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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구교수에 대하여 알고싶은 분들께는 2001년 출판된 김태식의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를 추천하고 싶다. 풍납토성 발굴과 관련한 이형구교수의 헌신 뿐만 아니라 백제를 비롯한 한국의 고대사에 대한 치열한 역사전쟁을 목도할 수 있다. 역사를 기록함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지침이 될 법한 책이다. 그 책은 풍납토성 발굴과 이와 관련한 여러 역사적 공방을 주로 다루고 있으나 결국 '이형구'라는 한 일물이 책의 중심에 서 있다. 이형구가 없이는 풍납토성은 존재할 수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풍납토성의 발굴이 없었다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매도하고, 고대 삼국의 역사를 수백년이나 후퇴시킨 소위 주류 학자들의 '썰'에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식민사관을 추종하거나 방관하는 학자들이 즐비한 와중에도 소수이지만 몇몇의 학자들에 의해 역사는 또 발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형구 교수는 한국사학계에 풍납토성 발굴이라는 큰 발자취를 남긴 학자이지만, 실제 중심 연구분야는 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로 이어지는 발해연안문명이다. 그는 한국 고대사의 원류를 먼 시베리아에서 찾는 비논리적인 풍토를 수많은 유물을 통해 낱낱이 비판하고, 한반도 문화의 뿌리는 중국의 북동부에서 요동과 만주, 한반도의 북서부로 이어지는 발해연안에 있음을 논증한다. 그 첫번째 근거는 발해연안에서 발굴되는 유물과 한반도 내에서 발굴되는 유물의 유사성이다. 두번째 근거는 그 발해연안의 유물들이 시베리아의 유물들에 비해 수백년에서 수천년 앞서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한반도에서 발굴되는 유물들은 여러 면에서 시베리아보다 발해연안의 유물들과 유사성이 크고, 한반도의 유물들을 포함하여 발해연안의 유물들이 제작된 연대가 시베리아의 그것에 비해 훨씬 앞서고 있으므로, 한국 고대문화의 뿌리를 시베리아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형구 교수는 시베리아 전래설의 근거가 과학적으로 충분하지도 않고, 그 시초가 일본 사학자의 허황된 주장에 기인함에도 우리 주류 사학계가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책읽기를 마치며, 사사로운 부분이지만, 이형구교수와 김원룡교수는 어떤 관계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김원룡교수는 '원삼국시대'라는 말도 안되는 글짓기를 통해 우리 고대사에 먹칠을 한 장본인 중 한명이고, 1970년대에 이미 풍납토성을 발굴했으면서도 보존조치 하지 않고 방치하여 난개발을 일으키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형구 교수는 김원룡교수를 직접적으로 비판 또는 책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보고 좋은 편지를 써주셨다고 감격해하고 있다. 학계내에서 여러 사정이 있을 것이고, 또 일반 독자로서는 감히 엄두내지 못할 학문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원룡을 비판하지 않고 발해연안문명을 올곧게 주장할 수 있는지, 여전히 궁금할 뿐이다. 더불어 학문이 서열과 끼리 문화에서 독립되는 날이 언제일지, 이땅에서 가능은 한 일인지 조용히 숙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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