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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거실 소파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조용히 박수를 쳤다. 기립박수를 치지 못한 것은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이어 미국의 노예 해방,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레옹이 연상의 가지를 뻗었다. 자유를 얻은 남부 흑인들 중의 상당수가 다시 주인에게 자발적으로 돌아갔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자유란 그 신체의 예속되지 않음보다 그 정신의 자유를 뜻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난 생활이 고달파지자 이집트에서의 노예 시절을 그리워했다는 기록도 이와 비슷한 예다. 자유를 어디에 쓸지 모르는, 정신으로부터 노예된 이들은 자유를 두려워한다. 긴 전쟁에서 패배에 길들여진 프랑스 왕실과 귀족은 잔의 기적 같은 승리와 침략군을 완전히 몰아내려는 그녀의 의지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문 닫을 뻔했던 왕조를 다시 이어가게 된 것에, 이전의 기득권을 적당히 되찾은 것에 만족하고 19세의 처녀 야전 지휘관을 용도폐기한다. 권력의 속성이 그러할 것이다. 영화는 당연히 픽션을 가미했지만 대체로 기록으로 남아있는 잔의 역사를 충실하게 옮겼다. 뤽 베송이 역사극을 한번 잘 만들어보기로 결심한 것일까? <레옹>의 총격전 장면 중에 성모상이 산산조각나는 장면을 보면서, 저 감독 가톨릭에 대한 반감이 좀 있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에서도 어린 잔이 텅빈 성당에서 성혈을 마구 들이키는 불경스러운(!) 장면은 나온다. 그런데 영화 전반부에서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영국군을 물러서게 만드는,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되 영화에서는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기적" 같은 장면을 삽입한 감독의 의중이 정말 궁금했다. 후반에 가서는 뤽 베송의 의도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잔은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프랑스의 왕 샤를 7세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신으로부터도 버림받은 것이 아닌지 고통스러워 한다. 전반부 전투 장면에서의 소름끼치는(!) 카리스마보다 오히려 감옥에 갇힌 잔의 내면 연기에서 밀라 요보비치는 빛이 난다. (현존하는 배우 중에 뤽 베송의 잔다르크를 밀라 요보비치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마치 민중의 지지를 받는 예수의 처형에 부담을 느끼고 서로 결정을 떠넘기는 예수 시대의 권력자들처럼, 잔의 예정된 최후를 앞두고 세속권력과 교회권력은 쓴웃음나는 핑퐁게임을 벌인다. 이런 가운데 독방에 갇힌 잔은 자신의 내면-더스틴 호프만이 분한-의 의심과 처절하게 싸운다. 여기에서 감독의 통찰이 빛난다. 사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 속의 잔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끝까지 지킨다. 영화에서도 그녀는 화형을 두려워 하는 게 아니라 고해성사를 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심문관들(역사) 앞에서의 당당한 태도 역시 기록과 일치한다. 그러나 독방(내면)에서의 잔은, 십자가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절규한 예수처럼 완전한 단절과 공포에 떤다. 그녀의 "의심"은, 전장에서의 사소한 행위 하나, 말 한마디까지 다시 더듬는다. 이것은 잔의 영혼의 순결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서 뤽 베송은 기록으로 남은 잔보다 실존의 잔에 더 가까이 다가갔는지 모른다. 아니, 다가간 것이 확실하다. 평전과 성인전의 모든 용감하고 거룩한 최후는 사실 두려움과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마침내 신념을 지키기로 선택한 이들에 대한 기록으로 읽혀야 할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뤽 베송이 한 성녀에 대한 훌륭한 종교영화이자 한 인간에 대한 눈부신 평전을 만들었다고 해도 기꺼이 동의하고 싶다. <레옹>과 그에 앞서 만든 <니키타>에서부터 뤽 베송은 확실한 자기 스타일을 가지되, 그 변주에 놀라울 정도로 현란하다.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흐름의 완급을 조절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음악 역시 오늘 찾아보니까 같은 사람(Eric Serra)이었다. <레옹>에서, 마틸다가 가족이 몰살당한 직후 레옹의 방 문 앞에서 필사적으로 벨을 누르다가 마침내 문이 열리는 장면, 그런 걸 두고 영화사에 빛나는 장면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장면은 한 소녀의 슬픔과 공포와 구원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에서 <레옹>에서의 그와 같은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꼽기는 힘들다. 그런 장면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에서 들판에 떨어져 있던 칼 한 자루를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잔의 혼란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만든 시나리오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가 현대의 고전으로 길이 남을 만큼 대중적인 찬사를 받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머릿속 Best 5에서 한 편은 오늘자로 밀려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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