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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세대 전만해도, 여성에게 ‘끼’와 ‘성적 매력’이 있다는 말은 결코 칭찬이 아니라, 모욕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그만큼 평범함보다는 개성과 능력이 중시되고 비범함이 더 미덕으로 평가받는 여성상이 된 것이다. 반면 여성들이 공적 영역으로의 진출이 원천 봉쇄됐던 조선시대에, 비범함이나 자의식을 지닌 여성들은 환영받지 못했을 것은 불문가지이다. 공과 사, 남성과 여성의 영역이 철저하게 구분됐고, 삼종지도나 현모양처, 열녀를 지향하며 한 인간으로서보다는 가문을 번성시키고, 유지하는 삶을 살도록 교육받았던 조선 여인들, 여성들의 비범함이나 자의식이란 가부장적 질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에 실려 있는 여인들, 이 책의 목차를 보면서 그 이름을 하나 하나 상기하고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벅차 올랐다. 신사임당, 송덕봉, 허난설헌, 이옥봉, 안동 장씨, 김호연재, 임윤지당, 김만덕, 김삼의당, 풍양조씨, 강정일당, 김금원, 바우덕이, 윤희순.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송덕봉은 미암 유희춘의 아내로, 가부장의 권위에 억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풍류를 즐겼고, 이 옥봉은 글 솜씨를 발휘해 이웃을 도운 것으로 지아비에게 소박을 당했지만, 시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안동 장씨는 시가와 친정 모두 돌보며 안온한 품성을 보인 여인으로,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은 경전에 조예가 깊은 여성 학자였다. 그리고 남편을 과거에 급제하고 가문을 부흥시키려고 노력했던 김삼의당,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 풍양 조씨, 금강산에 올랐던 김금원, 남사당에서 여자 꼭두쇠가 될 정도로 재능이 출중했던 바우덕이, 가족과 함께 독립운동이 일선에 나섰던 여성이 윤희순이었다. 이 책에서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위대한 여성을 다룬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견디며 살아가고 다양한 방식으로 살았던 여성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역사에서도 본격적으로 이들을 다루고 있지 않고 있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김만덕 정도나 알려진 인물이지 그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인데, 그런 만큼 이들의 삶의 방식과 그 진정성을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사임당에게 조선의 유학자들이 율곡의 어머니를 강조하며 현모의 덧칠을 칠하면서 그녀 특유의 감성과 예술적 재능이라는 비범함은 빛이 바래게 됐다. 또한 현대여성에게까지 현모양처의 역할을 강조하는 모양새가 된 점을 감안하니 또, 임윤지당이나 강정일당처럼 충분히 당대에 학자로서 평가받을 수 있었음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론되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삶을 보듬어야 한다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이다. 신분상으로는 양반의 여성들이 주였고, 이옥봉은 서녀라 양반의 첩이 됐고, 김만덕은 기생, 바우덕이는 남사당이라는 최하의 신분이었다. 당연히 이들이 부딪쳐야 했던 현실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과 이들이 조선이라는 부자유한 한계 속에서 자신의 삶에 얼마나 진실했고, 충실했는지, 그 점에 주목하면서 이들의 삶을 주목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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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이념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시대에 능력 있는 여성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능력으로 인해서 비난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이 7살 정도 되면 남녀가 한자리에 앉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당연시하던 시대였다. 남성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이며, 반면 여성들은 그저 집에서 ‘살림’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받아들여졌다. 남성은 존귀한 조재이고 여성은 사회적 처지가 낮다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관념이 보편적으로 통용되었고, 이에 기반한 남성과 여성의 ‘성차별’도 당연시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시대에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각인시키며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이라는 제목의 표현은 바로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불화했던 여성들의 처지를 적확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불과 얼마 전가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현모양처(賢母良妻)’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물론 그러한 관념에는 여성들은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에 전념해야만 하며, 은연중 여성의 사회활동이 그릇된 것으로 여기는 관념이 전제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렇기에 조선시대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것을 애써 드러내지 않고 살았던 여성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자신 혹은 주위 사람들로 인해 일부 여성들의 활동이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어, 필자들은 ‘가능한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해당 인물들의 삶을 재구하기 위해 이 책을 기획했음을 밝히고 있다. 남성 중심의 관념이 지배적이었던 시대를 격어내면서 ‘여성들이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견디고 살아가고 장악했던 다양한 방식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물론 일부의 기록은 기록을 남긴 남성들의 시각에서 남겨진 내용들도 적지 않지만, 그 시대를 살앗던 여성들의 입장에서 그 내용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다뤄진 인물들은 모두 14명으로, 여전히 ‘현모양처’의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되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으로부터 일제 강점기 여성으로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윤희순’에 이르기까지 해당 인물들의 삶은 다양한 행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저자들은 ‘신사임당’을 ‘유교의 덕복으로 가릴 수 없는 천재적인 예술혼’을 지닌 존재로 규정하고, 단지 ‘율곡의 어머니로 부르지 마라’고 단언한다. 이밖에도 뛰어난 문재로 인정을 받았던 ‘허난설헌’과 ‘이옥봉’, <음식디미방>이라는 책으로 전통 요리를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든 ‘안동 장씨’와 상업적 능력을 바탕으로 흉년에 굶어죽을 처지에 놓인 제주도 사람들을 구휼했던 ‘김만덕’의 행적 등이 소개되어 있다.
5백여 년에 이르는 조선시대의 역사를 고려하면, 이 책에 소개된 여성 인물들의 숫자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소수의 여성들을 제외한다면, 조선시대 여성들이 모두 남성 중심의 관념에 억눌린 채로 살아왔던 것으로 논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길 수 없었다는 것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개성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들의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들을 통해 남성 중심의 관념이라는 ‘억압 속에서도 사람다운 품위를 잃지 않았던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는 것은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저자들의 기획 의도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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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옛 책입니다만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입니다. 신사임당과 김만덕 등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여성 위인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제가 뭉클했던 이야기는 이호연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와 비슷한 또래 김운이라는 여성입니다. 학식과 문재를 겸비했으며 총명하여 당대의 대문호인 아버지 김창협의 사랑을 받는 딸이었는데, 나이 스물에 요절하며 죽기 전에 '나는 여자라 후세에 이름을 남길 방도가 없으니 아버지보다 먼저 죽어서 아버지가 내 묘지명을 지어준다면 그것이 차라리 더 낫겠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연안 이씨의 막내딸 호연재의 집안에서는 형제자매가 어울려 시를 짓습니다. 김운의 절절함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은 것이, 남자보다 못할 것이 없다는 당당함을 지니고 자란 것 같습니다. 그의 시는 이렇거든요.
아까워라, 이 내 마음 탕탕한 군자의 마음일세 안팎에 하나도 숨김 없으니 밝은 달이 흉금을 비추도다
이 정도로 호방함이 끝나는 것은 아니고,
취한 뒤에는 건곤이 드넓어 마음을 열매 만사가 태평하도다 고요히 돗자리 위에 누웠으니 잠시 세정을 잊고 즐길 뿐
무슨 중년 아저씨 건달같죠 ㅋㅋㅋ 조선 시대의 사대부 여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이 중에서 가장 존경스러웠던 분은 강정일당이라는 분입니다. (1772-1832) 남편을 늘 바른 길로 이끌고자 밤낮으로 노력했던 아내 강정일당이 죽지 남편 윤광연은 제문을 씁니다.
나의 아내여, 나의 벗이여, 나의 스승이여. 부인, 내 그대를 잃었으니 참으로 막막하구려. 공부하다가 의심나는 것이 있어도 누구에게 불어볼 것이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누가 그걸 할수 있도록 해주겠소? 또 설사 내가 뭘 잘못하는게 있어도 누가 바로잡아줄 것이며, 내게 지나친 허물이 있어도 누가 타일러주겠는가?
부인네의 글을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이 당시의 예의였으나 윤광연은 아내의 글이 어느 선비 못지않았다고 여겼으므로 부인이 죽은지 4년만에 자신의 스승이자 노론의 대학자 강재 송치규 등의 발문을 얻어 <정일당유고>를 간행합니다. 이 가정은 너무나 가난해서, 강정일당은 남편에게 배우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를 다할수 없다며 바느질과 베짜기를 부지런히 하여 죽을 끓이고, 남편이 글공부 하는 옆에 앉아 바느질을 하면서 획이나 뜻을 묻고 그것을 외우며 함께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좋은 스승과 벗이 필요하다며 동학과 스승을 얻도록 돕습니다. 가난이 더 심해져 남이 버린 집에 살고 자식들도 하나하나 죽어 땅에 묻었으나 이렇게 남편을 위로하였다고 합니다.
당신께서 바른 것을 지키신다면 사악한 것은 절로 멀어질 것입니다. 배고프고 힘들때에는 더욱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다. 오래 살고 일찍 죽고 하는 것은 본래 정해진 분수에 따르는 것이지요. 걱정해도 소용이 닿지 않는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근심할 것은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 뿐이니, 무엇을 원망하고 탓하겠습니까?
막내딸아이가 죽었을 때 차마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이 묘인 것을 알고 파헤치지 않길 바라며 "슬프고 슬퍼 차마 버려두지 못하고 글을 지어 기록한다"라고 쓰면서도 이것이 지나치게 인정에 빠진 것이 아니냐며 경계했다는 정일당은 그야말로 의연한 군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종 때에도 눈물을 흘리는 남편에게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린 일이니 어찌 슬퍼하십니까? 라고 충고했다니 정말 이런 사람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내에게 나의 벗과 스승, 당신이 아니면 누가 나를 꾸짖어 주겠냐고 물을 수 있는 남편의 그릇도 작지 않다고 생각이 되고요. 배우자가 생긴다면 그에게 이런 벗이 되어 줄 수 있다면 헛살지 않은 것일 텐데요. 저같은 범인으로써는 참으로 어렵겠습니다만... 조선의 탁월한 여인들을 만나보고 싶은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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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이 새로 발행될 때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 논란이 한 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순신장군 만큼이나 군사정권 시절 잘못된 선전 때문에 외려 후대인에게 반감을 주는 인물이 신사임당이다.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업적을 떠나 성현 이이를 아들로 낳았다는 사실만이 위대하여 높이 평가받은 인물.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갇혀버린 인물이다. 반면 허난설헌은 그녀의 문학적 성취보다 비극적 개인사 때문에 존경받는 여성 인물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 웃긴다.
더 웃긴 것은 안동 장씨의 입을 빌려 자기가 하고 싶은 헛소리를 짖어대거나 김만덕이 재산을 모은 과정에만 관심을 두고 여성 씨이오 운운하는 남성 작가들의 여성 인물 평전들. 대박 웃긴다.
자, 이제 웃을만큼 (비) 웃었으니 이 책을 보자. 신사임당, 송덕봉, 허난설헌, 이옥봉, 안동 장씨, 김호연재, 임윤지당, 김만덕, 김삼의당, 풍양조씨, 강정일당, 김금원, 바우덕이, 윤희순. 같은 인물이라도 여성 연구자의 시각에서 보면 얼마나 다른 면이 보이는지 확인해보자.
조선 후기 이후에야 남존여비 성차별이 사회 전반에 굳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전에 활약했던 여성인물들도 조선 후기 이후의 잣대를 가지고 보는 오류가 있지 않은가. 물론 그 이면에는 모든 시대의 여성들을 남성들의 억압에 신음하며 납작 업드려 살았던 존재들로 여겨 버리고 싶은 일부 보수 남성들의 왜곡이 있었던 것은 사실. 그러나 그 시선에 맞춰 세뇌당한 채로 우리의 선배 언니들을, 우리의 반쪽 역사를 제대로 보지 않고 편견을 갖고 본 것은 폭넓게 읽지 않은 나의 잘못.
억압 속에서도 사람다운 품위를 잃지 않았던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는 것은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중략)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넘어서 삶에 진실한 사람은 언제나 존경받아야 한다. - 서문에서
조선의 여성에게는 공적인 명예를 얻을 기회가 열려 있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 열녀가 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여성의 경우, 그 방법만이 개인적으로 공적인 명예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 여성에게 공적인 명예란 죽은 후에야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만덕은 살아서 공적인 명예를 얻고 자신이 그 열매를 누린 여성이다. 그것도 제주의, 한때 기생이었던 여성. 주변부의 징표를 이렇듯 여러 개 겹쳐 가지고도 그녀는 살아서 공적인 명예를 누린 몇 안 되는 조선의 여성이 되었다. -본문 206 ~ 207쪽에서 인용. (밑줄은 내가 쳤음. 저자의 시선에 감동받아서. )
친구분들께 강추한다. 신사임당의 '안토니아스 라인'과 이옥봉의 남편에 의한 필화 사건, <자기록>에서 열녀가 되지 못한 자신을 고백한 풍양 조씨,,, 읽다보면 눈물이 한 바가지 쏟아진다. 부인을 스승으로 여긴 강정일당의 남편 윤광연의 경우에는 옛날에도 여자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주는 멋진 남성이 있었구나 싶어 마음이 훈훈해진다.
세 사람 공저인데 글의 수준 편차가 없다. 인물을 평가하는 시선도 일관성이 있다. 세 분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고민했을지, 이로보아 짐작이 간다. 일면식 없는 내가 독자로서 감사한 마음이다.
또, 각 꼭지 처음에 관련 연구 논문 소개가 있어 더욱 값지다. 다 찾아 읽어 버릴테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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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여성들이 있다. 조선시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조선시대 태어난 많은 재능있는 여성들은 그들의 재능을 펼쳐 보일수가 없었다. 어려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기회도 대부분 얻지못했고, 15살 전후가되면 시집이라는 낯선 공간에 편입된채 오로지 그집안에서 요구하는 직분만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했다. 우리는 조선시대 여성하면 장희빈이나 황진이를 떠올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허난설헌이나 신사임당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가 그녀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에서 소개하는 14명의 여성들은 비슷한 조건에서 살았지만 두엇을 제외하면 모두 상류계층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다른 방법으로 살았다. 당당하게 자신을 주장하고, 자신의 내면의 속삭임에 귀 기울였던 여성들이다. 16세기 후반 가부장제가 본격적으로 강화되고, 열녀 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부자유한 시기 전후에 살았던 이들 여성들에게 비범함은 어쩌면 천형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들 여성들을 우리 앞에 들어내놓고 그들의 비범함을 재조명해보고 있다. 조선시대 기록으로는 율곡 당대의 남성 비평가들은 그렇지 않은데, 후대의 사대부 비평가들로부터 심한 반감을 받았던 허난설헌(1563-1589)은 난설헌과 동시대 나란히 일컬어지는 시인, 서녀로 태어나 첩으로 살아야 했고 전쟁 통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이옥봉(16세기 후반, 선조)의 시는 뜻밖에도 명나라의 서적 [열조시집]에서 난설헌의 시와 함께 11수가 발견된다고 한다. 서녀로 태어나 그저 저희끼리 혼인하고 살면 되는 것을, 옥봉은 아비에게 자신의 시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의 소실이 되겠다고 청한다. 그렇게 하여 조원의 첩이 되었으나, 억울한 사정이 있는 옆집 백성에게 시를 써주어 무죄판결을 받게 하고, 그것이 인구에 회자되는 것에 불안을 느낀 조원에게 내침을 당한다. 옥봉이 맞은 소박은 주어진 분수를 넘는 여성의 재능에 대해 가부장에 의해서 가부장제 밖으로 내쳐지는 가장 가부장적인 정죄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또 책은 남편에게 대등한 부부관계를 요구하고, 친정에 잘못하는 남편을 거침없이 꾸짖는, 신사임당과 동시대를 살았던 여인 모든 여성들에게 열녀가 되기를 강요하는 조선후기, 열녀가 되려다 실패했던 내용들을 담은 기록을 남긴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자기록]을 지은 풍양조씨(1772-1815) 이다. “남편이 죽으면 이렇게 하라”고 관습화되고 정형화 된 유형, 무형의 강요를 조선시대 다른 여성들처럼 스스로에게 가하고 있던 조씨도, 그러나 몸은 고통에 너무나도 약하고, 마음은 두려움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을 그녀 내면의 소리로 들려준다. 비록 그녀의 삶이 조선후기 여성의 삶을 옥죄던 열녀 이데올로기에서 한발 옆으로 비껴간 삶이었지만… 이 밖에도 남성의 외도를 패륜으로 규정하며, 당위로써 제시되는 유교적 여성규범을 여성 작가가 자신의 입장과 경험을 바탕으로 규훈서의 일종인 [자경록]을 지은 김호연재(1681-1722),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성리학에 대한 사유를 통하여 [중용경의]를 저작한 여성 철학자 임윤지당(1721-1793), 혼자사는 삶을 선택하여 모은 재산을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일 때 모두 쾌척한, 그리하여 조선시대 살아서 공적 명예를 얻은 김만덕(1739-1812), 남편과 시집의 영달을 위해 남편의 과거응시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김삼의당(1769-1823), 남장을 하고서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구경하고 그 기록으로 [호동서략기]를 남긴 김금원(1817-), 그리고 남사당패의 여성 꼭두쇠였던 바우덕이, 역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여성 의병운동의 저자들은 이 책이 여성 생활사나 여인 열전, 혹은 위인전이 아니라고 한다. “충”, “효”, “열” 이라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도덕률에 억눌려 살아야 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이 당당히 나로써 살아갔던 모습에서,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수 있었던 방법들을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당당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너무나 부자유한 시대, 너무나 비범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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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여성으로서 조금은 부끄럽기까지 하다. 억눌렸던 조선후기를 살았던 선배들의 얘기를 읽으면서 .... 또한 현재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조선시대의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어 나에게는 적어도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조선초기에 여성이 정치를 한다든지 활동을 한다든지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 충실히 자녀교육과 자기성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져 결혼한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었나도 깨닫게 되었으며 얼마든지 리더하면서 또는 대등하게 대화가 통한 부부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며 또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게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도 배우게 해 주는 책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조선시대 선배여성들의 삶. 더 많은 자료들로 연구해서 수면위로 끌어 올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인상깊은구절] 김삼의당의 초야에 나눈 얘기 중에 "제가 서방님을 어기지 않는다고 말씀드린다고, 서방님의 잘못도 따르겠다는 말이겠습니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직장에서든 , 가정에서든 , 어디에서든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 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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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을 전공한 세 명의 여성이 쓴 조선시대 14명의 여성에 대한 글을 모은 책. 사실 이런 류의 책에 실망한 적이 많아서 별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기대를 안해서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가장 기억이 남는 여성은 이옥봉.
강은 갈매기 꿈을 품어 넓고 江涵鷗夢闊 하늘은 기러기 슬픔에 들어와 멀다 天入雁愁長
번역하기 어려운 시란 이런 시일 것이다. 어려운 글자도 없건만, 번역을 해놓으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비문이거나 반쪽이 된다. 워낙 교묘하게 말을 놓았다. 강이 갈매기의 꿈을 적시고 하늘이 기러기의 슬픔으로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고, 거꾸로 갈매기의 꿈과 기러기의 슬픔이 강과 하늘에 들어와 담기는 것을 수도 있는 문법구조이다. 그래서 넓고 먼 것이 갈매기의 꿈과 기러기의 슬픔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강과 하늘일 수도 있게 만들어놓았다. 넓고 먼 강과 하늘은 철새인 갈매기나 기러기와 사슬처럼 얽히며 더욱더 넓고 멀어진다. 동시에 물에 젖은 꿈도, 하늘에 번진 슬픔도 아득히 넓고 멀어진다. 가을 하늘에 깔리는 깃털 구름처럼 여러 겹의 정서적 결이 서로 약간씩 어긋나며 잔잔히 이어지도록,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문법구조 속에 짜 넣었다.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징을 시적인 애매성으로 기막히게 살려낸 경우이다. 가를 모를 쓸쓸함과 맑고 유장한 호흡이 이런 의도적 모호성과 다의성 속에 녹아 있다. 이런 시를 두고, 읽으면 읽을수록 말 밖에 무한한 정취가 있다고 하는 것일 터이다.
이렇게 멋진 시를 지어낼 문재가 있었던 여성은, 그러나 조선의 여성이었다. 하긴 굳이 조선이 아니더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을테지만. 저자는 이옥봉의 도도함 속에서 컴플렉스를 발견해낸다. 아니, 직접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옥봉은 그(정실의 아들 조희철)를 향해, 그대의 글씨는 바람도 놀래키고, 내 시는 귀신도 울린다고, 그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나란히 부각시킨다. '귀신도 울린다'는 것이 애당초 이태백의 시를 지칭하는 말이니, 그녀 자신, 이태백에 필적하는 시인이라는 도도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런가 하면, 비록 소실이지만 예술적 재능으로 집안의 명성을 드높인다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 이 도도한 선언에서는 역설적으로 옥봉의 신분적 컴플렉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옥봉의 아버지 이봉이 교유한 인물들과 조원(남편)의 나이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아마도 옥봉은 조원과 나이 차가 많았을 것이다. 오히려 세대로는 조희철의 세대가 아니었을까? 그러니 '더할 나위 없는 명예가 모두 어린 사람들에게 주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그 적자를 향해 '모자'라고 내세우는 그녀의 힘겨운 자존심이 안타깝다. 소실을 자처해 예술가로서 삶을 선택했던 그녀의 자의식에 놓인 분열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밖에 열녀의 '현실적' 모습을 보여주는 풍양 조씨의 '자긔록'이나, 현실과 욕망의 뒤얽힘을 보여주는 김삼의당의 경우도 매우 흥미롭다.
아무래도 이 책의 저자들이 여성이라는 점이 꽤 긍정적으로 작용한듯 싶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문제의식은 언제나 진지하고, 보통 이상의 것을 끌어내는 법. 때문에, 나에게 가장 솔직한 것이 타인들의 동감을 얻어내기에도 쉬운 방법인 셈이다.
책 표지를 검은색으로 하는 것은 종종 도박일 때가 많다. 그만큼 예쁘고 깔끔하게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듯. 그런 의미에서 표지도 그럭저럭 괜찮은데, 아쉬운 것은 제목. 내용에 비해 다른 그런저런 책들과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섹시한 제목을 뽑으려 노력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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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남성들만을 기억한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서양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이름이 등장한다 싶으면 역시나 사회질서를 문란케 한 소문난 요부(!)이거나, 그 비슷한 무엇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중적이었다. 보호받아야만 하는 성스러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남성들을 유혹하는 악덕한 존재. 이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된다. 정숙한 여성과 그렇지 못한 여성. 어쩌면 이는 사회를 해석하는 지배적인 시각이 여전히 남성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왜 남성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일까? 오늘날 당당하게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여성의 열등성이 그녀들을 가정 내에만 안주하도록 만들었다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여성의 진화속도가 남성의 그것에 비해 월등히 빨랐다고 보는 것 역시 우습긴 마찬가지이다. 여성 배제, 오히려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혼란해진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성 중심의 강력한 질서를 통해 무너지던 사회, 그 끄트머리라도 부여잡고자 했던,.. 가정은 그 중심이었고, 그 안에는 여성이 없었다. 모든 것은 남성을 통해 드러났고, 여성은 침묵만을 반복하는 존재로 그려졌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 서, 화에 능한 몇몇 여성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신사임당 역시 그러한 인물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성 스스로도 신사임당을 이야기할 때면 늘 ‘현모양처’를 떠올리는 이유는 왜 일까?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녀 스스로 존재할 때면 어딘가 모르게 불완전하게 그려졌다. 성리학의 대가 율곡 이이를 길러낸 어머니로서의 지위가 오히려 그녀에겐 더 잘 어울린다. 어진 어머니상, 아들의 출세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길 수 있었던 인물.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그녀는 말 그대로 슈퍼 우먼이었다.) 아마도 이이가 아니었더라면 그녀가 오늘날까지도 이토록 칭송의 대상이 되진 못하지 않았을까 한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의 삶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단어 하나만으로도 진저리가 느껴지는 시집살이에서 그녀들의 넘치는 재주는 활용될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뛰어나다는 것이 그녀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둥, 여자가 기가 세면 안 된다는 둥의 말로 남아있다. 불운했던 스물일곱 해를 살다 간 허난설헌의 삶은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명문 집안 태생이라는 점이 사후 그녀의 시들을 세상에 남기는데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녀의 재주를 받아들일 도량을 소유치 못한 이와의 결혼은 평생 그녀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였다. 심지어 사후에도 인품의 단아하지 못함과 외설스러움에 대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삶은 불운 그 자체였다. 남성이었으면 대성했을지도 모를 인물 안동 장씨가 결혼 이후 아무런 작품도 남기지 않은 채 가정에만 충실했던 것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그녀 나름대로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재주를 숨김으로써 당대 대다수의 여자들이 그러했듯 평범하게 사는 것이 그녀의 삶에 평온을 가져다 주었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남긴 단 한권의 요리책은 (당대 국어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그 과학성으로 인하여 찬사를 듣고 있으니, 결혼이 그녀의 재주를 말살(?)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성리학자로 기억되는 윤지당이 결혼 후 소리 없이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결혼한 여성으로서의 도리가 그녀에겐 우선이었기 때문일 것이며, 그녀의 글이 주류 남성학자들의 그것에 결코 뒤쳐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까닭도 바로 여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들에게 그녀는 위대한 성리학자이기 보다는 조금 특이한 여성일 뿐이었다. 비록 그 학문의 깊이가 심오하고 독창적이라는 평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듯 이 책은 뛰어났지만 결코 행복할 순 없었던 많은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남성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전적으로 자수성가(?)했던 인물인 김만덕도 있었긴 했다. 거기에, 가부장적 질서 체제가 아직 완벽하지 않던 시대를 살다간 송덕봉과 같은 인물 역시도 나름대로 양호(?)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행려병자가 되어 생을 마감해야 했던 나혜석의 이야기는 조선시대의 불운했던 일반적인 여성의 삶의 재현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재주를 타고난 경우에는 더더욱...) 꿈은 꿨지만 오로지 꿈만 꿔야 했던 그녀들, 그녀들의 이상을 전혀 따라주지 못했던 현실을 살다간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슬프다. 그것은 아마도 나 역시 ‘여성’이라는 이름을 빌어 이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았는지 여하와는 상관없이 일정 정도의 나이에 이르면 결혼을 해야 되고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어야만 하는 존재 - 그렇다, 여성은 결혼을 해야 되고, 또 결혼한 여성에게 출산은 의무이다. 사교육비의 증대로 인하여 많은 여성들이 출산을 꺼린다 하여도, 결국 여성은 아이를 낳을 것이고, 이는 그녀들의 선택이기 이전에 사회가 여성에게 쥐어준 의무이다. 그 의무는 너무도 신성해 부인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의무는 동시에 너무도 하찮기에 오로지 여성만이 담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 -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 그것도 소위 뛰어나다 일컬어지는 이들일 것이다. 평범한, 말 그대로 지극히 평범한 여성들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베일에 쌓여있다. 그녀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일은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일게다. 더 나아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어머니 이외의 또 다른 역할 모델 - 아주 크게 성공해서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인물 아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당당함을 소유한 누군가가 오늘날 여성들에겐 필요하다. 실제로 내 주변의 거의 대다수의 여성들은 결혼 후 으레 그래야 한다는 듯 직장을 관두었다. - 을 부여하는 작업 역시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당자가 제법 학문에 조예가 있고 시에 재주가 있다는 소문이었다. 글TP, 학문과 시라...... 조상님들 명자나 알면 족했다. 그저 시집을 하늘처럼 알고 일이나 잘하면 되는 것이 여자다. 똑똑해봐야 제 주장이나 생기고, 제 남편 꼬드겨 형제간에 분란이나 일으키는 법이다. (p 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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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에 초등학교에 입학 해 1980년 대 후반까지 학교에 다닌 나의 꿈 중에는 ‘현모양처’도 있었다. 유교적 가부장제와 군사문화가 묘한 방식으로 만나 충․효․열을 강조한 시대의 사명에 부응한 나의 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현모와 양처기 되기 위해서만 삶을 살았던 것일까. 태임과 태사는 주나라 시대의 여인으로 동양문화권에서 가장 현숙한 부인으로 간주된다. 이 책에 소개된 사임당, 윤지당, 정일당의 호는 모두 태임, 태사에게서 유래했다고 한다. 남편이 일찍 죽어 자식을 낳지 못한 윤지당과 자식을 여럿 낳았으나 모두 일찍 여읜 정일당에게는 태임과 태사가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라는 훌륭한 아들을 낳은 어머니로서의 모델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간파해야한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태임과 태사를 성인으로 여겨 그녀들을 좇으려 했음은 분명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현모양처가 아닌 한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보내기 위한 노력인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작가들은 ‘우리와 똑같은 여성들이 각자의 삶을 최선을 다해 견디고 살아가고 장악했던 다양한 방식들을 드러내고 싶다’고 하며 열네 명의 여성들의 삶을 소개했다. 신사임당(1504~1551)은 경전을 가까이 했으며, 글도 잘 지었고 글씨에도 재주를 보였다. 뿐만아니라 바느질과 수놓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재주는 정밀했다. 사임당의 재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중요하게 거론 할 영역은 그림이다. 신라에 솔거에 대한 일화가 있다면 조선에는 그와 맞먹는 일화를 가진 사임당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그녀의 그림을 부덕이나 율곡의 어머니가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에서만 평가를 하고 싶어 했다. 이것은 현모양처라는 유교적인 덕목으로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우리는 예술가적 재능과 자신의 의견을 서슴없이 밝히는 당당함, 남편에게 자기가 죽은 후에라도 재가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당찬 여인의 면모에서 사임당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원도 홍천군에서는 ‘올해의 신사임당상’을 제정 해 수여하는데 올해로 38회를 맞이했다고 한다. 그 덕목 중에 ‘자아를 실현한 여성’도 있다 하니, 사임당 본연의 모습을 500년 후의 후손들이 미미하나마 찾으려 하고 있음을 그녀는 알까? 송덕봉(1521~1578)은 미암 유희춘의 아내이며, 기개가 넘친 여인으로 16세기를 살다간 우리의 선배여성이다. 송덕봉이 삼종지의를 따른 여성으로만 후대에 평가된 것은 그녀의 일면만이 강조되어 전해진 탓이다. 책 속에만 지극한 즐거움이 있다는 남편의 편지에, 그것은 인간적인 면모를 잃는 것이라 질타하는 화답을 보낸다. 또한 친정아버지의 비석 세우는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남편에게 ‘사위된 도리를 잘하라’며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송덕봉. 내외가 서너 달 떨어져 있을 때, 여색을 멀리하였음을 두고 ‘부인에게 갚기 어려운 은혜를 베푼 것’이라며 자랑하는 남편의 편지에 그것은 선비가 성현의 가르침을 따른 것일 뿐이라며 면박을 준다. 이렇게 가부장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 할 줄 알았고 가부장제의 권위에 억눌리지 않으며 송덕봉은 당당하게 살아갔다. 남편과의 대등한 ‘삶의 동반자’ ‘지기’로 살았던 여인 송덕봉을 우리는 어찌 삼종지의를 따른 여인으로만 기억하랴! 남편과 ‘지기’로 ‘동반자’로 당당하고 조화롭게 살아온 송덕봉과 달리 허난설헌(1563~1589)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낸다. 조선에서 여인으로 김성립과 결혼한 것이 세 가지 한인 것을 한탄하며 살지만, 유선시 속에 그녀만의 공간을 차려 당당하고 화려하고 행복을 꿈꾸며 살아온 허난설헌. 자신의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고 27년을 살다가 죽은 불운한 천재이다. 정신적 지주인 둘째 오라비 허봉과 주고받은 편지와 자유롭고 관능적인 분위기의 시들을 보면, 시대의 굴레속에서도 그녀의 정신세계는 발랄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중국에서도 인정을 받은 시인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표절작가로, 음탕한 계집으로 평가절하 되었다. 남편 김성립과의 사이도, 시어머니와의 사이도 순조롭지 않았고, 거기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먼저 보내야 했던 난설헌이다. 그래서일까. ‘서리 맞은 푸른 연꽃’이라는 시의 제목이 눈을 아리게 한다. 허난설헌과 나란히 16세기의 시인으로 중국과 조선에서 간행된 각종 시선집에 이름을 날린 시인으로 이옥봉(선조조 16세기 후반)이 있다. 이옥봉은 서녀인지라 결혼을 해도 소실로 들어 갈 수밖에 없었던 시절. 그렇다고 체념하거나 불행이라 여기지 않고 남편 될 사람을 스스로 선택해,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길 결정한다. 그녀는 훗날 ‘필화사건’으로 인해 남편에게 소박맞고 불운하게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시 비평서인 시화집들은 한결같이 그녀를 ‘시인’으로 다룬다.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천재 시인’으로의 모습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옥봉의 시는 조선뿐아니라 명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조선의 시인이었다. 하여 중국에서 간행된 시선집에는 허난설헌과 나란히 그녀의 시가 실리기도 하였다. 이들 외에도 <음식디미방>을 저술하여 17세기 조선 양반가의 생활상과 음식을 통해 일상의 삶을 역사로 남긴 안동 장씨(1598~1680), 천부적인 시인으로 여성으로서 사는 고달픔과 한을 당시 최고의 문학형식인 한시를 통해 당당하게 읊어낸 김호연재(1681~1722)도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여성성리학자로 <윤지당유고>에 ‘이기심성’ 이나 ‘사단칠정‘ 등 성리학의 쟁점이 되었던 문제들을 논리적으로 펼쳐낸 임윤지당(1721~1793)은 평생 성리학을 연구하며 지낸 지식이다. 조선시대에 살면서 공적 명예를 누린 김만덕(1739~1812). 그녀는 제주에 살면서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큰 재력가가 되어, 흉년에 백성구제를 하기도 한다. 그 공에 대한 포상을 ‘꿈에 그리던 금강산 구경하기가 소원’이라 거침없이 이야기 했다던 여인. 살아서는 벗어 날 수 없었다던 제주에서, 자신을 구속한 제도에서 벗어나려 했던 김만덕의 한 풀이였을 게다. 그 외에도 ‘바람처럼 살다 간 거리의 예인’이란 부제로 바우덕이(19세기)도 소개했다. 여자예인을 몸 파는 여성과 동일시했던 당시에 직업적 예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여인이다. 안성시에서는 해마다 ‘바우덕이 축제’를 개최하여 바우덕이를 기리고 있다. 이 책에서는 16세기에서 19세기에 살았던 여성들을 소개했다. 문화의 절정기라 불리던 16세기에 살았던, 여성의 삶이 구체적으로 달라지는 분기점으로 알려진 17세기 이후의 여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현모양처이지만 그에 앞서 여자였음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또한 현모와 양처를 위해 여성의 삶마저 포기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뿐 아니라 여성과 함께 살아가야할 우리 아들들도. 역사라 함은,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 모두를 포함한 인간의 역사를 말한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을 따로 떼어 남성만의, 여성만의 역사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간 역사에서 배재되어왔던 여성의 역할과 위치를 복원하여 진정한
역사를 찾길 그리고 미래의 역사에서도 공존하길 바란다.
함께 읽을 책 우리 여성의 역사/청년사 홀로 벼슬하여 그대를 생각하노라/사계절(미암일기) 자신을 완성한 조선 여성 신사임당/주니어랜덤 제주 백성을 살린 구원의 여인 김만덕/꿈틀 난설헌/다산책방/최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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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첨 든 생각은 놀랍다는 거였다. 내가 생각했는 조선의 여성들은 담밖으로 나올 수 없이 갇혀지내고, 평생을 남편 앞에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 하고 말 한 마디 편히 못 하다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역사에 드물게 남은 여성도 있지만, 갑자기 누가 묻는다면, 글쎄, 신사임당이나 기생 황진이 정도 아닐까.
그런데, 이 책속에는, 그 보다 훨씬 더 다양한 여성선배들의 얘기가 펼쳐진다. 분야도 다양하고, 활약상도 다양하다.
우리에게 꽤 알려진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의 얘기도 있고, 최근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김만덕도 있다.
13명의 여성가운데,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여인은, '김삼의당'이었다. 몰락한 선비의 짐에 시집 온 가난한 신부 김삼의당은, 남편을 입신양명시켜서 가문을 일으켜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남편을 뒷바라지하였다. 남편은, 오랜 공부에도 소원을 이루지 못 했다. 그리고, 자녀들을 좋은 가문에 출가시켜서 광영을 보려고, 또 무진 노력을 한다.
김삼의당의 삶이 인상깊은 이유는, 양반이라고 다 같은 양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상층의 규중에서 종을 부리면서 솜씨를 닦느라고 바느질이나 하고있는 양반여인들과는 달리, 시골에서 상민과 다름없는 삶을 살면서 팍팍한 자신의 삶을 노래도 풀어내었다. 김삼의당이 남긴 시들은, 이른 바 리얼리티가 팍팍 묻어난다. 남편과 자식의 출세를 위해 한 몸 바치면서, 평생 펴지지않는 살림을 살아도 기 죽지 않았던 그 삶에서 요즈음 여성들과 비슷한 면을 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