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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장애학자가 들려주는 그리스 비극 이야기’라는 책의 소개글이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휴가지에 들고왔는데 조용히 사유하면서 읽기 딱이었다.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리스 신화가 다시 보일 것이고, 어떤 형태의 삶이든 소중해질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서도 그 비극을 장애와 연결해서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장애 운동과 이어져 소개되는데 그 모습이 신화 속 인물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노들야학 교장이자 전장연 대표인 박경석님이나, 기초생활수급제도에 투쟁하며 음독한 최옥란님의 이야기는 잘 알지 못했다. 같은 상황에서 나는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어쩐지 나는 숨기만 할 것 같아서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평소 좋아했던 홍은전 작가님도 잠깐씩 등장해서 반가웠다.
비극과 맞서 싸우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저 막장 스토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의 결정에 공감가는 부분도 생기니 참 아이러니하다. 또 지금의 혐오 정치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생각해보게 된다. 강의 듣는 것처럼 술술 읽히면서 다같이 생각해보자고 던져주는 질문들이 많았다. 마치 정말 공론장에 초대된 것 같았다.
항상 장애를 이야기할 때면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고, 일단 머리속에 있는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뒤엉켜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이상한 정상성을 강요하는데 이러한 부분들은 내가 청력이 안좋아지고 만성질환을 앓으면서 보다 와닿았다. 요즘 느끼는건 가만히 있으면 바뀌는게 하나도 없어 이것저것 소리내다보면 ‘나쁘고‘ ’거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삶을 사랑하는가? 누가 물어본다면 자신있게 같은 몸으로 다시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산전 검사를 통해 아이의 운명을 알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어려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저마다의 세계를 나에게만 맞추려 했던건 아닌지..
또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고 있는지, 그저 불평불만으로 하루를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어떤 부분은 완치를 바라지 않고 받아들인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상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할텐데.. 아직도 나는 갈길이 멀었다.
< 책 속의 문장들 >
ㅁ 사회적 장애모델이 당사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이유는 그것이 장애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삶은 고통뿐이라고 여기는 것은 많은 경우 장애인의 삶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으로 치닫곤 합니다. (29p)
ㅁ 이 투쟁은 ‘노동능력 없음‘으로 정의된 ’장애‘(disability) 개념을 바꾸는 동시에 중증장애인이 잘 할 수 있는 활동을 ’노동‘(labour) 으로 인정함으로써 자본주의적 노동 개념도 바꾸는 의미를 가집니다. (94p)
ㅁ 사회의 소수자들을 혐오의 감정으로 대하는 대중 심리의 기원이 바로 이것입니다. - 「오이디푸스 왕」의 첫 장면. ’혐오의 정치‘ (108p)
ㅁ 크레몬이 보여준것처럼 ’혐오’의 정치는 어떤 ‘행위’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어떤 ‘존재’에 대한 역겨움을 심판의 근거로 삼습니다. (138p)
ㅁ 오늘날 많은 만성질환자들이 자신은 환자일 뿐 장애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죠. (162p)
ㅁ 근대 이후 아픈 몸의 고통은 되도록 빨리 제거되거나 감춰줘야 할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182p)
ㅁ ‘돌봄‘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돌봄이 주로 ’여성‘ 의 문제로 치부된 것과 연관 있습니다. (209p)
ㅁ 근대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출현한 마이나데스의 형상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등장한 악녀들, 무도하고 파렴치한 가부장에 거칠게 저항하는 여성입니다.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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