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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록, 기름진 헤비록에 반기를 들다. - 섹스 피스톨즈 (1977)
"펑크록, 기름진 헤비록에 반기를 들다. - 섹스 피스톨즈 (1977)" 내용보기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피카소나 칸딘스키가 이미 추상주의를 실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바로 뒤에 나온 마르쉘 뒤상의 변기(샘)가 추상미술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뒤상의 다다이즘은 모든 형태의 가치를 뒤집자는 현대미술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 “뒤집자는 정신”은 이후 달리의 초현실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이 이어받았고,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요소는 결국 “
"펑크록, 기름진 헤비록에 반기를 들다. - 섹스 피스톨즈 (1977)" 내용보기

20세기에 들어서자마자 피카소나 칸딘스키가 이미 추상주의를 실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바로 뒤에 나온 마르쉘 뒤상변기(샘)가 추상미술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뒤상의 다다이즘은 모든 형태의 가치를 뒤집자는 현대미술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 “뒤집자는 정신”은 이후 달리의 초현실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이 이어받았고,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요소는 결국 “기술”(손재주)보다는 “정신”(창의적 사고)이라는 것을 언제든 되새기게 했다. 올해로 55년 먹은 록음악을 돌이켜보면 (그렇다고 내가 55살 보다 더 먹은 것은 아니다.) 록음악이 커지고, 돈이 꼬이고, 기교(손재주)로 흐르고 할 때마다 항상 록음악의 뿌리인 "저항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내부의 목소리가 있었다. 창의적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마다 마르쉘 뒤상의 변기를 얘기하듯이, 록음악에서 저항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마다 얘기하는 것이 바로 70년대 중반에 런던에서 터져나온 펑크록Punk Rock이다.

 

70년대, 록음악에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고 양적으로 팽창을 하자 록밴드들은 점점 공룡이 되어갔다. 레드 제플린롤링 스톤즈는 4성급 호텔을 전전하는 수퍼스타가 되었고, 핑크 플로이드는 초대형 공연장에서 화려한 연주기교만 뽐냈다. 영국의 젊은이들은 70년대의 사회불안과 대규모 실업사태로 우울증에 빠져있었지만, 겉멋이 잔뜩 든 록음악은 더이상 그 젊은이들을 위해 노래하지 않았다. 신인 밴드들은 에릭 클랩튼처럼 기타를 잘 치지 않는 이상, 로버트 플랜트처럼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이상 음반사의 눈에 들지도 못했다. 음반사들은 돈이 확실히 보장되는 공룡들하고만 계약하려 하고 참신한 신인밴드를 찾아 헤매던 예전의 스카우터들은 오래전에 자기 명함을 내다 버렸다. 록의 정신Rock Spirit은 퇴색했고 펑크록은 이렇게 록음악의 내부고발자로서 임무를 띠고 70년대 중반에 극적인 등장을 했다.

 

그렇게 탄생한 영국 펑크는 급진적이었다. 머리에 물을 들이고 진한 화장을 하는 등의 혐오을 입었고, 사운드에 있어서도 (원래도 연주를 못하지만) 일부러라도 연주를 못하는 형식미을 취했다. 멋진 리프도 없고, 죽여주는 애드립도 없고,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도 없었다. 그저 코드 세 개로만 시끄럽게 내려치고, 발음도 기분 나쁘게 내지르는 안티-플레이Anti-Playing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사실 록음악 자체가 기성음악에 대한 미니멀리즘으로 탄생했는데 그 록음악이 기성음악을 점점 닮아가려 하자, 또다시 뱃속에서 미니멀리즘이 뛰쳐나온 것이다. 정말 자생력 있다. 

 

펑크록이 처음 시작한 곳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있는 뉴욕이었다. 70년대 중반에 뉴욕 돌즈, 레이몬즈, 토킹 헤즈 같은 젊은 밴드들이 상업적인 록음악에 반대하는 뜻에서 50년대 미니멀리즘을 시험했다. 하지만 펑크록이 진정으로 폭발한 곳은 30%가 넘는 살인적인 실업률과 사회불안으로 무기력증에 빠져있던 영국이었다. 뉴욕의 펑크록을 가져와서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코드를 섞은 영국 펑크는 펑크운동Punk Movement이라는 사회현상을 낳으면서 젊은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클래쉬같은 다소 세련된 펑크 밴도도 있었지만 펑크운동의 빅뱅은 런던 뒷골목 사고뭉치들만 모아놓은 섹스 피스톨즈였다.

(순도높은 펑크패션을 한 순도높은 런던 펑크족들)
 

순도높은 사고뭉치들이었지만 섹스 피스톨즈는 모든 특권계급과 사회 부조리를 향해 “용감하고 직설적인” 비난을 담은 노래를 불렀다. 정치권과 기득권을 향한 욕설 Liar, 대형음반사와 공룡밴드를 비꼬는 EMI, 그리고 낙태에 관한 끔찍한 곡 Bodies. 피스톨즈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느 기념행사장에 나타나서 왕실의 무능함을 비난하는 God Save The Queen을 불렀다.(영국에서 이게 과연 쉬운 일일까.)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자 가장 큰 외침은 정부와 기독교에게 “미래는 없다No Future 차라리 무정부상태를 원한다”고 부르짖는 충격적인 곡 Anarchy In The U.K.이다. (서구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노래는 또 쉬운 일일까) 앨범 발매를 꺼리는 음반사들 때문에 섹스 피스톨즈는 저예산 싱글로 활동을 했지만,  이들의 파급력을 끝내 인정한 음반사는 그 싱글들을 모아서 정규앨범을 찍어냈다. 그리고 다른 신인 펑크밴드들하고도 계약을 하기 시작했다. 창의력이 고갈된 기존 록음악에 대한 대안이 필요했던 음반사로서도 끔찍했지만 새로운 음악인 평크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섹스 피스톨즈 덕분에 인디밴드들은 기타코드 세 개와 아이디어만 가지고도 음반을 만들 수 있었고, 이런 유행은 또다시 큰 흐름이 되어서 70년대 중후반 펑크록은 곧바로 80년대 뉴웨이브New Wave로 진화했다.

 

욕설, 난동, 혐오스런 외모, 지독히도 못하는 시끄러운 연주..모든게 사고뭉치들만 모아놓은 섹스 피스톨즈였지만 그들의 유일한 정규앨범인 “잡놈들은 꺼져! 여기 섹스피스톨즈가 있잖아!!”(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는 여전히 록의 명반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록은 기교가 아닌 “정신”이 우선이고, 화려함이 아니라 “에너지”가 생명이라는 록의 이념을 이처럼 끔찍하게 표현한 앨범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에 록이 다시 기름기가 낄 때마다 저항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내부의 목소리가 뛰쳐 나온다. 그때마다 거론하는 것이 “뒤샹의 변기”가 아닌 “70년대 영국 펑크”이고, 그 영국 펑크의 중심엔 언제나 섹스 피스톨즈라는 사고뭉치가 있었다.

 

(앨범따라 록음악의 역사, 열 번째 이야기)

 

(피스톨즈의 사운드를 나타내듯이 조잡하고 3류같은 아트웍을 한 앨범표지. 지나고 나니 이것도 록의 미니멀리즘을 잘 표현한 명 앨범표지 목록에 항상 든다. 뭐든 갖다붙이기 나름.) 

 

 

(사고뭉치들의 모임, 섹스피스톨즈. 왼쪽 두번째는 그중에서 대빵 사고뭉지 베이스 치는 시드 비셔스. 80년대에 "시드와 낸시"라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시드역은 젊은 게리 올드만이었다. 아마 올드만의 데뷔 영화였을건데..끔찍한 악동 연기를 보여줬다.) 

 

 

 



s*****9 2011.01.26. 신고 공감 13 댓글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