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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쳤다. ‘어찌’(필명) 작가는 스스로를 ‘말하기에 소질이 없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책을 냈는데, 말에 소질이 없다고 느끼는 건 왜일까? 의문을 지닌 채 프롤로그를 읽었다. ‘프롤로그, 중간 이야기가 필요해’에서 작가는 각종 SNS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시작과 결말만 남은 채 중간 내용이 삭제되거나 요약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는 서사 없는 영화 같아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말하기에선 기승전결 중 ‘승’과 ‘전’이 압축된다. 중간 과정은 줄이거나 생략된다. 그러나 작가는 그 중간을 오래 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소질이 없다는 말을 다른 말로 돌려주고 싶다. ‘중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작가는 어느 날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막상 미니멀에 도전해보니 불안하고 머뭇거리게 됐다. 그리고 떠오른 질문. ‘물건을 끝까지 다 쓴 적이 있나?’ 작가는 물건의 ‘사용’에 주목한다. 작가의 글을 읽는 중에 옆 부서 과장이 들어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 치킨무만 많네”라고 말했다. 열댓 개의 치킨무가 새 것 상태로 냉장고 문짝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날짜를 보니 유통기한이 7월까지였다. 동료가 치킨무를 정리하기로 했다. 시큼한 냄새가 퍼져나왔다. 조금 더 읽다가 책을 덮었다. 퇴근길에 잠시 아울렛 매장에 들렀다. 옷 몇 벌을 둘러보다가 티셔츠 한 장만 샀다. 매장에선 마크툽의 ‘시작의 아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남은 꽁치찌개와 남은 밥을 먹으며 다시 책을 열었다. 7장의 제목은 ‘식재료, 귀찮음과 타협한 집밥’이다. 작가는 해 먹지 못하고 버린 식재료를 이야기하다가, 시판 양념으로 간편하면서도 맛있게 만드는 집밥을 예찬한다. 꽁치찌개도 비슷하다. 신김치와 꽁치 통조림을 넣고 끓이면 끝. 우적우적 밥을 씹으며 마저 읽었다. 작가는 펜, 옷, 노트를 하나씩 살펴보며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펜 챕터에서 작가는 모나미 펜을 꺼냈다. 내가 좋아하는 필기구는 연필이다. 연필이 종이에 닿으면 사각사각. 글씨도 더 반듯해진다. 작가는 이렇구나, 나는 이렇구나를 오가며 책을 읽었다. 퇴근길에 들었던 ‘시작의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는 물건을 쓰며 자신을 하나씩 알아간다. 그 마음이 소중해 보였다. 다시 작가소개를 읽어본다. ‘마음 따라 해오던 작은 점들이 어찌어찌 모여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되는, 우연의 축적과 어설픈 생동감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필명이 ‘어찌’구나. 나는 그 ‘무언가’에도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어중간한 사람이 아니라, 산의 이쪽과 저쪽을 바라보며 능선을 걷는 사람이라고. (2026.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