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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만으로는 노름하는 것을 다루거나 사내들끼리의 싸움을 담은 영화인 듯하지만, 엉뚱하게도 사내들의 사랑법을 다룬 영화, <게임의 규칙 La règle du jeu / The Rules of the Game>. 프랑스 사람인 장 르누아르 감독이 1939년에 만든 흑백영화로, 엇박자를 내는 사내들의 사랑을 꼬집었다.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는 사람들이 "뭐 이 따위 영화가 다 있나!" 하며 나쁘게 봤지만, 세월이 흐른 다음 이 영화를 다시 보고는 "멋진 영화네!" 했다며, 감독은 디뷔디 덤에서 세상 사람들의 오락가락 하는 마음을 서운해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엉성한 듯하지만, 잘 짜여진 알맹이와 세상의 흐름을 파헤쳐 드러낸 작품이었다. 세월의 흐름을 뛰어넘은 영화를 보는 건 언제나 즐겁다. 영화가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그 질긴 목숨에 놀라고, 속을 들여다 봤을 때 사람의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대목에서 다시 놀라게 하는 영화다.
2. 앙드레 쥐리외(롤랑 투탱)는 비행기를 몰고 28시간만에 대서양을 건너 파리 부르제 공항에 이르렀다. 12년 전의 린드버그의 비행에 견줄만 하다는 말들을 했지만, 그는 기쁘지 않았다. 제가 사랑하던 크리스틴(노라 그레고르)이 공항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기자한테 제 속마음을 다 털어놓아 버렸다. "전 비참합니다...저는 한 사람 때문에 비행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이는 나오지 않았어요..."
마중을 나온 동무 옥타브(장 르누아르)는 철부지 같은 앙드레를 나무란다. "자넨 영웅일지 모르지만 애처럼 말했어. 크리스틴은 자네한테 과분해"
그 사이에 크리스틴은 로베르 드 라 세니에스트 후작(마르셀 달리오)과 혼인해버렸다. 그런데 돈이 많고 귀족인 로베르에게는 아내 크리스틴 말고도 사랑하는 이가 더 있다. 세 해 앞서부터 사귀었던 주느비에브 마라(밀라 파렐리)다.
로베르는 아름답고 마음에 드는 아내 크리스틴과 헤어지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다. 그렇다고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곤 하는 주느비에브를 떼어버리는 것도 쉽지는 않다. 주느비에브가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로베르는 꼴리니에에 있는 시골 별장에서 사냥을 하면서 보내려 한다. 아는 이들을 불러 같이 잔치를 벌이고 즐기고 싶다. 그런데 크리스틴 때문에 머리가 살짝 맛이 가려고 하는 앙드레도 어찌어찌 해서 꼴리니에 간다. 얽히고설킨 사랑의 실타래가 로베르의 별장에서 더욱 꼬일지, 엉킨 매듭이 잘 풀릴지는 모를 일이다.
3. 감독이 바라보는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은 엉망이다. 그 가운데서 사내들쪽이 더 많이 무너진다. 로베르는 사람은 좋지만 크리스틴과 주느비에브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쳤다가 얼굴을 구기게 되고, 앙드레는 이미 남의 아내가 된 크리스틴한테 매달리다가 제 목숨마저 오락가락하는 막다른 길에 몰린다. 옥타브는 크리스틴이 오스트리아에서 음악 공부를 할 때 도움을 준 스승의 딸이어서 제 아우처럼 보살펴주지만, 나중에는 크리스틴의 세모꼴 사랑에 빠져들어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사내들에 견주면, 크리스틴이나 주느비에브 같은 아낙네들은 사랑만을 좇는다. 제가 사랑하는 사내한테 "난 당신을 사랑해요. 같이 떠납시다!" 하며, 사내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것으로 나타낸 크리스틴도 나중에는 프랑스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이 된다. 나온 이들이 어찌 보면 윤리나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시원스레 제 마음을 터놓고 사는 사람들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제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도 세상이 쳐놓은 울타리를 쉽게 넘어가지 못하기도 하고, 짝사랑에 목을 매다가 슬퍼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사랑이고, 2%가 모자란 사랑이었다.
이들을 감독은 어떻게 대했을까? 엇길로 가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로베르는 그나마 착해서 그런지 감독이 챙겨주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제가 뿌린 씨앗대로 열매를 얻는다. 그렇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의 손길이 차갑다고 나무랄 수가 없었다.
영화 첫머리에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과 보여주는 일들은 모두 지어낸 것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영화 속에서 보이는 모습들은 그냥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에 앞서 프랑스 파리 사람들이 보여주는 여러 모습을 까발려 보여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낙네들의 입을 빌려 그즈음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넌지시 드러냈다. 진한 루즈를 달라고 하자 도와주던 리젯이 "전 이렇게 진한 자줏빛은 싫어요. 자연스럽지 않잖아요." 할 때, 크리스틴은 말한다. "요즈음 자연스러운 게 있나?"
주느비에브도 거든다. 참된 사랑은 이제 한물간 것처럼 말한다. "이 세상에서 사랑한다는 건 두 개의 변덕을 맞바꾸거나 두 살갗이 맞부딪치는 것이야."
리젯(폴레트 뒤보스토)의 입에서는 사내들을 우습게 여기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많이 주면 줄수록 더 많이 바라잖아요. 사내들은 다 똑같아요. 모두 엉터리죠."
좀 한다 하는 파리 사람들은 사내든 계집이든 바람을 피운다는 걸 주느비에브의 입으로 드러내었다. "크리스틴은 아직 이방인이에요. 파리 사람이면 받아들이겠지만, 그이는 (바람을 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할 걸요. 그이가 (로베르 당신이 나하고 몰래 사랑을 나눴다는 걸) 알면 당신을 봐주지 않을 걸요?"
4. 엉터리 같은 사랑의 굴레에서 헤매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안타까웠다. 제 아내 리젯만을 찾으려 애쓰는 별장 관리인 슈마셰(가스통 모도)는 보기에 못내 안쓰러웠다.
"후작님, 전 여기에 있고 아내는 파리에 있으면 안 됩니다. 꼭 홀애비 같다구요."
또 한 사람, 주느비에브도 마찬가지였다. 인연이 아니었을 뿐, 그 사랑에 잘못은 없는 듯해서다. "로베르, 난 당신을 잃기 싫어요. 이게 사랑인지 아니면 버릇인지 몰라도, 당신이 없으면 불행할 거에요. 난 행복하고 싶어요..." 크리스틴의 곁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리젯은 감독이 남다르게 꾸민 사람으로 보였다. 모두들 사내와 계집이 어울려 사랑하겠다고 난리들인데, 홀로 엉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혼인한 지 두 해나 되었으므로 떨어져 살지 말고 옆지기와 같이 살라고 해도 튕긴다. "저보고 마님을 떠나라고요? 차라리 옆지기와 헤어지겠어요." 톡톡 튀는, 맛깔스런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화 속의 사람들은 갖가지 모습으로 살지만 모두 우리 곁에서 살아숨쉬는 듯했다. 돈이 많아서 온갖 노리개를 사모으는 로베르나, 제 앞가림도 잘 하지 못하면서 리젯한테 살살 꼬리를 치는 마르소,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아는 사람들에 얹혀사는 옥타브 같은 이는 양념으론 딱이었다.
오래된 영화인데도, 흑백 영화지만 로베르의 시골 땅에서 벌어지는 사냥 모습은 놀라웠다. 아랫사람들이 나무 막대기로 소리를 내어서 토끼나 꿩 따위를 몰아내면 놀러온 이들이 총을 쏘아 사냥하 는데, 짐승들을 쫓아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매끄러워서 총에 맞은 토끼나 꿩은 정말로 죽어가는 듯했다. 이런 대목에서는 1930년대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5. 사내들과 달리 아낙네들은 속마음을 털어놓았으니 일이 잘 풀려야 한다. 그런데 그네들의 사랑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 사랑은 이루기가 어렵다.
사내들은 그냥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떠나기만 하면 되는데도, 떠나지 못한다. 왜? 사내들끼리 쓰잘데기 없는 '규칙' 타령을 하는 탓이다. 감독은 사랑하면 사랑만 보면 될 것이지 왜 끄집어내지 않아도 될 규칙을 갖다 붙여서 아낙네들이 진저리를 치게 하냐고 따지고 있었다.
그래서 크리스틴을 둘러싸고 사내들이 온 힘을 다 쏟지만 누구도 크리스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혼인해서 같이 사는 로베르도, 크리스틴의 사랑을 못 얻으면 죽겠다며 나선 앙드레도, 심지어 나중에는 옥타브한테까지 사랑이 굴러들어왔음에도 모두 제 밥그릇을 엎을 수밖에 없다. "...사랑에 속고 정에 울고 /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구나 / 세월이 변해버렸나 당신이 변했나..." 하는 함중아가 부른 노래 <사랑은 정에 울고>만 메아리친다.
감독은 사랑 타령만 할 뿐 사랑을 제대로 움켜잡지 못하는 못난 사내들한테 한 방을 먹이고, 그런 틈바구니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의 야비하거나 엉큼한 속내나 겉치레를 다 까발려 보여주었다. 사랑은 게임이 아니다. 그래서 '게임의 규칙' 따위는 없어도 되는 것.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는 보지 말고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서 잘 살면 끝이라는데, 웬 말들이 그리 많은가? 감독은 따끔하게 쏘아붙였다. 6. 감독은 영화 속에서 옥타브로 나와 영화의 저울추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해주는데, 보기에 좋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야 깨달았어요" 하며 로베르한테 속았다고 말하는 크리스틴한테, 로베르만 거짓말하는 나쁜 사람으로 보지 말라며 타이른다. "세상 일의 일부일 뿐이야. 거짓말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광고와 정부, 라디오, 연극, 신문...모두 다 그래. 그런데 그 사람이라고 그러지 않겠어?"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내뱉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가슴속으로 쏙 들어오고, 사랑을 어떻게 느끼는지 사람들의 속마음을 잘 보여주며, 어떻게 끝이 날지 짐작하지 못하게 하도록 촘촘히 얽히게 해놓은 짜임새도 좋은 영화였다. 그래서 별은 망설이지 않고 다섯을 주었다.
2007년에 이 디뷔디를 사놓고는 먼지만 안겨주었다. 미안하던 차에 손에 잡힌 것이라 곧장 보았다. 흑백 화면은 일흔 해가 넘게 지난 세월 탓에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볼만 했고, 소리도 괜찮았으며, 프랑스 이름을 영어에서 우리말로 옮겼는지 조금 어색한 것을 빼면 우리말 옮김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겉보기로는 볼품 없는 디뷔디여서 더 바라지는 않았다. 덤으로 예고편이나 있으면 괜찮다 싶었는데...뜻밖에...덤이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는 다시 아쉬웠지만.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장 르누아르 감독의 모습이 보이고, 처음 영화를 만들었을 때의 사람들이 어떻게 봤는지, 그 뒤 세월이 흘러 다시 영화를 내보였을 때 어떻게 보았는지를 말하는 대목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얼굴이 안 나와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감독이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들어있어 싸구려 디뷔디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안타까운 건 덤에 나오는 것은 모두 영어로 나온다는 것. 우리말로 옮겼으면 더없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예스24의 상품 소개는 틀렸다. 장 가방이 나오는 것으로 올렸으나, 그는 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뭘 보고 적었는지 모르겠다. 고쳐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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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이걸 코메디라고 봤나. 누가 그때도 극장가서 봤을까? 한마디로 랄지를 떨고 있다.이런걸 코메디라고 프랑스 사람들은 봤냐? 이러니 프랑스 영화, 말도 싫지. 2차대전 중 없어졌다가 복원했다고? 큰 보물 건졌구나. 없어져도 아무도 몰랐고 누구도 개의치않았겠다. 감독이 화가 르느와르 아들 맞아요? 영화 시작할때 2차 대전 전 만들어서 (1939)그후 교훈은(?) 고려안되었단다. 이 줄거리도 없는 것에 누가 따지겠냐만 주방장이 유태인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가보다. 저희들 끼리 왔다갔다 하다 끝. 항상 궁금한 것은 어느 시대 어느 곳 어떤 때라도 사람들 중엔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기타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뒤의 사람들을 한번이라도 생각했는지 지금 이 시대도 궁금하더라. 이 영화서 하나 딱 볼것은 그때 소파를 지금 갖다놔도 그대로 쓸 수 있을 정도라는 것. 제목보고 스릴러 연상말고 그렇다고 연애게임? 아님. 영화를 공부하거나 깊이 아는 사람은 뭔가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본인은 그저 평범한 눈이고 나 같은 이가 더 많지않겠어요? 이 영화 좋게 평할 만큼 눈 기르고 싶지않고 프랑스 영화 중 좋은 영화도 알아요. 영화가 마음에 안들면 신랄해지고 어정쩡하게 말안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