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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미국 청소년 문제의 본질을 그리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리저라고 생각하는 주인공들은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아이들이라는 특권을 누리지 못한 채 거칠게 세상에 적응해가는 청소년들입니다.
그리저와 늘 대립하는 소셜들은 모든 것을 다 소유한 특권층이지만 이들 역시 부모들의 방임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입니다.
그리저와 소셜 서로가 , 부유함과 가난함, 부모님이라는 사회적 틀의 유무를 빼고 나면 너무도 비슷하기만 하다는 사실을 주인공 포니보이는 소셜인 랜디와의 대화에서 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자신에게 ‘넌 담배를 피우면 안돼. 넌 너무 어리쟎니’라고 제리 아저씨가 말했을 때 깜짝 놀라며, ‘나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자신이 소셜과 동일하다고 믿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은 것일 테지요.
포니보이는 이제 어른 티가 조금씩 나려고 하는 앳된 14살, 책과 영화를 무척 좋아하며, 학교에서는 육상선수의 기질도 인정받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지만, 6개월 전 부모를 잃었고,
두 형과 함께 그리저 친구들에게서 사랑과 우정, 가족애를 느끼며 살아가는 아이입니다. 자신의 긴 머리와 옷차림만이 그리저인 것 같을 때도 있다고 간혹 느끼곤 하였지요.
자니는 아버지의 구타와 어머니의 욕설로 짓밟히고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던 17살 아이입니다. 소셜과의 싸움에서 원치않게 밥을 죽이고 포니보이와 함께 도주하게 됩니다. 숨어지내던 교회의 화제 속에서 아이들을 구해내었지만 화재로 인해 심한 부상으로 당하게 되었지요. 그는 자신이 살려내었던 아이들의 부모가 자신에게 고마워 했을때 자신이 정말 가치있는 존재임을 드디어 알게 됩니다. 결국엔 죽게 되지만 그가 갖게 된 희망은 또 다른 그리저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소셜과의 전쟁과 믿기지 않은 살인, 화염 속에서 아이들을 구하다 심한 부상을 입은 자니와 자살에 가까운 댈러스 두 친구의 죽음을 통해 상처받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기 까지 합니다. 증오와 난폭함이 그를 살게 하는 힘처럼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가 이전에 무척 싫어했던 댈러스의 모습이 포니보이의 모습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녀석이 나처럼 빤지르르했다면 그 교회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거라고. 남들을 도와주거나 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신문에 기사나 나고 말썽만 쏟아지는 거지.... 교활해져야 해, 포니.. 나처럼 거칠어지면 다칠 일도 없어. 너 스스로 경계하고 있으면 아무도 네게 손대지 못한다고....’ 자니를 자신처럼 아꼈던 댈러스가 자니의 죽음 앞에서 쏟아내는 이 분노의 말들은 댈러스가 그토록 잔인하고, 거칠게 되버렸던 이유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포니보이가 또 다른 댈러스가 되어가는 이유도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포니는 자니와 오래된 교회에서 숨어지내는 동안 읽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책 속에서 자니의 마지막 쪽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난 이 일에 대해서, 그리고 네가 들려준 시에 대해서 쭉 생각했어. 그 시를 쓴 사람은, 네가 아이일 때 너는 풋풋하고 또한 빛나기도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야. 아이일 때는 모든 것이 새벽처럼 신선해. 그러다가 모든 것에 익숙해져버리면, 낮이 오는 거야. 포니 네가 저녁놀에 감동한다는 것, 그게 바로 빛남이야. 계속 그렇게 있어줘. 그렇게 있어야 해. 댈리에게도 한번 저녁놀을 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녀석은 아마도 네가 미쳤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래도 날 위해 그렇게 말해줘. 아마도 녀석은 제대로 저녁놀을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을 거야. 그리고 그리저인 것을 너무 괴로워하지 마. 네겐 여전히 네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갈 시간이 충분히 있어. 세상엔 여전히 좋은 것들이 무척 많아......‘279p
그는 모든 혼란함을 내려놓고, 이 모든 것을 작문 숙제로 써내려가는 것으로 이 책을 마치고 있습니다. 아마 그의 글이 이 책일 수도 있을 테지요. ‘계속 빛나야해 포니보이...’. 죽어가던 자니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자니의 희망이 포니보이에게 전해진 것이지요.
우리 사회에서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찍히고, 심지어 댈러스처럼 범죄기록도 있는 아이들에 대해서 나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하고, 태어날 때부터 벗어날 수 없는 ‘그리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그러한 삶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이지는 않을까? 부모에게 구타당하고, 무시당하며, 사랑받지 못해 ‘그리저’를 찾아가는 아이들이지는 않을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갖는다는 희망자체도 잃어버린 아이들이지 않을까?
소셜과의 전쟁 전에 그리저 친구들은 작은 파티를 벌입니다.
포니보이의 둘째 형 소다는 ‘나는 그리저, 비행 소년 깡패라네. 멋진 도시의 이름을 더럽히고, 사람들을 두들겨 패고, 주유소를 약탈하네. 나는 이 사회의 골칫거리. 아 젠장, 정말 즐겁다네!’, 스티브는 ‘오 환경의 희생자, 혜택받지 못하고, 썩어 문드러지고, 시시하고 하찮은 깡패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불량 청소년’ (216p)이라고 자신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급차에서 제리 아저씨에게 ‘우리는 그리저예요’라고 했을때 그는 그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저가 뭔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단지 제리 아저씨가 보는 포니보이는 ‘하늘에서 곧장 내려온 천사같은 아이, 진정으로 용감한 영웅’일 뿐이었습니다.
‘담배를 피우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 ‘언제고 선한 일에 용감할 수도 있는 아이들’, ‘하늘에서 곧장 내려온 것 같은 천사같은 아이들’, 그런 아이들로 보지 못하는 것은 ‘저녁 놀에 감동하지 못하는’ 굳어버린 마음 탓은 아닐는지 생각해 봅니다. 또 너무 많은 아이들을 우리도 모르는 채 ‘저녁 놀’ 한 번 바라보지 못한 댈러스와 같은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요.
80년대 미국 청소년의 이야기라고 서두를 꺼내었지만 이 책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미국과 한국, 또 다른 나라들의 이야기일지 모르겠습니다. [인상깊은구절] ‘난 이 일에 대해서, 그리고 네가 들려준 시에 대해서 쭉 생각했어. 그 시를 쓴 사람은, 네가 아이일 때 너는 풋풋하고 또한 빛나기도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야. 아이일 때는 모든 것이 새벽처럼 신선해. 그러다가 모든 것에 익숙해져버리면, 낮이 오는 거야. 포니 네가 저녁놀에 감동한다는 것, 그게 바로 빛남이야. 계속 그렇게 있어줘. 그렇게 있어야 해. 댈리에게도 한번 저녁놀을 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녀석은 아마도 네가 미쳤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래도 날 위해 그렇게 말해줘. 아마도 녀석은 제대로 저녁놀을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을 거야. 그리고 그리저인 것을 너무 괴로워하지 마. 네겐 여전히 네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갈 시간이 충분히 있어. 세상엔 여전히 좋은 것들이 무척 많아....'' |
| 책의 분위기와 인물들은 나와는 너무나 달랐다... 그들은 한없이 상처받고(물론 외적으로도) 버림받은 존재들이며 이 시대의 교만한 편견의 심판아래 아웃사이더라 불리는 그늘진 소년들이었다 강인해야만 하고 굳세야하는 이들은 사회가 심어버린 의미없는 시각들로 인해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그들은 스스로가 아웃사이더라 생각하며 희망이라는 좋은 새시대와 무관하다 생각했다...하지만 그들과 상반되는 소셜들도 결국은 공허한 무기력함으로 가득차있고 상처받은 아웃사이더였다는걸 깨닫는 그 순간...더이상 적어도 이책속의 현실에서만은 그 어느누구도 아웃사이더라 칭해질수 없으며 인사이더라고도 칭해질수 없다... 그들 모두 자신속에 내제된 희망이라는 자아가 존재함을 깨달으며 아직 내게는 현실을 바꿀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존재한다는걸 새삼스래 깨달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