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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은 지은 죄만큼 받기 마련이다. 삶에 대한 환희를 모조리 빼앗긴다면 삶의 권태로부터도 철저하게 벗어날 수 있다. – 키르케고르 서두에 나오는 키르케고르의 이 문장. 삶의 기쁨을 상실하면 오히려 세상을 더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아이러니다. 삶의 기쁨이라곤 1도 없는 나에게도 베른하르트와 키르케고르가 가진 그런 능력이 언젠가는 생길까? 이 소설의 주인공 레거는 예술 전반에 능통한 음악평론가다. 그는 빈 소재 미술사 박물관에 전시 중인 <하얀 수염의 남자> 앞에 수십 년째 아침마다 앉아, 오직 이 그림만 멍하니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몰락하는 자』에서 글렌 굴드를 신의 경지로 띄우는 반면 굴다나 브렌델 같은 피아노 거장들을 깎아내리던 그 배포는, 『옛 거장들』에 와서 더욱 거침없어진다. 지휘자 서열로는 힌데미트나 클렘페러를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보다 위에 두는가 하면, 말러와 베토벤을 구닥다리 주류 작곡가라며 가열차게 폄하한다(반면 쇤베르크, 마르티누, 베베른 같은 비주류 아방가르드 작곡가에는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이데거를 '철학을 저속하게 만든 주범'으로 몰아붙이는 인신공격성 대목도 흥미롭다. 궤변에 가까운 독설의 퍼레이드에는 동의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뒤섞여 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대중에 영합하는 수많은 거장들을 깔아뭉개는 그가 바라는 건 하나뿐이다.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하얀 수염의 남자>를 수십 년간 혼자 독차지하며 감상하듯,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만 좋아하는 그림과 음악을 오롯이 소유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는 것. 그래야만 자살의 유혹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건 취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발악이다. 나도 어쩌면 절망과 권태에 빠지지 않으려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지 모른다. 그리고 비난하고 씹어먹은 뒤 얄궂은 쾌재를 부르는 이 야비한 감정을 아는 한, 베른하르트의 책 속 한 구절 한 구절은 성경의 구절보다 더 치명적으로 가슴을 후벼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