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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 사랑하는 부모님을 떠나보낸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을지 몰라도 하늘로 갈 때는 순서가 없다고.. 삶과 죽음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요즈음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아니 죽음과 관련된 책을 제법 많이 읽고 있다. 삶과 죽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지 했었는데.. 요즈음은 생각이 변했다.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게 살아줘야지 내 아이들에게 혹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죽기 전 10년을 아프고 간다는 통계가 있는데, 내가 더 나이 먹었을 때엔 의료기술이 발달되어 더 오래 살게 되지 않을까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은 책을 만났다. 처음엔 소설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만화다. 죽음을 이야기 하지만 슬프지 않고, 담백하게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을 말한다. 여고 동창생들이 은사의 장례식에서 만나게 된다. 카스미, 하루카, 사요. 카스미는 40대 여성으로 결혼하지 않았지만 부모로부터 독립해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근처 병원에 입원해 있다. 집과 병원을 오가며 할아버지의 상태를 들어야 보던 엄마는 허리 통증으로 병원에 자주 가지 못한다. 대신 카스미가 할아버지의 병원에 가면서 대화를 시작한다. 그 대화 속에서 카스미는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부모의 노환과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데...
맞벌이는 하는 하루카 부부는 다리가 불편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던 하루카는 시어머니의 행동에서 치매기를 발견하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다들 괜찮겠지 생각하던 남편의 가족들.. 하루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혼 후 싱글 맘이 되어 아들과 함께 사는 사요. 아버지의 암 선고로 충격을 받지만, 아버지는 평소와 똑같이 술을 마신다. 황혼 이혼을 한 아버지의 암 선고를 엄마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하는 사요는 암임에도 술을 마시는 아버지와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중 3인 사요의 아들은 그런 부녀 사이에서 의젓한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되는데... 내가 부모를 모시거나 간병하는 것은 힘들어도 내 자식은 나를 간병해주고 함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이 마음을 이 책에서는 적나라하게 말한다. 자신이 모실 수 없으니 병원에 있는 게 편하다... 정말이지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나는 시어머니와 살고 있고, 그 모습을 내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가끔 아이들은 질문한다. ‘왜 엄마는 아빠 엄마랑 같이 살아요? 엄마의 엄마랑 살지 않고요?’ 혹은 ‘왜 제사 때엔 엄마만 일해요? 고모들은 놀고 있는데..’ 그래서 나는 가끔 남편에게 말한다. ‘당신이 효자 소리를 듣는 9할은 당신의 아내, 바로 며느리 때문이라고.’ 예전에 뭐라고 하더니 요즈음은 그 말 자체를 인정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회사에 가면 그만이지만 나는 어머님을 봐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나마 울 어머님은 아직 건강하시고, 심지어 일도 하시기에 특별한 트러블이나 의견 충돌은 없다. 간혹 손자 사랑이나 당신 아들 딸 사랑이 너무 깊어 며느리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지만 그 정도야 뭐.. 다른 집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생각해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어른이 만약 아프시다고 하면... 분명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폭풍 전야의 잔잔한 바다라면, 그때는 폭풍우가 쏟아지는 태풍이 되겠지... 나는 죽음에 초월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그럴 수 있을지.. 웰 다잉이라고 해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획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죽는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상처가 덜 할 테니까. 나는 남겨줄 유산도 없고, 돈도 없기에 죽으면서 그걸 모두 사용하고 싶다. 내 아이들에게 부담 주지 않게 거동하지 못할 때엔 좋은 시설 알아봐 들어가고 싶기도 하다. 결혼하고 얼마 후 내가 아는 친척 집에서도 거동하기 힘든 어르신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서로 모시지 않으려 하고, 요양병원에 간 어른의 비용 문제로 말다툼도 있었다. 요양 병원에 계신 어른은 자식들만 보면 나 좀 집으로 데려가라고 우셨으니... 서로에게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는지... 그리고 이후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난 뒤 장수 했으니 호상이라면 좋아했었다. 돈 없이 그것도 건강하지 못한 상태의 장수는 그래서 지켜보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죽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못하기에 나 역시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 지나치게 내 자식에게 의지 하지 않으려 하고 서운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 아이들은 어른 세대보다 잘 살지 못할 확률이 더 많고, 세금은 더 내야 한다고 한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지 않게 나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싶다. 어렵고 힘든 죽음의 준비.. 어떤 게 정답인지 모르겠다. 가시는 분께 상처 드리고 싶지 않고 그 일로 내 마음에 응어리가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죽음의 준비.. 그리고 마음 가짐. 참 어려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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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어머님이 영면하셨다는 문자를 받고 문상을 다녀오는 길 마음이 착잡해진다. 여든 다섯의 고령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가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은 있어도 웬만한 일은 혼자서 해결이 가능하지만 점점 할 수 없다며 자식들에게 기대는 모습은 가슴에 큰 짐을 지운다. 효자인 아들덕분에 지금까지 잘 버텨왔지만 앞으로의 일이 염려스러운 것은 시댁에 들를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쇠진해져가는 모습을 목도해서이다. 평균 연령 이상을 살았어도 그동안 진 병원 신세를 벗어나 집에서 편안히 인생막음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세우고 살지만 뜻대로 죽음을 맞을 수는 없으니 죽는 복을 잘 타고 나야 한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예순 다섯의 나이에 돌아가신 은사님을 애도하는 공간에서 고등학교 친구- 혼자 사는 카스미, 맞벌이 부부 하루카, 싱글 맘 사요-의 이야기 속에 인생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중년임을 알아차리게 한다. 쓰러진 뒤 반신불수로 병원에서 투병 중인 할아버지를 면회 가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며 대화하는 손녀의 정성은 가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한 게 아니라 심신이 쇠약한 할아버지의 고통을 완화해주는 촉매로 자리한다. 요통을 앓고 있는 엄마를 대신해 병문안을 자주 오는 손녀 카스미에게 할아버지는 새로운 도전을 말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생전에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 수는 없지만 생을 마감할 때 애도하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라 여겨진다.
“저 여편네가 누구야? 어제도 우리 집에 오더니 오늘도 왔네. 누구냐고?” 라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고 소리치던 친구의 엄마를 보면서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 밥상을 차려주던 엄마였는데 알츠하이머 환자로 식구들 삶의 균형을 깨고 15년 남짓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기억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을 지켜봤던 이의 눈에 비친 시어머니의 치매 간병은 녹록치 않아 보였다. 치매 증상이 의심스러워 며칠 입원해 정밀 진단을 받자는 말에 집을 비울 수 없다고 맞서던 어머니는 고집을 꺾고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야 했다. 맞벌이 부부로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도 하루카 부부는 틈틈이 간병인을 도우며 어머니를 간병했다. 며느리는 어머니의 과거 일화를 들어줌으로써 인지 능력 퇴화를 지연하는데 정성을 기울였다. 비록 치매에 걸려 인지능력이 떨어져 서로를 몰라보더라도 헌신적인 사랑으로 자식들을 길러 준 어머니를 이제는 자식들이 보호해 주는 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사는 동안 무탈하게 살수 있다면 좋으련만 인생은 정한 이치대로 굴러가지 않음을 절감하게 된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쓰러져 사경을 헤매었다가 장거리 통원 치료 끝에 건강을 회복하고 또 다시 건강 악화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예전보다는 나은 편이라 그나마 위안을 삼으며 지내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아무런 증상을 자각하지도 못하였는데 대장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암 환자가 감기 환자만큼이나 많아져서인지 암 발병을 숨기지 않는 의사의 태도에 적이 놀라면서도 현실을 직시하고 남은 삶을 정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요의 아버지를 보면서 예견된 죽음을 어떻게 수용하여야 할 것인지 생각게 한다. 아내와 황혼 이혼을 하고 고독한 일상을 보냈을 아버지였지만 담담히 신변을 정리하여 가는 모습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한 인간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새침하게 흐린 하늘에서는 금세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데 또 다른 비보가 날아든다. 마늘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친구의 아버지가 잠자리에 들었다 깨어나지 못하고 이승을 뜨고 말았다는 소식은 평안한 죽음을 맞는 천복을 타고 났다고 말하면서 식구들 고생 안 시키고 서둘러 세상을 뜬 아버님을 애도하였다. 호흡기에 의존한 연명치료보다는 남은 시간 오롯한 정신으로 삶을 정리하고 남은 식구들과 마지막 이야기를 전하며 소통하는 시간은 가슴을 울렸지만 할 말을 전할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하는 사요의 아버지가 남긴 네 식구의 사진은 이혼한 아내와도 화해하고 조금은 홀가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生者必滅 去者必返 會者定離(생자필멸 거자필반 회자정리) -산 것은 반드시 죽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 라는 구절의 평범한 이치를 간과한 채 영생할 것처럼 지내 온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아픈 데가 자꾸만 늘어나고 눈이 침침하여 책을 오래 볼 수 없는 나이에 이르러 흐른 세월을 거스를 수 없음을 절감한다. 지금 당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은 그동안 지은 업력의 대가라고 여기며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일련의 행동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 일은 잊지 않고 은혜 입은 것만 떠올리며 보은하려는 마음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작은 손길을 더하는 삶으로 넉넉한 50대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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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을 했다. 엄마 건강검진 할 일이 생겨서 병원에 갔는데, 보호자란에 서명을 하라는 거였다. 단순 검사였지만, MRI를 찍는데 보호자 서명을 받아서 내심 당황했었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됐던 경험이 없기도 했지만 그제서야 내가 엄마의 보호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 우습기만 했다. 못난 딸이구나 자책이 들어서 찬찬히 엄마를 보니,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새 겉으로도 많이 늙어 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서, 화장실에서 가서 엄마 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엄마의 증상이 예상했던 큰 병은 아니라, 한시름 덜었지만 그 뒤부터는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반대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피하고 싶기도 했다.눈물부터 쏟아질 것 같고, 생각조차 하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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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 키울 때, 부모 마음에 비하면 1/100도 안되겠지만,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찮은 기색이 보이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우리 부모님을 어떻게 할까요'는 고령의 부모, 몸이 불편한 부모를 둔 자식이라면 입밖으로 꺼내기는 힘들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부모의 '노환'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 만화인데, 대체적으로는 부모의 노환에 대처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우리하고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에서는 부모가 병석에 눕게 되면 아무래도 이런 저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데, 경제적인 부담부터 시작해서 간병에서부터 보호까지, 다 자녀의 관심과 손길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와 혹은 형제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우리 부모님을 어떻게 할까요?'는 부모의 노환과 죽음을 앞두고 부딪치게 되는 문제들을 따뜻하고 밝게 담고 있었다. 심각한 문제인데도 따뜻하게 풀어가서 무겁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더러 웃기도 하고, 이렇게만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산을 받치고 있는 딸, 그 딸의 다른 한 손을 잡고 있는 엄마, 모녀가 그려진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그 부드럽고 선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부모 세대는 노령의 할아버지, 치매의 시어머니, 암에 걸린 아버지, 그리고 싱글인 딸, 이혼한 딸, 아들 내외.. 한 가족이 아니고 각기 다른 가족들 이야기인데, 가족 구성원들이 어떻게 환자가 된 부모, 조부모들을 대하는지, 또 그 부모들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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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여유있게 병환에 대처하고, 죽음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일단 당사자들의 마음이 가장 중요할텐데..아무리 가족이라도 암에 걸려 시한부를 선고받았다면 그 앞에서 죽음에 관한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지가 않을텐데. 아무리 죽음을 준비하고 마음으로 대비한다고 해도..막상 현실로 닥치면 갈피를 잡지 못하지 않을까. 간병 문제도 그렇고. 밝고 따뜻하게 다루고 있는데도 나는 자꾸만 현실적인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오빠가 있지만 아무래도 엄마는 딸인 내가 편하겠지. 주로 내가 간병할 작심하고 있지만, 일단 나부터 여러 준비를 하고 여유를 가져야 할텐데. 그래야 만에 하나 엄마에게 일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또 엄마에게도 따뜻하게 대할 수 있을텐데 하는 데로 생각이 미쳤다.
이 만화에서처럼 장례준비를 웃으면서 준비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당사자들에게도 죽음을 앞두고 하고 싶었던 일, 마무리해야 할일 뒷처리 잘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게 그게 가능할까. 이 만화 속 내용을 자꾸 내 현실 속 엄마와 나에 대입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엄마도 기력이 떨어지는 걸 체감하고 있는지 전보다 부쩍 나한테 심리적으로 의지하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그 어느때보다 엄마하고 가까워지고 서로 마음 터놓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엄마같고 엄마가 딸같아 졌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밥 안 먹으려고 하시면 막 잔소리하게 되고, 약 제때 안 드시면 또 한소리하게 되고..
지금의 나로서는 엄마가 하루라도 더 길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생을 누리셨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기도를 바치는 게 고작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걸까? 닥치면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그래도 이 밝고 따뜻한 '우리 부모를 어떻게 할까요?'를 읽으면서 조금은 걱정을 덜고, 밝은 쪽으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위로가 됐고, 바람이 됐다.
생각해보니 편찮으시고, 죽음에 관한 염려를 하느라 살아있는 날들에 대한 생각은 깜빡 한 것 같다. 여생을 챙기는 게 더 의미있는 일일텐데. 내가 엄마로 행복했던만큼 엄마가 나로 우리 가족으로 행복하게 사시기를...건강하시기를. 그리고 남은 날들동안 친구 분들과 즐거운 만남도 자주 갖고, 좋은 것 맛난 것 많이 많이 보고 드시게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요즘은 엄마하고 대화를 많이 나누고, 외식도 자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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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가 있다. 혼자 사는 카스미,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는 하루키, 이혼 후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와 황혼이혼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 싱글맘 사요.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사십대의 나이로 노년을 앞두고 있고 각자 늙은 부모님의 문제를 겪는다. 혼자 사는 카스미 이야기 고령으로 아픈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입원해 계신다. 부모님이 모시고 있었지만 엄마의 건강이 안좋아지자 요양원으로 모셨다. 언니는 결혼해서 다른 도시에서 사는 이유로 자주 찾아오지 못하고 가까이에 사는 카스미가 엄마를 거들게 된다. 평소 할아버지에게 잘 가보지 않았는데 엄마대신 할아버지를 찾아가다보니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와 아빠의 어린시절이나 부모님이 처음 집에 인사왔던 일들처럼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서 몰랐던 가족의 시간을 알게 되면서 한결 할아버지와 가까워진다. 엄마는 요양원에 할아버지의 빨래를 가질러 들릴때마다 조심성없는 모습을 보이기도하고 할아버지나 직원에 대한 불평을 함부로 늘어놓고, 아빠는 할아버지에 대해 곤란할때마다 회피한다. 딱히 별다른 모습들이 아니라 소소하게 무척이나 친숙한 모습들이다. 할아버지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카스미가 그런 엄마에게 엄마도 요양원으로 모시겠다고 엄포 비슷한 말을 하면 무척이나 서운해 한다. 멀리 사는 언니는 가까이에 산다는 이유로 카스미에게 엄마에게 대한 책임을 미루고 서운한 말을 곧잘 내뱉는다. 엄마나 언니는 카스미에게 의지하면서도 결혼에 대한 부담감을 주는 이중적 모습을 보인다. 올케언니의 할머니는 올해 100세다. 그런데 아직도 정정하시단다. 조카가 태어나자 조카를 안고 찍으신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사진으로만 봐도 상당히 정정하셨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하셔서 올케언니의 어머니께서 보살피셨는데 사돈어른도 나이도 나이인데다 힘에 부쳐서 재작년에 요양원으로 모신 것으로 안다. 올케언니를 통해 요양원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족들이 자주 찾는 사람과 아닌 사람에 대한 요양원직원들의 태도다 다르단다. 올케언니는 요양원시설에 대해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편이고 엄마는 평소 늙어서 자식에게 짐되긴 싫다하시면서도 그런 면은 좀 못마땅하신가보다. 요양원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사실 여전히 좀 그런게 사실이다. 가족만 못하다는 인식은 물론이고 부모님에 대한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다. 맞벌이 부부 하루키의 이야기 하루키의 시어머니의 건강이 점점 안좋아지더니 치매증세가 찾아온다. 남편은 시어머니가 이상하다는 하루키의 말을 번번히 무시한다. 단순히 건망증이라고 치부하고 시간을 내서 함께 시어머니를 돌보기를 바라는 하루키의 바람도 미룬다. 마침내 어머니의 증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안 남편은 강한 성격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여름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셔서 올케언니가 조카와 우리집에 와서 병간호를 번갈아해주었다. 오빠가 결혼했을때 올케언니를 보고 든 생각중에 하나가 평생 남이었던 사이였는데 결혼으로 인해 누군가의 부모에 대한 책임을 갑자기 함께 떠안게 되는 관계였다. 유대감이란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이는 것이니만큼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란 말이 그래서 생겨나는 거라 생각이 들었었는데 엄마가 수술때문에 입원하면서 다시 한번 그 생각이 떠올랐다. 올케언니는 밤에 언니가 있겠다고 했지만 우선적으로 내 엄만데 올케언니가 나보다는 좀 덜 힘들어야한다는 생각이었다. 수술 후 엄마는 상태가 좋아지기까지 내내 나를 엄청나게 힘들게 했다. 수시로 깨어 있어야했고 항생제를 맞는 내내 엄마는 가끔 제정신이 아닌 사람같았다. 내게 상처주는 말이나 행동을 서슴없이 했다. 엄마가 통증때문에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마음에 남아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멀쩡할때 하는 서운한 말들이 평소보다 마음에 사무쳤다. 팔꿈치가 골절되서 깁스를 푼지 얼마안되서 낮에 올케언니가 오면 내가 다니는 병원에 들러 치료받고 집에 가서 조카를 봤다. 낮에 너무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든 사이에 조카가 내게 뽀뽀해준 기억이 있다. 아이에게 받는 위안이란 것에 대한 생각과 함께 함께 하는 누군가없이 노년을 보낸다는 것의 쓸쓸함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뿐, 심신이 너무 지쳐있는 상태에서는 거의 무감각한 느낌으로 생각뿐인지라 차라리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너무 무거운 생각이라 애써 무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싱글맘 사요의 이야기 사요의 아버지가 간암에 걸렸다. 남은 시간은 6개월 남짓한 시간뿐. 하지만 카스미나 하루키의 이야기들에 비해 한결 더 밝고 가볍게 다가온다. 사요의 아버지가 여전히 대책없을 정도로 술을 밝히고 병에 대해 가벼운 태도를 보인 때문이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사요네 가족의 모습이 뭉클하다. 지난 겨울, 엄마한테 뇌졸증 증세가 왔다. 고혈압에 당뇨, 걷기힘들정도로 아픈 무릎과 자궁문제, 눈(오른쪽 눈은 거의 안보이신다)과 그리고 방광등. 모진 세월을 몸으로 버텨낸 후유증이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모습을 본다. 젊었을때 엄마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알기에 그런 엄마가 늘 안쓰럽다. 겨울이라 눈이 많이 와서 길이 언 탓에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일이 잦았다. 미끄러운 길에서 벗어나면 언제 내가 필요했냐는듯이 내 팔을 팩 뿌리치고-그런 자각이 없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이다-가버리곤 해서 내가 가끔 가벼운 마음으로 한 소리하곤 했지만 나이 들어서라도 엄마 손을 잡는 일이 좋았다. 여러가지 반복되는 검사와 진료로 엄마의 보호자로 함께 병원을 찾으면서 좋은 편의를 제공하지 못하는 자식이라 죄송한 마음과 함께 엄마 나이가 되었을때의 나를 생각하면 엄마문제와는 또 다른 착잡함이 생겨나기도 했다. 여름에 엄마가 수술때문에 입원했을때 솔직히 여러가지 걱정이 되었었는데 오빠와 올케언니가 있어서 의지가 많이 되었다. 그래도 '내 엄마'이기에 미루고 싶은 마음보다는 내가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이 우선시된다. 퇴원후 걱정했던 당뇨수치는 수술전보다 잘 관리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회복이 더디다보니 엄마의 몸은 예전같지 않다. 아마 회복된다해도 예전같진 않으실 게 틀림없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중 가장 큰 건, 아무리 옆에 사람이 챙겨준다고해도 본인 스스로가 달라져야하는데 엄마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거다. 아니 달라지신게 있긴하다. 짜증과 서러움과 한탄이 많아지셨다. 화도 많이 내신다. 가족중에 당뇨를 앓는 환자가 있으면 온 가족이 당뇨환자에 맞춰야 한다고 하는데 엄마는 여전히 아버지를 세심하게도 챙기려드시고 아버지는 여전히 그걸 당연하게 여기신다. 자신에 대한 서러움만 늘고 달라진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가 솔직히 버겁다. 내게는 어려서 엄마가 할머니를 비롯해서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들께, 그리고 어른들께 잘하신 모습들이 깊이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나도 당연히 엄마가 건강이 안좋아졌을때 내가 보살펴드려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지난 여름이후로 엄마로 인해 또 여전히 엄마의 건강에 대해서는 말로만 거드는 아버지로 인해 몸이 힘든 것보다 감정적으로 힘든 일을 많이 겪으면서 부모님을 보살펴드리는 방법에 대해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을 어떻게 할까요?>는 우리에게도 밀접한 소소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남의 일만 같지가 않다. 일본의 경우 요양시나 가정방문 상담사같은 제도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아마 여러가지 제도가 있지만 몰라서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않을까 하는 싶기도 하다. 흔히 가정방문하는 상담사를 떠올리면 형편이 어려운 집을 방문하는 복지사나 자원봉사자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하루키처럼 환자의 가족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어주는 봉사자제도나, 사요의 경우처럼 죽음을 앞둔 환자가 막상 가족에겐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을 들어준다거나 심리상태를 보살펴주는 제도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하루키처럼 자원봉사로 이야기를 들어주러 온 사람이 되려 자신의 말을 늘어놓는다거나 그 사람이 어디가서 말을 함부로 할까봐 걱정되서 막상 하지 못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않아 어려울 것도 같다. 무거운 주제의 내용이지만 둥글고 귀여운 인물의 생김새와 따듯한 질감의 이야기들이어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부모님과 나, 가족에 대해서 공감하고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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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 부모님을 어떻게 하라니. 무슨 부모님이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하란 말일까하는 생각에 괜히 욱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되어 가는 부모님. 아마도 나이 든 부모님이 계신 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아이처럼 하나하나 다 신경이 쓰이고 어디 가서 눈치나 받지 않을까, 괜한 사기에 말리지나 않을까, 길 몰라 헤매이는 건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들기도 한다. 차라리 결혼해서 따로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가족을 신경쓰고 자신의 아이들을 신경 쓰느라 오히려 부모님 생각은 덜할지도 모르겠다. 같이 사는 나로써는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딸이라는 이유로 다 그냥 넘어가고 만다. '어떻게 할까요'가 아닌 '어떻게 할수 없는 것'이 부모라는 존재이다.
이 책은 세명의 주인공 시점에서 부모님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나처럼 혼자이면서 부모님 집 아주 가까운 곳에 사는 카스미. 그녀에게는 결혼한 언니가 있고 나에게는 결혼한 동생이 있다. 언니는 가끔 찾아오고 내 동생도 가끔 찾아오고 지금은 외국에 있어 찾아오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가장 공감이 되었던 부분이 많았던 듯 하다. 물론 카스미와는 다르게 나는 할아버지가 계시지도 않고 할아버지와 친하지도 않아서 병원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던 적도 없다. 우리 할아버지는 얘기를 나눌 여가도 없이 병원에 가시자마자 돌아가셨지만. 하지만 부모님이 나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카스미가 말하는 것이라던지 또는 생각하는 것은 아주 무릎을 철썩 치며 '동감' 이라고 외치는 바이다.
때로는 엄마랑 투탁거리기도 하지만 엄마가 작아 보이는 느낌이 든달까. 나이가 많은 우리 부모님은 아직도 일을 하신다. 커다란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현직에 계시니 남들보다는 조금 더 젊게 사시는 느낌이랄까. 아침이면 출근을 하시고 저녁이면 퇴근을 하시고 지극히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두분 다 건강하시다. 여기저기 잔 고장은 많고 매일 약을 드시지만 적어도 이리저리 다니시는데 지장은 없고 자주자주 깜빡깜빡 하시지만 아직은 기억력이 있으시니 그것마저도 다행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나는 아주 좋은 부모님을 만난 것임에 틀림없다. 부디 이대로 한 이삼십년만 유지되길 바라는 것은 아마도 나의 아주 큰 기대겠지만.
맞벌이 부부의 치매 할머니 모시기라던가 싱글맘의 혼자 된 아버지 모시기는 나의 상황과는 많이 달라서 크게 공감은 할수 없지만 채미 환자가 계속 늘어나는 시점에 이런 가족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을 것 같아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되는 부분이다.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해서 애잔하지마는 않다. 그렇다고 무진장 감동 모드도 아니다.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우리네 실상을 가장 잘 그려내고 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어느 누구나 부모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 한번쯤은 보고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수도 있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하나 더 번역자가 누구인지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김난주 작가. 그녀의 책을 좋아한다. 분명 일본어로 적혔던 글을 한국말로 번역해 놓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번역을 한 책들은 꼭 한국 사람이 지은 책 마냥 자연스럽게 읽힌다. 어디 군더더기 하나 없이 평온하다. 그래서 김난주 작가 번역의 에쿠니 가오리 글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번역한 책을 많이 읽었지만 카툰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번역한 카툰이라.약간의 여성성이 드러나지만 작가의 느낌일수도 있고 등장인물이 모두다 여자이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겠다. 믿고 보는 번역자의 글. 새삼 글들이 다시 읽히고 있다. 하나하나의 글들이, 활자들이 다시금 눈에 마음에 새겨지는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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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면에서 공감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저 또한 어릴 적 그랬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부모님의 부모라는 생각도 든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도 참 외롭게 사셨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무튼 이 책은 30대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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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은 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테네시 왈츠, 여러가지로 문제는 많지만 아무튼 오늘은 당신이 웃는 얼굴이어서 참 좋다.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시어머니가 왈츠 음악을 듣고는 춤을 추자고 한다. 며느리와 남편, 시어머니가 둥글게 서서 서로의 손을 잡고 즐겁게 춤을 춘다.
읽으면서 계속 이 생각만 했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딸이나 며느리 입장만이 아니라 그 당사자라면 잘 받아들이고 잘 정리할 수 있을까.
세 편의 이야기 모두 심각한 상황인데 의외로 밝게 지낸다. 실제로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닥치면 오히려 담담해 지려나.
표정이 귀엽고, 그림이 아주 이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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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른다. 나이를 먹는다. 마냥 젊음을 유지할 것만같던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을 느끼고, 어느새 엄마는 할머니가 되어가는 것을 본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고통,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조금만 걱정하다가도 괜히 우울해지고 현실이 힘들어지는 법. 우리는 가족 중 치매환자 혹은 암환자가 있을 때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상도 하기 싫어진다. 누군가에게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어있는데도, 나에게 직접 닥쳐온 현실이 아니면 외면하게 된다.
무거운 현실이지만, 만화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는 데에 부담이 없는 책이 있다. 『우리 부모님을 어떻게 할까요?』는 따뜻한 그림체와 코믹 에세이로 풀어내어 표지에 있는 글처럼 '현실적이고 따뜻하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아! 내 이야기다!' 혹은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그런 책이다.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고, 그렇다고 유쾌한 현실은 아니니, 이것도 살아가는 소리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책에는 혼자 사는 카스미의 이야기, 맞벌이 부부 하루카의 이야기, 싱글맘 사요의 이야기, 이렇게 총 세 이야기가 담겨있다. 보호받으며 자라는 존재에서 어느덧 보호해야하는 위치로 뒤바뀜된 현실을 보게 된다. 타인은 알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이 짊어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무겁게만 볼 것은 아닌 현실이다.
저자 후기를 보면 '부모나 가족을 간병하고 있다', '간병하다 내가 병이 들고 말았다' 주위에서 그런 얘기가 들려오는 나이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작품을 구상할 때 간병 경험자인 저자의 어머지가 대량의 간병 일기를 제공해 주셔서 군데군데 섞었다고 한다.
본인의 가족을 간병한 경험이 있거나 지인의 간병 모습을 보았다면, 이 책의 이야기에 공감도가 클 것이다. 내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고, 누군가의 이야기라 생각되고 그의 심정에 들어가보기도 했다. 나에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세상 살면서 이런 경우가 있을수도 있겠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어른들이 꼭 읽어보아야할 감동 코믹 에세이, 이 가을에 한 번쯤 푹 빠져서 읽어볼만한 만화『우리 부모님을 어떻게 할까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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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착각을 한다. 우리 부모님들이 항상 내 곁에 계실거라는 생각을 한다. 가끔은 못된 말로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 친구들의 부모님 장례식장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 어릴적 친구들의 부모님 같은 경우는 함께 만든 추억이 많다. 그렇기에 그 슬픔이 더 크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 그렇게 장례식장을 다녀오면서 부모님이 살아계실때 잘 해드려야겠다고 생각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면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가 된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지만 엄마 앞에서는 아직도 어린 아이가 되는 것이다.
부모님들의 모습이 한해한해 달라지고 있다. 항상 젊은엄마로 남아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이제 우리 엄마도 할머니가 되어 가고 있다. 건강하게 하루를 지낼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신다. 나이가 드니 마음이 약해지는걸 느낄수 있다. 항상 자식 걱정을 하시는 부모님들. 당신들의 몸이 아프면서도 자식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신이 모든 사람들을 돌볼수 없기에 우리들에게 부모님을 선물로 주셨다는 말이 있다. 그 분들은 언제쯤 자식들보다 당신들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될까. 그런 일이 찾아오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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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님을 어떻게 할까요?>에서는 세 편의 이야기를 만날수 있다. 부모님 집 근처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카스미, 맞벌이를 하고 있는 하루카, 이혼을 하고 중학생 아들, 친정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사요. 세 사람을 통해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부모님들을 만날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처한 현실은 우리의 주변에서도 흔히 볼수있는 일들이다.
카스미의 할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되어 요양병원에서 지낸다. 가족들이 돌보기 힘드니 병원에서 생활을 하며 카스미와 부모님들이 일주일에 한번 정도 찾아간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집에서 모시지 않고 병원에 보냈다고 비난의 말을 할수는 없을 것이다. 무조건 집에서 모신다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실제로 지인도 생업에 종사해야 하기에 어쩔수없이 병원에 모셨다. 사람들은 모시기 싫어 병원으로 모신것은 아닌가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남의 말은 쉽게 할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진심을 우리가 어찌 다 알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우리들 앞에 놓인 문제라면 고민이 될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화로 만나는 이야기들은 슬픈 현실이지만 마냥 슬프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어 우리들로 하여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대부분 부모님을 떠올리고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여유가 없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 다른 일들을 먼저 하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눈을 맞추며 이야기 해주셨다. 우리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가지고 않고 전화통화도 하지 않는 일들이 많다. 지금부터라도 부모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며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겠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