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이름을 떠올리면 확실하게 떠오르는 그만의 이미지가 있는 분명한 개성을 가진 작가 레오리오니. 그가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로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어른들을 생각하게 할까 궁금하였다. 여섯마리 까마귀는 겉으로는 정말 황당한 이야기였다. 자기가 애써 가꾼 밀을 까마귀들이 먹는다고 허수아비를 세운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러한 사태에 여섯마리 까마귀가 의논해 내놓은 대안이 나무껍질과 마른 잎들로 만든 무서운 새연이라니... 내 눈에는 하나도 안무서워 보이는 그 연두빛 새 모습의 연을 모두 함께 날리는 까마귀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한순간. 내눈에 역시 아무리 봐도 하나도 안무서워 보이는 그 새(연)을 보고 허수아비는 눈하나 깜짝 안하는데 농부는 너무 놀라 집으로 달려가 문을 꼭꼭 잠그고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더 무서운 허수아비를 세워야지 안되겠다."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내가 농부의 마음에 까마귀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해 황당하게 느껴지는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계속 되는 황당함.. 무서운 새가 날아오자 칼 두자루를 손에 들고 있는 입술 일그러진 허수아비를 세우고는 안도하는 농부. 그 놀라운(?) 허수아비에 또 더 무섭고 사나운 새를 만들어 날리는 까마귀들..그것이 너무 무서워 집안에 숨어 나오지도 못하는 농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과연 이 농부를 순진하다고 해야할지 멍청하다고 해야할지...까마귀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과연 내가 이 그림책을 보며 농부를 비웃고 까마귀들을 비웃을 만한 처지인가. 그들의 행동이 그렇게 있을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는 농부나 까마귀처럼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말도 안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채 늘 그런 행동들을 반복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화기술의 부족. 자기만의 세계속에 갇혀 내가 이해하고 내가 공감할수 있는 것에만 함께 공감하고 흥분하고 다함께 패거리가 되어 내가 공감할수 없는 것을 공격하고 그것으로부터 또 나를 방어하고... 인터넷의 엄청난 보급과 함께 블로그나 미니홈피 동호회활동이 활성화되고 실제로 만나지 않은 인간관계를 형성해 가는 현실에서 이 책은 어른들이 읽고 더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말 못할말 다 할수 있는 용기(?)를 아무데나 발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고 많은 인간관계와 그것을 이루는 대화를 함에 있어서 나만의 방법과 나만의 세계속에 갇히지 말고 진정한 대화가 무엇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 대화해야 할 것이다. 나와는 정말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농부와 까마귀들이 부엉이를 통해 대화가 부리는 마술을 경험했듯 이 세상이 그런 마술들로 가득찬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내가 옳은가? 내가 꼭 옳아서가 아니라 그저 나와 다른 것을 그래도 여전히 받아들일수 없는가? 그도 아니면 나와는 다른 방식의 표현이 무서워 집으로 들어가 꼭꼭 숨어버린 농부처럼 숨어 침묵하는것은 아닌가? 옳지 않다 생각해도 옳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그들과 대화할수 있고 나와 다른 이들과 대화할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책을 보고 대화할줄 모르는 농부와 까마귀들의 모습을 비웃은 나. 얼마나 진정한 대화라는 것을 할수 있는 사람인가 되돌아본다. |
|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을 아이와 읽어가다보면 다르 ㄴ작가으 ㅣ책도 마찬가지이지만 몇 가지 그만의 독특한 특징과 매력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로 생쥐(들쥐)나 물고기, 벌레, 까마귀, 개구리 등 나오는 동물들의 대부분이 몹집이 작고 약한 것입니다. 악어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리고 그림이 실제 동물들의 모습보다 너무나도 귀엽고 우리들에게 한 번 더 삶에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는 따뜻한 교훈과 따끔한 질책이 함께 들어있는 것 같아요. "여섯마리 까마귀" 이 책은 정말 황당하기도 하지만 또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따끔한 경고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애써 가꾼 밀을 까마귀가 훔쳐먹는 다고 미워하는 농부와 까마귀들의 대처방법 또한 기가 막힙니다. 까마귀들을 쫒아내고자 허수아비를 세운 농부, 처음에는 놀라지만 이내 실제 사람이 아니라 허수아비임을 알고 커다란 새 연을 만들어 농부를 놀라게 해 주는 까마귀들. 하지만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점점 더 크고 무서운 허수아비를 만드는 농부와 똑같이 하는 까마귀들. 지치지도 않는지.. 이 책에 나오는 까마귀들과 농부의 모습이 마치 양보와 타협을 하지 않고 싸움과 전쟁을 하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과 같아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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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워 갈등하는 경우가 있다. 집 안에서는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의견이 달라 갈등이 생기고, 집 밖에서는 상사와 부하 사이, 노동자와 임원 사이에 생각이 달라 갈등이 생긴다. 뿐 만인가. 기업과 기업 사이, 여당과 야당 사이, 사람이 있고 조직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이 생긴다. 살아가면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못하다. 갈등하는 경우 서로 자기의 생각에만 갇혀 있지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대화를 할 줄 모른다. 대화가 얼마나 마술을 부리는지 유쾌하게 알려주는 그림책이 있다. 레오 리오니의 단순한 글과 그림이 명쾌하게 알려준다. 본문을 열면 까마귀 한 마리와 농부가 대치하고 있다. 농부는 밭을 지키고 있고 까마귀는 밭을 노리고 있다. 밭이 전장임을 알 수 있다. 다음 장으로 넘기면 나무 위에 까마귀 여섯 마리가 앉아 있다. 모두 부리가 날카롭다. 다음 장으로 넘기면 까마귀 여섯 마리가 밭에 앉아 이삭을 쪼아 먹는다. 노랗게 익은 밀이다. 다음 장으로 넘기면 밀밭에 허수아비가 서 있다. 까마귀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농부가 고심해서 만든 것이다. 다음 장으로 넘기면 나무 위에서 까마귀 여섯 마리가 이야기를 한다. 허수아비를 쫓아버리자고 모의하는 것이다. 다음 장으로 넘기면 새들이 아주 무서운 연을 만든다. 나무 껍질과 마른 잎을 모아 사납고 흉한 새 한 마리를 만든다. 다음 날 아침, 까마귀들은 나무 껍질과 마른 잎으로 만든 새로 밀밭 위로 날린다. 허수아비는 눈 하나 깜짝 안 하지만 농부는 너무 놀라 집으로 달려가 문을 꼭꼭 잠근다. 농부는 칼 두 자루를 들고 있는 허수아비를 밀밭 한가운데 세운다. 까마귀들에게 더 강력하게 대응한 것이다. 새들이라고 가만히 당하고 있지는 않겠지. 아니나 다를까 까마귀들은 더 많은 나무 껍질과 나뭇잎을 모아 더 크고 사납게 생긴 새를 만든다. 그것을 본 농부는 너무 무서워서 오두막에 숨어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밀밭 가까이에 오래된 나무 구멍 속에 사는 부엉이가 처음부터 이 광경을 쭉 지켜보고 있었어요. “누가 더 어리석은지 모르겠군. 농부인지, 까마귀인지.” 부엉이는 고개를 내저으며 곰곰이 생각했어요. 농부와 까마귀 사이에 현명한 중재자 부엉이가 있다. 지혜로운 부엉이는 농부에게 찾아가 까마귀들하고 대화를 하라고 조언한다. 까마귀들에게도 찾아가 농부가 밀을 돌보지 않아 다 시들어 가고 있으니 농부와 대화를 하라고 조언한다. 부엉이 덕분에 까마귀들과 농부는 부엉이 둥지 근처에서 만난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자기 주장만 하지만 차츰 마음을 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고는 마침내 서로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 사이 부엉이가 없어졌다. 둥지에도,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지가 않는다. 농부와 까마귀들이 다 함께 밀밭으로 가 보니 부엉이는 허수아비의 팔에 앉아 있다. 마술처럼. * ‘까마귀 여섯 마리’라고 해야 우리 말법에 맞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