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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담론 및 정치사를 철학적 관점으로 조명하는 김선희 교수의 책이다. 여덟 개의 질문에 답을 해나간 책이다. 왜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왜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하는가? 왜 우리는 고통스러운가? 왜 우리는 웃음을 추구하는가? 왜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가? 우리에게 우정이란 무엇인가? 왜 인간은 자기 고백을 남기는가?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 등이다.
모두 만만하지 않은 질문들이다. 내게는 왜 인간은 자기 고백을 남기는가?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 등이 크게 관심을 끈다. 각 챕터에 주요 철학자들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가령 왜 우리는 웃음을 추구하는가?에는 헤라클레이토스, 아리스토텔레스, 임마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니체, 앙리 베르그송,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움베르토 에코, 장자, 호이징하 등이 거론되어 있다.
유토피아를 다룬 장에서 저자는 유토피아의 유형을 셋으로 나누었다. 천년왕국, 아르카디아, 유토피아 등이다. 유토피아는 섬으로 묘사되는 특징이 있다. 외부와 단절되었다는 점에서 섬이지만 이는 닫힌 공간이기에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철학적 주제이자 철학적 제안으로서의 유토피아는 과연 과학, 정치, 도덕이 조화를 이룬 세계가 가능한가라는 고전적인 질문 위에서 시작된다고 전제하며 수많은 유토피아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으려면 이 철학적 제안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라 말한다.
왜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하는가?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자기를 향유하고 삶의 중심에 자신을 두는 것은 어쩌면 미성숙의 특권, 청춘의 상징과 같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자기 안에 머무는 것이 전부라면, 그래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청춘이 아니라 어린아이에 가깝다는 말이다. 자기 안에 머물다가 밖으로 나온 사람은 루소 말대로 제2의 탄생을 이룬 사람이고 성공이 아닌 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왜 우리는 고통스러운가?에서 우리는 그리스 비극이 극 형식을 의미할뿐 그 자체로 슬프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 비극은 거대한 운명, 개인이 뒤엎을 수 없는 커다란 운명과 불완전한 인간의 대결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대결 속에서 발생한 엄청난 고통을 이기고 승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다룬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주인공들은 운명에 의해 망가지는 존재이지만 그 운명에 무작정 끌려가는 존재는 아니다. 저자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나는 아파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대단히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고통을 견디는 시간과 고통을 잊고 있는 시간, 고통을 보류하는 시간, 그리고 겪은 고통을 해석하는 시간의 묶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passion이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수난(受難)과 열정(熱情)을 함께 의미한다. 고통은 수난당하는 것이지만 그렇기에 모종의 결단을 촉구하는 듯 하다. 저자는 수전 손택의 ’타인으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손택은 카메라를 총에 비유했다. 총의 비유는 카메라가 살아있는 존재를 대상화하고 고통받는 타인을 사물화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카메라에 담긴 타인의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나와 상관없는 하나의 외적인 대상이 된다.
저자는 사진에 담긴 고통받는 타자들은 단순히 일회적인 연민의 대상으로 추상화되기 쉽다고 말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내가 소비하는 일회적 상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이 프레임에 포착되는 순간 이미 연출되고 조작되고 선별되고 구성된 이미지로 환원된다.(109 페이지) 타인의 고통을 관음하고자 하는 심리의 바탕에는 그 고통에 대한 나의 무관함,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해 내가 확보한 안전한 거리가 깔려 있다.(110 페이지)
스토아철학자 세네카는 연민이란 원인을 보지 않고 감정적으로 사건을 대하는 태도, 감정적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원인을 보더라도 연민의 마음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연민받은 대상은 수치를 느낄 것이다. 저자는 어떤 고통에도 나의 책임이 일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며 고통과 비극이 나의 조건이기도 하며 이를 이겨내고 극복하는 힘 역시 온전히 나에게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비극과 고통을 바라보는 출발점이어야 할 것이라 말한다.
왜 우리는 웃음을 추구하는가?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을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정의한 것을 알 수 있다. 희극 즉 코메디는 어원적으로 술의 신이자 방랑과 격정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위한 가장행렬(광란의 축제)을 의미하는 데서 온 말이다. 저자는 우리사회에 인신공격과 감정적 손상을 동반하지 않는 웃음이 얼마나 될까요라고 묻는다.
저자에 의하면 풍자는 적대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고 그 대상에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다. 해학은 자기 약점에 대한 부정을 바탕으로 한다. 상대에 대하여 감정이입을 하거나 상대를 연민하면 웃을 수 없다. 웃음의 대상과 감정적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웃음을 거두게 된다. 저자는 불교적으로 느껴지는 말을 한다. 자신에게 닥친 비극마저 드라마의 관객 같은 자리에서 볼 수 있고 그냥 남의 일로 받아들이면 나의 비극은 희극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의 삶을 비극적이라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도 남의 삶에 대해서만큼 나에게 거리를 두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있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모든 경계를 허물고 근원적 일자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예술로 보았다. 니체는 진정한 그리스 예술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질서 잡힌 체계를 향한 통제의 힘들(대낮의 힘들)이 디오니소스적인 것들에 질서와 빛을 부여한 뒤 진정한 예술성 즉 비극성이 깨졌다고 보았다.(131 페이지)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후의 긍정, 고통을 통과한 이의 명랑성이 진정한 명랑성이라 할 수 있다. 놀이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루덴스란 개념이 있다. 호이징하가 한 말이다. 오로지 그 자체의 기쁨을 위해 하는 행위들이 놀이다. 놀이는 그 자체로 자유로워야 하며 일상적 삶과 구분되어야 한다.(137 페이지)
놀이는 반복 속에서 새로움을 만드는 생성의 힘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의 생성 과정을 우연성이 지배하는 자유로운 전개과정으로 보며 그것을 놀이라 표현했다.(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황금용에 대해 낙타는 순종하고 사자는 반항하지만 어린아이는 그것을 가지고 논다고 본 니체에게 세계는 선과 악을 넘는 신성한 놀이다.
왜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가?에서는 집에 관한 이야기가 다루어졌다. 한국사회에서 집은 개인이 입은 가장 큰 옷이자 물질로 치환된 자아(自我)다.(157 페이지) 저자는 자기 곁에 영원히 머물기를 바라는 바다의 님프 칼립소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오디세우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화의 세계에서 정주와 이동은 단순히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영혼의 변화, 지적 능력까지 포함하는 영혼 전체의 성숙과 관련된다.(167 페이지)
변화 자체가 하나의 질서이지만 이 변화는 무한한 확장이거나 양적 증가가 아니라 매번 국면의 전환으로 나타난다. 도가적 사유에서 순환은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원형적 순환이 아니라 리듬의 전환으로 보아야 한다.(171 페이지) 우주는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기에 인간이 쉽게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변화와 운동에는 근본적으로 질서와 리듬이 있어서 인간은 이를 예측하고 해석해 나쁜 국면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주역은 나쁜 운명을 바꿔줄 신비한 점서가 아니라 부정적 국면을 견디기 위한 예측과 해석을 제공하는 책이다.(173 페이지)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라 생각했다. 그에 의하면 변화는 우리의 감각 때문에 생기는 가상(假象)에 불과하다. 이 부분에서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假現說)을 생각할 수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것이 계속 변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하나의 이론을 만들 수 없으며 그래서 진정한 사유는 감각에 포착되는 변화가 아니라 오직 이성에서 사유되는 고정 관념뿐이라 여겼다.(175 페이지) 저자는 사람들이 잡 노마드, 21세기 유목민 등의 말에서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182 페이지) 저자는 어떻게 하면 고착되지 않을 것인가.
어떻게 이동의 낭만성을 자각하고 부유를 벗어날 것인가 등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철학 공부를 하는 이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우정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우정의 의미가 집중 다루어졌다. 우정은 한 순간에 영혼이 열리면서 시간성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랑과 달리 오랜 시간 동안의 관계로 이루어진 시간성의 산물이다.(190 페이지)
중요한 사실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정론이 유행한 배경이 마테오 리치와 관련 있다는 점이다. 공자는 친구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을 진정한 우정이 아니라 생각했다. 공자는 곧은 사람, 성실한 사람, 들은 것이 많은 사람을 이로운 벗으로 보았다. 공자는 서로 성장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사귀지 말라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파문당한 후 렌즈를 연마했다. 아는 고급 기술이었다. 비루하고 구차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정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스피노자다. 그는 이성에 따르는 사람을 자유인, 정서나 속견에 이끌리는 사람을 노예인으로 정의했다. 저자는 자유인은 자족적인 존재라면 그런 이에게 공동체란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을까? 라고 묻는다. 스피노자는 자유인은 공동체를 초월하는 존재라 말했다. 자유인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파생된다.
물론 스피노자는 자유인은 공동체 내부에서 다른 사람들과 우정으로 연결되기에 힘쓴다고도 말했다. 스피노자는 능동적 인간 즉 강한 인격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증오하거나 멸시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세계에 내재하는 존재기에 자신과 관련된 우주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 신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왜 인간은 자기 고백을 남기는가?에서는 자화상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화상은 화가들이 붓으로 쓴 자서전 같은 것이다. 그림은 현재의 사실적 기술이 아니라 화가가 세상과 대면하는 방식, 세상에 드러내고 싶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담고 있다.(227 페이지) 저자는 자신을 그리는 행위는 자신에 대해 쓰는 것과 차원이 같은 것이라 말한다. “나는 왜 나를 잊지 않고, 흘려 보내지 못하고 기록하는가?” 근대에 이르러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다. 개인이라는 자각이 역사적으로 부상한 이후에 자화상이 나왔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근대적 개인은 성찰하고 계획하는 인간이고 시간적으로 미래를 향해 현재를 기획하는 존재다.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에서 저자는 우리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지적 학습만이 아니라 자기를 변화시키는 모든 실천적 노력을 모두 공부라고 한다. 저자는 다양한 지적 전통을 하나로 규정하려는 시도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것이 과학을 유일한 기준으로 보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있다.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남을 의미하지만 실제 맥락은 조금 다르다. 청출어람은 학문의 효과를 말하는 말이다. ’순자‘ 권학편에 나오는 말이다. 순자는 자기를 바꾸는 힘을 학문으로 정의한다. 공자는 다양하게 배우되 마음의 의지나 지향은 단단하고 두텁게 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절실히 탐구하되 이를 일상의 현실적 차원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공자에게서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신분이 아니라 능력을 통해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능력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서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도덕적 능력이다. 공자는 능동적이고 도덕적인 주체를 군자라 불렀다. 타고난 신분으로서의 군자가 아니라 자기 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내버리는 사람은 소인이라 불렀다.
리(理)는 사물의 구성 원리일뿐 아니라 그 자체가 도덕적 가치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리(理)를 부여받아서 이루어진 존재다. 저자는 성적에만 올인하고 성공을 위해 매진하는 숨막히는 사회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8개의 철학 지도‘는 철학은 근본적인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임을 알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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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1. 지도 우리는 지도를 보면서 모르는 길을 찾거나. 현재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지도나 사전이라는 것의 기능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표준으로 수렴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미지의 어떤 곳을 헤매면서 느낄 법한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불안감을 씻을 수 있는 것이다. 현실적인 예가 이럴진대.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은 인문학적 지도의 어디 쯤에 놓인 것인지. 이러한 막연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솔직히 가늠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 책이 세계지도처럼 촘촘히 짜인 그물망의 형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 책이 표현하는 지도의 방식은 유토피아, 청년, 고통, 웃음, 집, 우정, 자기고백, 공부라는 8개의 작은 섬에 기본시설을 구축한 정도다. 표준과는 거리가 멀지만, 8개의 주제 제각각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2. 유토피아 유토피아라는 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비로소 <만조의 바다 위에서>가 구축한 세계관의 진정한 정체와 마주할 수 있었다. 세 개의 층위로 이루어진(자치주, B-모어, 차터)에서 주인공은 중간지점에 있었다. 그곳은 타성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몸이 아프지 않거나 저항하지 않으면 자치주에 떨어지지 않고,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 이런 세계를 구축한 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의지가 작용했을 터인데. 그 의지라는 것을 '유토피아론'에서 찾을 수 있었다. 34. 최선의 공화국은 일단 섬. 내부는 바둑판과 같은 공간적 구조. 도시의 구획은 작업적 구분에 따라 나뉩니다. 시장, 도축장 이런 식으로 모든 공간이 일의 성격에 따라 나뉘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생산의 축은 농업입니다. 나머지는 체계적인 분업 시스템을 통해 운영됩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다 노동을 해야 합니다, 예외가 되는 이들은 학자, 사제, 공무원 뿐입니다. 그러나 노동 면제도 영속적인 것은 아닙니다. 뛰어난 역량을 보인 학자들은 노동을 면제해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시 노동을 해야 합니다. 37. 문명과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경험했을 노자는 이 경쟁과 폭력의 고리를 끊는 방법으로 소국과민과 같은 새로운 공동체를 제안. 이것이 기반이었다. 그리고 B-모어에서 차터로 적을 옮긴 리웨이 또한 자신이 계획한 공동체를 꿈꾼다. 그것은 노자의 소국과민의 성격과 닮아 있다. 이렇게 이창래 형님께서 느낀 한계와 문제의식은 <8개의 철학 지도>의 유토피아의 설명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38. 이 정형적 공간의 안정적 질서는 현실의 모순을 제거한 결과로 여겨지지만 사실 다른 면에서 본다면 이 정형성과 고정성은 새로운 디스토피아, 즉 유토피아의 반대쪽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유토피아 담론들이 평등을 앞에 내세우지만 이들이 말하는 평등은 제각각일뿐더러 단순하게 이상화할 수 없는 복잡한 성격.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평등을 비롯해 새로운 세계의 이념을 현실화시키고 또 유지하기 위해 소수의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41. 통제 가능한 닫힌계에 대한 상상은 어쩌면 현실에 대한 변혁의 의지라기보다는 현실 도피의 한 양상일 수도. 간섭받지 않는 세계는 동시에 타자를 배제하는 세계. 유토피아에 대한 꿈은 이러한 이중성에 연결, 결국,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수 없는 가장 큰 문제는 절대적인 이상향의 기준은 제각각이라는 점. 그리고 어느 누군가에게 사유화됨으로써 타자를 자신의 아래에 두고, 계급화된다는 점일 것이다. 3. 유토피아의 현대화 오늘날 디지털 세계의 집약체인 스마트 폰은 개인에게 하나의 유토피아를 제공했다. 패턴을 입력하고서야 진입할 수 있는 화면들은 남들에게 공개되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것에 몰입하는 것은 과연 자발적인 의지를 통한 행위일까? 아니면 기술집약적 산업에서 만들어진 도구에 길들여진 것일 뿐일까? 다시 말해서, 스마트 폰에 의해 소외(통제)되는 것일까? 이런 소중한 통찰을 <8개의 철학지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어간 생각들은 8개 중에 단 하나의 지도에서 이어진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앞으로 7개의 가정을 방문해야한다. 이 책은 하나의 소스로 읽으면 재미가 없고, 그 주제와 알맞은 책을 발견하면 배가 되리라 생각한다. 4.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청년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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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는 다양한 주제가 있다. 솔직히 철학을 특정 영역의 주제로 한정하지 않는 생각하는 방법으로 생각한다면 그 영역에는 한계가 없을 것 같다. 일상에서 우리가 늘 경험하고 당연하게 생활하는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철학의 역할은 가끔씩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해진 규칙이나 일상대로 살아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을 또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게 만들면서 안정적인 삶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듯 만들어 버리는 모습에 당혹해 할 때마다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철학의 역할 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 같다. 그래서 철학을 우리의 생활과 비교한다면 환절기마다 가끔씩 찾아오는 감기처럼 머리 속의 감기와 같다고나 할까? 감기에 걸리면 특별한 약도 없이 한 일주일 동안 앓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서 우리 몸은 면역을 같게 되면서 오히려 더 건강해 질 수 있다. 이처럼 철학도 신체의 면역력과 같이 생각에 면역력을 줄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한다. 그래서 저자의 서문에서 철학을 학습이 아닌 삶의 자원으로서 대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몸에 근육을 키우듯 마음과 생각에 면역력과 저항을 키우는 철학이라는 말에 특히 공감이 간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고관에만 고정되어 있다면 시대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공룡과 같아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말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고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가짐이고,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한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서는 철학의 연습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 ‘8개의 철학 지도’는 일상에서 만나는 주제들과 삶의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주제들에 대해 어렵지 않은 문체로 우리에게 철학하는 연습 방법을 알려 준다고 볼 수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3장 웃음과 8장 학습에 관한 내용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모든 글이 주옥같은 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독을 통하여 우리 자신의 삶의 모습을 다시금 돌아보고 생각과 마음의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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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면 우리는 막연하고 해독이 어려운 형이상학적인 학문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이론적으로만 정리되어 있어서 실사구시의 학문이 아니라는 소견이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철학사를 보거나 철학이론을 이해하는 선에서 철학을 대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철학은 가깝게 대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접근하게 되고, 실생활에 반영하고 적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철학을 전공하신 분이 쓴 실생활에 적용되고 활용할 수 있는 매우 실제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도 쉬울 뿐 아니라 철학을 가까이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철학적인 사고를 짐작할 수 있고, 철학적 사고의 틀을 짐작할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은 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철학을 삶의 자원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이 책을 쓴 철학을 설명해 놓고 있다. 철학이 그저 단순한 지식의 철학이나 이론의 철학이 아니라, 삶의 자원으로 사용하는 철학을 제시해 주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 산재해 있는 철학적, 인문학적 경로를 탐색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일 수도 있는 8가지 주제에 대하여 동서양 철학자들의 다양한 사유를 연결해 보는 시도를 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유토피아, 청춘, 비극, 웃음, 귀환, 우정, 자기고백, 공부라는 제목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수록된 내용은 저자가 아트앤스터디의 철학강좌 <각도와 층차 : 여덟 가지 개념으로 만드는 작지만 단단한 철학지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한 내용이라고 소개한다. 책 내용 중, ‘청춘’에서 청춘이란 단순히 생물학적인 나이나 연령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괴테가 쓴 소설, <파우스트>를 통해 청춘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괴테는 나이의 과다에 무관하게, 청춘의 특징은 ‘영원한 불만족’에 근거한 ‘만족’과 ‘멈춤’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만족’, 즉 안분지족은 청춘의 종료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의 갈망은 결국 자신에게로 향해 있고, 그 모든 결과 역시 자기 안으로 수렴’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를 향유함’에 바탕하고 있으므로 청춘의 상징은 미성숙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장 자크 루소는 그의 주저 에밀에서,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고 말하며, 그 두 번째의 탄생을 ‘제2의 탄생’이라고 명명했다. 루소는 나이의 다과에 관계없이 자기 자신의 고통만을 모르는 사람은 어린아이에 불과하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 곧 청년이라고 정의했다 한다. 또한 중국 남송시대의 철학자 주희는 루소의 제2의 탄생개념을 더 의미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온전히 세워진 자기의 주관성을 외부 세계로 최대한 확장하는 것’ 즉, 자아의 확장이라고 부연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현세 우리 사회의 교육의 맹점은 ‘성공’지향적인데 있고, 타인에게 자기를 확장하는 제2의 탄생과 같은 성장이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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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에서 저자는 실제적인 많은 고민들을 8개의 각도의 철학적 접근으로 풀어 독자로 하여금 개인적 신념에 도움이 되고 삶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고, 책이 아트앤스터디의 철학강좌, ‘각도와 층자 : 여덟가지 개념으로 만드는 작지만 단단한 철학지도’를 바탕으로 구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8개의 각도는 유토피아, 청춘, 비극, 웃음, 귀환, 우정, 자기고백, 공부 곧 삶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상과 시대적 해석으로 더 큰 시야를 보여주고 있다.
학문 탐구가 아닌 실제적 접근으로, 우리의 고민이 어쩌면 그런 걸까 여져지듯 복합적으로 보이지만 어느 하나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자연스레 전체적으로 유연하게 사고하게 되는 것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청춘을 그 하나의 예로든다면, 내적성장을 의미하는 관념이 현실에서 느끼는 청춘과는 사뭇 달랐고 성장과 개혁의 주체로서의 청춘임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제시된 주제중 청춘, 비극, 우정, 공부의 주제에 생각이 많아서 몇 번씩 다시 읽곤 했고, 힐링이 되듯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종교적 의미가 아닌 생성되고 소멸되는 자연의 현상이라는 큰 틀안에 인간의 삶을 현상으로 볼수 있는 것이 다른 시각을 열어주는 책의 글귀 중 하나였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상당히 다르게 다가왔고, 친구관계가 선이 아니라 관계맺는 방식의 문제일수 있다는 글에 주목하기도 했다. 유한한 인간에게 필연적인 고통,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숙명을 운명론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스스로 이겨내야할 힘으로 삶의 태도의 중요성을 논할때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다.
철학지도라는 제목에 걸맞게 어느 각도에서 담론을 열어보아도 고민의 철학적 해석을 찾아내며 길을 찾기에 좋은 지침이다. 같은 계절을 겪어도 사람마다 그 증상이 다르듯 삶의 자세, 태도가 바뀌어 가져오는 전환은 예방주사가 될수 있을 것 같다. 생각없이 tv를 보다 웃자고 만들어진 예능프로에서 현실적인 혹은 말하기 쉬운 편의상의 잣대로 사람들을 재단해, 순간 웃을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현실에서 균형잡는 일이 쉽지 않고 많은 실수를 하지만 그래도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읽어 보면 좋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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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앤스터디에서 ‘각도와 층차 : 여덟 가지 개념으로 만드는 작지만 단단한 철학지도’라는 주제로 진행된 철학강좌를 바탕으로 집필된 <8개의 철학지도> 인간다움을 가능하게 해주는 학문이라는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을 백미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철학은 접근하기 조금 까다로운 느낌이 들곤 하는데, 요즘은 철학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책들이 나오고 있는 거 같다. 그래 얼마든지 마음껏 나를 비웃어도 좋아 나에겐 철학이 있으니까 그리고 난 이걸 단단하게 믿고 있지 그게 바로 나의 철학이 내가 쓰러질 때도 나를 계속 걷게 만드는 이유인거야 여는 글에서 인용된 미국 밴드 ‘벤 폴즈 파이브’의 노래가사인데, 철학을 어려운 학문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힘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이처럼 철학을 삶의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재물이나 인맥 타고난 재능이 풍부한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활용하여 충분히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갈 수 있겠지만, 솔직히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나 역시 삶의 문제에 부딪쳐 넘어지고 좌절할 때가 많아서 철학에서 힘을 얻고 싶어진다. 철학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간 현명한 이들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삶의 지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유토피아, 청춘, 비극, 웃음, 귀환, 우정, 자기고백, 공부라는 여덟 개의 생각지도로 우리의 삶에 이정표를 세워준다. 나는 마지막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았다. 나에게도 그렇듯이 공부라는 것은 성적과 동일시 되어버렸다. 그런 면에서 나는 공부를 꽤 잘했다. 그런 공부는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조건이 되어줄 뿐,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는 적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가 이야기하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공부가 나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관조와 실천의 조화를 모색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적 지혜를 보여준 인물로 그리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를 꼽았다고 한다. 페리클레스는 자신의 능력을 자신과 주변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 인물로서 민주적 지도자의 전형이라는 평을 받곤 한다. 가끔 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면서 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서 ‘실천적 지혜’라는 말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또한, 공자가 이야기하는 배움의 효과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청출어람이라는 말을 제자가 스승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일 때 사용하곤 하는데, 원래의 뜻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청출어람은 학문의 효과를 보여주는 말인데, 배움을 통해서 자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나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책을 읽을 때는 나의 부족한 면을 직시하고 또 고쳐나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그대로 멈춰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청출어람’을 내 삶에 끌어들이기 위해 나 자신을 이끌 수 있는 공부에 좀 더 마음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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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8개의 철학지도>를 통해서 삶에서 바쁘다는 핑계들로 그동안 잠시 잊고 지내던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서 다시금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볼 수 있었습니다. "왜 삶이 고통스러운지, 왜 공부를 하고 왜 청년의 의미를 곱씹어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는 기회를 선물해 주었어요.
철학자들이 평생에 걸쳐서 인생의 전반들을 두루두루 고민해 보며 가르침을 주고 남기는 것을 이 책에서는 잘 구성하여 인생에 대한 질문과 그 답을 찾아가는 길에 궁금증이 많은 독자들에게 제시해주는 것 같아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더라고요.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 동안 마음이 답답한 순간들에 가졌던 의문들에 대한 답들을 조금씩 찾아가는 기분이 들어서 더욱 집중하여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책 제목에서도 충분히 비유되어 있지만 이 책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의 철학 지도를 탐색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는 기분으로 섭렵해나갈 수 있어서 행복하고 의미심장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잠시 내가 과연 어떻게, 그리고 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꼭 필요한 삶의 고민들을 해보는 것의 중요한 의미와 삶의 내용이 풍성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을 속삭이는 책이어서 더욱 기억에 오래 남고 책장에 꽂아두고도 많이 들춰보고 도움을 받을 것 같아요. 삶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책이 되는 것 같아 좋은 인생의 책친구가 되어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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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에 철학 강좌를 들으며 철학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이 들었습니다. 다른 철학 서적과는 달리 주제 부분에서 새롭다는 소개에 이끌려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01) 왜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02) 왜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하는가? 03) 왜 우리는 고통스러운가? 04) 왜 우리는 웃음을 추구하는가? 05) 왜 우리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가? 06) 우리에게 우정이란 무엇인가? 07) 왜 인간은 자기 고백을 남기는가? 08) 왜 우리는 공부하는가? 라는 8가지의 질문을 목적지 삼아 각 주제로의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찬찬히 생각해보며 구석구석 구경한 여행지도 있는 반면, 아무리 둘러보고 생각해봐도 어려운 여행지도 있었습니다.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니만큼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 책 뿐만 아니라 격몽요결이나 학습에 대한 책을 읽으며 많이 생각해봤기 때문에 별 어려움없이 순탄하게 항상 가지던 생각들에 살을 몇가지 더한 것이라 인상깊다거나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겐 '02) 왜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하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8개의 지도 중에서 제 최대 관심사였던 '공부는 왜 하는가?'와 가장 밀접한 질문이기도 했고요. '내 꿈은 살아있는 동안은 학생에게는 공부가 즐거울 수 있다는 것, 자신만의 꿈을 꾸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서로의 인생을 기대며 살아가는 것, 나를 둘러싼 이웃에게 조그만하더라도 도움이 되는 것, 그리고 죽은 후에 저 사람은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좋았을텐데...하며 아쉬워 하는 사람을 남기는 것.' 꽤 거창하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인간관인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직 많이 추상적이지만 나름 구체적으로 명시해 본 것입니다. 이제는 '항상 배우는 것'이 명시적으로 한 부분을 차지해야겠습니다. 항상 배우는 것은 되고자 준비하고 있는 '교사'의 길을 걷기위해 꼭 필요한 것이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어느 곳곳에나 숨어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만큼 그에 합당한 자리를 마련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 청춘의 여러 이야기가 소개되었는데, 모두 합쳐서 생각해보니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청춘에 대한 정의를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주변의 아픔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자신을 넘어서 주변의 것까지 사랑할 줄 아는 것.'으로 정의해봤습니다. 그리고 '단, 추구하는 배움으로 인해 스스로를 헤치거나 주변에 해악을 주면 안됨' 이라는 제약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파우스트처럼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만족을 함으로써 어른이 된다는 말에는 살짝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만족'과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은 공존할 수 없을런지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냥 죽 읽어서 지금은 머리가 뒤죽박죽인 상태입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찬찬히 정리해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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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철학은 나에게 큰 매력을 끄는 학문이었다. 어려서 자연스럽게 읽으며 생각하고 질문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 이제와 돌이켜보니 어린이 철학책이었고, 좀 더 크면서는 유독 고민과 생각이 많은 나 자신을 인간으로 태어나 삶에 대해 치열히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 도리를 다하고 있다며 스스로 위로하는 방편이 되는 단어가 철학이기도 했다. 현재 일하고 공부하는 분야는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것이기에, 그 주체에게 철학이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물론 강조되듯 상담자의 철학이 너무 개입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인간과 생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투영될 수 있으니 무척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진실로 인간을 이해하려 하고 도우려 하는 상담자나 치료자들은, 상담과 치료의 이론과 기법을 익히는 것 만큼이나(검사자들도 그 중요성에 있어 덜함이 없다) 삶에 대한 성찰, 즉 인문학 공부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최근 나는 더더욱 철학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아니, 삶의 방향성을 잃고 매우 혼란스러우면서도 무기력해져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철학이 그 방향을 잡아주는, 그야말로 지도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책을 자세히 읽기 전 제목과 목차만 보았을 때에는 철학사의 중요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개념에 맞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책, 즉 철학(사) 지도 내지는 철학(자) 지도일 줄 알았다. 신청할 때에도 철학에 대한 지도를 그리고 싶은 이유를, 철학책을 종종 읽어도 머릿속에 그 학자나 개념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으니 철학탐구 자체보다도 어디에서 나 이거 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정리해 줄 것을 이 책에게 기대했던 것 같다. 삶에 대해서는 혼란을 느끼면서도 철학사나 철학자에 대해서는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니 모순된 듯 하면서도 이 책을 선택하도록 나의 무의식이나 영성이 잘 이끌어준 듯도 하다. 내가 삶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있던 이유는 세월호 사건 때문이었다. 허무하고 억울한 죽음들은 늘 있어 왔지만, 이런 죽음은 대체 왜 생기는 것인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을 이렇게 어이 없고 허무하며 억울하게 겪은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체 또 왜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의 힘듦은 가장인 것일까, 동정인 것일까, 도움이 될 수 없고 일상의 욕구를 외면할 수 없는 나의 가슴 아픔과 분노는 무의미한가... 이 책의 3장인 '왜 우리는 고통스러운가?' 중 세 번째 부분인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읽으며 내내 세월호와 그 유족, 실종자 가족들을 생각했고 이 책은 그래도, 그래도 같이 아파함이 맞음을, 외면하지 않음이 맞음을 알려주며 내게 힘을 주었다. 만나본 적 없는 저자이지만, 세월호 사건과 언론 및 변해가는 여론에 관한 저자의 의견을 읽은 적 없지만, 그녀라면, 아래와 같은 글을 쓰는 그녀라면 분명 나와 의견이 같고 그들에게 보내는 마음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고통을 관음하고자 하는 심리의 바탕에는 그 고통에 대한 나의 무관함,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해 내가 확보한 안전한 거리가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이미지로 소비할 때 느끼는 '안타깝지만'의 태도에는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그 자리에 있지 않다', '나는 그 고통에 책임이 없으며, 더 나아가 그 고통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와 같은 안전한 거리가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 비극과 고통을 바라보는 첫 번째 단계는 내가 그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동시에 내 고통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고, 남에 의해서 내 고통이 함부로 다루어지지 않도록 저항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통의 문제는 결과적으로 일종의 윤리적인 문제가 됩니다. ... 비극이건 고통이건 이는 현재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사건이고, 누군가에 의해서 함부로 대상화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어떤 비극도 고통도 단순히 개인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어떤 고통에도 나의 책임이 일부 있을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대상화하거나 연민하면서 남의 일로 밀어내지 않는 것. 고통과 비극이 나의 조건이기도 하며, 이를 이겨내고 극복하는 힘 역시 온전히 나에게만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비극과 고통을 바라보는 출발점이어야 할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또 하나 유난히 떠오른 게 있었다. 학부시절 들었던 한국문학 강의와 그 교수님이었다. 젊은 여교수님으로 당시 아마 강사이셨을 텐데(성함을 검색해보니 서울대 출신으로 책도 몇 권 쓰신 걸로 나오는 그 분인 것 같다), 우리 학교에서 개최하는 좋은 강의 후기 공모전에 내가 그 수업을 적어 내서 문화상품권을 받기도 했었다. 한국문학사를 시대별로 키워드로 짚어가며 아주 재미있고 인상적으로 풀어낸 수업이었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청춘'에 대해 그 강의에서도 다뤘었어서 당시 필기한 내용을 찾아보니(하도 인상깊어서 버리지 않은 것 중 하나) 책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시절 부분에 인상깊은 문구가 하나 또 보인다. "그 시절 지식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실천은 문학이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나는 현재 지식인도 아니고 문학으로 실천할 능력도 여건도 안 되지만, 누군가들은 늘 이렇게 써 왔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인문학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조금 더 역량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때 진정 가슴 아프고 약한 이들을 더더욱 도울 수 있길. 아직은 마음으로, 그래도 늘,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