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에 드라마게임인가 베스트극장에서 단편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드라마는 일반적인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잘 자라주는 아이들. 정겨운 아침 풍경. 일상은 고요하고 조금은 달콤하게 흐른다. 그리고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는다. 아내는 갑작스런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출상을 앞둔 날 검은 상복을 입은 여자가 문상을 온다. 여자의 옆에는 역시 검은 상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있다. 아이는 남편의 영정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드라마는 이렇게 끝났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내가 모르고 있었던 남편의 외도를, 이런 방식으로 알게 한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을 끝내 용서할 수 없다.' 정미경의 중편소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유진의 남편(소설가)은 의외의 시간, 의외의 장소에서 교통사고로 즉사한다. 일기나 편지 같은 사적인 글로 유고집을 묶고 싶어하는 출판사 편집자의 제안을 받은 유진은 남편의 컴퓨터 파일을 열어본다. 암호가 걸려있는 하나의 파일, 날짜로 기록된 그 글에는 다른 사람들의 글 인용과 남편 자신의 글이 섞여 있다. 거기에 적혀있는 남편의 글 하나. ...루즈몽은 그랬다. 우리의 생에는 두 개의 윤리가 있다. 하나는 결혼의 윤리며, 다른 하나는 열정의 윤리다. 인생에 밤과 낮이 있듯 태양 아래의 윤리와 달빛 아래의 윤리가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무거운 것인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삶은 어느 순간까지 선택을 강요할 것인가. 숨쉬는 순간마다 선택을 강요하는 삶이여, 나는. 남편의 글 속에 있는 또 하나의 기록, M. 드라마와는 달리 M은 소설에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남편의 글 속에서 잠자는 물새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잠깐 언급된다. 유진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남편은 M에게 말한다. 모든 게 좋아, 너의 모든 것. 그렇게나 많이? 여기까지가 단편 드라마와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미 우리에게 진부해져버린 '불륜'의 소재에서 정미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남편의 글을 발견한 후부터 유진에게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생긴다. 피부과의 약으로도 치료되지 않는, 정신적 외상에 기인한 증후. 유진은 효과 없는 피부과 약을 먹고 끈적한 잠에 빠져든다. 그것만이 삶을 지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듯. 2년 간의 연애와 7년 간의 결혼생활.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었던 부부의 사이에 놓여있는, 건널 수도, 확인할 수도, 복수나 원망을 할 수도 없는 간극. 정미경은 그 간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진을 전등사로 보낸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전등사에는 배반한 애인을 추녀 밑을 받치고 있는 나부상으로 새겨넣었던 도편수의 전설이 있다. 천만년 사찰의 추녀를 받치고 있으라했던 도편수의 마음은 복수였을까. 그것은 지은 업을 풀라는 도편수의 마지막 사랑은 아니었을까. 여자는 초파일에 남편과 함께 갔으나 끝내 들어가지 않았던 전등사에서 남편의 파일을 묻어두기로 한다. 사랑이 아름답고 따스하고 투명한 어떤 것이라고는 이제 생각하지 않겠다며. 전등사에 가지 못한 날을 전등사 갔던 날, 로 이름지었듯 뭔가가 빠져 있는 그대로 그냥 사랑이라고 불러주는 거라며... 삶이 불완전할 때, 불완전해서 불안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밖에는 또 뭐가 있을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사람이 피투성이인 채로 걸어나갈 때, 그의 삶은 비로소 숭고해지는 것이 아닐까.나의> |
| 1. 나의 피투성이 연인 잠 끝이 묵직하다. 일어나려는데 자꾸 아래로 당겨 내려지는 몸, 흠씬 두들겨 맞은 듯한 통증. 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아침의 원인을 헤아리다가 간 밤 읽다 머리맡에 둔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생각이 가서 닿는다. 아이들이 잠든 뒤, 화요일 모임으로 늦는 짝을 기다리다 읽던 책. 읽는 동안 나를 불편하게 하던 책은 잠 속까지 따라 온 것인가. 남의 염병이 나의 곳불(鼻火) 만 못하다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남의 것 같지 않은 고통이 있다. 그리고 진실은 때로 ‘피투성이’가 될 때만 지켜질 수 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 끝에 남편이 남겨놓고 간 컴퓨터 파일 안에 M을 발견한 유선. M은 남편으로 하여금 “아아,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했고 “바닷가의 새들은 이렇게 잠이 든대” 라는 문장의 ‘이렇게“라는 의태어 안에서 앙징맞게 존재한다. “......루즈몽은 그랬다. 우리 생에는 두 개의 윤리가 있다. 하나는 결혼의 윤리이며, 다른 하나는 열정의 윤리이다. 인생에 낮과 밤이 있듯 태양 아래의 윤리와 달빛 아래의 윤리가 있을 것이다. ” 자신이 태양 아래의 윤리일 뿐 달빛의 윤리가 될 수 없고 남편의 한 세계에서만 용인되고 다른 세계에서 배척되는 것을 알았을 때 갑작스런 사고로 싸늘한 시체로 변한 남편의 몸이 ‘피투성이’일 뿐 아니라 유선 자신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다. 특별한 음식을 먹고 일으키는 알레르기 , 혹은 풀밭에 앉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면 혹시 심한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느냐는 의사의 질문에 유선은 답을 할 수 없다 .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긁어대면서도 그 은밀하고 내밀한 고통을 타인에게 내보일 수 없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이 아니지.” 한밤 가로수를 들이 받고 죽은 남편에게 그 창백한 얼굴에, 피투성이 얼굴에 M에 대해, 왜 그 밤중 문호리에 갔는지에 대해 따져 물을 수도 없다. 보상 받을 길 없는 상처를 혼자 미친 듯이 살을 벅벅 긁어대는 것을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어떤 일도 견뎌낼 수 있는 게 인간”이라면 견뎌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유선이 남편과 함께 전등사에 가려다 정작 전등사엔 가지 못하고 그 아래 솔숲에서 정사를 한 그날이 "전등사 갔던 날"이 된 것처럼 뭔가가 빠져 있는 그대로 사랑이라고..... 2. 호텔 유로 정미경의 전작 <장미빛 인생="">에서 광고기획자를 주인공으로 세워 시뮬라시옹 시대에 걸맞는 코드를 담고 있었던 것처럼 호텔 유로 역시 조작된 이미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의 내면을 훑고 있다.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조작해 소비를 위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면서 정작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움직여 본 적 없는 <장밋빛 인생="">의 AE 광호처럼 <호텔 유로="">의 나는 조작된 이미지인 줄 뻔히 알면서 소비에 중독되어 간다. 운명이 생각 없이 던져 주는 자신의 삶을 수용하는 데 있어 한없이 너그러운 삶을 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인 구청 미화원을 어머니로 둔 나는 게다가 이혼 경력도 있다. 그런 내가 방송국 스크립터로 버는 수입은 뻔하데 , 조작된 줄 알면서도 그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제 속의 진실 한 조각 나누어 주지 않은 방송 대본을 쓰고 그 대본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양 천연덕스럽게 스타 윤미예가 읽어내린다. 사이렌에게 홀린 뱃사람처럼 나는 윤미예의 조작된 이미지를 알면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는 가속도를 지나 파멸에 이른다. 줄줄이 날아오는 연체고지서, 독촉장, 신용불량의 위협 앞에서 끝내 한 조가리에 백만원씩 하는 분홍빛 탑을 훔치고도 나의 소비는 고장난 기관차처럼 멈출 줄 모른다. 3. 뱀다리 정미경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드라마게임에 나옴직한 진부한 진실이다. 하지만 필사하고픈 욕심이 들 정도로 정성스럽고 밀도 높은 문체는 소설 줄거리로 요약되지 않는 즐거움(도 아니고 감동도 아니고 일종의 엄숙함 같은 경외감)을 준다. 박완서 선생도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견뎌내고 소설을 쓰게 됐을까 하는, 좀 진부한 표현이지만 묵은 포도주 같은 향(그런 포도주 마셔봤던가) 이 느껴진다. 정성이 깃든 글을 읽는 것은 좋은 글을 읽고도 단순히 즐겁지만은 않게 한다. 내 어젯밤 잠자리가 편치 않은 이유일 게다. 작가가 아프면 독자도 아픈가 보다.호텔>장밋빛>장미빛>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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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수록 좋은책을 많이 만나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두어야할까 가끔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일이 있을때면 그렇다. 나를 충족시켜주는 내용의 책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내 눈에 특별하게 여겨지는 단 한권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단 한권을 골라내야 하는 것은 바로 내 손이다. 여기, 올해 나와 운명적인 만남을 한 그런 책이 있다. 반갑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
제목은 내 마음에 드는 류가 아니었다. 좀 감성적이라고 여겨졌고, 사실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어느정도는 좀 가볍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읽으면 저절로 웃음이 터질 것 같은 적나라한 연애이야기도 좀 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낭만적 사랑과 사회같은 글처럼. 그런데 생각 외의 면이 있었다. 처음부터 찬찬히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니었는데, 다른 책들 사이에 놓여져있던 이 책의 중간, 어느 부분을 살짝 들어서 아무 대목이나 조금 눈으로 훑었을 뿐인데, 바로 그 순간부터 작가의 이야기에 그대로 휘감겨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처음부분으로 돌아가 주욱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부분을 들어서 읽더라도 읽는 이를 자기 안으로 파고들게 만드는 소설이라니. 대단했다.
아무 곳이나 펼쳐서 읽기 시작했던 단편은 바로 '비소 여인' 그녀의 소설 데뷔작이었다니, 이건 더욱 운명처럼 느껴진다. 바로 이런 흡입력을 원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라면,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한다. 비소 여인의 그 서늘하면서도 기괴한 내용, 마치 거미와도 같이 느껴지는 인물의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어디선가 비슷한 이야기를 읽어본 것도 같으면서 또 다른 여운을 주는... 아, 김영하의 '흡혈귀'도 이런 비슷한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그 소설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이런 이야기의 흐름을 좋아해서 한눈에 이 소설집에 사로잡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소설들도 매우, 상당히 좋았다.
다른 단편들도 전체적으로 다 좋았다. 그 중 가장 인상을 크게 남겼던 것은,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였다.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공기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 받았다. 감정의 변화, 감각의 일깨움, 어리숙한 사고의 냉정함이 모두 들어있어 현대적이면서 통속적 신파가 들어가 있는 야릇한 소설이었다. 순수함을 간직한, 그리고 그 순수함이 끝나는 종말의 시기를 포착한 듯한, 어른들의 '소나기'같다고 생각했다. 출판된지는 좀 됐지만, 추천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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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책을 읽었다. 책에서 분홍빛 봄내가 났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어 점점 추워지고 있는데 그녀의 책에서는 봄이 보였다. 겨울이 꾸는 꿈이라는 봄, 무언가 새로운 희망이 보이는 듯한 봄말이다.깨지고 쓰러지고 화내고 울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서 나를 보았다. 사랑이라는 것에 울고 살아가는 도중에 쓰러지고 내동댕이 쳤었던 나의 영혼을 보게 되었다.지나간 일들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의 조각 조각들이 그 곳에 함께 있었다. 정미경이라는 작가는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둔탁하지 않은 목소리로 조근 조근한 어투로 말하는 그녀는 어떻게 감춰진 삶의 단면들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을까? 그러기에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이 나는 너무 행복하다. 6편의 단편 모두 하나의 그림의 퍼즐 조각들이다. 그 그림의 제목은 무엇일까? 나와 당신과 우리일까?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의 속내들이 하나씩 하나씩 담겨져 있다. [나릿빛 사진의 추억] 헤어진 애인의 흔적을 발견하며 행복했던 날들의 회상을 지나 단 한 번의 통화로 현재의 현실은 크나큰 지진을 겪어내기도 한다. 사진작가였던 성민이 찍었던 옛 애인의 사진은 지진의 근원지가 된다. 그로 인해 다시 찾은 일상은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가게 된다.(존재의 의미를 재는 내 속의 저울 눈금을 조정하고 나자 찾아온 것은 마음의 평화였다.11쪽) 나를 버리고 나를 낮추고 그저 세상에 속하려 하는데 세상은 때로 강한 바람으로 저버리려 한다. 우리도 그러했던가?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기도 하고 찢어버리고 싶은 필름을 발견하게 되면 그저 아름답다 라고 지나갈 수 있는 지점에 살고 있는지 생각이 많아진다. [호텔 유로,1203] 한때 잘 나가게 쇼핑을 즐기던 쇼핑중독자인 나는 이혼을 하고 수 많은 결제 고지서만이 날아오는 한 가운데 남았는데도 아직 이 현실을 직시하기 싫어한다. 자신이 작성한 원고를 읽어대는 젊고 예쁜 탤런트에게 말할 수 없는 묘한 질투에 느끼며 내적 치장은 어디론가 사라진 채 껍데기일 수 있는 명품에 눈을 맞춘다. 과거의 나는 잘 나갔는데, 그 때의 사랑은 참으로 빛나기까지 했었는데.(사랑 속에는 사람들이 흔희 기대하는 따스함,열정,몰입,기쁨,까닭 없이 터뜨리는 웃음소리 같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그 눈부심 속으로 들어가 보면 마치 빙산의 아랫 부분처럼 거짓과 권태와 배신과 차가움과 환멸조차 사랑의 일부분이란 걸 사람들은 모르고 있거나 잊어버리거나 한다. 55쪽 ) 사랑이라고 느끼고 사랑에 속한 감정들을 정의하는 듯한 이 글을 보면서 그 많은 단어들로 나열된 감정중에 내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어느 것일까? 내게 사랑으로 남겨진 것들은 무엇일까? 어떤 것도 정답이라는 단어 아래로 떠오르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는 과거만을 보기도 한다. 과거에 내가 꿈꾸던 오늘은 이런 날들이 아니었기에 그럴까? [나의 피투성이 연인]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소설은 주기만 하는 사랑.맹목적인 믿음에 대한 배신이랄까? 작가인 남편이 죽고 나서 그의 유작을 출판하자는 제의에 아내는 남편의 컴퓨터를 켜게 된다. 그 안에서 발견하는 남편의 짧은 글에는 또 다른 사랑이 있는 듯한 암시를 주는 문구가 있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도 사라지기 전에 이런 글을 접한 아내는 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상처를 스스로 만들게 되고 그 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차마 나만의 일기라 하더라도 우연하게 읽게 되는 이는 얼마나 절망스럽겠는가. (삶은 이렇게 차갑고 날카롭게,파도처럼 끊임없이 맨 살에 부딪쳐 올 모양이다. 84쪽) 아픔이 예상되는 곳에 겹겹이 두꺼운 천으로 싸맨다해도 파고드는 상처는 엉뚱하게도 맨살이 드러난 곳에서 낭자하게 피를 토하고 있기 마련이다.우리가 만나는 상처들은 거의 다 그렇게 오는거 같다.(지나고 보니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어떤 일도 견뎌내는 게 인간이더라.136쪽) 돌아가는 룰렛 게임에서 내가 원하고자 하는 곳을 맞힐 수 있는게 얼마나 될까? 견뎌내게끔 그렇게 신은 인간을 만들어 놓은 걸까? [성스러운 봄] 정말로 봄이라는 어감만으로도 세상을 깨울꺼 같은 성스러운 봄이 오기 전에 아이는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부부는 빚과 스스로의 질책으로 하루 하루를 열게 된다. 이 성스러운 봄이라는 소설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병원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던 아이의 모습을 통한 비유로 쓰여지고 있는데 특히나 이 문장 (질문이란,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어딘가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걸 말하겠지요.153쪽)은 정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아이의 생명연장의 결정을 묻는 의사가 하는 이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생에서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과 수 없이 만나왔음을 경험해왔다.그러다가 또 답이 없을 것 같은 질문의 답을 찾기도 할 것이다. 사막에 숨겨진 오아시스처럼 단내음을 가진 답들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그 얼마나 황홀할 것인지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말해질 수 있는 건 고통이 아니야.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건 참을 수 있다는 거야.165 쪽) 나는 길지 않은 병동생활에서 이런한 문장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음을.. 나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그 마음을 미리 알아버렸기에 내 고통은 아프다고 말할 수 없게 된 것을. 나 역시도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비소 여인] 이 소설 중에서 굳이 낮은 점수를 주고자 한다면 이 소설이다. 윤도 나도 최군도 모두 혼자이다. 세상에서 버려진 듯한 느낌을 가진 세 사람. 없어서는 안 될 물,밥, 공기 속에 스며드는 비소라는 독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사람을 죽게 만드는데 세상을 죽이고 싶었던 윤은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시작으로 세상에 대한 복수를 한다. 버려진 느낌을 내게 소중한 이들을 버림으로 보상받으려 했을까?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자신은 분명 속할 수 없는 세계라고 단정지으면 바라보는 세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과 독단일 뿐이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에나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번잡스럽고 항상 시끄러운 곳에 잠시 발을 담갔다가 빼면 된다고 했지만 정작 마음의 발을 빼지 못하는 주인공처럼 마음에 그어놓은 선은 자꾸만 나를 보여주고 사랑을 주는 누군가에 의해 어느새 지워지고 만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외면하면서 살기도 한다. 그들의 웃음소리.그들의 말투.그들의 삶이 나를 비춰주는 삶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나 역시도 그들을 비추고 있기 때문일까? (존재란 스스로는 빛날 수 없는 것.누군가의 시선 속에서,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월도 되고 때론 그믐도 되고,그런거 같아요. 243쪽) 우리는 때때로 부정하고 싶은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어떤 때는 그 관계를 끊지 못하는 내가 싫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사는 것이다. 언제 빛을 내고 사라졌는지 기억할 수 없는 별의 반짝임을 보고 즐거워하는 내 모습은 그 언젠가 내게 베픈 친절한 사람의 손길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그리워하는 것과 같을까? 상현달에서 보름이 되고 다시 기울어져 하현달이 되어 달은 사라진 듯 보인다. 태양이 빛나는 지금도 달은 우리를 비추고 있다.나를 둘러싼 수 많은 타인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듯이. 그들이 내게 보내는 관심으로 내가 살듯이. 이 단편들을 읽는 중간 중간 나는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또 울고 싶어지기도 했다. 너무 힘들다고 떼를 쓰고 싶기도 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을 감싸주는 두 팔을 가진 이 책을 어루만지면서 나는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두 팔이 나를 안아주는 걸 느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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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소재와 그것을 이용한 이야기들을 통해, 내 가슴깊이 숨겨두었던, 나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꺼내보이기 힘든 가슴속 응어리나 삶의 고단함을 만났다. 묵직함과 함께 뚜렷한 슬픔과 은근한 삶의 아름다움을 엿보았다면 내 감상이 충분할까? 하나 하나의 이야기에서 '그래도 우린 오늘을 또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일도.' 라는 생각을 맴돌게 하였다. 오래되고 색이바랜 사진으로 인하여 옛 연인의 사랑마저 빛을 잃어버리게 되고, 순간적으로 증발해 버린듯한 남편의 일기들로 하여금 날카로운 유리파편이 박힌듯한 슬픔을 맛보기도하고, 지리멸렬한 일상의 한 가운데 놓인듯한 골목안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 또한 저들 중 하나이겠지' 하는 생각이 밀려와 짐짓 마음이 울컥해진다.
모든 이야기속에서 죽음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랑에 대한 죽음, 연인과의 아름다운 추억의 죽음, 믿어왔던 남편의 배신의 죽음, 언젠가는 벌어질 죽음에대한 예고편을 살고있던 그들의 죽음으로의 종말. [모든 게 좋아. 너의 모든 것. 아아,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 中 ] 이런 남편의 일기를 발견하게된다면 어떤 느낌이들까? 내가 아닌 다른이를 향한 순수한 이 열망을 맞닥뜨리게 되었다면, 그의 부재로 인한 슬픔이 순식간에 쓰라린 고통과 분노로 탈바꿈하지 않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떠났을 그를 생각하면 무덤속에 잠든그를 다시 일으켜세워 따져묻고싶어질 것만같다.
인생은 모순 투성이고 그 앞뒤가 맞지않는 상황속에서도 뻔뻔하게 나 자신을 속여가며 오늘을 견뎌내고 있다. 모든 것이 반듯하게 한치의 오차도없이 삶이 이어진다면 어떨까? 실수투성이에 예기치않은 상황들이 언제나 날 맞을 준비를 하고있는 삶에서 벗어나 순탄하게 어쩌면 동화속 세상처럼 어여쁘게 흘러가길 바라는건 지독한 슬픔일지도. 이야기 속 그들도 잔인한 운명에 맞서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의 오늘을 이어나간다. 순간 순간 놓아버리고픈 현실앞에서 유혹하는 손길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들. 슬픔을 가슴속 깊이 묻어둔채 될대로 되라는 욕망을 꾹꾹 눌러가며 고통을 떨쳐내고 있으리라. 나 또한 오늘을 살아내며 내일은 좀 더 나으리란 희망을 놓지않을 것이다. |
| 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시길을 차로 지나다 보면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 숫자를 헤아리다 질려버리곤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이라는 하루 역시도 고만고만 비슷하다고 느끼다가도 나와 너무도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접하게 되면 소설 속 이야기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면서도 자유로운 상상력의 가미하여 평범한 소재도 개성있는 자기만의 이야기로 만들 줄 아는 작가가 탁월한 예술가라면 잘 읽히면서도 때로는 섬찟할 정도로 주위와 닮아 있으면서도 전혀 만들어 낸 티가 나지 않는 정미경의 소설이야말로 현실을 투영하는 맑은 거울같은 소설이라 하겠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라는 제목은 납량 특집극을 보는 듯한 엽기적인 제목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컴퓨터라는 매개체를 통해 죽음 후에 알게 되는 남편의 속마음에 대해 덮어버리려는 아내의 마음이 정말 피투성이 시체처럼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사랑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이 동전의 앞뒤와 같다면 애착을 끊고 기억을 지우는 것이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짧지만 많은 이야기가 담긴 각각의 글들이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면서 모처럼 소설 읽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요즘은 호흡이 긴 장편보다 딱딱 끊어지는 단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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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단편집을 읽었다. 원래 단편집은 긴 스토리가 완결되는 구조가 아니여서인지 읽고 난 후의 뿌듯함이 장편보다 없어서 읽지 않는 터였다. 하지만 인상깊었던 TV문학관 '나의 피투성이 연인' 편을 보고 사랑의 잔인함을 치열하고 센스있게 묘사한 작품이 활자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해서, 오랜만에 정미경의 단편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읽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도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때는 그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나를 좋아했을 것이라고... 정황상 응해줄 수 없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가 말한 게 거짓말이 아니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했던 말은 그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호감 표시 정도였을 것이다. 술이 취해서 전화를 했던 건 우연히 눌러졌거나 그의 술버릇이었을 것이다. 끔찍했다. 너무 아팠다.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착각하고 내가 만든 상상의 무대에 진부한 멜로를 연출하고 있었다. 더욱 아이러니한건 그런데도 아직도 그는 나를 사랑했을거야 하고 자위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단편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유선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그럴거라 자위하던 나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는 녀가 죽은 남편에게 받는 사랑에 1%의 의심도 없었다. 달콤한, 자상함, 따뜻함이란 말들이 너무나 어울렸던 남편. 그러다 남편의 비공식 글들을 모아 유고집을 편찬하자는 출판 업자의 제의에 남편의 컴퓨터를 켠 유선은 경악하고 만다. 그녀가 믿고 있었떤 남편의 사랑은 전부 M이라는 여성에게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보다, 종교와도 같았던 남편에게 배신 당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욕 할수도 때릴 수도 정말이지 죽일 수도 없는...복수도 모독도 할 수 없는 남편.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그를 미워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출판업자의 간절한 부탁에도 끝내 유고집을 편찬하지 않기로 한다. 자신의 온전한 피투성이 연인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어떤 지독한 복수보다 사랑 받았다는 믿음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아서다.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으로 마음에 견고히 쌓였던 믿음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때가 많다. 그때의 절망감과 참혹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것은 결국 늘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은 애정 결핍증을 앓고 현대인에게 더욱 극악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 혹은 그녀에게 복수를 한답시고 휴대폰 전화번호를 지우고, 제 삼자에게 그 혹은 그녀의 험담을 한다. 그 혹은 그녀보다 잘살 거라고 안 다니던 어학원을 끊고, 예뻐질 거라고 곱게 화장을 한다. 하지만 술 한잔이 들어가면 꼭 이런말이 나온다. '그가 그립다고. 그녀만한 친구가 없었다고.'
인간은 한번 견고해진 믿음에 어떤 흠집도 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설사 그 흠집을 목도하더라도 애써 눈감아 주고 싶어 한다. 이미 마음은 찢기고 멍이 들더라도. 떠나간 그들을 회상하며 이렇게 나직인다. "내가 싫어서가 아니다.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
어쩌면 지금 나를 눌러싼 내고 믿는 사랑, 우정은 모두 내가 만든 착각일지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그저 스치는 , 전화번호를 늘려줄, 밥을 같이 먹어줄, 숙제를 도와줄, 돈을 빌려줄 사람일 뿐일지 모른다. '착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아는 간은 그저 사실을 알았을 뿐인데 '배신'이란 말을 붙이지는 거도 나 뿐일지 모른다. 정작 잘 생각하보면 나도 그저 밥이 먹고 싶어서, 심심해서, 숙제를 해야해서, 외로워서 사람을 만나는 날도 많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는 진실로 사랑하고, 받고 있는 걸까.. 그게 진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차디찬 세상을 지탱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사랑에 대한 많은 아포리즘이 담긴 잔혹하지만 스타일리쉬한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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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나서 처음 느낀 소감은 의식과 감정의 변화에 많은 수사와 지면을 할애하여 묘사한 점이 기존의 다른 서사위주의 작품과 구별된다는 점이다. 책에서 언급한 서평과 같이 단편집을 관통하는 주제는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에 관한 작가의 통찰인거 같다. <나릿빛 사진의 추억>에서는 사진이 그렇고, <호텔 유로, 1203>에서는 명품가 이중적 생활을 하고 있는 화자의 삶,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서는 죽은 남편의 사랑 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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