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시작된 신화 열풍이 이제는 확고히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양 문화의 원류를 이루며 문학이나 미술 건축 등 서양의 여러 예술분야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하므로, 서양 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우리에게도 풍부한 교양을 제공한다. 하지만 뒤를 이어 쏟아져 나온 신화 관련 책들이 모두 서양신화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우리의 문화적 사대주의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몇 년 전 정재서 교수의 <산해경 역주="">를 읽으며 그 기발하고 다채로운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을 되살려 이 책을 선택했다. 황제라든가 치우천왕이라든가 우리의 주몽신화에도 등장하는 수신 하백 등 얼핏 들었던 친숙한 이야기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또 저자가 상상력을 발휘해 신화의 이야기를 현재와 접목시키거나 서양신화와 비교해서 설명하는 대목들은 흥미롭다. 동양신화라고 해서 그림이나 사진들이 모두 먹으로 그려진 동양화 풍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화려한 색깔의 그림들이 많아 보는 맛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가 해 주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커 왔던 우리의 이야기, 한국이나 동양에도 장대하고 재미있는 상상력의 신화가 있다는 생각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동양에서도 어느 문화권 못지않은 기발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이 가득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은 신화 시대나 오늘날에나 권위적인 인물보다는 현실적인 일상의 자질구레함에 시시콜콜 관여하는 친근한 인물을 더 좋아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신들은 '창조' 같은 거창한 일보다 삶과 죽음에 관여하거나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등 일상 생활에 밀착된 기능을 하는 신들이었다. 심지어 인간들은 친근한 신을 원했기에 기존의 엄숙한 신을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신으로 재탄생시켜야만 성에 찼던 것 같다. 산해경>그리스> |
| 이 책 제목을 보고 의아해 하다니..참.. '동양신화'라는 말이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신화라고 하면 으레 드레시한 옷을 입은 여신이라던지..너무 긴 이름들의 신들 또 거대한 신전..아무튼 신화는 오직 서양신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동양신화라니..과연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선은 저자가 오랫동안 신화를 전문으로 연구한 분이라는 게 신뢰가 가고, 게다가 중국 중심 혹은 서양 중심에서 탈피한 신화관도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요즘 고구려사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 책에서 적절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해서 신화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 광할한 대륙이 절대 중국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니까.. 그림자료도 참 많았는데, 뭐 설명도 좋았고 무엇보다 출처가 분명해서 좋았다. 그림 자료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있는 것 같다. 아무튼..저자 말마따나 '상상력의 편식'을 일소해 줄 책 것 같다. 주위에 정말 추천해 주고 싶다. |
|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개운한 녹차 한 잔에, 약간 달달한 한과 한 입 베어 먹은 기분이다. 이 세상 최고의 장난꾸러기는 “신화”라고 감히 단정 짓겠다. 신화만큼 엄중한 장난을 치는 게 또 있을까. 인간을 초월한 자들의 장난질은 상상만 해봐도 재밌다. 신들이 이리저리 장난치고, 실수하고, 싸움도 사랑도 하는 모습을 보자면, ‘야동 순재’ 할아버지와 자연스레 겹친다. 일이 생겼다. 중국 신화 관련 서적을 봐야할 일이 생겼다. 비록 중문학과 공부를 했지만, 중국 신화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랐다. 주말에 종로의 단골 서점에 들러서 중국 신화와 관련된 책을 집히는 대로 품에 안고는 계산해버렸다. 그 중에 가장 흥미로울 것 같기도 하고, 전채를 먹는 기분으로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정재서 선생님의 책을 먼저 들었다. 다 읽고 나면, 뭔가 갈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책을 한 쪽씩 읽어 가면서 나는 황급히 반성했다. 나는 못난 녀석이다. 동양 문화를 사랑한다면서, 중문학과 국문학을 4년 넘게 공부하고, 일본 고전 문학에도 기웃거렸지만 정작, 정신의 바탕이 되는 동양 신화는 도외시했다. 그동안 나는 왜 코큰 사람들의 신화에 빠져있었을까. 정재서 선생님의 말마따나, 그쪽 신화를 먹는 게 잘못이 아닌 걸 다시 느끼고, “신화 편식증”에 걸렸었던 내가 부끄럽다. 덕분인지, 잘 알지 못했기에 코큰 사람들의 신화보다 훨씬 가깝고도 재미나게 다가온다. 신기한 부분이 있다. 서양 신화와 동양 신화의 상당 부분이 닮았다는 점이다. 세상을 집어 삼키는 홍수 때문에 인류들이 모두 죽고, 남매만이 남아 하늘의 뜻을 묻고는 다시 인류를 번성시킨다는 구도도 어째 비슷하다. 아버지를 꺾고 최고의 권좌에 오르는 서양 신화의 제우스와, 선배를 누르고 신들의 왕위에 오르는 동양 신화의 황제(黃帝)의 모습도 역시 같은 상상을 하게 한다. 기타 등등, ‘어머, 이것도 비슷하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정말 많다. 사람은 모두 비슷하게 살아간다. 새로운 기술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생활 여건이 긴 시간을 지나며 변화했지만, 동양이든 서양이든 사람이 땅을 딛고 사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상상력도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혹은 자신은 이미 그리스-로마 신화의 모든 것을 꿰뚫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동양―한국, 중국, 일본―의 신화를 알고 있느냐고. 만약에 알지 못하고 있다면, 꼭 한 번 이 책을 접해보라 권하고 싶다. 깜짝 놀랄 거다. 코쟁이 신화를 잘 알고 있을수록 더 놀랄 거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마치, 개개의 한 줄기 강물처럼 흘러서 인류 공통의 상상력이 모이는 바다로 흐르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다. 옆 동네의 이야기는 이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라면, 이제 우리 동네의 이야기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2권이 기다린다. *자세한 중국 신화는, 민음사에서 출판한 "위앤커, <중국신화전설 1,2>"를 참고하면 좋을 듯. <책에서> 노래와 춤은 단순한 음악이나 무용이기 이전에 우주의 소리와 움직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소리와 움직임이야말로 우주의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27 혼돈이 숙과 홀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내용은 혼돈의 시대가 이제 시간이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시간이 지배하는 시대란 곧 질서의 시대이자 인간이 지배하는 역사의 시대이다. 결국 혼돈의 죽음은 태초의 신화시대로부터 비로소 인간 세상의 지서가 새롭게 창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p.30 창조 신화는 원시 인류의 우주와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관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태초에 있었던 거인의 죽음을 둘러싼 이러한 대조적인 이야기는 자연과 인간의 존재 원리를 ‘상생과 조화’에서 찾느냐, ‘대립과 극복’에서 찾느냐 하는 중요한 사고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p.43 …부여에서 흉년에 왕을 죽였다는 역사서의 기록은 성군 탕이 7년 가뭄 때 살해되었으리라는 우리의 추측을 지지하는 유력한 방증인 것이다. 이렇듯 신화 읽기의 또 한 가지 매력은 신화적 사건과 역사적 사건, 그 각각의 이면에 놓인 진정한 현실의 맥락을 짚어보게 되는 즐거움에 있다. -p.302 |
| 1. 미국의 저명한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은 "인종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는 정신구조상 동일한 신화적 모티프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 책을 보면 킴벨의 말이 진리임을 알 수 있다. 제우스의 권능에 필적할 만한 황제(黃帝), 헤라처럼 여신들을 지배했던 여와, 아프로디테와는 또 다른 우아한 매력의 소유자 서왕모(西王母)가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서양의 소 머리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비견할 수 있는 동양의 소 머리 신 염제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거인 타이탄이 제우스에 의해 세대 교체되듯(맞나???), 거인 반고(盤古)가 죽어 그의 몸 하나 하나가 세상 만물로 변하면서 역사적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서양에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요임금 시절 인간을 위해 천상의 흙을 훔친 '곤'이 있다. 동양 신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렇듯 서양 신화와 비교해가며 읽으면 더 재미있다. 이렇듯 서로 공통된 이야기를 통해 신화 속에 인류의 '역사'가 녹아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 세상에 대 홍수가 나서 일부(남녀 한쌍)만 살아남아 인류의 시조가 되는 이야기가 신화학에서 말하는 '홍수남매혼형 신화'라고 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우레의 신 뇌공(雷公)이 땅 위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켰을 때, 조카인 복희와 여와만이 살아남아 인류의 대를 잇게 된다. 이 책에서는 유독 여신들의 이야기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게다가 앞부분에 많이 할애하고 있다. 저자인 정재서 교수는 "그리스 신화에서 최초의 신을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로 보듯이 여신은 남신보다 더 오래된 신이었다. 이러한 여신들이 가부장제의 도래와 함께 점차 자신의 자리를 남신에게 내주고 지위가 추락되고 만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 교수는 본래 신화의 순서에 따라 여신을 먼저 소개하고 남신을 소개하는 순서를 밟고 있다. 3. 책 제목은 《이야기 동양 신화》이지만, 이 책에서는 신화의 세계를 지나 '전설'의 시대까지 다루고 있다. 서양에서는 신화와 전설을 흔히 구분하지만, 동양에서는 신과 인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신들이 활약을 하던 시대에서 인류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최초의 성군들이 통치하는 태평성대가 출현한다. 우리가 잘 아는 요, 순, 우, 탕, 문왕, 무왕, 주공으로 이어지는 일곱 명의 성군의 시대이다. 이들 성군은 비록 완전한 신은 아니지만 반신만인적인 성격을 띠는 비범한 존재였음이 틀림없다. 이 책에서는 성군 요의 태평성대의 시기, 성군 순의 고난과 영광의 일대기, 곤과 우의 치수 이야기, 폭군 걸과 성군 탕의 이야기, 폭군 주와 성군 주문왕의 이야기, 폭군 걸과 주의 합작품인 주지육림(酒池肉林) 이야기, 탕왕을 도와 폭군 걸을 정벌하고 은나라를 세우는 데에 공이 큰 이윤의 이야기, 나이 여든에 등용되어 은나라의 폭군 주를 정벌한 이야기가까지 포함하고 있다. 참 재미있게 읽었다. 속편이 기대된다. |
|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라 할 신화가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와 아프로디테, 헤라클레스이지 황제나 서왕모, 예는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서구 문화 편향이 신화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어서, 오히려 더욱 심하게 우리의 상상력을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만들고 있다. 신화를 비롯한 이야기가 한 사회의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성립한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뿌리는 놓아 둔 채 남의 뿌리만 더듬어 찾고 있는 격이라 할까?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신화에 대한 관심의 폭이 넓어지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 신화에 대한 깊이와 통찰력을 보여주는 좋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가 그렇고,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기대하고 있는 또 다른 책인 ‘김선자의 중국 신화 이야기 : 우주거인 반고에서 전쟁영웅 치우까지’가 그렇다. 두 책 모두 저자의 이름을 앞에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신화를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와 우리의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보여겠다는 것이리라.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궁금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라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 모두 세계가 생겨나기 전 태초의 모습을, 하늘과 땅이 뒤섞인 혼돈(混沌, chaos)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이러한 혼돈의 상태를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를 갖고 있고 얼굴이 없는 제강(帝江)이라는 새로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혼돈은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는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한 혼돈의 죽음은 시간이 지배하는 시대, 곧 질서의 시대이자 인간이 지배하는 역사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격렬한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최초의 우주적 생명인 거인 반고(盤古)가 생겨나고, 반고가 1만 8천년 동안의 잠에서 마침내 깨어나자 비로소 하늘과 땅이 나뉘게 된다. 그리고 1만 8천년 동안 반고는 날마다 키가 1장씩 커졌고 하늘과 땅은 9만 리나 떨어지게 되었다. 무수한 세월이 지난 뒤 죽은 반고의 몸은 바람과 구름, 우레, 해와 달, 산과 강물, 길과 논밭 등이 되었다.[시체화생 신화] 서양의 창조 신화와 비교해 보면 서양의 신화가 의도적 행위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면 반고의 신화는 노화, 죽음, 재탄생 등의 자연 순환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동양 신화에서 인류의 창조는 여와가 황토를 뭉쳐 사람을 만듦으로써 이루어진다. 사람은 흙으로 그릇을 빗고, 또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므로 사람의 육신과 흙이 궁극적으로 동일하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그 뒤 대홍수를 겪은 후 남매였던 복희와 여와가 결혼함으로써 새로이 인류가 창조된다고 한다.[홍수남매혼형 신화] 그런데 징벌과 구원의 성격이 강한 서양 신화에 비해 동양 신화에서는 대홍수가 자연의 재해로 인식된다. 이는 신과 인간의 지위가 엄격히 구별되는 서양에 비해 신마저도 자연의 변화를 따라야 한다는 동양적 사고가 반영된 것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나타나기 이전 여와는 창조와 결혼, 생식 그리고 치유와 보완을 주관하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을 때 여와는 오색돌로 하늘을 깁고 자라의 다리를 잘라 땅을 떠받치도록 한다. 고전문학 작품에 곧잘 등장하는 서왕모(西王母)는 표범의 꼬리와 호랑이 이빨을 가진 죽음과 형벌의 여신이며(그래서 해가 지는 서쪽에 형무소, 소년원, 화장터 등을 세웠음),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지닌 생명의 여신이기도 했다. 서왕모의 모습은 인간의 모순적 본능인 삶과 죽음의 공존을 표현한 것인데, 후세로 내려올수록 아름답고 매력적인 자태를 지닌 영생과 불사의 여신으로 숭배된다. 서양에서는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가 하늘과 바다, 지하 세계를 나누어 다스리는데 비해, 동양에서는 다섯 명의 큰 신들이 세계를 동, 서, 남, 북, 중앙의 다섯으로 나누어 지배한다. 신들의 통치자 황제(黃帝)는 얼굴이 넷에 누런 용의 몸체를 하고 곤륜산에서 중앙을 지배하는 벼락의 신으로 중국인들이 민족의 시조로 숭배하는 신이다. 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는 남방을 지배하며 불의 신이자 농업과 의약, 태양의 신이다. 인간에게 농업을 가르치고 한의학을 창시한 너그러운 신 염제는 야심만만한 젊은 신 황제와 판천이라는 곳에서 싸워 패한 뒤 근거였던 동방에서 쫓겨나 남방으로 이주하게 되며 월남에서는 그를 민족의 시조신으로 섬기고 있다. (월남의 신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베트남의 신화와 전설-영남척괴열전/ 무경 편/ 박희병 역/ 돌베개’를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동방의 신 태호(太昊) 복희씨(伏犧氏)는 용의 몸 혹은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물을 짜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고, 우주 만물의 모든 현상을 상징하는 팔괘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볼 때 복희는 수렵시대의 큰 신으로 무당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 추측된다. 서방의 신 소호(少昊)는 새의 신으로 그의 아들 반은 활과 화살을 만드는 등 그의 후손에는 재주 많고 유명한 인물들이 많다. 북방의 신 전욱(顓頊)은 중앙의 최고신 황제의 증손자이고 소호의 조카로서 황제를 대신해 전권을 행사하며 하늘가 땅의 통로를 끊어버렸다. 제우스가 최고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티탄신족과의 피나는 투쟁을 벌였듯이 황제 역시 으뜸 신이 되기 위해 염제와 싸워서 승리한다. 이후 염제는 남방으로 쫓겨나고 말았는데, 염제의 신하로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를 한 치우는 72명 또는 81명의 형제와 거인, 도깨비들을 거느리고 탁록에서 황제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용맹한 치우군은 아홉 번 싸워 아홉 번 이겼지만 마지막 몇 차례 전투에서 패하고 마는데, 죽은 치우는 전쟁의 신으로 부활한다. 황제와 치우의 전쟁 신화는 중국 민족의 조상인 황제가 야만족인 치우를 물리침으로써 중국이 성립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처럼 신화는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위대한 영웅으로는 예(羿)를 들 수 있다.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떠올라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리자, 천제 제준의 명을 받든 명궁 예는 활로 아홉 개의 태양을 떨어트려 세상을 구한다. 그뿐 아니라 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알유, 날카로운 이빨이 2미터나 나온 괴인 착치, 머리가 아홉 개난 달린 괴물 구영, 사납고 거대한 괴물 대풍, 코끼리까지 삼켜버린다는 큰 구렁이 파사, 거대한 멧돼지 봉희 등의 괴물을 물리친 예는, 헤라클레스와 견줄만한 동양 신화 속의 영웅이다. 그러나 천제의 아들인 태양을 죽인 것 때문에 노여움을 산 탓인지 천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실의에 찬 삶을 살다가 아내인 항아에게 배신당하고 결국은 아끼던 제자인 봉몽에게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맞아 죽는다.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신들이 활약하던 시대에서 인류의 시대로 들어서면, 그 최초의 시기에 성군들이 통치하는 태평성대가 출현한다. 중국의 경우 이 시대는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으로 이어지는 일곱 성군이 다스렸던 시대였다. 서양 신화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러한 이야기들은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가 아니라 인물들의 이야기인 ‘전설’의 차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신과 인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신들도 인간으로서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편이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신화를 표준으로 이야기의 풍토가 다른 지역의 신화를 평하는 것이 얼마나 자의적인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신화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문화 전반에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서구 역사를 바탕으로 한 시대 구분에 맞지 않는다고 동양을 전근대적인 사회로 치부한다든가, 아니면 서구 문학의 3분법적 장르론을 동양 문학에 그대로 대입함으로써 유구한 문학적 전통을 값어치 없는 것으로 밀어버린다든가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을 마치며 ‘중국 신화를 오리엔탈리즘과 중화주의라는 두 가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의 시각’에서 보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해당 중국 신화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한 뒤,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서양 신화와 비교하여 그 차이점을 드러내고, 그 다음에는 해당 신화를 한국 신화와 비교하거나 후대의 중국 문화 및 한국 문화와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 신화를 중국의 전유물이 아닌, 동양 공동의 신화로 조망하고자 한 것이고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와 같은 영토와 민족의 개념이 성립되기 이전의, 또 동양적 신비주의나 후진주의라는 시각에 의해 왜곡되지 않았으면서도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현재 중국의 자국문화 우월주의를 극복하고서 신화를 동양 전체의 것으로 환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신화를 통해 우리 문화의 원형을 알고 현재 우리 문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는 매우 값지고 소중한 책이라고 하겠다. [인상깊은구절] 신화시대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사물과 자연, 우주의 현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있었던 것이다. 신화는 우주와 세상의 탄생 등에 대한 고대 인류 나름의 최선을 다한 ‘이해와 상상’의 산물이다. 따라서 신화에는 신화의 논리가 있을 뿐, 현대인의 과학적인 사고와 다르다고 해서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취급될 수는 없다. 신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오히려 그러한 기괴한 상상 속에서 과거 인류의 문화를 창조했던 힘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투의 흔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
|
솔직히 이 책의 서문을 읽고 조금은 뜨끔했다 소위 국문학 전공이라는 나 조차도 신화란 어디까지나 그리스나 로마의 신들의 이야기였을뿐 동양의 신화라니 어색함과 함께 이질감 느껴지는 까닭엔 필자의 말마따나 우리의 상상력이란 것도 언제부터인가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게 되버린 것은 아닐까
판타지 문학에 대한 열광적인 팬덤이 휩쓸고 있는 추세에 힘입어 유행처럼 발간되는 신화관련 서적들과 궤를 달리한 신선한 기획과 발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수하고 유쾌한 입담과 함께 책에 수록된 화려한 사진과 그림자료들이 주는 즐거움은 책을 손에서 놓을수 없게 한다 .
동양신화에 대한 필자의 애정과 관심만큼 우리의 상상력도 날개를 피게 된다면 머지않아 레골라스보단 주몽을 활쏘기의 제왕이라 부를 날이 올지 기대해 본다 [인상깊은구절] 요즘 필자는 상상력이 자유롭다는 생각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상상력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 땅에도 신화의 귀환이 선언된 지 오래지만 도래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와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시리즈 등, 서양의 신화와 마법담이지 동양의 상상력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 문제는 편식이다. 왜 우리의 아이들은 상상력을 편식하게 되는가? 과거와는 달리 무차별적인 세계화의 시대에 상상력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우려에서 지금까지 상상력의 획일화된 경향을 지양하고 동양의 상상력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구상되었다. 해리>반지의> |
| 일상적으로 접하는 많은것들.. 사물, 혹은 인물, 그리고 문화등.. 이러한 것들을 객관적으로 바라 보기란 참으로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판단할때, 대개는 타인의 경험으로 비롯된 그들의 주관적인 관점들을 통해서 사물을 바라고 이해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러한 편향된 시선으로 이해한 것들이 마치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객관화 한 것인양 이야기하고 받아들이곤 한다. 이것은 자신을 바라고 이야기하는데에도 마찬가지여서.. 타자화된 관점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이해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책은 이렇게 타자화된 우리를.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동양적인 것'이 아닌 '동양' 그자체를 이해하고 찾아가는 길을 친절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과 함께 중간중간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는 삽화로 안내하고 있다. 꼭 좋은 것들만이.. 우리가 아니지만은. 스스로를 객관화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다면.. 더 많은 것들을 발전 계승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책을 통해 모두가 우리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나를 혹은 우리를 한단계 더 발전 시킬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와 함께.. 이책과 함께.. |
| '동양신화'가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더 낯설다니... 서양신화에 재미를 붙인 뒤에야 동양신화를 읽게 되었다. 책을 펼치면 금방 알 수 있지만 동양신화는 서양신화와 느낌이 참 많이 다르다. 조각같이 아름다운 미남 미녀의 모습인 서양신화 주인공들과 달리 너무도 소박한, 심지어 무섭게 생기기까지 한 동양신화 주인공들이 우리 선조들이 창조한 신들이라니. 그 신들과 신들에 관련된 이야기가 제삿상 차림이나 형무소 자리 등 현재 우리 생활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또 동양이라 하면 '여백의 미' 같은 말이 떠올라서 신화 주인공들도 단순한 이미지를 막연히 떠올렸는데 책 속의 주인공들은 화려한 칼라이다. 동양신화가 이렇게 화려할 수도 있구나. 동양신화도 모른 채 신화라 하면 그리스로마 신화만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니... 신화를 좋아하면서도 편식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화 같은 이야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씩 읽어볼 만한 것 같다. |
| 신화에 끌리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자신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본능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그렇지 않은가?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냔 말이다. 그것이 신화요, 철학일 것이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이해야말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비밀을 푸는 열쇠일 것이다. 전세계의 신화가 어쩌면 그렇게 서로 닮아 있으면서, 또한 서로 다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감탄한다. 반쪽이 사람이고 반쪽이 물고기인 '인어'가 전세계의 신화에 편재하고, 소의 머리를 한 괴물같은 존재가 전세계의 신화에 편재한다. 게다가 태초의 상태를 혼돈이라 이름붙이고, 혼돈의 죽음 또는 파괴로부터 인간의 시대가 열린다는 발상도 편재한다. 홍수로 인간의 시대가 재편된다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다만 얼마나 투쟁적이냐, 상생적이냐가 다른 것 같다.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중국의 신화(넓게 동양의 신화)가 서구의 신화에 비해 투쟁보다는 상생의 발상을 취하고 있고 창조보다는 자연발생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우리신화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부분이라 참으로 공감한다. 신화학자이며,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풍부한 지식과 상상력을 쉽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는 교수님들이 쓴 책은 재미없다고 멀리 하는 분위기였는데, 요즘 교수님들은 참 글도 잘 쓰신다. 2권도 사고 싶게 만든다. |
|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이 정신과 현실세계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의 가치회복에 대한 당위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면,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는 신화의 서구적, 남성적 이미지를 걷어내기 위한 반동성을 보여준다. 사실 그렇다. 이윤기씨의 부단한 노력때문은 아니지만, 신화의 매혹적인 상상은 반쪽짜리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신화의 대명사가 되어 우리 삶에 녹아 있는 동양 신화의 흔적을 서서히 지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신화의 부흥이 또 다른 신화의 죽음, 상상력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니 뱀이 뱀의 꼬리를 삼키는 형상이 연상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런 대중적인 신화서적은 신선한 재미를 한껏 안겨준다. 아틀라스가 서구 세계를 떠받치고 있었다면, 동양 세계를 짊어진 반고는 죽어서 피와 살과 뼈로 세상이 창조되었다.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서양 세상과 비교되게 동양은 저절로 이루어진 세상(자연)이다. 소머리를 한 미노타우르스가 사람을 잡아 먹는 괴물이었다면, 소머리를 한 농경신 염제는 인류에게 풍요를 안겨준다. 인어 아가씨의 몸매를 상상하다가 인어 아저씨 ‘저인’을 보고 있자니 야릇한 당혹감이 밀려 온다. 거인족과 올림푸스의 전쟁보다 더 화끈하게 펼쳐지는 동양 신들의 패권 다툼은 인간 세계만큼이나 치열하고 냉정하다. 죽어도 굴복은 없는 치우, 머리가 잘려서도 투지만은 살아있는 형천 등은 기괴한 느낌마저도 들게 한다. 이렇듯 창조 신화, 전쟁 신화, 영웅 신화, 시조 신화 등 풍부한 이야기들은 전설, 전래 동화만큼이나 흥미롭고도 다채롭다. 비교대상이 있다는 것, 그리스 로마신화와의 차이점과 유사점이 한 눈에 들어 온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외에도 여신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채롭다. 창조와 치유의 여신 여와, 죽음과 생명의 여신 서왕모, 무산신녀, 그리고 유명한 견우 부인 직녀 등을 다루면서 여신의 지위가 유교 문화에 의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역사학적,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 또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추녀가 미녀로, 중심적인 신에서 남신의 주변으로 서서히 밀려나는 것을 보면은 ‘신화를 읽는 것은 인간을 읽는 것’임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시조 신화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치적인 이유로 승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인물과 신의 성향이 변형되고 있다는 점은 신화 또한 역사의 산물이란 것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이미지 자료의 다양함과 풍성함, 화려함에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전 이미지에서부터 현대 미술까지 책 곳곳에 배치하였다. 상상의 이미지를 좀 더 시각화하고, 역사적으로 접근하기에 책의 대중성을 가지면서 양서로써의 위신을 유지하는 등 편집, 기획에서 많은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