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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의 열혈 독자라면 샐린저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계속 소개되는 것이 무척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샐린저는 과작의 작가인데다 그의 기인적인 생활에 대한 가쉽과 마크채프먼 같은 암살자들과 연루된 사건들 때문에 정작 샐린저 작품자체에 대한 정보는 오히려 적은게 아닌가 싶다. 나도 <호밀밭의 파수꾼>의 열렬한 팬이었지만 그것에 매혹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샐린저의 다른 작품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목수들아 대들보를 올려라>는 샐린저의 마지막 작품이지만 그 이전의 작품들(<아홉개의 이야기>에 실린 단편 중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과 <프래니와 주니>)과 연장선 상에 있다. 이 책 표지의 광고대로 샐린저 평생의 역작인 '글래스 가족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은 시모어라는 인물이 신혼여행 첫날 자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샐린저 특유의 냉소적이고 담담한 어투는 시모어가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 그것을 끝까지 감춘다. 하지만 시모어가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우리는 그의 순수한 영혼을 보게 된다. 반면 그의 아내와 그녀의 부모와의 대화에서는 그들의 속물성이 비추어지는데, 결국 그 둘의 미묘한 어긋남은 시모어를 절망으로 이끌고 그를 자살로 이르게 하는 것이다.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는 이 시모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이한 점은 시모어의 동생 버디의 시점에서 쓰여진 것인데 시모어가 왜 자살하게 되었는 지를 조금씩 탐구해 간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심리적인 분석이나 비판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시모어가 버디에게 했던 말들과 편지, 버디가 시모어의 결혼식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일화 그것이 전부로, 그에 대한 감상들은 전무하다.
평범한 독자라면 '시모어가 왜 자살했을까?'라는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의 절망감이라는 건 언뜻 보아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TV에서 방송되고 있는 '자살하지말자'라는 공익광고의 실례처럼, 사업에서 실패한 것도 아니고 대학에서 낙방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시모어의 절망감은 그런 것과는 종류가 다르다. 그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깊은 절망감은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와 그것의 어긋남, 그리고 그들과의 이해의 불가능성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챕터는(이 책은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와 <시모어 서문>이라는 두개의 중편으로 된 연작소설이다) '서문'이라는 말대로, 시모어의 진정한 인간됨을 묘사하기 위한 준비운동과 같은 작품이다.
재밌는 점은 '서문'이라는 개념을 작품으로 시도했다는 점이고, 또한 '시모어가 누구인가?'라는 표면적인 주제를 제시해 놓고선 화자인 버디는 계속해서 그 주제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발표 중 주제와 다른 이야기를 하면 '이탈'이라고 소리지르며 발표자를 겁먹게 하는, 그런 비인간적인 분위기를 비판하던 것처럼, 샐린저는 시모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스타일을 통해서 샐린저의 화법은 오묘한 효과를 낳는 것으로 보인다.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듯, 본 이야기와 이탈된 이야기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미묘한 느낌을 캐취할 수 있는 것이다.
샐린저는 '시모어'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가지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늘여놓는다. 그것은 우리가 캐릭터로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를 파편화 시킴으로써 또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는 시도이다. 이 책을 통해서 그것을 발견한 독자라면 축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이 독특한 화법 때문에 그것을 발견해 내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야기가 분산되어 있다는 것은 집중해서 책을 읽는 그 자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샐린저의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읽고, 그의 맛깔스런 화법에 적응한다면 분명 이 작품은 샐린저의 완벽성에 기반한 걸작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샐린저의 작품 치고는 쉽고 가벼운 작품이다. 샐린저는 대단히 모던하고 실험적인 작가이며, 아무래도 그것이 <호밀밭의 파수꾼> 이외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활발히 소개되지 않은 이유인 듯 하다. [인상깊은구절] 전 세계에 걸쳐 연령, 문화, 천부적 자질이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술가와 시인들, 위대하거나 훌륭한 예술을 생산했을 뿐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어떤 '그릇된 점'이 야하게 두드러지는 이런 예술가와 시인들에게 어떤 특별한 충동,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 그릇된 점이란 예를 들어 성격이나 시민 정신이라는 면에서 현저하게 드러날 만한 결함, 해석 가능한 로맨틱한 병이나 중독-극단적인 자기 중심성, 간통, 귀머거리, 장님, 심한 갈증, 치명적인 심한 기침, 매춘부에게 약한 것, 대규모의 간음이나 근친상간에 대한 애착, 아편이나 남색과 관련된 공인된 또는 공인되지 않은 약점 등등-등인데, 이 외로운 놈들에게 신의 자비가 있기를. 고백적으로 씌어진 구절에서는 자존심을 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의 냄새가 약간은 나게 마련인 것 같다. 공개적으로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서 언제나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은 그가 고백을 하지 않는 부분이다. 어떤 사람이 삶의 어떤 시기에 (말하기 괴로운 일이지만 보통 성공을 거둔 시기에), 갑자기 자기가 대학 시절 학기말 고사에서 커닝을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자기 힘이 미치는 범위 내에' 있는 일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 심지어 스물둘에서 스물네 살 사이에 성적으로 무능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로 결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이런 용감한 고백들을 한다고 해서 화가 나 애완용 햄스터의 머리를 밟은 일까지도 밝힐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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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아, 운 좋은 날이여!) 망설임 없이 화제를 바꾸자면, 나는 그에게 하인츠 식품처럼 다양한 개인적 특징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 특징들로 인해 우리 가족 내의 모든 미성년자들은 각자 감수성이나 예민함의 정도에 따라 시차를 두고 술병을 향해 달려가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p143,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 J.D 샐린저>
- 하인츠 식품처럼..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오뚜기 식품처럼... 이라고 해도 되겠어요 ㅋ
약간 절제없다 싶을 정도로 말을 딱 부러지게 하는 남동생과 여동생 넷이 살아있으며, 그들에게는 유대인 피도 섞여 있고, 아일랜드인 피도 섞여 있고, 아마도 미노타우로스의 피도 섞여 있을 것이다. p152
- 미노타우로스 각주보고, 뿜었습니다. ㅋㅋㅋㅋㅋ
* 미노타우로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괴물
너무 늦기 전에, 내가 글쟁이일 뿐 아니라 캐나다 국경에서 멀지 않은 뉴욕 북부의 한 여자대학 영문과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두어야겠다. ...(그러나, 모두 알아주면 좋겠는데, 고양이는 없다)... 나는 일종의 문학적 자폐상태에 있으며 ..
- 고양이는 없다는 걸 강조하고 싶으시데요. ㅋㅋㅋ
아, 이 책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겁니까? 샐린저님의 트집잡기,,, 쿨해요, 쿨해 . 하하하 블랙유머의 대가십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20대 초반에, 몰래 몰래 봤던 좋아했던 아이의 미니홈피 다이어리를 떠오르게 하네요.
<호밀밭의 파수꾼> 진정한 팬이라면, 샐린저님의 모든 작품 완전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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