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이것을 생각해보기에 먼저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범죄자가 저지른 잘못이 사회에 끼치는 피혜가 크고 범죄는 명백히 개인의 잘못이기에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 존재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물론 범죄는 개인의 잘못이고 사회에 피해를 끼치지만 범죄자가 그런 일을 저지른 배경에는 불우한 가정환경이라든지, 교육의 부재와 같은 사회적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기에 무조건 범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처벌의 목적을 범죄인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하는데 치중한다. 두 가지 의견 모두 틀리지 않다. 따라서 최근의 형사정책은 범죄에 대한 처벌의 수단으로 자유를 박탈하는 동시에 다양한 교육을 함께 실시해 죄 값을 다 치른 이후에 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영화 <몬스터>는 바로 그들이 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묻고 있다. 7명의 남성을 살해하고 결국 사형에 처한 '에일린 우르노스'의 사례는 그저 범죄를 사회의 악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범죄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그들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에일린은 열악한 가전환경으로 13세 때부터 거리의 창녀로 몸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부끄러워한 가족들마저도 그녀에게 등을 돌린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벌써 영화는 범죄의 밑바탕에는 불우한 가정환경이라는 사회적인 요소가 깔려 있음을 이야기한다. 과연 이러한 상황이 앞에 놓여 있음에도 자신의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에일린에게 몸을 파는 일은 선택이 아니었다. 문득 이런 자신을 발견한 그녀는 자살을 하기로 결심하지만 술집에서 셀비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에일린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대상이다. 결국 처음 느끼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에일린은 가학행위를 강요하는 남자를 살해하고 또 이후에는 셀비와 자신이 함께 사는데 필요한 돈을 위해 남자를 살해한다. 엘일린은 결국 사형을 당한다. 그녀가 사형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이든 그녀의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사랑했던 셀비에게서 까지 버림을 받는다. 범죄의 사회적 요소를 이야기하는 것도 충분히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몬스터>의 장점은 괴물로 불렸던 연쇄살인범을 우리와 똑같이 사랑을 위해 어떤 일도 감수하는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이 영화는 결코 연쇄살인범의 잔혹한 살인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살인도 감수하면서까지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한 인간의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이다. 비로소 우리는 연쇄살인범 몬스터 에일린을 인간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된다. 샤를리스 테론의 믿을 수 없이 훌륭한 연기 때문에라도 <몬스터>는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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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수 없는 증거'. 아주 꼬마 때에는, 예를 들면 이런 관용구에서 '움직일 수 없다' 같은 레토릭이 뭘 뜻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정말 무거워서 다른 장소로 움직이기가 곤란하다는 뜻인지.... 여튼 범죄자는 그 타고난 어리석음 때문에, 깐에는 눈가리고 열심히 아웅을 한다 쳐도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그것도 결정적인 증거를 남긴다. 반면 필사적으로 들이는 노력은 아주 쓸데없는 곳에, 그것도 자백이나 하는 양 또렷하게 남기기 때문에,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일 수 없겠다는 확신까지 그 추적자에게 (흐뭇하게) 심어준다. 범죄자가 고유의 시그니처를 남긴다는 이론은 여러 전문가들이 주장해 온 바이지만, 지가 뤼팽도 아니면서(뤼팽은커녕 평균에도 못 미치는 덜 떨어진)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수고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열등감, 인정받고 싶은 심리, 혹은 끝까지 '나는....이다' 같은 망상과 허위의식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일이 줄어서 좋긴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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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살인을 저지른 후 여섯명을 죽이고 결국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을 당한 그녀의 이야기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이란 이야기로 그냥 지나칠수도 있겠지만 실제 인물인 그녀의 삶으로 들어가면 복잡미묘해진다. 8살 때 아버지의 친구에게 강간당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13살에 몸을 팔기 시작한 그녀. 그녀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쓸데없는 감상에 빠진다거나 필요이상의 거부감이 아닌 실제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 영화는 적절한 거리를 두기에 성공. 물론 뒤로 갈수록 특정한 감정의 폭발을 위해 일방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는게 없지 않지만 감독은 그저 자신의 스타일을 지켜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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