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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은 눈에서 시작한다> 라는 기사를 본 적있다. 첫 눈빛의 교감이 불륜을 낳는단다. 미혼 남녀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 말로 표현하고 신체 언어를 사용하면 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륜 남녀에게 그것은 금지된 행위이니 어떤 의미에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불륜만 그럴까. 어떤 사랑은 '눈빛'에서 시작하고, 또 어떤 사랑은 주고 받는 말에서, 혹은 손짓에서, 몸짓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그레이엄 그린의 원작 소설 <사랑의 종말, The end of the affair>는 1955년에 데보라 카 주연으로 한 차례 영화화되었다. 아쉽게도 기품 있게 아름다운 데보라 카의 작품은 못 봤다. 순전히 <랄프 파인즈> 때문에 이 영화를 봤다. 클로즈업 되는 그의 눈빛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호흡이 멈춘다. 그의 눈빛에 흔들리지 않을 여성이 몇이나 될까.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의 남녀는 눈빛으로 사랑을 시작했다.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들의 '불륜'은 '전쟁'이란 극한 상황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곰곰이 생각하면 불륜과 전쟁은 닮았다. '전쟁'은 인류의 평화를 파괴하는 외교 행위의 마지막 수단이지만 암묵적으로 금지되었다. '불륜' 역시 가정의 안락을 깨트리는 금지된 행위다. 그래서 당사자에겐 로맨스고 사랑이지만 타인에겐 '배륜(背倫)'인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전쟁'은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영화는 한 남자의 질투에 대한 기록임을 고백한다. 어느 날 불쑥 자신의 곁을 떠난 여자에게 남자는 혹시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은 아닐까에 대해 의심한다. 여자가 떠나기 전 그녀의 스타킹 단추와 구두에도 질투를 느꼈던 그는, 그녀가 남편 있는 여자이기에, 소유할 수 없기에 더욱 애달파 한다. 두 사람 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한 축에 한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질투는 증폭된다. 영화 초반 그의 질투가 그녀의 남편과 존재 여부가 불투명한 다른 남자에게 향했다면, 그녀가 떠난 이유를 알게 되면서 질투의 대상은 '신'으로 바뀐다. 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그를 떠났던 것이다.
갑자기 통속극에서 종교극으로 바뀌는 영화가 난감했다. 플라톤이 나눈 사랑의 위계에서 에로스적 사랑이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발전하더니, 사랑의 숭고함은 질투와 증오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편 헨리는 모리스와 아내의 관계를 알면서 용서하고 그녀의 마지막을 셋이 함께 지키자고 제안한다. 종교적 경지에 이른 사랑이다. 사라는 모리스를 만날 때, "당신과 헤어진다고 사랑이 끝인 것은 아니다. 사랑이 끝났다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그를 잊지 않는 한, 사랑의 종말은 없다는 말이다.그러나 모리스는 끝까지 신을 질투한다. 그녀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다소 낡은 감이 있다. 종교적 신비를 체험하는 장면이 전혀 전달되지 못하는 느낌도 들었다. 억지스러운 설정처럼 느껴졌다. 원작 소설을 읽는 게 신비를 경험하는 데 훨씬 유효할 것 같다. 금지된 사랑은 비극적인 미학을 연출한다. 그래서 보는 이의 애수도 깊어진다. 슬플 때, 이런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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