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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나'는 철저한 3인칭 시점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즉 객관성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사건을 저지른 자의 시점이나, 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자의 시점에서 서술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사건이 일어난 마을의 신문사 사주이면서 기자인 '나'의 시점에서쓰여진 소설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고 냉철하게 사건을 들여다보고 평가할 수 있다. 마을의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범인을 지목하고 또 누가 봐도 그가 범인인 것이 확실하다고 믿게 만들면서 여유롭게 사건을 지켜보고 적절한 타이밍에 정의를 행사하는 주인공.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도 너무나 당연하게 범인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비뚤어진 법의 잣대에 흥분하면서 글을 읽어나갔는데, 마지막 순간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 자칫 교과서적인 스릴러 소설의 뻔한 형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으나, 뭔지 모를 아쉬움과 여운이 남았다. 아마도 작가는 로다 카셀로를 죽인 대니 패드킷보다, 다른 여러 건의 살인사건 용의자로 대니 패드깃을 지목하게 만든 행크 후튼 즉 최후의 배심원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한 마을 사람들과 주인공'나'를 진정한 최후의 배심원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마을사람들은 본인보다 더 아파하고 정의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나서 무장하고 마을을 지키고자 노력했으며, 패드킷 일가의 무법에 맞서서 용감히 싸웠다. 또 주인공은 흑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은 시대에 남부미국에서 흑백의 차별을 없애기 의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 소설은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 흑백의 차별이 서서히 해소되어나가는 과정을 조화롭게 서술해나간 훌륭한 소설이다. 결국 최후의 배심원은 평범한 '우리'라는 이야기가 이 글의 핵심주제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