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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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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고를 때, 최대한 다정한 시를 고르리라 마음먹었는데 생각대로는 잘 되지 않는다. 흑백을 읽으면서 나는 난감함과 어지러움에 빠져있어야 했다. 흑과 백 무엇도 아닌, 다른 것을 맞닥뜨린 듯한 난감함, 그 복잡한 흐름의 어지러움을 이겨가며 책장을 넘겼다. 생각해보면, 그럴 일인가 싶기도 했다. 우리는 더 읽기 원하지 않는 책을 덮을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 책을 읽을 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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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고를 때, 최대한 다정한 시를 고르리라 마음먹었는데 생각대로는 잘 되지 않는다. 흑백을 읽으면서 나는 난감함과 어지러움에 빠져있어야 했다. 흑과 백 무엇도 아닌, 다른 것을 맞닥뜨린 듯한 난감함, 그 복잡한 흐름의 어지러움을 이겨가며 책장을 넘겼다. 생각해보면, 그럴 일인가 싶기도 했다. 우리는 더 읽기 원하지 않는 책을 덮을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 책을 읽을 의무가 있듯이.

 

흑백을 읽는 동안, 나열과 라임. 이 두가지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시인의 시는 언뜻 평이한 흐름으로 노래되는가 싶다가도 이내 그 본색을 드러내듯이 의식의 흐름 속 단면을 툭툭 내뱉듯이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마치 생각의 꼬리물기를 하는 것같이 연결되는 단어들도 있고, 왜 갑자기 여기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을까 싶은 단어들도 있고, 여기서 끝난 것 같다가도 금새 따라붙어 오는 단어들도 있었다. 이런 단어들의 나열이 의미있는 것 같다가도 의미없는 것 같고, 알 것 같다가도 사실은 전혀 모르겠는 시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그저 소리의 유사성을 통한 언어유희적인 라임 맞추기 식의 나열처럼 느껴지는 단어들도 있었다. 아마 그랬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거라 생각된다. 마치, 마더 구스처럼 느껴졌을테니까. 아니면 읽을 수록 박자감이 느껴지는 랩처럼 시가 읽혔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런데 나열과 라임의 흑백에서도 그 중간 혹은 7:3 이상의 비율이 느껴지는 그런 시집이었다. 읽은 것을 모두 이해할 수 없고 그런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라 생각하는데,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이 감상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상처받은 밤이다. 다른 시를 읽어봐야겠다 생각할 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연작으로 쓰여진 흑백의 첫번째 시. 그 뒤로 이어진 다른 시들에 비해 가장 난해함이 적었다. 시집 전체를 두고 봐도 이 시가 가장 명료한 느낌을 전달하는 시였던 것 같다.

 

" 흑백 1

 

도도한 입술이 흐리게 젖는다

섬망을 노래하는 어리석은 벌레들이

검고 푸르게 간격을 지우며 움직인다

시곗바늘 소리에 맞추어

사랑한다고 함께 죽자고

숨이 벅차다고 그늘이 휜다고 "

이달의 사락 m******j 2012.10.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