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조들의 글을 번역을 거치지않고 직접 읽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를테면 <열하일기>가 그렇고 <난중일기>가 그렇고 <한중록>이 그렇다. 실력이 안되는고로 번역물을 읽을 수 밖에 없지만, 그렇더라도 최대한 원작에 가까운 글을 읽고싶은 것이 또한 욕심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신원문화사에서 펴낸 <우리고전 다시 읽기> 시리즈가 이에 부합되는 것 같다. 애석하게도 나는 소설이나 드라마, 광화문 앞 동상을 통해 '이순신'을 먼저 알았다. 더군다나 요즘은 리더십과 관련해 경영관련서까지 이순신을 언급한다. 이러한 때에 뒤늦게 그의 글과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많은 부분이 선입견이었고 많은 부분이 고정관념이었다는 사실을 알겠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난 중에 쓴 글이다. 이때가 이미 그의 나이 50대다. 건강이 좋지않아 글 곳곳에서 "몸이 몹시 불편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날씨가 맑다. 아무개가 다녀가다. 오후에 공무를 보다. 활 몇 순을 쏘다. 아무개를 문초하고 곤장을 치다. 어머니의 안부가 궁금하다. 이것이 이순신의 문체다. 과연 무인(武人)답다. 결전이 있었던 날에도 들뜬 승리의 기쁨보다는 죽임을 당한 "적의 머릿수를 헤아리기 힘들다"하고 만다. 원균의 점잖치못한 작태에 대해서도 그는 그저 "하는 짓이 괴이하다. 우습다."하고 언급할 뿐이다. 흔히들 '대장부'니 '대인'이니 하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과연 이순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그도 어머니를 생각할 때는 거의 '마마보이' 수준이다. 몇 일만 어머니의 안부를 듣지못해도 밤잠을 이루지못할 정도로 괴로워한다. ) <난중일기>를 읽고 얻은 소득이 있다면, 전쟁도 생활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적과 일전을 벌이는 날은 많지않다. 오히려 수많은 날들이 먹고 자고 탐색하고 농사짓고 메주를 담그고 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군사들은 물고기를 잡고 미역을 따고 메주를 담근다. 그야말로 지리한 생활의 연속이다. 어떤 소설이나 드라마도 이 점을 깨우져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소설이나 드라마는 일단 '재미'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일상은 결코 재미있지 않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원작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김훈의 <칼의 노래> 역시 김훈 식의 해석일 뿐이다. 김훈의 이순신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사실 김훈의 이순신은 실제 이순신보다 훨씬 매력적인 인물이라 생각한다. 어떻든 한단계 가공을 가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칼의 노래>속 이순신보다 <난중일기>속 이순신이 매력이 덜한 인물인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도리어 이 점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독서의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칼의 노래>를 읽고 받은 감동과는 별개로 꼭 이점을 말하고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