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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신문 번외편 - "검은 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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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겁내며 살아가던 어느 소심한 풋내기 작가가 있었다. 세상이 무서운 주제에, 오히려 자기 쪽에서 세상을 버린 거라 코웃음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천재가 만든 어느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는 흥분했다. 자신이 애타게 바랬던 구원을 드디어 발견했다고 믿었다. 그는 세상을 겁내지 않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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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겁내며 살아가던 어느 소심한 풋내기 작가가 있었다. 세상이 무서운 주제에, 오히려 자기 쪽에서 세상을 버린 거라 코웃음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천재가 만든 어느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을 완벽히 구현하고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그는 흥분했다. 자신이 애타게 바랬던 구원을 드디어 발견했다고 믿었다. 그는 세상을 겁내지 않게 되었다. 가슴을 쭉 펴고 걷게 되었다. 세상은 온통 장밋빛으로 보였다. 두려울 건 하나도 없었다. 쓰고 싶다! 라는 충동에 사로잡혀 그는 미친 듯이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것이....어느날 무시무시한 역풍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작가였다. 세상은 그에게 열광했고, 또한 그를 멸시했다. 어떤 이는, 그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천재를 베끼는 모방작가라 비아냥거렸다. 어떤 이는, 그가, 천재가 만들어낸 새 시대의 조류에 동참한 거라며 열광했다. 뒤늦게 그는 자신이 빚은 엄청난 과오를 깨달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에 투영된 "천재"에 열광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여기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모두가 그를 비웃고 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힌다. 세상 사람들의 눈이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 그러다가... 절망 속에서 그는 겨우 실낱같은 희망을 얻는다. 오랜 몸부림 끝에,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은 것이다. 가까스로 구렁텅이에서 기어 나왔다. "나는 나다" 라고 세상을 향해 조심스레 소리치기 시작했다. 비록 흰 건반처럼 온전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는 없다 해도, 반쪽짜리 검은 건반에도 그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는 있는 거라고 믿었다. 그랬는데... 적의 신문(赤の神紋) 시리즈 번외편 "검은 건반"이 드디어 발간됐다. 본편과는 상관없는 번외편(외전)이지만, 실제로는 8.5권(8권과 9권 사이에 들어갈 내용)이라고 보는 게 나을 듯 싶다. (8권까지 읽은 다음에 보는 편이 좋을 듯) 내용은... 본편으로부터 십여년 전, 풋내기 학생 작가 "렌죠 히비키"(주인공)가 "하이바라 유게쓰"라는 한 천재의 연극과 조우하여 정신없이 푹 빠진 나머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모방 작가로 전락해 버리는 과정, 그리고 그 절망에서 어떻게 간신히 헤쳐 나오게 되는지를 다루고 있다. 십년 전의 이야기가 주가 되지만, 중간중간 현재(7-8권)의 에피소드도 오버랩 되어 있다. 이번에 나온 단행본은, 소설 잡지 코발트(Cobalt)에 연재되었던 분량에 상당 부분 가필이 더해진 것이다. 내용의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지만, 디테일...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극중극"의 대사가 많이 늘어났다. 더우기, 표현을 업(業)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작가, 연출가, 배우 등---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묘사도 상당히 절절한데... 초기와는 달리 요즘의 적의 신문 시리즈에서는 그런 요소가 많이 희박해지고 오히려 희화화되어 버렸다는 느낌도 적지 않았던지라, 처음 이 시리즈가 시작되었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도 들어 개인적으로는 맘에 들었다. 특히 하이바라의 모방작가 1호로 낙인찍혔음을 깨달았을 때 렌죠가 느낀 경악과 공포는, 정말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다. 작가 구와바라 미즈나 문체의 전매 특허인 절절한 심리 묘사가 잘 살아 있다고나 할까. (내가 렌죠와 똑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아마 자살을 택해 버렸을 만큼 괴롭고 답답한 기분이 절로 든다. -_-;) 그래도,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았을 때, 유일하게 어깨를 기대고 울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었다는 건, 렌죠에게 있어선 크나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오쿠다 가즈키요라는 소중한 친구의 존재는 십년이라는 가혹한 세월 동안 렌죠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이 번외편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렌죠와 오쿠다의 "우정"의 이야기다. 두 캐릭터의 팬에게 권하고 싶은 외전이다. (웃음)
m*****r 2004.07.12. 신고 공감 15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