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글들은 그림처럼 읽힌다. 매끄럽고 통쾌하고 날렵하다. 뒤돌아보지 않는 자의 단호함이 묻어나지만 떠나지 못하고 연연해하는 여림이 어울린 그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떠나가는 자에게 화끈하게 날리는 복수의 한 방이 이렇듯 유쾌할 수 있는 건 내일을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충천의 도공처럼 찰나에 모든 것을 거는 거다.
이리저리 풀어놓은 단편들이 약간은 기형적인 도자기들 같지만 애초에 흙을 모태로 둔 삶의 이야기들이며 생명에 대한 고찰이다. 앞으로의 고군분투가 더욱 기대되는 작품들이다.
|
|
신비한 느낌마저 주는 제목에 끌렸다. 장편 1Q84의 2권이 나오지 않아서 쉽게 1권을 다 읽어버릴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단편을 중간에 읽어줘야 내 흐름을 늦추겠다 싶어 단편 <이로니, 이디시>를 시작했다.
잘 모르겠다. 극중 두 아씨들이 저마다의 '이론' 으로 설명을 하지만 화자인 몸종 여자애처럼, 난 잘 모르겠다. 얼핏 이 두 아씨들의 농이나 별난 처지가 불쌍하기도 하고, 이 아씨들은 바로 명작가의 문학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렵기만하다. 책 말미에 실린 복도훈 문학 평론가의 설명 대로, 명작가의 소설은 그냥 읽기에는 뭔가가 계속 걸린다. 책을 읽고나서 의미를 혼자 가만가만 곱씹는다. 씹을 수록 맛이 다르다. 씁쓸한 그 맛이 그윽하다. 어쩌면 내가 잘못 아는게 아닐까, 하지만, 정답도 없는 듯하니 마음이 놓인다.
낯선 소재, 샴 쌍둥이, 인육 조리, 내 몸 속의 벌레, 변신 (벌레가 아니라 물고기), 동성애, 배신남에 대한 육탄 복수, 리얼돌(이런 단어는 이번 기회에 배웠다. 헉), 그리고 장기 이식,에 현혹되어선 안 된다. 낯선 이야기, 엽기 설정에 온다 리쿠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명 작가는 이런 설정 으로, 물질적인 우리들 몸을 통과하면서, 다른 이야기를-내 생각에는 문학론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단편들은 판타지로 읽히지 않고, 비유적 (어쩌면 시적이기 까지 한) 이야기로 읽혔다. 짧디 짧은 내 혓조각으로, 내 무딘 손가락으로는 풀어 쓰질 못하겠으니, 명 작가 표현을 빌자면 칼로 썰어 내야할 판이다. (흐미....)
표지 처럼 하얀 상태로, 아무 것도 미리 듣거나 읽지 말고, 명 작가의 단편들을 만나길 바란다. 모든 평이, 리뷰가 스포일러다. 그리고 다 읽은 후 불편하고 어색한 느낌을 오래 오래 곱씹기를 바란다. 문장은 메마르고 이야기들은 불친절하다. 하지만 역겹지는 않고 소설 속 불쌍한 인간들, 그들의 몸뚱이가 내 몸뚱이 같아서 덩달아 서글플 뿐이다.
|
|
표제인 <이로니, 이디시>에 이끌려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책을 딱 손에 받아든 순간, 심플한 하얀색 바탕에 나를 향해 고혹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 두 여인이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뭐랄까, 책을 읽기도 전에 이 창작집에 실린 소설들이 왠지 좋아질 것 같은 묘한 느낄이랄까? ㅎㅎ 아무튼 호감을 갖고 첫번째 소설부터 읽어내려갔다. 아, 그런데 소설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첫번째 소설인, <목표는 머리끄덩이>! 바람난 애인을 응징하기 위해 처절한 복수(?)를 계획하는 주인공의 얘기에 몇 번을 크게 웃었는지 모른다. 난 소설은 무조건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시키고 재밌어야 한다는 지론(ㅎㅎ)을 가지고 있는지라, 이토록 유쾌, 경쾌, 통쾌한 사랑스런 소설을 도저히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톡, 튀어오를 듯 생동감넘치는, 입에 착착 감기는 문장이 압권이다! 웃다가, 이 못되먹은 애인이 첫날 밤 모텔비를 주인공에게 내라고 하는 부분에서 함께 머리에서 불꽃이 확~! 솟아올랐다.(정말 나쁜인간이 아닌가!) 그러다가 주인공이 애인의 가족, 특히 어머니에게서 엄마냄새를 느꼈다는 구절에서 왠지 가슴이 싸했다. 어머니가 주인공에게만 쥐어주신, 용돈을 반띵하자는 애인의 집요한 요구에 끝내 응하지 않은 부분도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 작가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이토록 효과적으로,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천상 작가구나, 하는 그런 느낌!
두 번째 소설인, <이로니, 이디시> 과연 표제작으로 손색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는 머리끄덩이>를 읽었던 터라, 또 다른 통쾌(?)한 소설을 기대라고 있던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이 착, 하니 바닥에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뭐랄까, 소설의 본질, 적지 않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명지현이라는 작가의 문학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슬쩍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같이 가벼움을 무기로한 일본 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때에, 모처럼 진지한 성찰을 하는 작가를 만났다는, 그런 생각! 사유를 관념적으로 적어내려가는 작가는 간혹 있지만, 명지현 작가처럼 그 사유를 구체적인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작가는 흔지 않다. 글쎄 이 작품을 읽으면서 조심스럽게 한국문학의 영역확장을 기쁘게 떠올렸다면 어떨런지.
그리고, 세 번째로 언급할 소설은 바로 <충천>이다. 개인적으로 이 창작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소설이다. 소비자의 기호를 맞추는 그릇을 제작하기는 커녕, 고놈의 징그러운 벌레들에 꽂힌 한 도예가 스승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뒷부분에 적힌 발표 지면을 보니, 등단작인 <더티 와이프>이후에 두번째로 발표한 소설이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 최근에 발표한 작품이 아닐까, 했다. 그만큼 <이로니, 이디시>와 더불어 명지현 작가의 문학관이 강하게 느껴지는 수작이었다. 특히 묘사가 일품이다. 충천이 날아가는, 빛무리로 날아가는 그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조금만 인용해보겠다. .............충천은 귀가 아프도록 날갯짓 소리를 냈다. 웅웅거리는 소리의 한복판에 내가 있었다. 빛의 회오리, 번뜩이는 회오리.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선생은 보이지 않았다. 손을 휘저어 빛을 털어냈다. 갑자기 놈들이 내게 덤볐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살갗이 따끔따끔해 몸을 웅크렸다. 선생이 고함을 쳤다. 뭐하고 하는지 벌레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아도 빛은 계속 어룽댔다. 벌레들은 일제히 내게 불침을 놓았다. 겁이 덜컥 났다. 성난 짐승 같다. 아니, 이게 더 무섭다. 선생이 우악스럽게 나를 일으켜세웠다. 땀내 나는 점퍼에 싸인 나는 선생의 손을 잡고 소경처럼 끌려나갔다.........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다운 묘사가 아닌가! 명작가의 출중한 묘사력은 비단 이 구절뿐만이 아니라, 창작집 여기저기에서 마구마구 출몰한다. 그런데 묘사를 위한 묘사가 아닌, 아주 생생하고 독자에게 그 장면이 그대로 생각나도록 만드는 꼭 필요한 묘사이다. 거기에 명징한 주제의식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명지현 소설에는 기발하고 다소 엽기적인 상상력이 있으나,그것은 엽기를 위한 엽기가 아닌, 명작가의 맛깔스런 문장과 탁월한 상황설절으로 인해 독자에게 여운을 줄 수있는 범위내에서의,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소설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것이 또한 여타의 요즘 엽기(?) 작가들과의 유다른 점이다. 다소 황당하고 기기묘묘한 상상력만으로 무장한 젊은 작가들의 글을 읽는 재미도물론 독자입장에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명지현 작가처럼 이미 준비된 상태로 등단하여 탄탄한 글솜씨를 십분 발휘하는 작가 또한 독자로써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점점 깊어지는 명작가의 소설이 다음 두 번쨰 창작집에서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름은 약속이고 신호이고 가면이며, 농담이고, 은유면서, 거울이지. 그리고 존재의 이로니야. 이로니." 뒷 날개에도 적혀있는 이글이 자꾸만 내 머릿속에 맴돈다. |
|
이로니 이디시는 명지현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단편소설의 묶음인 이로니 이디시의 '충천'에서는 아름다운 빛을뿜어내는 벌레를 보기위해 눈에 들어간 벌레를 키우는 도예가가 등장한다. '손톱밑 여린 지느러미'에서는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어인같은 모습을 한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모두들 힘들지만 힘내자'라는 격려이자 작가 자신을 향한 암시로도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