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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호스맨의 두개골을 가져갔을까..?
"누가 호스맨의 두개골을 가져갔을까..?" 내용보기
'팀 버튼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이라고 생각해 처음엔 약간 의아했다. 이 영화를 무삭제판 DVD로 보고 난 후에도 이 영화가 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미국의 등급을 보니 'R', 17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이 필수인 등급이다. 이 'R' 등급을 보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영화 중 목이 잘려나가는 장면이 여럿 나오는데, 그 장면이 지나치게 노골적인게
"누가 호스맨의 두개골을 가져갔을까..?" 내용보기

'팀 버튼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이라고 생각해 처음엔 약간 의아했다. 이 영화를 무삭제판 DVD로 보고 난 후에도 이 영화가 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미국의 등급을 보니 'R', 17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이 필수인 등급이다. 이 'R' 등급을 보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영화 중 목이 잘려나가는 장면이 여럿 나오는데, 그 장면이 지나치게 노골적인게 이유인 듯 싶었다. 영화의 내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R = 청소년 관람불가> 라는 기계적 도식을 적용하는 등급부여 방식이 영 별로다. 특히 이 영화에 한해선 더 그렇다. 미국에서도 등급을 'PG-13' 이하로 낮추이 위해, 목이 잘려나가는 장면의 삭제가 검토된 적이 있다는데, 팀 버튼이 결사반대해 막아냈다고 한다. 흥행 보다는 자신의 작품성을 우선시한 자세가 어딘지 멋지다. 결국 그 이유로  많은 어린이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만.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중학생인 아이들에게 보여주어도 무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목이 잘려나가고 피가 튀는 장면이 여럿 나오지만, 어딘지 현실감이 상당히 떨어지는 영화 속 배경과 분위기 안에선, 그것이 현실감이 부여된 잔인한 장면처럼 보이기 보다는, 어딘지 판타지나 애니메이션 같이 비현실적으로 묘사되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현실과 영화 속을 혼동하는 어린 아이들이야 때로는 무섭고 충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청소년 쯤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해낼 수 있는 내용이지 싶다.

 

 

영화의 시작은 뉴욕에서 근무하는 감찰관(수사관) 이카보드 크레인(조니 뎁)의 사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친구는 기존 사법체계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신세대 감찰관이다. 별다른 증거도 없이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무시무시한 형벌을 가하는 기존 사법체계에 맞서, 과학적 수사를 통한 증거의 중요성과, 범죄사실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 신분에 대한 인권문제를 들먹이다가, 기존 체계를 위협하는 '공공의 적'이 되고 만다. 그래서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뉴욕 변두리 마을의 살인사건 조사. 최근 수수께끼의 연쇄살인 사건.. 그것도 모두 목이 잘려 사라진 사건이 일어나, 마을 주민 모두가 두려움에 떠는 <슬리피 할로우 사건>의 조사가 그것이다.

 

 

위 사진은 슬리피 할로우의 주민 하나가 살해된 현장에 서 있던 허수아비의 모습이다. 방금 잘린 목에서 튀어나온 피가 뭍어 흘러내리는 것이 보인다. 사나운 모양을 하고 있는 호박머리임에도 어쩐지 귀엽고 친근한 구석을 느낄 수 있다. 어딘지 다른 영화에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팀 버튼 스타일. 잔인하거나 기괴한 장면 속에서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친근함과 유머스러움을 놓치지 않는다. 그게 내가 팀 버튼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마을은 목없는 기사 호스맨(호스맨이라니.. 이름이 엉뚱함과 단순함의 극치다. 우리말로 하면 '말사내' 정도^^)의 전설로 공포의 도가니다. 누군가 목없는 기사를 통해 살인을 사주하고 있다는 말. 그러나, 과학적 탐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크레인 감찰관의 입장에서 이 소문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다. 진실 규명을 위해 마을 사람들의 지원을 요청하지만, 자발적으로 이에 응하는 이는 얼마전 다들 목없는 기사라고 믿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남자의 어린 아들 하나. 그것도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당장 혼자 살아가야 할 일이 캄캄한 것이 이유.

 

그나마, 그 아이를 빼고 가장 협조적인 건 반 타셀 가(네델란드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로 설정된 만큼 대부분의 성이 반(Van)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딸 크리스티나(크리스티나 리치)가 가장 적극적. 결국 아이를 포함한 세 사람 만이 호스맨이 묻혀 있다는 전설의 무덤을 찾아간다. 귀신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밝혀내 좀 더 적극적인 수사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호스맨의 무덤을 발견, 파헤쳐 시신을 확인해보니 웬일.. 두개골이 사라졌다. 누군가 두개골만 훔쳐간 모양이다. 골치아프다. 도데체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건가.. 이때, 호스맨이 묻힌 나무의 뿌리가 열리며 그동안 살해당한 사람들의 머리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 뿌리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호스맨. 헉.. 진짜 목이 없다. 진짜로 목이 없었던 그는 주변에 있는 세 사람을 무시한 채 마을을 향해 전 속력으로 질주한다.

 

이제 사건은 크레인 감찰관의 신조와 이력을 철저히 무시한 채, 과학적 분석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마치 세 사람을 무시한 채 뛰어넘어 마을을 향해 질주한 목없는 호스맨처럼.  이제 사건의 열쇠는 누가 호스맨의 두개골을 가져갔는지에 있다. 그 목을 가져간 이가 호스맨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가설이, 비록 과학적이지는 않더라도 가장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호스맨의 두개골을 가져간걸까. 일련의 살인으로 인해 가장 혜택을 볼 수 있는 인물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그런데, 이 마을.. 어찌된 일인지 모두 친인척간이다. 누군가 죽어나가면 그 재산은 결국 차곡차곡 살아남은 다른 누군가에게로 모여지는 구조다. 그럼 살인 사건이 끝나는 시점에서 모든 재산의 상속인이 범인이란 이야기. 결국 범인을 밝혀내려면 이 살인게임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답이 나온다. 크레인에게는 결코 참을 수 없는, 황당한 결론이다.

 

 

반 타셀가의 외동딸.. 크리스티나. 그녀는 크레인의 등장 시점부터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야릇한 표정을 짓더니, 급기야는 호스맨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 목숨을 걸고 동행하기까지 한다. 모두들 꺼리는 이 여정에 동참한 이유는 뭘까. 그만큼 크레인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걸까.. 아니면 자신는 절대 죽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서일까. 만약 후자라면 그녀가 범인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숲속에서 빨간 새를 발견하고는, 새장에 넣으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절대 기를 수 없는 새라고 말하는 그녀. 그녀의 말에 크레인은 한 쪽에는 붉은 새, 한 쪽에는 빈 새장이 그려진 원판을 빠르게 돌려 새장 속에 같힌 붉은새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건 마술(Magic)이로군요..'라고 놀라워하는 그녀에게 크레인은 '아니요 이건 광학(Optics)입니다'..라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그녀는 크레인의 광학 시현을 보고 있는게 아니라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동안 얼굴에 제법 큰 가슴의 육감적 몸매를 한 크리스티나 리치 역시 조니 뎁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 딱 맞는 배역이라는 느낌이다. 화장기가 없다 못해 눈썹까지 없는 그녀의 청순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녀라면 괜찮아.. 설령 범인이라도..'라는 생각이 무심코 들 정도로 매력적. 처음 등장할 땐 쪼금 '음음..' 하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야기와 묘하게 어우러지는 매력 또한 점증적으로 증가한다. 조니 뎁과는 또 다른 개성으로 이 영화의 한 축을 매끄럽게 지탱해간다고나 할까.

 

 

호스맨이 드디어 자신의 두개골을 찾았다. 타인의 손때가 묻었을 비위생적인 두개골을 목에 끼우고는 좋아하는 호스맨. 수시로 목이 잘려나가는 잔인함에도 불구 이 영화가 기괴하다기보단 판타지스런 묘한 매력으로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 호스맨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결국 여러사람의 희생에도 불구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뭐.. 그러니 죽인 이들만 불쌍한거다. 세상일이란게 원래 그렇듯. 영화의 끝에 크리스티나를 뉴욕 다운타운에 데려온 아보카도.. 아니 이카보드 크레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브롱스는 위쪽, 배러리는 아래쪽..(The Bronx is up, the Battery's down..)'이라고. 이 대사는 레너드 번시타인(Leonard Bernstein)의 뮤지컬 「New York, New York」 에 나오는 대사의 패러디라고 한다. 끝까지 위트를 놓치지 않는 팀 버튼의 재치가 엿보인다^^

 



리뷰 총점
음산한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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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버튼의 영화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음산한 동화'라고 하겠다. '화성침공', '가위손', '크리스마스 악몽' 등 전작들에서부터 보여준 바와 같이 영화들이 전체적으로 호러스럽고 기괴하나 유머스럽고 동화틱하다. 음산함과 신비함이 공존하고, 그럼에도 한편의 동화와 같다는 점은 꽤나 유니크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이런 점은 그가 낸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이란 책에서도 특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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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버튼의 영화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음산한 동화'라고 하겠다. '화성침공', '가위손', '크리스마스 악몽' 등 전작들에서부터 보여준 바와 같이 영화들이 전체적으로 호러스럽고 기괴하나 유머스럽고 동화틱하다. 음산함과 신비함이 공존하고, 그럼에도 한편의 동화와 같다는 점은 꽤나 유니크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이런 점은 그가 낸 '굴소년의 우울한 죽음'이란 책에서도 특징적으로 보여진다. 슬리피할 로우는 그의 영화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다. 팀버튼의 영화는 비디오로 3개(크리스마스의 악몽, 슬리피 할로우, 화성침공) 정도 소지하고 있는데, 비디오 플레이어는 돌리지 않는 요즘인지라, dvd를 사야하나 눈을 돌려보니 슬리피할로우가 무삭제판으로 나왔다지 않은가! 화성침공까지는 무리더라도, 내게 슬리피 할로우나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dvd 수집품으로 1위 랭크인 것이다. 슬리피 할로우는 호러+추리+로맨스물이다. 호스맨이라는 머리가 없는 말을 탄 유령이 저지르는 살인 행각은 호러팬들을 흥분시키고, 수사관으로 임명되어 온 조니뎁의 '창백한 귀여움'은 로맨틱하게 느껴져 유머스럽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던 장면은 호스맨과 처음 마주친 어린시절, 그 작고 앙증맞은 귀여운 미소녀가 나뭇가지를 '뚝' 하고 부러뜨리는 씬이다. 그 귀엽다 못해 을씨년스럽고 발칙한 미소녀에게 폭 빠져버렸다고 할까. 아마도 내가 팀버튼의 영화들 중에서도 이 영화를 더욱 사랑하는 건 이 '아름다움'에 있을 것이다. 여주인공의 카리스마 넘치는 빼어난 미모,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숲, 고전미가 흐르는 저택과 마을 전경 등 아카데미에서 미술상을 받았다는 것이 허언이 아님은 분명히 증명하는 것이다. 음악에서부터 영상, 플롯까지 취향에 딱 맞춰 셋트로 낸듯한 느낌이니 이렇게까지 마음에 드는 영화는 다시 찾기 힘드리라. 게다가 중요한 건 '무삭제'라는 점. 국내영화 흥행 성적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니 아직 보지 못한 많은 분들이 꼭 보시라 권하고 싶다.
r****o 2004.10.0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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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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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어빙은 미국 문학의 founding father 에 낄 만한 위상이다. 원작 소설에서 이카보드 크레인의 캐릭터는,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것보다는 더 분명한 현실지향성을 갖고 있다. 흠, 아무리 그렇다한들 일 개인의 힘으로 전근대 총체를 타파할 수는 없는 법! 해서, 소설의 설정은, 철저히 상징화한 희화, 난센스의 정글짐에 대한, 참수, 화형, 귀양(제 고향으로 마성을 축출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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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어빙은 미국 문학의 founding father 에 낄 만한 위상이다.

원작 소설에서 이카보드 크레인의 캐릭터는,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것보다는 더 분명한 현실지향성을 갖고 있다. 흠, 아무리 그렇다한들 일 개인의 힘으로 전근대 총체를 타파할 수는 없는 법! 해서, 소설의 설정은, 철저히 상징화한 희화, 난센스의 정글짐에 대한, 참수, 화형, 귀양(제 고향으로 마성을 축출하는 것은 그 마물에게는 귀향이고, 근대 문명인 아군의 입장에서는 무기한 유배형의 선고이다)조치를 단행함으로써 그 가상의 승리를 완성한다. 어빙의 소설은 이처럼, 현실 정치에서의 '국가의 탄생'이라는 사건에다, '낡음에 대한 새로움의 승리' 라는 이념의 가치를 결부(혹은 상호 치환)함으로써, 미합중국이라는 신생아의 활력에 찬 고고의 성을 문학사의 한 장에 아름답게 아로새기고 있다.

소설은 그렇고, 영화는 어떠한가? 팀 버튼은 본래 정치는 고사하고, 가장 중립적이며 무색무취한 도덕 관념조차도 그 영상에 편입하기를 꺼리는, 말 그대로 영화미학의 피터패니즘을 가장 '과격하게' 추구하는 '근본주의자'이다. 계몽주의와 경향성의 탈색화가 세기말 영화예술 한 부문의 과제였다면, 그것을 이루는 데에 팀 버튼만한 적격자가 또 없었을 터였다. 여기에, 수 세기 전의 어빙 역시, 마치 첨단 기술의 발전에 힘 입은 새로운 포맷의 예술 출현을 예상하고나 있었다는 듯, 이미 활자 속에서 판타지의 황홀한 색채와 조형을 마음껏 '이바지'하고 있었다. 팀 버튼 같은 임자를 만나 이 오픈 소스는 비로소 시공간 예술의 형태를 갖추었고, 본래가 flexible, 자유자재의 변형 활용이 가능한 소재였던 덕에 시대적 함의라는 무거운 굴레를 벗고서도 영화는 깨끗하게 獨自의 두 발로 설 수 있었다(정도가 아니라 훨훨 날아다니고 있음).

긴 말이 필요 없고, 굳이 미스터리의 풀이라는 두뇌 노동 필요 없이, 아름다운 영상과 그것이 환기하는 상상의 무한 체인만 구경해도 언제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가작이다. 매수할 수 없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이상주의자 역에 조니 뎁이 너무도 잘 어울리고, 이후 잘 안 보여서 아쉬웠던 크리스티나 리치의 귀여운 모습이라든가, .... 별개 포스트로 많은 양을 할애해서 다루어도 부족한 크리스토퍼 워큰의 (다소 당혹스러운) 열연, 스포일러라서 더 이상 말을 못한다만 하여간 제 역을 제대로 맡은 미란다 리처드슨의 맹연(?)이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였고, 흘러나오는  뒷얘기로 보나 영화 내용 그 자체로 보나 분명 속편이 기대되었음에도 불구, 그 이후 이카보드 크레인을 부르는 그 정령들의 아련한 에코는 스크린에서 접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캡틴 잭 스패로우를 맡기에도 다소 버거워 보이는 그의 물리적 연령을 생각할 때, 뎁 아닌 다른 크레인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이건 분명 마음이 많이 아파오는 대목이다.
s****o 2011.09.05. 신고 공감 0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