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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쯤 비상 계엄이 선포 되고 하늘에선 군 헬기가 날아다니고, 국회 주변에는 장갑차가 배치되었고 무장한 계엄군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의사당 안으로 진입했다. 담장을 넘은 국회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의사당 안으로 들어 가고 시민들이 몰려가 군 경찰을 온 몸으로 막는 사이 자정을 넘긴 시각인 12월 4일 오전 1시쯤 의원 190명의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불안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은 술톤 얼굴의 내란수괴범이 오전 4시27분쯤 비상계엄 해제 선언을 한 직후 촛불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갔다. 탄핵안 1차 표결이 이뤄진 지난 12월 7일 국회 앞에서 1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탄핵안 2차 표결이 진행된 지난 12월 14일 200만명으로 불어났다. 12월 14일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만 알았던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온 몸으로 막아 내어 지켜냈고, 이 모든 과정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국격은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졌고 수십조에 달하는 국가 경제적 가치는 하루 아침에 모래가루가 되어 버렸다. 자격이 없는 권력자의 잘못된 선택과 탐욕으로 국가 전체가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에 한국 작가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단 한번 울려보지 못한 ‘한국어’로 연설을 했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 중에서
전 세계가 한강 작가의 작품을 낭독 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 나라 전체를 비상 계엄이라는 수렁 속으로 끌고 간 내란의 주역들의 실체가 사주, 역설, 무속과 관련 인물들이라는 속보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와 기본 정치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부재한 권력자가 비 상시적이고 비 이성적인 무속 비선 라인을 통해 내란을 모의 하고 계엄을 선포 하고 군병력을 통해 주요 인사들을 체포 하고 감금 할 계획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이 시국에 영화도 드라마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다섯 번 째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에서 침묵과 어둠 속에서, 말을 잃은 여자가 손톱을 바싹 깎은 손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동안 영원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보여준다.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은 어디일까? 그 연약한 부분은 각자 만이 안고 있는 지난 시절의 상처, 사고로 인한 것 일 수도 있고 기억의 저 너머 고통의 한 순간 일 수도 있다. 한강 작가의 이야기는 모든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하고 용서 해야 우리는 마침내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세상에 고전이라 일컫는 세기의 소설들은 '실패자의 기록물'이다. 한강 작가에 앞서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비롯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까지 인생에 좌절하고 실패 하고 사랑을 잃고 슬퍼 하며 불행과 불운의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기의 작품들을 단순히 실패자의 기록물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거친 파도에 맞서 낚시 줄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의 삶이 형편 없다 할 수 없고 어머니가 죽은 날 뜨거운 태양 빛 때문에 아랍인을 총을 쏴 죽인 남자를 향해 살인자라 비난 할 수 없다. 주인 달링턴 경에 대한 존경을 넘어 맹목적인 헌신을 자처하던 집사 스티븐스는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떠나보내야 했을 정도로 평생 동안 집사 업무에 매달렸지만 결국 주인 달링턴 경이 나치 지지자라는 오명을 쓴 채 사회적으로 추락하면서 그의 경력과 인생에도 금이 가 버린다. 역사는 승리자의 말과 행동 그 결과만 기록 하지만 소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도 뜻하는 데로 생이 흘러 가지 않는 실패의 여정을 보여 준다. 2024년을 열흘 정도 앞두고 책장에 꽂아 두었던 책을 꺼내 읽었다. 첼로의 장례식. 한 무더기 국화꽃 사이 그녀의 영정 사진은 흐릿해서 더욱 애련했다. 교통사고 였다고, 그녀 아버지의 퀭한 눈은 허망했다. 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장례식장을 지키던 너는 꼿꼿했다. 나를 바라보던 너의 서늘한 눈빛은 얼음꽃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삐죽 고개 들던 악의는 눈물로 덮혔다. -이선영의 <그물을 거두는 시간> 중에서 오랫동안 불화를 겪다 이혼 후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집필하는 고스트라이터 생계를 꾸려가고 있던 최윤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이모 ‘선임’으로부터 자서전 집필 의뢰를 받는다. 조카 윤지는 이모의 자서전을 집필 하기 위해 지난 과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이모 선임이 결혼 날짜를 잡은 아들에게 초대 받지 못하는 신세라는 것을 알게 되고 모자간의 화해를 도모하지만 뜻밖에도 이모 가족에게 깊게 패인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과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이모의 과거를 알게 되는 동안 30여 년 전 죽은 고등학교 동창생의 유품 정리사라는 남자가 찾아와 윤지가 애써 지워버렸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송두리째 유린 당한 듯 성장의 순간 순간을 녹슬게 했던 그 일은 소녀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아니, 상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의 상처가 아니었다. 소녀가 이성이 아닌 동성을 향해 품었던 설렘과 그리움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솟구친 질투가 불러온 악의였다. 언제나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강탈 당했던 이모 선임은 일찍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달았지만 사회적 시선과 집안의 강요로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고 불굴의 의지로 노력해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남편과 아들에게 현금 인출기 취급을 받을 뿐 아내 어머니라는 굴레에 갇혀 버린다.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환영받지 못한 시스템이었어. 인간이 인간 자체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거스를 수 없는 거야. 그런데 그것과 대치 되는 상황에 직면했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던 거지.” 조카 선임은 가족들에게 외면 당해 쓸쓸하면서 고독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모 선임의 삶을 기록해나가는 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된다. 미성숙 했던 청춘 시절의 첫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가던 윤지는 드문 드문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을 짜 맞춰나가던 중 자신 안에 움트고 있었던 악의 때문에 평생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에 의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죄책감에 사로 잡힌다. 이모 선임은 자서전 집필에 필요한 구술을 전부 하고 나서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이제 너답게 살아. 이제 너를 그만 감추고 세상으로 나와. 숨기려다가 나처럼 애먼 사람 다치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 이모 선임은 자서전 출간을 통해 지난 시절 사랑을 품었던 미란에게 참회를 하자 조카 윤지는 자신 때문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선재를 찾아가 사과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스무 살, 자신의 손아귀에 사랑을 쥐고 싶었던 윤지는 수진을 걱정하는 선재를 미워 했고 K를 사랑하느라 선재를 외롭게 하는 수진을 증오 해서 희대의 악녀인 수진의 인생을 파멸 시키고 싶어 했다. 결국 윤지는 학생 운동으로 수배자 명단에 올라가서 형사들에 쫓기고 있었던 선재와 수진의 은신한 거처를 밀고 해버리고 두 사람의 삶은 모두 나락으로 떨어져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어 버린다. 내면은 항상 청춘의 시간을 살고 있었던 윤지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선재에게 사과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지난 시절 그가 학교 도서관에서 읽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책을 떠올린다. 늙어가는 대가로 얻게 된 젊음의 가면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어 늙은 형상으로 최후를 맞이 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인 것이다.
비상 계엄을 선포한 내란수괴범은 사흘 만에 국민 앞에 서서 단 2분 사과를 하고 계엄의 정당화에 대한 변명은 20분간 늘어 놓았다. 내란수괴범을 옹호 하는 변호인단들은 헌재에서 살아 돌아 오면 착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궤변을 내뱉고 있다. 2022년 3월,검찰주의자가 아니라 ‘헌법주의자’라며 인간에게 충성 하지 않는 다는 자가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며 국민에게 선서를 하고 나서 '공정과 상식’, ‘통합’을 송두리째 내팽개치며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가 내란을 선동하는 괴물이 되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른다. 아니 알고자 노력할 시간이나 기회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삶에 위기가 닥쳐 왔을 때 뜻하지 않은 것을 겪게 될 때 비로소 '나'라는 인간을 되돌아 보게 된다. 국민에게 권력을 부여 받아 혈세로 먹고 살았던 권력자와 무속 신앙으로 연결된 자칭 영적인 지도자라는 이들로 인해 국가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송두리 째 흔들리는 순간 국민이 목숨을 걸고 거리고 나갔고 촛불을 들었다. 이 세상은 애초에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하고 고통을 당해도 모두 인내 하고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살아 가고 있다. 소설 <그물을 거두는 시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로 인해 인생이 무너져 버린 이들을 직접 찾아가 참회 하고 속죄하는 시간을 갖는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참회>는 범어 크사마(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빌고 뉘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크사마(ksama)가 한국 불교에 뿌리를 내리면서 참혹할 참(慘)와 뉘우칠 회(悔)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미안하고 후회스러워서 용서를 빈다는 의미로 확장 되었다. 기독교에서 < 속죄>는 어떤 죄라도 책임을 지고 신에게 고해 하고 고백해서 속죄를 해서 의롭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내란수괴범은 국민 담화문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라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통한 복귀를 공언 했다. 공수처의 출석 요구를 거부 하고 있는 내란 수괴범은 앞으로도 영원히 국민 앞에 진심으로 참회와 속죄를 하지 않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지켜야 하는 건 법과 질서, 정의 그리고 자유가 지켜 지는 민주주의다. 내란 수괴범의 운명은 헌재 재판소의 시간으로 넘어갔다. 사건번호는 '2024헌나8', 사건명은 '대통령(윤석열) 탄핵'이다. |
![]() 시간이 흐르자 내 기억은 또렷해지는가 하면 흐릿해지는 부분도 생겨났다. 그렇게 강렬했던 무엇을 나는 고3의 힘든 상황으로 묻어버렸다. CF 장면처럼 잘 잡힌 구도의 자전거 모습은 두껍게 장막 쳐진 망각의 뒤안길로 완전히 묻은 채. 동시에 엉키고 꼬이던 내 생각도, 두 사람을 향한 질투의 감정도 완전히 잊었다. 교사에게 들은 희롱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과 함께. 이혼 후 고스트라이터로 일하는 윤지에게 어느 날 이모에게 연락이 온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공했지만 가족들로부터 외면받으며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기록해두고 싶다는 이유였다. 윤지는 이모의 자서전 출간을 준비하며 가족들의 반대와 마주하게 된다. 이모의 아들 형서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엄마를 초대할 생각이 없었고, 별거 후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이모부 역시 괜히 분란을 만들지 말라고 말한다. 이모가 한평생 끌어안고 살았던 이야기는 뭘까. 한편, 윤지에게 한 남자가 '강수진'을 기억하느냐고, 연락이 온다. 그는 30여 년 전 죽은 고등학교 동창생의 유품 정리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왜 이제와서 그녀의 물건을 정리한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수진은 교통사고로 죽었고, 나이가 너무 어려서 충격적이긴 했지만 교통사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운한 사고 중 하나였다. 윤지는 친구와 함께 수진의 장례식에도 갔었지만, 특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했다. 당시 동창 사이에서 수진의 사고에 대한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기에, 윤지는 의식적으로 그녀를 지워버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민혁의 등장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잊고 살았던' 과거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윤지가 애써 지워버려야 했던 과거는 무엇이었을까. 어긋난 기억의 조각을 되찾을 수록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 "기억이 주관적이라는 네 말이 맞다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걸 수도 있어.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이 와전된 걸 수도 있잖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경험했더라도 개인의 감정과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 기억의 실체이다.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어제 본 듯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내가 기억하는 것과 전혀 반대로 상대의 기억에 아로 새겨져 있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의 기억이란 너무도 주관적인 것이어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기억을 대조해보면 그 차이가 꽤나 크다는 점이 놀랍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품 속 윤지는 마치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오랜 세월 자신의 감정과 선재와 수진이라는 동창에 대한 기억을 왜곡시키고, 망각해왔다. 그리고 잊고 싶었던 자신의 순수한 악의와 대면하게 된다. 이모 역시 자서전을 쓰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로 자신이 명백한 악의로 꽃다운 사람을 사지로 몰았던 과거를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자신을 평생 괴롭혀온 죄의식이었다고 말이다.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로 1억원 고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선영 작가의 신작이다. <지문>이라는 스릴러 작품으로 만났었는데, 가정폭력, 아동학대, 대학 내 성폭력 등 가정과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한가운데서 불합리한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인물들의 분투기를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신작에서는 욕망과 집착, 그리고 희생과 용서라는 사랑의 양면성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누군가에게는 희생의 다른 이름이고, 누군가에겐 악의의 가면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작품을 통해 망각의 장막 너머에 존재하는 여러 감정들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이선영 장편소설/ 비채 (펴냄) 목차가 없는 소설을 만났다. '아! 목차가 없구나' 다 읽고서야 알아차렸다. 보통 소설을 펼치면 '작가소개'와 '작가후기'를 먼저 읽는 편이다. 전지적인 관점에서 읽고 보고 느끼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책이든 영화든 최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읽는 독특한 취향 ㅋ 모르는 낯선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고 안전에 대한 염려이기도 한 나의 습성. 프롤로그를 지나 소설의 첫 문장에 가만 시선이 멈춘다. J동, K아파트, 지하 3층, 알파벳과 구체적인 숫자로 시작되는 문장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떠올랐다. 참 신기하기도하지! 숫자를 밝히고 돈 밝히는 사람은 싫어하면서 숫자가 주는 신뢰감에 안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 엄마의 경상도 사투리 덕분인지 초반 몰입감이 좋았다. (선임이를 스님이라고 발음 ㅋㅋㅋㅋㅋ) 이혼 후 전 남편과 비즈니스 관계로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 대필작가 윤지, 어느날 이모의 연락이 온다. 자서전을 쓰고 싶다며.... 이모가 대필작가로 왜 윤지를 골랐는지 소설을 덮으며 알았다. 이모의 자서전을 집필하며 이모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와 윤지 자신의 학창시절 회상하는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로 반복된다. 시간대가 교차되는 장면을 작가는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 읽은 소설이다. 현재 다음에 과거 회상이 이어지는 장면을 포착해내려 노력하며 읽었는데 부러운 재능이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그물'이라는 단어와 '시간'이라는 두 단어를 놓고 독자들은 한참 생각하게된다. 삶에서 그물은 무엇이었는지, 내 삶에 주어진 시간을 나는 어떻게 썼던가를! 아마 소설 제목에 대해 느끼는 바는 독자마다 상당히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물을 거두는 시간이라고 제목을 붙이면 내가 뿌린 결과가 선의로 느껴지는데 나의 좁은 아량으로는 윤지를 용서할 수가 없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물론 사람이 죽을거라는 예상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이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더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소설 속 이모는 전업주부로 살다가 경제적인 이유로 생업에 뛰어들고 일이 잘 풀려서 마침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공한다. 그러나 가족들의 냉대 심지어 없는 사람 취급은 가혹했다. 그림자라는 존재가 누구였는지 궁금했고 처음에는 이모에게 내연남이 있었나 싶었는데 반전이었다. 여전히 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차별을 넘어 가혹한 실정이다. 만약 내 가족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람들은 쿨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막상 내 가족이나 내 일이라면 결코 쉽지 않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에서 묻는다. 지구 평화와 우주 평화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주위의 이웃들, 가난하고 아파하는 지인들은 결코 돌보지 않는다고! 도대체 선의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기 승 전 도스토옙스키 !! 외가 사람들의 반응은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일수도 있다. 외삼촌들의 경우 재정적으로 이모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끝내 유령 취급하는 모습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건을 경험했더라도 개인의 감정과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작용하는 게 기억의 실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P233 인간의 기억은 자기중심적이다. 스스로 방어기제이기도 하지만 왜곡되기 싶다. 남에게 상처를 주었으면서 정작 당사자는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 반대일수도 있고 ^^ 사랑의 다양한 모습들, 너무 당연한 깨달음일까?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할수록 모르는 게 사랑!! 덧. 소설을 읽는내내 한 사람이 떠올랐다. 길고 긴 스토킹..... 받아줄 수 없는 마음은 아마 소설의 수진과 같은 이유였울 것이다. 사랑의 감정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볼 때 그 사랑이 얼마나 비극인지를 우리는 삶에서 깨닫는다. 소설을 덮으며 이렇게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을까? 하필이면 소설 속 인물과 이름이 같은 그 분, 어디선가 잘 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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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거두는시간 #이선영 #비채 #한국소설 #비채서포터즈2기 등장인물의 나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었다. 화자인 윤지의 관점에서 크게 두 개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첫번째 사건은 어느날 그녀를 찾아 온 민혁이라는 청년이 던진 질문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알고 있다. 기억의 배신을. 영화 <올드보이>의 대사. 물에 가라앉는 건 바위나 모래알이나 매한가지다. 윤지는 단짝이었던 수진, 선재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두번째 사건. 윤지는 유명한 화가인 선임 이모에게서 자서전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선임 이모와 이모부의 관계, 그리고 결혼을 앞두고 선임 이모의 결혼식 참석 의사를 물어오는 조카 형서의 민낯까지. 선임 이모가 이모부와 갈라서게 된 계기가 된 그분의 존재부터 선임 이모가 숨겨왔던 죄의식과 남다름을 깨닫게 된 그날의 사건까지. 그리고 결정을 해야 한다. 이모에게 책의 존재가 남들에게 알린다는 의미인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는 극히 개인적인 의미인지 물어야 한다. 연상되는 책이 있었다. 첫번째 사건의 경우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두번째 사건은 백수린 작가님의 <눈부신 안부>. 묘한 변주와 인상적인 인물들. 망각된 기억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질 때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그물을 거두는 시간>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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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퍼진 그물을 켜켜이 거두어내는 시간을 그려본다. 망망대해에 홀로 남아 심해까지 뻗어있는 그물을 직접 거두는 마음에 무어라 이름을 붙여야 할까. 참회와 속죄. 정말 그것으로 충분한가. 어쩌면 그 시간이 멈추지 않게 하는 마음은 참회나 속죄가 아니라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대필 작가 윤지는 어느 날, 이모의 자서전 작업을 맡게 된다. 녹취를 위해 만난 첫날, 윤지는 깨닫는다. 이모가 남기려는 자서전은 유명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차마 모른척할 수 없는, 아무리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막아도 지워지지 않는 시간들에 대한 사죄임을. 이모와 만남을 이어가는 동안 윤지에게 민혁이라는 남자로부터 한 통의 연락이 닿는다. 무심코 전해 들은 선재와 수진이라는 이름. 완전히 일그러지고 구겨졌던 과거가 눈앞에 두서없이 펼쳐지고, 윤지는 깊고 깊은 심연에 가둬두었던 시간들을 마주하고 만다. 전혀 닮은 구석이라곤 찾을 수 없는 이모와 윤지의 생은 꽤 많이 닮았다.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품었고, 잊고 싶을 만큼 나쁜 마음을 품었고, 누군가를 향한 독을 쏟아부었고, 끝내 그것은 스스로를 갉아먹는 고통이 되었다. 그럼에도 생은 그들에게 기회의 손길을 내민다. 참회, 속죄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구겨진 종이를 반듯하게 펼쳐 다시 진심을 써 내려갈 수 있도록. 용기를 빌려준다. 작가는 이 소설을 두고 사랑의 양면성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글쎄, 나는 사랑의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라 믿는다. 잘못을 덮지 않고 꼿꼿하게 기억하고 속죄하는 마음, 스치는 눈길만으로도 소스라치는 떨림, 상대를 위해 기꺼이 그림자 같은 사람이 되는 용기, 나와 같지 않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그늘,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드는 희생, 뜨겁게 타오르는 동시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욕망 ... 그 모든 마음들로부터, 그 모든 사랑으로부터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있었던가. 누구 하나 그런 시절, 그런 기억, 그런 마음 없었던 적 있던가. 단숨에 한 권을 통 째로 읽어 내렸다. 책장을 덮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크게 숨을 푹 내쉬는 것을 느낀다. 공기 중에 흩어지는 내 숨소리가 낯설게 느껴진다. 다양한 사랑들을 그려본다. 각자의 다양성이기도, 내 안에 담겨있는 무수한 다양성이기도 한 그것들을 마음 가득 안아본다. 용기를 거두는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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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정작 진심으로 인정받고 싶은 가족들에게는 부끄럽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이모인 선임과 그녀의 자서전을 쓰게 된 조카 수연. 과거에 거쳐왔던 일들을 쏟아내고 또 풀어내며 선임과 수연 모두 잠들어있던, 혹은 묻어두었던 기억들을 꺼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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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표지를 넘겼는데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장을 덮었다.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으로, 다양한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랑의 양면성을 심도 깊게 고찰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다양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은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하다.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막상 대답을 해보려고 하면 딱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순간 입이 닫혀 버리고 만다. 아가페든 에로스든 단편적으로는 나뉠 수 있겠으나 감정이 흐르는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니 도무지 뚜렷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 <그물을 거두는 시간>에서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탐구한다. 조금씩 변화하는 세상이라지만 아직 부서져야 할 편견은 많고, 편견을 깨부숴야 하는 주체는 항상 상처를 입는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은 아닐 수 있어도, 적어도 나 자신 만큼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 있는 인생을 꿈꾸는 존재들이 저자의 문장을 타고 흘러내린다. 대필작가 윤지의 이모이자 유명 디자이너 오선임은 모든 걸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안고 있다. 이 모순은 한평생 그를 외롭게 하였고, 벗어나기 위해 자서전을 써 출판하고자 한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말이다. 윤지는 이 과정에서 이모의 진정한 삶을 직시하고 또한 본인의 인생도 되돌아 본다. 모르는 새 겹겹이 쌓인 오해는 앙금처럼 끈덕진 미움을 낳았고, 그를 해소하기 위해 또다른 감정들이 겹겹이 소모된다. 법적으로 얽히지 않았다고 하여 한순간에 함께 한 시간이 날아가는 경험, 얼마나 쓸쓸하고 허무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조건과 편견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게 욕심이라면 이 세상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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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작품은 나에겐 ‘반가운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다르지만, 어딘가 묵직하게 마음을 울리는 느낌이 있었다. 이 소설은 독자의 ‘편견’을 시험하는 중의적 단어와 장치로 설계되어 있다. 나 또한 “아,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으며 읽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고, 재밌게 읽은 작품이었다. ?? 이야기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디자이너인 이모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된 주인공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전체적으로는 ’이모의 과거‘와 ’주인공 자신의 과거‘가 겹쳐지면서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는데, 주요 소재는 두 가지이다. 바로 [동성 간의 사랑과 호기심], 그리고 [과거의 기억,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참회]이다. ?? 학창시절 여중, 여고를 다녔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당시 ’중성적 이미지‘를 가진 친구들을 동경하는 이들이 있었고, 나 역시 멋지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다만,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동경을 넘어선다. 질투와 악의로 번져가는 모습,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그 가정을 포기하는 선택들까지, 보다 깊은 이야기로 확장된다. ?? 작품 속 주인공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의식적으로 망각하며 살아왔다. “타인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믿었다”는 그가 내뱉는 생각도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스스로 늘 배려 깊은 사람이라 믿고, 그런 주문을 외우듯 살아가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특히, 내가 무심코 던진 말과 행동이 연결고리가 되어 누군가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만들었다. 책을 덮고도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게 했던 작품이었다. ?? 최근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메시지에 공감하며 연습 중이었는데, 이 작품은 과거에 던진 그물을 거둬 그 안에 걸린 시간들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독서의 묘미란 이런 데 있는 것이다. 늘 다른 방향의 생각을 제시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 ?? 이선영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접했지만, 중간중간 삽입된 장면과 대사, 인용구들이 참 인상 깊었다. 나와 비슷한 감정선을 가진 작가님의 글을 만났다는 사실이 무척 반가웠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을 기대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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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물을 거두는 시간 - 이선영 (지은이) 비채 2024-11-27> ♡ 대필작가이자 이혼한 나는 외가식구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엄마의 여동생으로 이모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오선임에게 자서전 작업을 의뢰받는다. 타인에게는 이모의 그림자이자, 이모에게는 평생의 반려자, 이모의 아들 형서에게는 학습지 교사였던 짱가이모로 인해 엄마의 자리를 놓고 살아야했던 이모. 자서전작업과 함께 교통사고로 오래전에 사망한 고등학교 친구 수진의 물품을 전달하라는 명을 받았다는 유품정리사 민혁이 찾아온다. 그 일을 통해 자신이 망각하고 살았던 과거의 그물이 서서히 올려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나의 과거가 생각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히 잊고 있던 것이었다. 내 초등학교 졸업 앨범에 내가 도려낸 누군가가 있다는 것. 꽤나 친했던 아이지만, 너무 싫었졌던 아마도 그 마음은 너를 영원히 내 인생에 지워버리고 싶어? 정도의 미움이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그 아이를 사랑의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이 책은 동성에게 사랑의 마음을 느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그건 차치하고 과거의 기억들이 과연 정말로 맞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맞을까? 나는 미움과 혐오의 기억으로 남은 것들이 과연 맞을까? 라는 의구심을 들게 했다. 우리는 과거 속의 기억들이 마치 오답이라는 건 없다는 듯이 군림하여 그 인간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 과거의 기억들이 과연 서로가 같은 기억으로 남고 있긴 한걸까?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내가 피해자를 자처하고 상대를 악인으로 남겨둘 자격이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 망각의 바다에 그물을 던져 잊힌 기억을 건져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감정의 맨 밑바닥에 찜찜함이 남아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았다. (223) ??얼마나 수진이를 지워버리고 싶었으면 이토록 기억이 파편적일 수 있는 걸까.(232) |
![]() * 비채 서포터즈 2기 자격으로 받아본 책이다. 1년 동안의 서포터즈가 길게만 느껴졌는데 벌써 마지막 책이라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이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제목이 매우 쓸쓸하게 느껴졌다. 어떤 그물을 쳐 놓았길래~ 거두는 시간이 필요한 걸까, 생각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 아이 없이 남편과 이혼하고 대필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윤지. 그녀는 엄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자 이모를 두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오선임, 엄마는 경상도 억양 때문에 스님이라고 부르는, 외가에서 내쳐지다시피 한 존재. * 그 이모가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모는 수연의 앞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음 속 깊이 감춰왔던 일을 꺼내 보인다.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자로 살아가야만 했던 이유, 자식과 남편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그 속사정을 윤지에게 가감없이 토해낸다. * 한편 윤지는 이모의 자서전 의뢰와 더불어 한 유품정리사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의 이름은 민혁. 민혁은 자신 어머니의 의뢰로 윤지를 찾았다고 얘기하며 오래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달리한 고등학교 동창 수진을 기억하냐고 묻는다. * 윤지의 기억 속에는 늘 선재만 가득했다. 졸업 앨범 속 잘려진 수진의 사진처럼 윤지의 기억 속에서도 그 아이만 싹둑 잘려나간 느낌이었다. 그렇게 윤지는 잊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 자신이 던지 그물이 훗날 어떻게 돌아올지도 모르고 새카맣게 잊고 지내며, 자신은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위안했다. * 이모 선임의 이야기가 깊어져 갈수록 윤지와 선재, 수진에 대한 이야기도 깊어져갔다. 윤지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조금 놀라웠다. 아니, 소름 끼쳤다. 적어도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편히 못잔다는데, 윤지는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걸까. 가족들에게 제대로 소리 한 번 치지 못하는 선임이 답답했고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며 자신을 방어하려한 윤지가 짜증났다. 하지만, 그래도 이들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 내게 동성애에 대해 찬반을 묻는다면, 나는 찬성을 지지하는 쪽이다. 전염병도 아니고, 사회의 악도 아닌데 내가 뭐라고 그들의 사랑을 막겠는가. 그저 나와는 조금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취향 차이'로 가볍게 생각했던 이 감정이 그들과 그들 가족에게는 어떤 어려움이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시대만 다르게 성장하며, 쏙 빼닮은 두 여인의 이야기는 세상에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사랑'이라는 감정과 '가족'이라는 형태에 대해,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전유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기억과 망각이라는 것은 신의 선물일까, 신의 장난일까? 고요하고 잔잔하게 느껴지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폭풍이 될 수도 있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