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넴뷰탈(Nembutal)이라는 약품이 있다. 신경 흥분 전달 억제 약물로 진정 효과가 있다. 이 약물은 안락사에 사용된다. 바르비투르산염(Barbitrurate)인 펜토바르비탈(pentobarbital)의 상표명이 넴뷰탈이다. 이 약품은 존엄사 혹은 조력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혹은 그렇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사형수에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 많은 경우 동물을 안락사시킬 때 이용된다고 한다. (적어도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이 약품을 구입해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멕시코나 중국의 작은 제조업체나 가게를 거쳐 구입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물론 당국은 그 거래를 예의주시하면서 포착되었을 때는 경찰이 수색하여 압수한다. 그 밖에도 다른 수단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들이다. 도구를 이용하는 방법들인데, 이 책에서 제시되는 것들은 모두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방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그런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당연하다. 죽음이 당면한 상황에서, 혹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 고통스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간절하게 원할 수 있는 선택처럼 여겨진다.
흔히 ‘안락사’라 불리던 이 죽음의 명칭은 지금 다양하게 불린다. 가장 대중적인 것은 ‘존엄사’인 것 같고, ‘조력사’, ‘지원사’ 등으로도 불린다. 이런 죽음의 명칭은 이 책 게이티 엥겔하트의 『죽음의 격』에서도 모두 등장한다. 그런데 조금씩 의미도 다르지만, 받아들이게 되는 느낌도 다르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른 명칭도 있고, 이 죽음에 대한 신중한 태도 때문에 붙여진 이름도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죽음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발적 의사에 의한 이성적 죽음’이라는 것이다. 나는 굳이 ‘자살’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 않은데, 이는 자살이라는 말이 가진 파장 때문에 그런 것이지 사실 결국은 스스로 죽는 것이므로 자살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쓰는 이 죽음은 분명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자살과는 다른 류의 죽음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왔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어서가 아니라 삶에 관한 이야기는 늘 죽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내와 가끔 하는 얘기, 코에 줄을 끼워서까지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는 얘기는 죽음에 관한 깊은 생각과는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나와 아내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되었다.
이제 논의를 좀 더 진전시켜보자. ‘코에 줄을 끼우는 것’을 것은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문제처럼 보인다(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 논의는 다루지도 않을 정도로). 이미 그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내 삶이 6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게 분명해지면, 혹은 내가 치매로 죽음에 관한 생각마저 지워져 가는 것이 확실해졌다면, 정신질환으로 죽음보다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면, 즉 필연의 죽음에 가까워졌거나 혹은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상황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은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
저자는 기자로서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고 관찰한 것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적겠다고, 그래서 의료, 법, 역사, 철학적 논의를 포함하지만 무엇을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저자의 방향은 있다. 하지만 어느 지점까지 찬성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죽음까지를 도와주고 인정하느냐의 문제를 두고 의사나 법, 일반인들 사이의 논란, 논쟁이 있다. 어떤 형태의 자살도 절대 안 된다고 격렬하게 주장하며 ‘죽음의 의사’를 비난하고 고소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미국 여러 주의 법이 인정하는 대로 삶이 6개월 이하로 남았다는 것을 복수의 의사가 보증하는 경우에만, 그리고 의사결정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때에만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나아가 치매의 경우에는 그 이전에 그것을 원했을 때, 어느 상황에서는 그런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나이가 많지 않더라도 도저히 삶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경우, 정신과 치료를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받더라도 효과가 없는 경우에는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는 자신이 원한다면 그 방법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당히 급진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다(이 경우들이 이 책에서 각각의 챕터가 되고 있다). 저자는 그 어디쯤에 자신의 입장이 있음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내세우지는 않을 뿐이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태어나는 것은 내 뜻대로 아니었다면 죽는 것은 내 의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 죽겠다고 미리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이 책에는 80세가 되면 죽겠다고 결정하고 실제 실행한 사람도 나온다), 정말로 내가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로 한정되어 있다는 상황이 분명해지면 내 주변을 최대한 정리한 후에는 내가 결정하고 싶다. 혹은 내가 내 스스로 의사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예견된다면 미리 어떤 결정을 전달하고 싶다(이를테면 내가 내 아들 딸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게 가끔이 아니라 영속적인 것처럼 보인다면 어찌 해달라고).
이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이는 거꾸로 삶에 관한 생각이다. 죽음이 내 삶을 중지시키기 전에, 혹은 죽음과 같은 상황이 오기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많은 나라에서 이 스스로 선택하는 삶의 중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가를 보니, 책 뒤표지에 의사 남궁민이 쓴 대로 “우리나라는 여기서 단 문장의 논의도 시작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딱 그대로란 걸 알게 되었다. 여전히 연명치료가 옳으니 그리니 정도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단 얘기다. 어떻게 죽느냐는 어떻게 사느냐 만큼 중요한 문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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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난 후 이 책의 제목 '죽음의 격'은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격조 있는 죽음 혹은 격식 있는 죽음이라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죽음의 자격이란 의미이다.
이 책은 안락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 전 세계에서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과 안락사를 찬성하는 전문가와 반대하는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민감한 문제다. 보통 안락사를 인정하는 국가에서도, 예를 들어 죽음이 6개월 정도 남고 자존감을 헤칠 정도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안락사를 허용한다. 하지만, 왜 6개월인가? 자존감을 헤칠 정도의 고통의 기준은 누가 판단하는가?
책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죽음에 찬성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명을 헤치는 것은 분명히 나쁜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생명의 존엄을 헤치지 않기 위해 실시하는 죽음은? 더구나, 사회가 당신의 목숨은 소중하기 때문에 버리면 안돼, 라고 말하기 전에 그 소중한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했는가? 예를 들어 호스피스 지원을 위한 노력을 국가는 얼마나 했는가?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고통 받는 사람은 고통으로부터 자신의 자존과 자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고 한다. 하지만, 칸트의 말대로 죽음 자체가 한 인간의 자율을 헤치는 행동은 아닌가? 더구나, 안락사나 조력사나 합법화되었을 때, 자본주의는 인간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돈 보다 죽는 데 드는 비용이 적다고 판단할 위험은 없는가? 조력사가 인정됐을 때 장애인이나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읽는 내내 불편했다.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지만 많이 불편했다. 고통 받는 수많은 환자들과 인터뷰, 그들의 고통에 관한 진술을 읽는 게 힘들었다. 나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수행을 열심히 해서 내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곡기를 끊고 '좌탈입망'하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내가 먼저 안다. 암, 치매, 정신병. 누가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가?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안락사 혹은 조력사가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가능한가? 미국도 힘들다는 데 한국사회에서 가능한가? 아무리 한국사회가 인간의 목숨마저 이윤으로 보는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한국 사회가 죽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가? 한국 사회는 가난하면 살 자격이 없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공식적으로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논의할 만큼 열린 사회인가?
쓰다 보니 두서가 없다. 잠이 부족하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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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매일 죽음을 생각하고 살기는 어렵다. 그래도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내 죽음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무병으로 죽는 것이다. 아파서 죽고 싶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존엄사는 어쩌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미래에 지병이 생겼을 때 존엄사가 허용된다면 이를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책에서도 언급되듯 존엄사법이 통과되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나도 이에 동감하는 바이다. 잘못하면 노인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 하지만 존엄성있게 죽고 싶다는 말에는 매우 동감한다. 아파서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이 결국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내가 아는 내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이므로. 이 책은 저자가 존엄사를 원하는 사람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현대의학, 나이, 신체, 기억, 정신, 자유의 소제목으로 진행되고 있고, 평온한 죽음을 바라지만 존엄사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네 명의 환자와 존엄사법 안팎에서 죽음을 돕는 두 명의 의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과연 한국에서 존엄사가 가능해지는 날이 올까. 존엄사에 부정적이지 않은 나도 명확히 입장을 밝히지 못하겠다. 최근 '존엄사 심사위원회'를 거친 뒤 의사가 존엄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력존엄사법안이 발의되었는데 혹여 법 제정 후 사회적 약자의 죽음을 방치하는 제도가 될까 두렵다. 아무쪼록 존엄사가 남의 일이 아닌 만큼 죽음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케이티엥겔하트 #죽음의격 #존엄사법 #존엄사조력법 #죽음의권리 #남궁인의사 #추천도서 #은행나무 #신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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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는 개한테는 약물을 주사해 빠르게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며서 사람은 마지막까지 고통받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개를 죽이는 일은 자비를 베푸는 행동으로 보는지도 이상했다. 개를 부러워하는 것 역시 이상했다! 베티는 죽을 권리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공유하는 구호를 좋아했다. ”나는 차라리 개처럼 죽겠다.“
책의 서두는 저자가 조력존엄사를 준비하는 고령의 베티라는 여성과 나눈 대화가 소개된다. 생의 말기에 고통스러워 하는 반려견을 편안한 죽음으로 이끄는 약은 바르비투르산염인 펜토르바르비탈이다. 넴뷰탈이라는 물약으로 시판되는 이 약은 환자가 마실 수 있고 충분힌 양을 마시면 잠에 빠진다. 5~10분 안에 잠들도 머지 않아 약이 뇌에서 호흡을 조절하는 부분을 억제하여 호흡이 느려지다 멈추게 된다. 하지만 이 약을 유럽제조업체가 미국 판매를 제한하고 허가받은 약값이 치솟고, 대체약으로 나온 세코날까지 캐나다 제약회사에서 인수하며 값을 2배로 올리면서 편안한 죽음조차도 가난한 이들에게는 사치가 된다.
'부유한 환자가 원하는 죽음에 먼저 도달하고 가난한 사람은 원하지 않아도 더 살아야했다'70p는 지적은 죽음조차도 탐욕스런 자본에 휘둘리는 현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6년에 걸친 취재끝에 조력존엄사를 돕는 의사 2명과 각기 다른 이유로 조력존엄사를 희망하지만 현실적인 법규정으로 소망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조력존엄사가 마지막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권리라는 측면 외에도 법으로 세상에 나올 경우 사회적 약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여지를 줄 수 있다는 것도 경고한다.
어찌됐든 사회는 조력사를 환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로 보는 의료모형에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권리라는 권리모형으로 이행해가게 될 것 이다.
여기에는 베이비붐세대가 회색해일로 몰려드는 미국의 고령사회에 주는 경제적 압박과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소망이 맞물려 새로운 시장으로 왜곡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 리서치 <여론속의 여론>팀에서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력 존엄사 및 그에 따른 법제화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조력존엄사에 82% 찬성의견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접고서 나의 임종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존엄하게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은 묘하게 위안을 준다. 책에는 스위스 조력 존엄사 비용과 진행 과정도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협찬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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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격 ( ??? )? 서평 #도서협찬 인간은 누구나 한번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하고 글을 쓸수는 없죠. (죽음을 경험하고 썼다는 글은 안읽습니다. ) 그러면 인간은 죽음에 대해 무엇을 논해야 하는가, 고민해야 합니다. 이 책은 현대 의료, 나이, 신체, 기억, 정신, 자유라는 주제로 존엄한 죽음에 대해 다룹니다. 남궁인 의사, 리처드 도킨스의 추천사가 있는 은행나무의 이 책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죽음에 대한 관점을 다시 심어줍니다. 최근에 자살을 자유 죽음이라 칭한 책도 만족스럽게 읽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제대로 된 죽음에 대한 책을 만난것 같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음에 대한 책은 많지만 제대로 된 책을 많이 만나지 못했고 원래 추천하던 책들도 내 기준 완벽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은 드물었어요. 죽음의 순간까지 나는 나로 살 수 있는 존엄한 죽음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이 이 책이 다루는 주된 주제에요. 남궁인 의사의 추천사중 뼈맞은 문장이 있었어요. 《확실한 점은, 우리나라는 여기서 단 한 문장의 논의도 시작하지 못했다.》 저는 자살을 옹호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 죽을 것인지, 선택할 권리가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삶의 무게를 개인에게 주었다면 죽음의 선택도 개인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이 말을 사실 우리나라에서 하기는 어렵습니다. 소극적 안락사만이 허용된 우리나라에서 적극적 안락사와 자살을 옹호한다는 것은 비관주의라고 손가락질 받기 아주 쉽죠. 최근에 마음이 누구러진 것은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 책의 트렌드에서 조금이나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조력자살이야기들이 담겨있어요. 죽음이라는 주제 아래에서는 감정적인,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 아닌 이성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이 오히려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병에서 비롯된 고통을 완화하고자 의료적 도움을 받아 죽기를 요청하는 것과 정신질환에 의한 증상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깊이 고려한 판단을 존중하는 것과 부지불식간에 그 사람이 앓는 병적 상태에 휘말리는 것을 어떻게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죽기를 요청했던 사람 대부분이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것도 심지어 앞으로 느낄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압도적 다수가 생애말기의 ‘자율성 상실’을 가장 우려했다. 그밖에 ‘존엄성 상실’ ‘즐거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 상실’’생체 기능에 대한 통제력 사실’등을 걱정한다.? ?사람들한테 안 된다라고 말하는게 불편합니다. 자의적이라는 점이 특히 편치가 않아요. 세상에서는 열여덟 살에게 살인하는 법을 가르쳐 아프가니스탄에 사람을 죽이라고 보내는데, 우리 사회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동시에 ‘그렇더라도 안돼! 자신을 죽이는 것만은 허락하지 않아! 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