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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분 리뷰에 대한 반박과 책에 대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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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20권) 중에 유택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왜 일본이 그렇게 어리석었는지, 왜 미국은 그렇게 잔인했는지." 그 외에도 소년,소녀들의 말과 행동은 미국을 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가 결코 누구에게도 연민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녀는 당시 상황에서도 모든 인간을(일본인이든 미국인이든) 인간적으로 그려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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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20권) 중에 유택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왜 일본이 그렇게 어리석었는지, 왜 미국은 그렇게 잔인했는지." 그 외에도 소년,소녀들의 말과 행동은 미국을 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가 결코 누구에게도 연민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녀는 당시 상황에서도 모든 인간을(일본인이든 미국인이든) 인간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깊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보이려 했을 뿐입니다. 또한(여기서부터는 제 견해입니다.) 일본 또한 분명 전쟁의 피해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승전국인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중에도 분명 전쟁으로 피해입은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잘못된 것이 있다면 전쟁이라는 상황을 만들어낸 인간의 잘못된 욕망입니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자고해도 책 내용에 나오는 인물들은 피해자에 불과합니다. 고로 제가 볼 때에 님의 견해는 단지 내셔널리즘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님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만을 반영한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닐까요?(똑같은 식으로 보자면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였던 광개토대왕이라든가 칭키즈칸과 같은 인물들도 모두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놈들이지요) 하나의 인간으로써 이성적인 판단을 하자면 모두가(여기서 제가 말하는 것은 국가가 아닌 국민들을 뜻합니다.) 전쟁의 피해자였다는 것이 보이리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전쟁에 대한 제 견해를 말하자면 전쟁은 권력을 가진 인간이 욕망에 대해 나약함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이며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입니다.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웃는 사람보다 우는 사람이 많을테니까요. *아래부터 책 내용에 대한 감상입니다 책 내용에 나오는 인간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악역처럼 보이던 인물에게조차 인간적인 면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작가는 모든 인간은 인간적이다 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느 것의 가치가 더 중요한지는 상황과 개인의 견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유택의 말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 깊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란 가설은 그 어떤 논리들보다도 훌륭하다는 것을 이 책에서 얻었다는 말을 드리며 제 글을 잃으신 여러분들께서 이 책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인상깊은구절]
24권 건축가 루돌프 애그리콜라가 그의 아들 윌리엄 애그리콜라에게 보내는 편지 中 난 문득 깨달았다.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은 너라는 것을.
y*****7 2006.02.11.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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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반박-이 만화는 정부의 보도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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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에 대해 아무런 사심이 없기란 힘든 노릇이지만, 반일 감정에 맹목적으로 매몰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긴 마찬가지다. 작가는 일본인이다. 일본인의 관점을 가지고 살아왔을 것이고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우선으로 사고할 것이다. 그건 누가 뭐랄 수 없는 일이고 잘못도 아니다. 또한 원폭이라는 엄청난 일을 미국으로부터 당한 일본인들이, 미국의 전쟁 종식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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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에 대해 아무런 사심이 없기란 힘든 노릇이지만, 반일 감정에 맹목적으로 매몰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긴 마찬가지다. 작가는 일본인이다. 일본인의 관점을 가지고 살아왔을 것이고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우선으로 사고할 것이다. 그건 누가 뭐랄 수 없는 일이고 잘못도 아니다. 또한 원폭이라는 엄청난 일을 미국으로부터 당한 일본인들이, 미국의 전쟁 종식 방법에 대해 고운 마음을 갖고 있을 리도 만무하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야 쉽게 ''일본''과 ''일본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동일시하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바꿔 생각해 보라. 한국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으로 외부에 대표되는 정부, 혹은 국가라는 이름의 이미지나 방침에 모두 부합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이던가. 엄밀히 말해 전쟁이란 것은 국가가 일으키는 것이지, 국민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일본의 전쟁에 대해 무책임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외부에서 보는 것만큼 편하게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거다. 작가 자신은 분명 전쟁이 그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 내적 목소리일 유택이라는 캐릭터는 ''정부의 사람''이 아니라 ''민간인의 관점'' 쪽에 서 있다. 유교수 시리즈 외의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2차 대전 종전 직후의 상황과, 거기에서 비롯된 군국주의적 의식에 세뇌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이들간의 괴리가 등장할 때가 있다. 유택도 마찬가지로 그 괴리와 혼돈의 역사 자체를 표상하면서도 그것을 한 꺼풀 위에서 관찰하는 추상적 의식 역할을 한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비통해 하는 사람들 틈에서 ''이제 끝났다''고 홀가분해 한다. 그리고는 전쟁이 남긴 서민들의 상처를 관찰하고 보듬게 된다. 그는 직접적인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진 않지만, 인간의 부당하고도 엄청난 폭력이 어리석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대동아공영을 부르짖으며 아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 정부와는 분명히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군국주의적 일본과 반대의 지점에 있으려면 반드시 아시아를 향해 사죄하고 죄의식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은 그 ''아시아''의 입장인 우리의 생각이다. 죄를 지은 주체는 군국주의적 일본이므로, 사과도 군국주의적 일본이 해야만 한다. 하지만 전쟁에 동의하지 않았던 일개 일본인에게, 그것이 어떤 상황과 시점이든지를 막론하고 반드시 요구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가 군국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으려면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대 아시아 사과를 하는 일본인이어야만 할까. 유택이 만일 일본이 점령했던 아시아의 정치적 상황과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이거나, 작품 내에서 조선족이라도 나왔거나 했다면 그는 대(代)아시아에 대해 그런 태도를 가졌어야 옳다. 하지만 그는, 쑥밭이 되어 미군이 점령하고 있었던 일본땅 한 가운데를 살고 있었던 한 일본인의 상황일 뿐이다. 눈 앞에는 점령군이 있고, 잿더미가 된 도시가 있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 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자신이 있다. 그는 그 상황에 충실할 따름이다. 천황의 패전 방송에 비통해하지도 않고, 제2의 아시아 패권국을 꿈꾸지도 않는다. 그는 인간 개인이 충실히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군국주의적 일본과 대척점에 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엄청나게 질곡 많은 현대사를 지닌 나라다. 2차대전 종전 직후를 생각하면 그 시절에 얼마나 복잡한 것들이 엉켜 있었는지, 그 시절에 태동한 것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문제거리들을 제공해 왔는지 다들 알 것이다. 입장이 달랐을 뿐 일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가가 짤막하게 끊어지는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몇 권 씩이나 할애했다는 것 또한 그것을 증명한다. 작가의 변은 주지하다시피 전쟁과 같은 폭압에 망가지지 않고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분명 잘못을 저질렀지만, 일본의 민간인들 또한 전쟁의 피해자였다. 작가가 서 있는 위치는 그곳이다. 일본 정부와 일본의 우익 세력이 여전히 한국을 깔보고 있는 상황이고, 자신들의 전쟁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꼴을 늘 보고 사는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일본에 대해 껄끄러운 눈으로 보게 되기 십상이다. 그것 또한 처음에 썼던 ''작가는 일본인이다''와 마찬가지로 ''우린 한국인이다''라는 어쩔 수 없는 조건 때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일본인이 일본을 위한다''는 것에까지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은 오버다. 단지 일본인이 자국민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자국을 폭격한 미국을 미워한다는 것 때문에 그들의 역사 의식을 문제삼는다는 건, 일본 우익이 패권주의적 이기심을 드러내는 것 만큼이나 아전인수격인 생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안과 정의를 단순하게만 보지 말자. 우리의 입장이 있으면 상대방의 입장도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t*****5 2006.09.16.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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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계가 유교수의 한계 -윗글 반론.
"작가의 한계가 유교수의 한계 -윗글 반론." 내용보기
작가가 유교수의 입을 통해 말한다. 전쟁이 나쁜 것이라고. 그러나 작가는 그 전쟁을 마치 미국이 일으킨 것 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길어야 한두권의 에피소드로 일관한 이 작품에서 너댓권을 한 에피소드로 꾸밀만큼 비중을 둔, 즉, 그만큼 작가의 의도나 주장이 강하게 들어간 이 1945년 편 어디에서도 일본이 전쟁을 주도했고, 그로인해 피해를 입은 많은 다른 나라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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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유교수의 입을 통해 말한다. 전쟁이 나쁜 것이라고. 그러나 작가는 그 전쟁을 마치 미국이 일으킨 것 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길어야 한두권의 에피소드로 일관한 이 작품에서 너댓권을 한 에피소드로 꾸밀만큼 비중을 둔, 즉, 그만큼 작가의 의도나 주장이 강하게 들어간 이 1945년 편 어디에서도 일본이 전쟁을 주도했고, 그로인해 피해를 입은 많은 다른 나라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쿠라다선생이 미군 주둔 후 크리스마스 축제에 대한 일본인의 반감을 언급하며 ''결국 이태리나 독일도 기독교인데 말이야''라고 하는 구절은 이태리나 독일은 일본의 편, 즉 아군이란 의미로 쓰고 있다. 세계가 비난하는 전범이란 느낌은 전혀 주지 않고 말이다. 몇권에서 나온 말인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을 때 이야기를 하며 언뜻 보인 말에는 ''일본이 아시아를 좀 더 강하게, 좀 더 근대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풍겼고, 왜 일본이 어리석었는지, 왜 미국은 잔인했는지. - 유택의 이런 발언은 언뜻 자기 반성 같기도 하지만 (사실 유택의 입장에선 반성의 의미다. 그러나 많은 일본인에게는 ) 일본의 패배가 어리석었던 것이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 어리석었던 것은 결코 아니라는 일본인의 시각, 굴하기 싫으나 억지로 하는 사과의 전형에 불과하다. 진심으로 전쟁에 대한 반성을 했다면 자기반성이 가장 앞서야하는 일본 아닌가. 일본인을 무시하는 미국인, 민간인의 사유지인 저택을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고, 혼란속의 일본정세 속에서 한몫 챙기려는 대령, 폭격과 전쟁, 그속에 아무죄없이 죽어간 일본인, 그리고 남겨진 불쌍한 고아들. 21권. 중령과 대령의 대화에서 적당한 집을 찾는 대령에게 ''자기들 손으로 산산조각 내놓고 좋은 집이 없다고 징징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냉소하는 알렌중령의 말은, 줄거리상 그의 성격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나, 일본인이 읽기에는 ''우리를 박살낸 것은 미국, 거기다 뻔뻔스럽기까지 했다'' 는 느낌을 받을것이다. 그러라고 작가가 의도하고 집어넣은 말이니까. 22권. 시장에서 야쿠자 소탕때 미군들의 대사나, 유독 미국인인 대령의 아이들을 정말 밉살스럽고 못생기게 그린 것도 작가의 미국에 대한 시각을 반영해 준다. 냉소적이지만 일본에, 일본인에게 점점 매료되어가는 미국인 알렌을 제외한 다른 미국인들은 우월의식으로 가득찬,추악하고, 비열한 성향만을 보여줄 뿐, 인간적인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일본은 자기네 역사는 참으로 웅장하게 왜곡시키는 나라니까, 이 작가 역시 20세기 초반 일본이 어떤 짓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할 것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동안 한국의 젊은 청년, 어린 처녀부터 숟가락, 밥그릇까지 죄다 빼앗긴 조선의 이야기도, 땅을 빼앗기 위한 토지개혁으로 조선의 토지를 몰수한 총독부의 이야기도, 이름도, 말도 빼앗긴 채 신민사상과 노예근성을 주입받아야 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도, 작가는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뒤 그네들의 만행을 인정하는 모습은 보지 않았을까. 일본이 이탈리아와 독일과 연합하여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숱한 침략전쟁을 주도했음은 알고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피해자인 일본의 불쌍한 모습과 마치 침략자처럼 무도한 미국인의 모습만 그렸다는 것은 작가의, 일본의 생각이 이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참으로 씁쓸하다. 나는 이책을 번역한 출판사에 묻고싶다. 한국인으로서 이런 만화를 읽고 화가 나지 않았는지. 번역해서 책 몇권 팔아 이익 남기는 것만이 중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한국인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주는 건 어떨까.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이런 황당한 일본인의 사고를 접하고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은 드물것이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보는 특이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주소를 안다면 작가에게 제대로 된 역사서를 한권 보내주고 싶은 심정이다.
a****9 2006.05.27. 신고 공감 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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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길을 생각하면서 신나서 살아간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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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40앞길을 생각하면서 신나서 살아간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24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4.6.25.  익숙한 대로 어떤 일을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익숙한 대로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어떤 일을 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때로는 틀리거나 어긋날 수 있으니까요.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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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40



앞길을 생각하면서 신나서 살아간다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4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4.6.25.



  익숙한 대로 어떤 일을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익숙한 대로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어떤 일을 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때로는 틀리거나 어긋날 수 있으니까요.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택 교수는 어떤 길을 걷는다고 할 만할까요? 늘 똑같은 때에 일어나서 똑같은 몸짓으로 걷는다면, 늘 똑같은 때에 잠들고 똑같은 때에 밥을 먹고 하는 흐름이라면, 이러한 삶은 ‘익숙한’ 대로 지낸다고 할 만할까요?



“너희 아버지가 ‘위대하다’는 전제 자체를 난 동의할 수 없어. 적어도 이 학교에서는 짐도 베티도 짐의 아버지도 알렌 중령도 단지 담당한 역할만 다를 뿐, 우린 다 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사람이 알렌 중령에게 직접 하면 돼.” (11쪽)


“산타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없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았어. 그런 이상 산타의 존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야.” (11∼12쪽)



  어느 모로 본다면 유택 교수는 ‘익숙한’ 대로 사는 듯합니다. 유택 교수를 둘러싼 사람들은 이녁을 ‘익숙한’ 대로 ‘똑같이’ 산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러나 유택 교수는 달라요. 유택 교수는 스스로 ‘익숙한’ 대로 어떤 일을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유택 교수로서는 다른 사람 눈치를 보아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보이는 겉모습에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보거나 저렇게 보거나 따질 일이 없어요.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꿈을 꾸면서 새롭게 이루려는 생각을 마음에 품지요. 그래서 ‘겉모습’은 남들한테 익숙한 똑같은 몸짓처럼 보이지만, 유택 교수 마음속은 늘 새롭게 들끓거나 춤을 추어요.



“그러고 보니, 자넨, 종전 날 기쁜 듯이 거리를 걷고 있던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뭐?” “조금 더 먼 미래를 보고 싶고, 알고 싶었습니다.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 신나서 죽을 수가 없습니다.” (26∼27쪽)


“일본인은 예부터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 살면서 바람과 나무, 물과 대지 등 삼라만상에서 신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들의 아픈 곳을 달래 주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팔백만의 신의 존재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기독교도 인정합니다.” (48쪽)



  날마다 익숙한 일을 한다면 하루가 흐르고 또 하루가 흐르더라도 새로울 수 없습니다.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한다면 날짜가 바뀌더라도 새로운 일이란 없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누린다면 하루하루 늘 새로운 바람이 불어요. 그러니까 유택이라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 대목을 바라보는 셈입니다. 어제하고 오늘은 똑같을 수 없다고 여기지요. 스무 해를 살았으면 지난 스무 해 동안 ‘똑같은 날이란 한 번도 없었다’고 깨달아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숨결이 흐르고, 모든 하루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르며, 모든 마음은 저마다 새로운 꿈이 흐른다고 할 만하지요.



“그 불빛을 보고 모두가 떠올린 건 공습의 불길이야. 이글거리면서 타들어가서 나중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불길.” “그런 걸 상상한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상상한 건 축복의 따뜻한 불빛입니다.” (61쪽)


“잘 들어, 미네타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나면서 또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거야.” (155쪽)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날마다 새롭게 꿈꿀 수 있기에 삶을 짓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배우려 하지 않는데다가 날마다 새로운 꿈이라고는 없기 때문에 삶을 짓지 않아요. 《천재 유교수의 생활》 스물넷째 권에 나오는 ‘알렌 중령’은 ‘늘 똑같을 뿐인 날’이라고 바라봅니다. 이녁을 둘러싼 사람도 ‘언제나 똑같이 그 자리에 머물 뿐’이라는 생각을 아주 단단히 붙잡습니다.


  알렌 중령으로서는 어릴 적에 겪은 어떤 일을 ‘이녁이 배울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생각’으로 여깁니다. 그 자리에서 한 걸음조차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알렌 중령한테는 달력 날짜는 대수롭지 않아요. 모두 똑같으니까요.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저 똑같을 뿐이에요.



“조금 더 오래 살면 난 얼마만큼의 걸작을 남길 수 있을까? 하지만 헛간에서 지하실로 연결되는 마지막 방을 꾸미면서, 난 문득 깨달았다. 내 생애 최고의 걸작은 너라는 것을.” (189∼190쪽)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배웁니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더라도 못 배웁니다. 서로 사람과 사람이라는 숨결을 알아차리거나 느낀다면 이때부터 배웁니다. 서로 사람과 사람이라는 숨결을 읽지 않거나 보려 하지 않는다면 조금도 안 배웁니다.


  사람 사이에 높고 낮음이 없어요. 사람 사이에 크고 작음이 없어요. 우리가 스스로 이를 바라볼 수 있으면 날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우리가 스스로 이를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 언제나 제자리걸음이거나 쳇바퀴에서 맴돕니다. 2016.7.2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h*******e 2016.07.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