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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에 둘러싸인 호숫가 작은 마을에 살던 한 소년 ‘페터 카멘친트’. 자연을 사랑했던 소년에게 산과 호수와 폭풍과 태양은 그의 친구였고 자신을 키워 주는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그중에서도 소년은 구름을 가장 사랑했다. <구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무언가를 동경하며 소심하면서도 고집스럽게 떠 있듯, 인간의 영혼도 시간과 영원 사이에서 갈구하며 주저하면서도 고집스럽게 걸려 있다.> 그는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무엇을 갈구하며 또 무엇을 주저했을까? 쉬지 않고 떠도는 구름의 모습은, 낯선 곳을 전전하며 방랑 생활을 하게 될 앞으로의 그의 인생과 닮아있다. 열 살이 된 소년 페터는 난생처음 젠알프 봉우리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넓은 세상을 보게 된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그저 작고 희미한 점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그의 마음에는 산 너머의 세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싹트기 시작한다. 시골 청년과 같은 건장한 외모와 달리 글쓰기에 재주가 있었던 그는, 그 덕분에 김나지움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된다. 페터에게 고리타분한 학문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친구를 갖고 싶었다. 고향을 떠나 취리히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아주 특별한 친구 리하르트를 만나게 되고, 드디어 그의 오랜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만 같았다. “네 안에 어떤 아름다움과 깊이가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데, 그것이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한 번 터져 나올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것이야말로 진짜 문학이 될 거야.”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한 일인가. 리하르트는 페터가 가진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한다. 페터는 리하르트의 도움으로 신문사에서 서평과 사설을 쓰며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그의 인생에도 평온한 햇살이 비춰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어떤 성공과 세상의 인정도 우정보다 더 귀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친구의 죽음’이라는 상실의 아픔이 찾아온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한 사람, 리하르트가 그의 곁을 떠났다. 그는 길을 잃었고, 그와의 추억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신이 믿었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청춘이 하나씩 떠나버리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던 그 순간, 그의 마음을 붙든 것은 오래전 어느 초여름 아침 고향에서 맞았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었다. 한 사람의 숭고한 죽음이 때로는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는 안내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상실의 아픔과 시련의 상처가 자신을 괴롭힐 때면 그는 술집을 찾았고, 갈증으로 타는 목과 냄새나는 지루함을 포도주로 씻어버리곤 했다. 그는 자연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이끌려 여행길에 올랐고, 고향으로 돌아가 나이 드신 아버지를 돌아보기도 했다. 특히 이탈리아 아시시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소박하면서도 자유로운 생활 방식에서 고향과 같은 편안함과 친근함을 느꼈다. 그곳 사람들과 성 프란체스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웃들에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주기도 했다. 도시 생활의 답답함을 느끼며 여행에서 누렸던 여유를 그리워하던 어느 날, 우연히 친해진 목수를 통해 그의 처남인 보피를 알게 된다. 그는 반신불수의 꼽추였고, 그 한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목수의 가족들은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를 바라보는 페터의 시선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 가족들과 페터는 보피를 남겨 둔 채 자물쇠를 잠그고 산책에 나선다. 방해받지 않고 즐길 수 있음을 기분 좋게 여기던 그때, 페터는 지난날 아시시 사람들에게 성 프란체스코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라는 가르침을 운운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진실의 거울 앞에 선 순간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오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피터는 그 즉시 보피에게로 돌아가 그의 친구가 되어 준다. 못 본 척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진실성을 증명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제 나는 성숙한 나이에 충분한 자존심도 갖게 되었는데, 한 가련한 불구자에게 감탄하고 고마워하는 학생이 된 것이다. 내가 오래전에 시작한 작품을 완성하여 세상에 내놓는 순간이 언젠가 진짜로 올지도 모른다. 그 작품 속에 들어 있는 미덕 가운데 보피에게서 배우지 않은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평생 동안 두고두고 충분히 음미하게 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병과 고독과 가난과 학대를, 마치 가볍고 느슨한 구름처럼 흘려보내는 훌륭한 인간의 영혼을 분명하고 깊게 들여다보는 일이 내게 허락된 것이다.” 보피는 뛰어난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고 삶을 구체적으로 관찰해서 관대한 유머로 따뜻하게 만들어낼 줄 알았다. “나는 그가 자기 몸속에서 일하고 있는 죽음을 느끼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장난치는 소리를 들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나를 찾는 그의 눈을 보았다. 애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기운을 북돋우고 이 경련과 고통이 그의 마음속에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다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인디언들은 친구를 가리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친구의 슬픔을 지고 가려 했던 친구 보피. 그는 구름처럼 고요히 페터 곁을 떠난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한 페터는 이제 조금은 담담한 모습으로 친구를 떠나 보내는 듯했다. 늘 그렇듯 만남이란,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잠시 잡을 수 있는 기회와 같다. 언제까지나 내 곁에 머물러 있어 주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내가 놓쳐 버리고 떠나보낸 후회의 경험들은, 어쩌면 나에게 생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일지도 모른다. “날씬한 뢰지 기르타너에서부터 가엾은 보피에 이르기까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모습과 더불어, 내 삶에서 흘러가 버렸지만 잃어버리지는 않은 것만큼 소중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삶에서 흘러가 버렸지만 잃어버리지는 않은 것. 그는 자연을 사랑했고, 문학을 사랑했다. 대단한 작품을 쓰겠다는 비장한 꿈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와 함께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었다. 어릴 적 막연하게 넓은 세상을 동경하며 고향을 떠났던 소년은 어느새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와 고향 땅에 서 있다. 폭풍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뚝 서 있던, 어릴 적 경외심으로 바라봤던 바위산처럼 말이다. 페터의 인생은 방랑과 여행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길을 잃어 방황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고, 끊임없이 ‘떠남’을 선택했다. 새로운 방랑 속에서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가 만약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카멘친트’라는 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의 내력을 따라 정해진 틀 속에서 갇혀 살지 않았을까? 드넓은 하늘을 유유히 떠다니던 한 조각 구름은 소년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의 삶을 전혀 다른 세계로 데려가 주었다. 책을 읽고 나서 감상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를 몇 시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밀려 왔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떠남을 선택하지 못하는 나.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하지 않은 것은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긍정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내딛기를 주저하고 있는 나를 향한 답답함이었다. 어쩌면 나는 ‘떠나지 못하는’ 많은 이유들로 ‘떠나야 하는’ 중요한 한 가지 이유를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내가 잠시 길을 잃고 멈춰 서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방랑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니, 떠나자. 지금 내 마음 위를 떠다니는 저 구름이 언젠가 길을 찾게 해 줄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