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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필요한 건 칼? 내시경?
"이 시대에 필요한 건 칼? 내시경?" 내용보기
암으로 투병 중이시라는 이외수 님의 소설을 읽은 건, <괴물> 이후로 십 여년 만인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땐가 2학년 땐가. 네크로필리아(시체 성애)라는 소재가 하도 독특한데다가 작가의 외양과 어우러져 우리문단에 이런 괴이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었다. 그 소설집을 읽고 나서 연이어 조정래의 <태백산맥>, <한강>을 읽었는데 훗. 소설가는 그렇게 산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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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으로 투병 중이시라는 이외수 님의 소설을 읽은 건, <괴물> 이후로 십 여년 만인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땐가 2학년 땐가. 네크로필리아(시체 성애)라는 소재가 하도 독특한데다가 작가의 외양과 어우러져 우리문단에 이런 괴이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었다. 그 소설집을 읽고 나서 연이어 조정래의 <태백산맥>, <한강>을 읽었는데 훗. 소설가는 그렇게 산발하고 한복을 입어야 글이 잘 써지는 건가보다 했다.

 

 이후 이외수의 소설은 한 편도 읽지 않았지만 산문집은 몇 권 읽었고 그것보다도 인터넷 기사를 통해 더 많이 접했다. 독특한 소재를 택하며넛도 쉽게 읽히는 소설을 쓰고, 많이 알면서도 쉬운 말로 대중에게 접근하는 소설가가 이렇게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바람도 이외수를 보면서 가지게 됐다. 이 책 <칼>은 굳이 서점에서 찾아 산 책이 아니고, 작년 한겨레21 퀴즈 큰잔치에 응모해서 무려 도서 40권 당첨의 행운을 잡았는데 그 중에 끼어 있던 증정 도서다. 시험 문제를 다 내고 아직 시험을 치르기 전의 하루 이틀 정도는 진도도 다 나갔기 때문에 으레 자습 시간을 준다. 짬짬이 질문도 받고 공부하는 분위기도 좀 잡아줘야 하기 때문에 복잡한 글을 읽기는 좀 그렇고 이런 소설이 제격이다.

 

 공부는 좀 하지만 운동이나 몸을 쓰는 건 조상 대대로 재능이 없는 집안의 자손 박정달 씨. 때는 아마도.. 이 책의 초판본이 1982년에 나왔으니 <말죽거리 잔혹사>의 배경이 되는 그 시절, 군부 독재 시절, 지금보다 폭력이 표면화되고 물리적 힘이 더 강렬하게 삶을 지배하던 시절일 것이다. 박정달 씨가 바라본 세상은 참 부조리하다. 학교에서도 힘 쎈 놈이 주름을 잡고 좋아하는 여자도 힘 쎈 놈에게 빼앗기고 직장에서도 자신은 가지지 못한 어떤 힘-아부와 굽신거림-을 가진 놈들이 앞서가는 이 세상. 마음 같아선 확 엎어버리고 그들을 없애버리고만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 힘에 대한 갈망은 박정달 씨의 손에 '칼'이라는 존재를 쥐어 주었다. 칼잡이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고, 고등학교 때 불량 서클에 가입하라는 선배의 권유를 거절했다가 신나게 두들겨 맞은 후 호신의 차원에서 과도를 지니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게 묘한 쾌감을 주면서 칼에 중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 칼에 대한 이론은 물론, 동 서양과 시기를 막론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종류의 칼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고 감상하기 시작한다. 그것 때문에 여러가지 봉변도 당하고 곤란한 오해도 받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운명이 일생일대의 신검(神劍)을 만드는 것임을 깨닫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대장장이의 길로 들어선다.

 

 홍천에 산다는 칼의 장인이 남긴 비전(秘典)을 얻기도 하고 영능력이 있는 처삼촌에게 신검의 비밀을 풀 힌트를 얻기도 하고, 숨겨진 권법과 검의 고수에게 영감을 받기도 하면서 그는 결국 신검을 완성해 낸다. 그가 바라는 신검은 결코 사람을 해치기 위한 검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검, 사람을 보호하는 검이다. 그런데 일생일대의 과업인 신검을 완성하고 나서, 그의 주변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평생 다툼이라고는 몰랐던 그가 소주병으로 동네 청년의 이마빡을 깨버리기도 하고, 자녀들은 서로 미칠 듯이 싸우고, 늘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던 마누라마저 바락바락 바가지를 긁기 시작한다. 칼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불길한 예감을 하고 있던 박정달 씨에게 늘 만나길 바랐던 절세의 고수가 나타나고, 이 칼의 살기(殺氣)를 잠재우려면 피를 먹여야만 한다고 전하는데......

 

누구의 피인지는 밝힐 수 없지만 피를 먹은 이 신검에 대해 절세고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이 칼은 그대의 소망대로 이 세상 어딘가에 감추어져 자비와 사랑과 덕과 인을 그 기운으로 삼아 언제나 정의로운 힘을 발휘할 것이니 머지않은 장래에 악의 무리는 기운을 잃고 어둠은 빛으로 바뀌리라. 가난한 자도 일어서고 힘없는 자도 일어서리라. 억울한 자들도 한을 풀리라. 그대는 이 세상에서 누리지 못한 영광을 천상에서 길이 길이 누리게 되리로라."

 

이 책이 나온 82년에 내가 살진 못했지만, 그 시절이 어떠했는지는 참 많이도 배우고 전해들었다. 봄이 찾아오는가 했던 이 땅을 군화가 다시 짓밟고 불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힘 자체가 정의처럼 보이는 세상이었다고 한다. 작가 이외수는 차근차근한 접근법으로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는가보다. 그래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혹은 환웅이 가지고 내려왔다는 천부인처럼 한 방에 세상의 정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바랐던가 보다. 하지만, 당연히 저런 칼이 있을리가 만무하거니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박정달씨가 원했던 세상과는 더 먼 곳으로 와버렸기에 저 절세고수의 말이 더욱 공허하게만 들린다. 타도해야 할 대상이 분명했던 저 때는 멋진 칼 한자루가 절실했는지 모르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잘못된 건 확실한지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시대엔 칼 대신 무엇이 필요할까. 내시경? 소화제?

s*************k 2015.06.30. 신고 공감 3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