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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 이래 성리학이 국가의 정체성으로 설정되었지만 중종의 시대에 되어서야 비로소 성리학은 조선에 정착이 된다. 이 시기에 태어난 베이비들이 성장하면서 촘촘한 성리학 지배 이데올로기가 실천되고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뿌리깊은 차별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조금만 더 적당히 실천했다면, 교조적으로 수용하기보다 포용성 있게 다양한 사유를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있었더라도 지금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조선의 실패에서 무엇보다도 교조적 이념의 실천으로 이뤄진 사회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