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귀야행,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 영혼의 안내자, 음양사 등등. 주제는 다르지만 영혼에 관한 이야기, 인간과 요괴에 대한 이야기가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자주 찾는 책들이다. 이런 작품들을 즐겨보는 이유는 현실보다 환상적인,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력의 덩어리들을 요괴라는 이름으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작품 속에서는 요괴라는 것을 엄밀하게 정의하고 별개의 것으로 치부하기 보다, 인간의 의지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보여질 수 있는 존재로 본다. 그리고 나 또한 요괴나 귀신이란 것은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형적인 자연의 산물이라 생각하는 쪽이다. 때문에 요괴를 통해 인간이 가진 욕망이나 의식을 읽을 수 있다고 할까. 샤먼 시스터즈. 제목을 보면 그리 정은 가지 않지만, 뒤에 시스터즈를 빼고 생각하면 그럴싸하다. 샤먼. 인간과 자연을 이어주는 정신적인 초월을 이룬 매개체. 영적으로 자연과 교합하며 그들의 의사를 인간에게 전달하고, 인간의 의지를 자연으로 전해주는 존재. 이렇게 말하면 뭔가 대단하고 엄청난 이야기를 기대할지 모르겠지만, 단순하게 말해 이 작품은 현대로 이어진 무가(巫家)의 자잘한 일상 이야기이다. 단지 샤먼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좀 더 자연에 가까운, 자연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요괴 퇴치가가 아닌 샤먼이란 단어를 썼냐하면 기본적으로 이 작품 속에서 요괴는 퇴치하는 게 아닌 정화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퇴치는 강요에 의해 강압적으로 내쫓는 것이지만 정화는 그 의사를 존중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 설득시키는 행위이다. 의지를 읽고 전달하고 공존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요괴 퇴치가보다는 샤먼이란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아는 우리네 무속 또한 퇴치가 아닌 넋을 달래고 어우르고 성불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것을 공격적이고 강압적인 형태로 바꾸어 놓은 것은 흥미나 자극을 위한 선택, 혹은 포크 같은 서양식 세계관의 반영, 억압된 인간의 공격성의 발현이라 여겨진다. 어쨋든, 뭔가 어마어마한 감동이라든지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라든지 하는 걸 이 작품에서 기대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우리들이 일상을 이야기하듯 요괴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하게 전달할 뿐이다. 구전을 전하듯 요괴에 대한 지식들을 무지한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그 스승으로서의 역할, 선대의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맡은 것이 두 자매의 할아버지다. 자매는 각기 하나의 능력을 나누어 이어받았기 때문에 둘이 함께 있지 않으면 완전한 이해를 구하지 못한다. 때문에 할아버지는 그 점이 염려스러운데. 특히 동생인 미즈키는 요괴에 씌이기 쉬운 체질인 탓에 더더욱 걱정이다. 활달한 성격처럼 다른 존재에 대한 감화력이 강한 미즈키, 이에 반해 내성적인 성향의 언니인 시즈루는 요괴를 볼 수 있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정체를 판별하고 조언을 구한다. 재미있는 점은 내면적인 성향의 시즈루는 요괴의 외면을 볼 수 있고, 외면적인 성향의 미즈키는 요괴의 내면을 공감할 수 있다. 마치 자신의 부족한 면을 요괴로부터 보충받는 것처럼 자신의 다른 한 쪽을 요괴라는 존재로부터 찾고 있다. 아마도 요괴와 인간이란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역할을 분배받지 않았을까. 요괴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작품 내의 조언자인 할아버지를 통해 자세한 설명을 얻을 수 있다. 음양사와는 조금 다르지만 요괴에 대한 좀 더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만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