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상권을 둘러싼 카르타고와 로마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한니발과 스키피오라는 두 걸출한 영웅이 나타나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며, 그 결과는 로마의 승리였다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다. 분량은 무려 4권이나 되지만 내용은 이처럼 아주 간단하다. 별 내용 아니다. 게다가 이미 다 밝혀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결말도 뻔하다. 그럼 읽을 필요 없겠네? 이런 생각이라면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조자룡에 아무리 정이 간다고 해도 조조가 삼국을 통일할 게 뻔한데 나관중의 삼국지는 왜 읽으며, 원균의 모함으로 수난을 맞기도 하지만 결국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복직하여 왜적을 물리칠 것이 분명한데 김훈의 칼의 노래는 무엇하러 사서 볼까.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으니까…. 이유가 너무 싱거웠다면 조금 길게 포장할 수도 있다. 로스 레키의 3부작은 뻔한 역사적 사실 말고 역사의 이면을 새롭게 해석해 보려는 작가의 독창적인 시각이 신선하고, 영웅의 활약이 통쾌하며, 다양한 인간 군상의 권모와 술수를 경계할 수도 있어, 33도를 웃도는 한 여름의 무더위를 식히기에 딱 좋은 피서 도구이다. 기원전 2세기 무렵의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생활상과 풍습에 대한 엿보기는 작가가 선사하는 보너스. 스케일은 장대하지만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 때문에 읽는 동안 지루함이 없다는 것은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 하지만 ‘이순신’처럼 3음절 이름자에 익숙한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등장인물들이 모두 ‘한니발’ 같으면 좋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결정적인 단점. 너무나 긴 등장인물의 이름이 영 마음에 걸린다면 요즘 스포츠신문에서 많이 써먹는 A씨, B씨 등으로 코드화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듯. |
| 이 책을 읽고자 했던 동기는 평소 역사소설을 읽고 싶었고, 문명의 한 축이었던 지중해 연안의 세계사를 알고 싶어서였다. 2차 포에니전쟁이 주 배경인 이 소설들은 전쟁의 양 당사국인 로마와 카르타고의 명장인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관점에서 전쟁과 역사와 그들 나름의 가치관을 기술하고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세계를 이끌어가는 강대국들은 무엇이 다를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그것은 법 앞의 평등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단일민족/단일국가라는 독특한 민족인 우리나라가 다언어.다민족 국가에게서 배워야할 점들도 많이 생각케 했다. 우물안 개구리라고 할까? 다민족의 장점을 용해시키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것들을 이용하여 제국을 건설해간 로마를 보며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더불어, 덤으로 B.C. 2세기 경의 정치.경제.사회등의 많은 지식들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의 "카르타고"는 메모지의 편집수준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준다. 좀 아쉽지만, 간만에 괜찮은 소설을 보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책이라 보인다. |
| 이 책으로 인해 한니발. 스키피오. 그리고 카르타고에 푹 빠져버렀다. 언젠가 카르타고 유적지를 보고 싶어 어떻게 가는지 알아볼 정도였으니. 로스레키. 정말 뛰어난 필력의 작가이다. 3부작으로 나온 책이라 스케일은 장대하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읽는 사람을 정말 몰입되게 한다. 한니발 바르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그 두 영웅의 이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칸나에 전투, 지마 전투가 머리속을 스쳐지나가고.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일생의 단 한번의 대면 장면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1부 한니발에서는 한니발이 "나" 가 되고, 2부 스키피오에서는 스키피오가 "나"가 된다. 이는 현대소설에서 주로 차용하는 방식이지만, 현장의 생생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 보다는 감추어진 이면에도 초점을 맞추고, 그 시대의 문화와 풍습의 엿보기.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로마와 카르타고의 모습. 이 책이 외국에서 찬사를 받았는지 알만했다. (한국에 이 책이 소개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덕분에 6여년전 약간 무미건조하게 읽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2권 : 한니발 전쟁도 다시 꺼내 읽을 정도가 되었으니. 방학 후반기에 한니발과 스키피오. 포에니 전쟁에 푹 빠져버린 것이다. "훌륭한 역사소설의 기준이란, 파편화된 역사적 사실들을 작가가 얼마만큼이나 풍부한 상상력으로 잘 재조직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소설적 재미’나 ‘역사적 개연성’은 이런 목표가 달성되면 자연히 뒤따라오는 성과이리라. 여기에 하나 더, 시대와 인물에 대한 작가적 통찰이 인간 본연의 문제들에 얼마나 깊이 다다르고 있느냐도 작품에 대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터이다. 사실의 재현과 소설적 재미, 작품성이라는 3가지 요소로 볼 때, 로스 레키의 이 연작은 좋은 역사소설의 기준을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라는 리뷰의 구절에 다시금 공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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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3분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높은 평점을 주셨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1. 재미, 내용
솔직히 말하면 재미가 있는 책이 아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몰입도가 굉장히 떨어진다는 말이다. 나는 평소 역사나 역사소설을 굉장히 즐겨 읽고 상당히 많은 책을 접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몰입도가 떨어지는 책 또한 처음이다. 겉표지에 온갖 찬사 문구가 적혀있고 또 내가 카르타고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시중에 책이 그리 많지 않아 읽었는데 지루하다고나 할까, 또 굉장히 유치한 것 같다.
혹시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면 던지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싶을 것이다. 그 책의 수준에 비하면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책이라 하겠다. 또한 그다지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친 것 같지도 않다.
2. 번역
아주 엉망이다. 사람의 이름을 엉터리로 쓴다거나(하스드루발, 하스두르발 구분없이 사용) 기본적인 맞춤법을 무시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이렇게 오자가 많을 수는 없다. 번역가가 아주 훌륭한 사람같이 적혀있던데;; 문장 또한 매끄럽지 않은 것은 왜일까
3. 작가의 문장력?(혹은 번역가의 능력?)
일단 번역이 엉망이라는건 기본적 맞춤법을 대단히 무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번역가가 작가의 문장력에 추호라도 흠이 나게 했는지 어떤진 몰라도 작가의 글솜씨 또한 그다지 좋지 못한것이 분명하다. 자꾸 비교를 해서 미안하지만 람세스를 보면 일단 1권당 400쪽이 넘고 전 5권인데 방대한 양만큼이나 이야기가 자세하고 작가의 아름답고 독특한 필치가 느껴진다. 인물의 세심한 내면묘사와 그림이 그려지는 듯한 서술등은 그야말로 감동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정말 람세스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이다. 단순 사실을 서술, 심리를 서술하는데 그치고 있다.
종합평 : 성인은 특히 피할 것을 권유(수준에 맞지 않고 재미도 없을것임),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비추(유치함에 치를 떨것임), 람세스 등의 책에 재미를 느꼈을 사람은 초초 비추!!, 조그마한 책의 맞춤법, 오자, 탈자를 찾아도 신고할 사람은 정말 비추!(너무 신고할게 많음)
따라서, 중학교 이하의 학생 중 역사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재미용! [인상깊은구절] X(문장 구조나 모든 것이 너무 단순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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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간은 이성적 동물일까? 감성적 동물일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 라는 말 이후로 인류는 언제나 이성적 동물이다. 철학을 비롯한 과학, 수학 그리고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이성을 두고 인간을 분석하고 인류의 우수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결국 이성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옳음을 추구하고 발전 지향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언제나 인류는 옳음을 추구하지 못하고 언제나 발전 지향적이지 못하다. 인류의 탄생이후로 전쟁은 인간의 또 다른 성별이었으며 파괴는 인간의 사생아였다. 지금도 우리는 종교전쟁을 하고 있으며,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감성적 존재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쉽게 변하지 못한다. 머리로 논리성과 합리성을 따지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감성은 직감적으로 선택을 한다. 이후 이성은 그것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조너선 하이트 교수의 ‘바른마음’에서 이것을 코끼리 등에 탄 기수로 비유하고 있다. 코끼리는 감성(직감), 기수는 이성을 나타낸다. 우리는 기수가 코끼리를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코끼리가 가고자 하는 길로 기수가 인도해 줄 뿐이다. (말이 아닌 코끼리로 비유한 것은 그 만큼 인간의 감성이 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리라.) 따라서 언제나 나는 옳지만 너는 언제나 틀리다. 코끼리에 의해 이미 옳은 길을 안내받은 우리 이성은 거기에 합당한 이유들은 만들어낸다. 당연히 인간 vs 인간 의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국정 vs 검인정, 보수 vs 진보 등은 언제나 내가 옳다는 코끼리에 이끌린 기수들의 싸움인 것이다. 로스 레키의 카르타고 3부작은 같은 역사를 다른 렌즈를 가지고 바라본 인물의 책이다. 앞의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입장에서 스키피오는 로마, 그리고 마지막 편인 카르타고는 로마인과 카르타고인의 관점차이를 다시한번 보여준다. 당연히 로마인은 카르타고를 나쁘게, 그에 반해 카르타고인은 로마인을 안 좋게 표현하고 있다. 후세대인 우리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역사의 승리자인 로마중심으로 쓰여진 책을 많이 접한 나로서는 로마를 비판하는 한니발의 서자인 한노가 불편하기만 하다. 곧 나의 이성은 로마인들의 편을 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카르타고는 유서 깊은 고대 도시이다.... 로마가 단순한 왕정일 때에도 카르타고의 복잡한 국체는 수백 년간 잘 운용되고 있었다.....로마에서는 투표하려면 로마 시민이 되어야 하는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카르타고는 평화로이 입국한 사람은 누구든 언제나 환영했다. p.65-66” 로스 레키의 카르타고 3부작은 흥미 있는 소재여서 산 책이었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는 책이었다. 한니발과 스키피오 두 명장은 무엇보다도 뛰어난 전략과 전술이 돋보이는 인물이라 그림을 첨부한 상세한 전투장면의 묘사를 기대했다. 그림이 없는 간단한 전투장면은 나의 상상력부족으로 새 생명을 얻지 못하고 책 속의 글자로만 사장되어 버렸다. 카르타고 3부작의 2부인 스키피오에서는 한니발의 적수로의 스키피오보다는 그의 성장기를 그리는 것으로 대부분의 페이지를 소모하고 있다. 보통 인간인 스키피오는 있지만 로마의 영웅인 스키피오는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같은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컨셉 덕분에 다시한번 균형적인 시각을 가진 인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
| 알렉산더, 케사르, 나폴레옹, 롬멜로 이어지는 서양의 전쟁영웅중에 절대로 빠져서는 않되는 인물이 한니발이다. 한니발을 전쟁영웅으로서가 아니라 그 잔인하고 처절한 삶에 대해서 이책은 쓰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칼의 노래에서처럼 슬픔이 느껴진다. 그 잔인함때문에 실제 역사적 사실보다도 더 사실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글쓴이가 소설로 이책을 썼기 때문일까? 전투묘사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전투묘사만큼은 역시 톰클랜시의 스릴러를 보는게 좋겠다. 로마인들은 이 한니발보다 더 잔인했다는것인데 그것을 사실대로 말해주는 책들은 별로 없는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