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여성을 두고서 남성에 빗대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말을 무색하게 하는 여성이 있다. 1984년 1월 1일부터 76일 동안 백두대간 단독종주에 성공했고, 1986년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해발 7455미터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오른 여자이다. 바로 남난희라는 여성이 그녀인데, 그녀는 이후 1989년에 '금녀의 벽'이라고 불리는 설악산 토왕성 빙벽 폭포를 두 차례나 등반하기도 했다. 그러니 '여자는 약하다…'는 말이 그녀에게는 좀체 어울릴 것 같지가 않다. 이미 〈하얀 능선에 서면〉이란 책을 펴 낸 바 있는 그녀가 최근 《낮은 산이 낫다》(학고재·2004)는 또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산 아래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제야 산이 보인다. 그동안의 산이 항상 목마른 열망 덩어리였다면, 이제 비로소 편안한 산을 만난 것이다. 그 동안의 산은 오로지 오르는 것만이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오르지 않아도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다."(10쪽, '입산'중에서) 이 책은 여성산악인이라는 당당하지만 버겁기도 했던 삶을 살았던 그녀가 그 모든 짐들을 벗어버리고, 1991년 강원도 정선으로 들어가 삼 년 동안 '정선자연학교' 교장으로 지냈던 삶과, 이후 지리산 화개골의 맑은 물과 공기, 자연을 담은 차와 발효 식품을 만들며 지금껏 소박하게 살고 있는 '자연의 삶'들을 담아 내고 있다. "자연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풀이 사람 키보다 높게 자란 밭을 가는 일과 식단을 바꾸는 일이었다. 그 동안은 직원이 시장을 봐오면 도엔 아줌마 한 분이 식당일을 도맡아서 하였다. 명색이 자연학교라면서 조미료를 얼마나 썼는지, 음식물 쓰레기는 또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애정 없이 만들어진 음식은 버려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일단 식당에 있는 모든 인공 조미료와 인스턴트 식품부터 버렸다."(46쪽) '정선자연학교'라고 하니 무슨 거창한 학교처럼 대단한 것 같지만, 본래 그 학교는 산에 함께 다니던 친구 하나가 폐교를 임대해서 남난희로 하여금 '여름 한 철 봐주기 식'으로 자리를 잡도록 해 주었던 곳이다. 이른바 도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여름 한철에 잠시 농촌과 자연을 배우고 익히며 또 마음껏 뛰놀다 갈 수 있는 그런 학교였던 것이다. 그곳에서 명색이 교장으로 있었던 남난희는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챙기거나 사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식단을 짜, 음식을 준비하고, 나물을 캐서 반찬에 올리는 일 등 땀을 흘려야만 하는 실제적인 일들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시간이 되는 한 자연학교에 온 학생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들풀을 뽑고, 돌탑을 쌓고, 불놀이도 하고, 맨발로 푹신한 땅을 밟는 등 함께 뒹굴기도 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불어닥친 태풍 루사로 인해 그녀가 여태껏 쌓아 올렸던 자연학교는 한순간의 물거품처럼 폐허더미로 변해 버렸다. 이 년 반 동안 쏟았던 정성이 한 순간의 수해로 인해 결실도 맺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 후 그녀는 산악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지리산 청학동에서 '백두대간'이라는 전통 찻집을 하기도 했는데, 그녀는 그 찻집의 실내 장식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불현듯 대동여지도 생각이 났고, 이우형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대동여지도 한 점을 그 찻집 천장에 온통 붙였다고 한다. 그 대동여지도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는데, 그 후 그녀는 스님이 된 남편의 도움을 받아 아들 기범이와 함께 지리산 화개 장터 위쪽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껏 그 흙집에서 증제차와 덖음차 같은 다양한 녹차를 만들기도 하고, 가죽나물이나 엄나물 등으로 장아찌를 만들기도 하며, 그리고 '남난희 표 된장'을 직접 담그는 등 재미있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얼마나 행복한지. 세상에 그 어떤 향수가 나무 타는 냄새에 견줄 수 있을까 싶다. 여름에는 대문을 걸어 잠그기만 하면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 된다. 맨발로 마당을 서성이거나 아예 마당에 퍼 질러 앉아서 땅기운을 그대로 받으며 풀을 뽑기도 하고, 더우면 시원한 우물물로 몸을 식힌다. 그리고는 그냥 발가벗은 채로 마당을 서성이며 몸을 말리기도 한다. 대문을 활짝 열어 두어도 들어올 사람은 없다."(248쪽, '하산' 중에서) 그곳 화개골에서 언제부터인가 자신도 모르게 남성용 사각팬티와 러닝을 즐겨 입게 되었다는 남난희. 남성 같은 강인함을 자랑하기보다는 옷을 입지 않아도 살 수 있는 편안함 때문에 그렇게 입고 산다는 남난희. 가릴 것이 없는 진실한 자연인의 살가운 이야기가 과연 어떤 것인지, 그녀가 살았던 이야기 속으로 한 번 푹 빠져 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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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 박영석, 엄홍길 등 걸출한 산악인을 배출한 우리나라에는 그들보다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크게 주목받는 여성 산악인들이 있다. 세계 7대륙 고산등정을 마치고 산악 그랜드슬래머로 발돋움하고 있는 오은선씨나 고미영씨가 바로 그들이다. 타고난 심폐기능과 뛰어난 클라이밍 기술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그러나 지난 1980년대와 90년대에 주목받은 여성 산악인이 있다면 남난희씨를 손꼽을 수 있다. 특히 그에게 타이틀처럼 따라다니는 겨울 백두대간 76일 단독종주와 여성 세계최초 강가푸르나봉 등정, 여성최초 겨울 설악 토왕폭등정 등은 그가 여성 산악인으로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겨왔는 지를 잘 알려주는 쾌거들이었다.
그가 벌써 50대에 들어섰다. 전문적인 산행을 하지 않는 그는 이제 산을 내려왔지만 산을 떠나지 못하고 산자락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파란만장한 삶이다. 여상을 나와 회계사무소에서 착실하게 일하며 저축을 하여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춥고 힘들고 어려운 산꾼을 택했다. 그렇게 백두대간을 종주했고 산악인으로 살아갔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여 아들을 갖게 되었으나 아이 아버지는 다시 속세를 떠나고야 만다. 출가를 한 탓이다.
산을 내려온 남난희씨는 강원도 정선의 한 폐교를 개축하여 만든 곳에서 자연학교의 교장을 맡아 진정한 자연이 무엇인가를 아이들에게 몸으로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러나 한때 정선을 휩쓴 수마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 버티지 못하고 다시 지리산 자락 화개면에 정착하여 메주를 쑤어 된장을 만들며 살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산과 결혼한 사람이다. 높은 산에서는 내려왔지만 여전히 넉넉한 지리산 자락에서 산을 바라보며 산의 품에 안겨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그가 1994년 9월 지리산 청학동에서 2년여 백두대간이라는 전통찻집을 할 때부터 정선자연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던 정선시절 그리고 결국 화개면으로 돌아간 이후까지의 소소한 일상을 솔직하게 글로 옮긴 수필이다. 글을 읽다보면 그가 진정한 산꾼으로 거센 바람 몰아치는 산을 누비던 산악인이 맞나 할 정도로 소심하고 세심한 아줌마의 모습을 발견하여 놀라게도 되고, 진정으로 자연과 생명을 아끼는 자연주의자로 탈바꿈한 그녀에게서 자연의 경외감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
그는 아직도 산에게 감사한다.
산에게 호된 꾸지람도 듣고 혹독한 벌도 받았지만 결국 그를 포근히 감싸준 것은 산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산자락에서 나고 자란 아들 기범이는 어릴 적 자연과의 교감을 하면 자라났다. 새벽에 창문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면 기범이는 "야! 형이 조금 더 자고 나갈게, 조금 있다 놀자."고 하였단다.
그는 비로소 땅에 감동한다.
- 땅은 위대하다. 땅만큼 감동을 주는 것은 없다. 씨앗을 넣고 풀 두 번 맨 것이 그들에게 해준 내 정성의 전부였는데 내게 풍성한 결실을 돌려 주었다. 이웃집 콩알의 삼분의 이 크기 밖에 안되지만 내게는 까만 보석처럼 매우 영롱하고 소중한 알맹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땅의 위대함을 보고 배운다면 참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모두들 최선을 다할 것이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것이고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고.-
산악인에서 자연주의자가 된 그의 글들을 읽으며 그에 비해서 한없이 많은 것을 가진 우리가 늘상 물질결핍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자연에 대한 문명의 이기주의에서 사는 우리가 앓고 있는 질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사진을 찍었다는 이한구 씨의 사진은 한 가지 사물을 열 가지로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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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지은이 남난희님에 대한 소개의 일부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산악인이다. 1891년 한국등산학교를 수료한 다음, 1984년 1월 1일부터 76일 동안 백두대간 단독 종주에 성공했다. 1986년,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해발 7455미터의 히밀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올랐고, 1987년에는 설악산 토왕성 빙벽 폭포를 두 차례나 등반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1991년 도시 생활을 접은 후, 강원도 '정선자연학교'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에.. 그런데 왜 제목에 '낮은 산이 낫다'일까? 이 책에는 산행에 대한 이야기보다 지은이 개인적인 이야기와 생각이 담겨있다. 일종의 생활 산문이다. 도시 생활을 접고 결혼후 남편을 따라 간 지리산에서의 생활, 그리고 정선에서의 생활, 아들 기범이, 그리고 주변에 펼쳐지는 자연과 동식물들에 대한 이야기, 젊은 날의 고뇌들이 담겨 있다. 겨울에 76일 동안 백두대간 종주를 하시고 세계 최초로 해발 7455미터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에 오른 분이 이렇게 소박한 생활을 즐기시고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책을 많이 읽으시고 글을 잘 쓰실지 몰랐다. 의외였다. 그리고 지은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기록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자유인'을 떠올렸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왜 제목이 '낮은 산이 낫다'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젊을 때보다 나이든 지금이 더 좋다는, 이제는 산을 오르지 않고 그저 바라만 봐도 좋다는, 등산보다 입산이 좋다는 지은이의 태도로부터 자유인이 느껴진다. 지은이는 어릴 적부터 잘난 체 하기보다는 양보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속앓이를 했을 것 같다. 누구나 차이는 있겠지만 젊은 시절에 고민과 갈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나이들어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듯한 걸로 잠못이루고 고민하고 눈물흘리고 가끔 자신을 학대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끓어오르는 화산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성장을 위한 고통일 수 있다. 지은이는 그 성장통을 심하게 앓은 것 같다. 지은이 남난희씨는 젊은 시절에 자살을 생각하고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이란 책까지 읽었다고 한다. 죽은 후에 시신이 망가지지 않는 자살방법들을 알아봤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산이 지은이를 선택했고 지은이도 산에 끌리게 된다. 그리고 겨울에 76일 동안 백두대간을 종주하게 된다. 이 종주는 지은이에게 자살의 차선책이었을 것이다. 당시 얼마나 치열한 고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은이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그 치열한 고민에 대한 위로를 얻었던 것 같다. 젊은 날의 활화산은 산에 대한 열정으로 변했고 그 열정 덕분에 지은이는 대단한 일들을 해낸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지은이의 그 활화산은 잠잠해졌고 평온해진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지리산에 내려와 살고 아들 기범이를 낳는 자연분만 출산을 경험하게 된다. 더 자연에 가까이 가게 되고 자연을 닮아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진다. 덜 가지려고 한다. 이제는 가지고 싶은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단다. 스스로 자신을 부자라고 말한다. 이제는 산을 오르지 않고 바라만 봐도 기분좋단다. 지은이는 비우고 버린만큼 그 무엇을 얻은 것 같다. 결혼한 것도, 도시 생활을 버린 것도, 정선자연학교에 갈 때도, 거기서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올 때도 지은이의 의지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변화와 사건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순응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도피성 결혼은 불행을 낳았지만 잘 치유된 것 같다. 지은이는 도시생활을 접고 지리산 자락에 내려와 살면서 '백두대간'이라는 찻집을 운영한다. 대동여지도에 관심이 있었던 지은이는 그 큰 지도를 찻집에 옮겨놓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천장에 붙여놓기도 한다. 멋질 것 같다. 대동여지도가 천장에 있다니! 그러다가 정선자연학교 교장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강원도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기범이를 키우는 재미에 산다. 그런데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해 조양강이 불어나 강가에 있는 학교를 덮치고 만다. 그 후로 학교를 접고 다시 지리산 화개골로 터를 옮겨서 녹차, 된장 등을 만들며 자연속에서 지낸다고 한다. 이 책의 소제목 중에 하나가 '따고 덖고 비비고 말리고'다. '덖다'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찻잎을 덖는다'란 어떤 뜻일까? 이 책 곳곳에 지은이의 성향, 성격이나 가치관이 드러나 있다. 지은이는 목욕을 좋아하는데 목욕탕에서 빨래하는 아줌마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리고 겨울에 강 얼음을 깨서 잠자는 물고기를 잡거나 강가에 수석을 주우러 오는 것, 그리고 정선자연학교 안에 고로쇠나무 수액을 빼러 오는 것을 싫어한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키고 남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문장이 가끔 보인다. 이 책에 있는 아버지의 최후의 모습 속에 있는 선비같은 아버님의 모습이 어느 정도 지은이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 지은이는 자연을 보는 감수성이 큰 것 같다. 정선에서 마루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을 살아 있는 액자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까치들의 집짓기를 유심히 보기도 하고 태풍이 휩쓸고 간 후에 식물들의 씨앗만들기를 보면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지은이는 봄에 한꺼번에 생명을 잉태하는 땅에게 출산의 고통과 피곤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명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땅은 기분좋을 것이라고 한다. 지은이가 출산을 해본 사람이라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은이는 집안에 거미, 벌 등이 들어와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지붕에 새집이 있고 학교종 안에 벌집이 있다. 잡초를 뽑아도 그 잡초의 삶을 생각하여 뿌리까지 뽑지 않는 것이 지은이의 마음이다. 그런데 지은이가 유독 가까지 하기 힘는 자연의 존재가 있는데 그건 뱀이다. 지은이는 뱀을 무서워하고 뱀을 본 날은 놀라서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지은이는 가축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나 닭을 키우기는 했으나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키우다가 주위사람들에게 줘버렸다. 가축들에게 시중드는 것 같아 불편했고 가축들에게 사랑을 못 주는 자신을 알기에 가축들 생각해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이다. 이 책에는 아들 기범이에 대한 얘기가 있다. 기범이는 어릴 때부터 자연속에서 커서 꽃, 나무, 새들과 말을 했다고 한다. 어린 동심이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지은이는 기범이에게 일부러 글을 늦게 가르쳐줬다고 한다. 글을 늦게 알면 좋은 점이 있나? 기범이는 언어능력이 좋다고 하고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을 만들기도 하여 지은이를 놀래킨다. 이혼 후에 기범이는 지은이에게 소중한 가족일 것이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진짜 부자라고 한다. 진짜 부자란 필요한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은 오히려 그 많은 돈 때문에 근심하게 된다. 비우고 버린 후에 텅 빈 상태, 그 안에 자유로운 삶이 있지 않을까? 진정 부자는 이런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지은이는 이제 이런 사람이 된 것 같다. 자연을 느끼고 즐기며 소박한 생활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래서 낮은 산을 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것 같다. 볼 수 있는 만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것이 덜 가진 것이 더 편안하고 자유롭고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낮아지면 보이지 않던 낮은 세상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지은이의 젊은 시절에는 높은 산들만 보였겠지만 나이든 지금은 이제 낮은 산들까지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지은이는 나이든 지금이 더 좋다고 한다.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 낮은 산의 아름다움이 보이는 게 아닐까? 신선의 경지란 이런게 아닐까? 편안함, 평화로움, 한가로움.. 지은이가 만든 녹차와 된장을 맛보고 싶다. 지리산 어느 자락에서 정성을 들여 녹차와 된장을 만들고 그것들을 지인들에게 나눠줄 생각에 기뻐할 지은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책의 순서가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어서 가끔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이 책에 가끔 있는 사진들이 참 좋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삶은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것이 없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또 어느 곳에도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게 되었다. 물기가 다 빠진 풀처럼 가벼운 마음이다. 참 좋다. (13쪽) 아예 우리들 씨를 말려라. 이제는 욕심 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이 몸을 줄게. 언젠가 당신 인간들도 엄청난 일을 겪을 것이다. 제발 지금부터라도 정신 좀 차리세요. (64쪽) 이곳에서 살다 보니 농사짓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조금은 알 듯 하다. 땡볕 아래서 밭매기를 하지 않고 편하게 잡초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아는데, 땀을 흠뻑 흘리며 풀을 뽑는 고생은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농산물이 깨끗하고 충실해야만 제값을 받을 수 있으니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를 안 칠 수 없어서 그렇게 밖에 못하는 것이다. (69쪽) 의사란 누구인가,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의사가 왜 출산을 맡아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한심한 것은 출산을 앞둔 산모나 출산을 한 산모를 '환자'라고 부르는 일이다. 예를 들자면 간호사가 "남난희 환자 보호자 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이를 출산하는 사람이 왜 아픈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도통 모른 일이다. (97쪽) -> 오, 신선한 시각. 산모를 환자라고 부르는 건 아닌 것 같다. 애 낳는 것과 병 고치는 것은 다르기에. 아이와 나 둘이서 맞절하는 날이 일 년에 몇 번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연초와 두 사람의 생일날 우리는 맞절을 한다. 그리고 서로 하고 싶은 말과 바람을 이야기한다. 어떤 때는 아이가 감동하여 울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가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기범이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인데, 맞절을 하는 순간은 모두 경건해지고 엄숙해진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126쪽) 홀로 된 이후 나는 줄곧 편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물론 남자 대신 자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나를 지원해 준 덕분이다. 어떤 때는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홍신자 씨의 책 제목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처럼, 그동안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130~131쪽) 세상에 진 이 빚을 어이할꼬. 개중에는 내가 알고 진 빚도 있고, 모르고 진 빋도 있다. 모르고 진 빚이라도 갚을 일은 있을 것이다. 꼭 받은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나 자연에 환원하는 방법도 있을 테니까. 거창한 구호나 설명이 없어도 될 것이다. 어딘가에 그 방법이 있을 것이다. 가장 소박하게, 가장 순수하게, 가장 작게. 어딘가에. (146쪽) 언젠가 뵈었던 스님은 당시 십육 년째 묵언중이라고 하셨다. 왜 묵언을 하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총이나 칼, 창만 무기가 아니라 말도 무기라는 것이다. 총칼 따위는 직선으로만 공격하지만, 말은 돌아서도 가고, 되돌아오기도 하고, 부풀려지기도 해서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148~149쪽) 1984년 1월 1일부터 3월 16일까지 칠십육 일간 겨울 백두대간에서 목숨을 내걸고 혼자 몸부림 쳤던 것을 어느 죽음에 견줄 수가 있을까. 물론 죽지 않은 자의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죽음보다 더 처절한 날들이었다. (159쪽)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다'는 진리는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세월이 가면서 그만큼 늘어가는 느긋함이 참 좋다. 나이를 괜히 먹는 것이 아니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빈말은 아니었나 보다. 내가 만약 나이를 먹지 않고 아직도 이십대나 삼십대라면 지금의 여유로운 행복감을 맛보지는 못할 것이다. 젊음을 달구었던 열정의 불꽃이 온몸과 마음을 활활 태워 재만 남아 있지 않았을까? (162쪽) 그 엉성한 집에 달아낸 마루의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살아 있는 액자였고, 사계절이 바뀌는 색깔과 풍경에 참 많이 감탄하며 살았다. 가을 창 밖의 풍경은 붉은 수수밭이 강가에까지 이어지고, 눈에 보이지는 안지만 강의 여울물 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 듯하였다. 그 너머로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 능선은 시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고 붉은 수수밭 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노오란 감국 향기가 닫아 둔 문을 뚫고 들어와 집 안에 진동하였다. (179쪽) 둘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 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227쪽) 그들도 자신들만의 계획과 약속, 규칙이 있을 것이다. 한 알의 호박씨와 한 포기의 호박 모종이 호박 몇 개를 생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약속이 있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더 부지런히 일했을 것이다. 사람도 그들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238쪽) 산을 전전하며 정착한 화개의 집. 볕 좋은 날 마당에 서서 멀리 지리산 자락을 보면 장독처럼 둥근 마음이 된다. 산을 내려온 뒤에 맛보는 평안한 일상. 그래, 낮은 산이 낫다. (248쪽) <단어> 올동박이: 강가에 피어나는 올동박이, 정겨운 오일장 풍경, 물동이 장구에 맞춰 찢어질 듯 고음으로 부르는 아라리, 막국수와 콧등치기 국수, 감자 옹심이, 막 나와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와 메일묵...... (12~13쪽) 유복자: 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난 고모는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유복자가 되었다. (29쪽) 왕 버지기: 무언가 잘못을 하여 엄마에게 매를 맞았고, 엄마가 무서워서 울지도 못하다가 엄마가 조금 멀어지자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도 난다. 언니는 그 소리가 왕 버지기 터지는 것 같았다고 기억하였다. (32쪽) 얼레지: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무덤 가는 야생화의 광장이었다. 물론 겨울에도 서리꽃, 눈꽃, 얼음꽃이 피었다. 초봄에는 할미꽃이 무리 지어 피어나고 몇 뿌리 안 되지만 얼레지도 있었다. 노랑별 꽃인 양지꽃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수를 놓을 때면 무덤 가에 무덤덤하게 서 있던 조팝나무와 찔레나무도 때를 놓칠세라 흰 꽃으로 자신을 과시하였다. (170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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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지리산에 푸욱 빠져서
격주 휴무가 시행되기도 전이었던 2000년 후반부터
이틀이라도 시간이 나면 줄기차게 산으로 향했다.
그 땐 KTX 도 운행되기 전이라
금요일밤이면 구례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자신들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큰 배낭을 맨 등산객들이
서울역사안에 많이도 있었는데...
그 당시 알게된 지인에게서 소개받은 책...
뭐.. 반드시 읽어보라는 추천도서는 아니었지만...
이런 책이 있다.. 는 정도의 소개?
이 책을 읽은 오랜 이후
TV 인간극장에도 남난희씨가 한번 소개되었다.
뭐 회사일이다 뭐다해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지금도 책장에 꽂혀
시간만 나면 지리산으로 들었던 젊은 날의 나를 많이 생각나게 하는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