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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전지대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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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전지대에 서 있는가?                                   - 김기현의 [공격적 책읽기] (SFC, 2004) -          2013. 4. 22 김기주   김기현의 [공격적 책읽기]는 ‘돈, 기도, 문화, 평화, 하나님, 이성, 고통, 국가, 정치, 과학, 전쟁’에 대한 신앙서적을 비교, 비판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의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 같다.    저자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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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전지대에 서 있는가?
                                  - 김기현의 [공격적 책읽기] (SFC, 2004) -          2013. 4. 22 김기주

  김기현의 [공격적 책읽기]는 ‘돈, 기도, 문화, 평화, 하나님, 이성, 고통, 국가, 정치, 과학, 전쟁’에 대한 신앙서적을 비교, 비판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의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 같다. 
  저자는 철학적 논리력과 신학적 통찰력으로 다양한 주제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누가의 관점으로 김동호의 청부론을 살펴본다. 자발적 가난보다는 자발적 나눔에 초점을 두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부의 위험성을 강조하지 않는 잘못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마가의 청빈론적 잣대로 김동호를 비판하는 김영봉보다는 한 수 위다.
  또한 교회의 삶과 세상의 삶이 따로 구분하는 이원론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와 세상을 잘 분리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한다. 즉, 주일이 더 주일답지 못해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 있는 무언가가 되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문제가 있는 아동을 치료할 때도, 문제에만 관심 갖기 보다는 잠재력이 있는 부분을 공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세상의 어지러움을 한탄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죄 많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교회되어지를 소망하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리라.
 
  한편, 이 책을 읽으며  "과연 나는 올바른 지대에 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없다.
  우선, 다양한 주제에서 다루는 많은 책들을 다 알지 못하면 무지의 오류에 머물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1장에서 다루는 돈에 대한 책([하나님이냐, 돈이냐], [돈, 섹스, 권력],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바늘 귀를 통과한 부자],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 은 일찌기부터 읽고 정리가 되어 있어 안심이 된다. 그러나 다른 영역은 영 자신 없어 진다. 그래서 소개되는 많은 서적들은 구입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특히 이성호의 [문화로 엿보는 그리스도, 예수로 바라보는 문화]는 꼭 사봐야 되겠구나 싶다. 허나 다 읽어내진 못할 수도 있으니...
  둘째, 신학을 제대로 모르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가하는 두려움이 든다. 평화주의는 선택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제자들의 윤리이다. 그러나 김두식은 이 '당연 윤리'를 '완전 윤리'로 보고, 평화주의를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만 본다. 저자는 이 점을 안타까워한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제대로 갖기 위해서는 신학을 해야만 하는가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셋째, 목회자도, 신학자도 역사와 문화에서 사상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 권위에 대한 흔들림이 생긴다. 나는 [야베스의 기도]가 전교인 필독서였던 대형 교회를 다니고 있다. 나눔과 베품도 강조하지만, '할 수 있다면 뛰어난 자, 높은 자, 강한 자, 부한 자가 되기를 힘쓰라'는 김동호식의 청부론적 설교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지 않아도 말로는 약함이 강함이라고 하면서도 결국은 권력을 의지하는 그런 유혹에 시달리는 연약성이 있는데 말이다.
  또한, 프란시스 쉐퍼에 열광하는 선배들의 틈바구니에서 일말의 의심도 없이 쉐퍼 전집부터 구입하곤 흐뭇해했던 사람이다. 그의 이성론이 서구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 서양의 문화적 성취와 발전을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한 점이 기독교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넷째, 이 책의 저자는 논리적 오류 없이,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것은 확실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2장에서는 자기 변화 없이 자기 욕망만을 구하는 '윌킨스'의 [야베스의 기도]를 야만적 기도라도 형평 없는 자격 미달이라고 가차 없이 비판한다. 그런데 7장에서는 하나님은 자연법칙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으신다며 하나님의 전능성을 약화시키는 '쿠쉬너'에게는 야베스의 기도를 본받으라고 한다. 야베스의 기도가 모범적이라는 표현까지 하니 말이다. 
 
  과연, 이 책은 누구를 대상으로 쓴 책일까?
  빌립과 같이, 신자들이 읽는 글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신학자의 사명이라고 말하는 저자가 신앙서적으로 이야기하는 이 책이 신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진 않으리라. 신자들이 신학과 성경에 대한 지식이 더욱 더 풍성해야 할 의무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대형교회 담임목사도 (김동호, 전병욱) , 역사 신학자도(김영봉) , 유대 랍비도 (쿠쉬너) , 라브리 공동체의 거장 (프란시스 쉐퍼) 도 신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기독교적 세계관이 미처 확립되지 못한 신자가 읽기에는 다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기 전에, 아론과 엘리처럼 실수하는 제사장을 먼저 보게 되면 설교자를 통한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알지만 행하지 않는 것, 알지만 실천 없이 말만 많은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올바른 생각을 하는 것이 올바른 말하기나 글쓰기보다, 그리고 이것들은 올바른 행함보다는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바른 생각을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니 두려움이 앞선다.
 "과연 나는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s******a 2015.05.20.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