010.06.0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