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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에서 신라고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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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조선왕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그에 대한 책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책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선사시대의 무덤인 고인돌부터 시작하고 있다. 전세계 고인돌의 2/3가 우리나라에 있으며 전남 화순, 전북 고창, 강화의 고인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얼마 전 런던에 여행갔을 때 세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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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조선왕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그에 대한 책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책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선사시대의 무덤인 고인돌부터 시작하고 있다. 전세계 고인돌의 2/3가 우리나라에 있으며 전남 화순, 전북 고창, 강화의 고인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얼마 전 런던에 여행갔을 때 세계의 십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면서 스톤헨지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갔었는데 우리나라의 고인돌에 대해서 미안할 정도로 무관심했다. 특히 강화도의 고인돌은 높이 260cm, 길이 650cm로 덮개돌의 무게가 자그만치 75톤인데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그 무거운 돌을 어떻게 돌기둥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는지 설명하는 강화역사박물관의 모형도 재미나다. 덮개돌밑에 받침돌 두 개만이 고인돌인줄 알았더니 앞뒤에 막음돌이 있어서 무덤방을 만들어 그 안에 유골과 부장품을 넣었다는 것도 새로 알게된 사실이다.


   고구려 고분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벽화가 가장 중요한데 중국과 북한 지역에 있는 고분을 답사할 수 없어도 천안 독립기념관에 고구려 전기고분인 무용총, 서울 잠실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 중기고분인 안악3호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후기고분인 강서대묘의 실물모형이 있어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겠다. 강서대묘의 모형은 나도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을 때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본 적이 있어서 기억이 생생하다.

   백제 고분이라면 웅진백제시대의 무령왕릉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한성백제시대의 기단식 돌무지 무덤이 서울 석촌동에 남아있는데 그 규모가 만주의 장군총보다 크다고 하니 가까운 시일내에 꼭 가봐야겠다. 무령왕릉 발굴에 얽힌 비사를 읽으면서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적 문화적 수준이 어떠했는지 마음아프게 돌아보았다. 이런 역사는 신라고분 발굴에서 반복되었으며 문화재발굴을 당시 정권의 업적으로 치장하고자 했던 정치적 의도였음을 알게되었다.

   신라 고분은 특히 곡옥이 달린 화려한 금관과 금동제 신발 등이 출토되어 유명한데 도굴되지 않고 유물이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 돌무지덧널무덤이어서 굴을 파면 위의 돌들이 쏟아져내려 도굴이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아직 대부분의 신라고분이 발굴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니 훗날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신라의 고분은 시대별로 양식의 변화와 발전이 뚜렷하기때문에 모든 답사가 그러하지만 특히 시대순으로 답사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장에서 문화재풍수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풍수지리학의 역사와 형세론, 형국론, 좌향론의 분파를 설명해주어 풍수지리에 대한 개요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조선의 지배계급이 풍수지리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세종대왕의 능을 잘못 쓴 후 문종의 단명과 단종의 폐위가 일어났고, 세조 후손들이 요절하여 세종대왕의 능을 명당인 여주로 옮기자 성종의 치세가 길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풍수지리에 대해 잘 알았으면서도 풍수보다 효행이 먼저라며 아버지인 태종옆에 묻혔던 것이 잘못이라지만 모든 일은 수양대군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니 풍수지리보다는 선을 쌓지 못한 인간의 악업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y***d 2014.10.1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