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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예루살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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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 열병(熱病)의 땅에 히친스(『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읽어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광기 충만한 언덕 위의 도시― 아랍인의 함락,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대학살, 여러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 밸푸어 선언에 이은 첨예한 마찰,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양분과 재점령, 2차 대전 이후 다시 세워진 이스라엘과 갈 곳 잃은 유대인들, 유대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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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살렘에,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 열병(熱病)의 땅에 히친스(『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읽어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광기 충만한 언덕 위의 도시― 아랍인의 함락,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대학살, 여러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 밸푸어 선언에 이은 첨예한 마찰,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양분과 재점령, 2차 대전 이후 다시 세워진 이스라엘과 갈 곳 잃은 유대인들,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분쟁,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의 슬픔이 집약된 통곡의 벽……. 예루살렘의 대표적 유적지 중 하나는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라고 한다. 예수가 안장되었던 묘지에 세워진 것으로 ‘십자가의 길’의 제10지점부터 제14지점까지가 이 교회 안에 위치한다고(1~9지점은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걸었던 곳). 다시 말해 성묘 교회는 골고다 언덕 위에 있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한 뒤 안장된 묘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은 너나없이 묘지에 입을 맞추고 언덕에 오른다. 그런데 심지어 이 교회를 여러 종파가 나누어 관리하고 있단다. 옛 골고다 언덕과 중앙 예배당은 로마 가톨릭교에서,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또 다른 기념 묘지는 콥트 교파에서, 또 다른 주요 장소들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교회의 열쇠는 이슬람 측이 가지고 있다. 교회 하나마저도 이렇듯 나뉘어 있으니 솔로몬이라고 어찌 판결을 내릴 것이며 나머지 것들은 어떻게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것이 공중으로 붕 떠버린 도시에 닿기 위해 사람들은 이 땅뙈기(라 지칭해 미안하지만)를 서로 제 것이라 하고 있다.




이스라엘인-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무슬림이라는 두 경우 모두 각기 상대의 파멸을 종말의 전제로 삼음으로써, 깊이 가라앉아 있던 묵시종말론적 기류가 표면으로 떠올랐다 (...) 영토 때문에 시작된 전쟁은 우주를 놓고 벌이는,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자기최면적 전쟁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 그러므로 우리의 주제는 종교 이상이기도 하고 이하이기도 하다.


ㅡp.498~499




어디 종교적 상징성의 측면이 이것뿐일까. 이스라엘의 종교에 있어 어머니의 도시이자, 유대교의 ‘통곡의 벽’ 이후 약속의 땅으로, 또 그리스교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땅이다. 고대부터 중세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기를 머금은 자들이 숱하게도 혀를 날름거렸던 바로 그곳이다. 『예루살렘 광기』는 이 ‘종교적 폭력의 본거지’를 철저하게 궤를 같이한 (종교적)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고(이 많은 것들을 어찌 다 말할까) 또 이러한 색채를 띤 이야기를 거치지 않으면 예루살렘에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한다. 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다윗이 정복해 수도로 삼았지만 이후 나라 자체가 두 개로 갈라졌다. 그러나 훗날 그리스인들이 예루살렘 일대를 재정복하고 유대교에 그리스 문화를 접목시켰지만 유대인들에 저항에 의해 재차 그들의 도시가 되었고, 거듭 로마의 헤롯이 왕의 자리에 오른다. 성전에 발을 들인 예수는 예루살렘을 두고 ‘선지자들을 돌로 죽인 도시’라 한탄하고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다. 그리고 예수 사후 반란을 진압한 로마의 성전 파괴, 3세기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세운 교회(여기에 ‘십자가의 길’이 속해 있다)까지― 지상에 존재하는 예루살렘과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천상의 예루살렘 중 어떤 것이 그 실체일까? 저 옛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세계의 중심으로 그려 넣었던 지도는 존중의 의미일까 아니면 정복의 야심일까? 나아가 오늘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는 돌아온 탕아들의 다툼으로만 봐야 할까?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으며 「마이크 타이슨이 아기를 두들겨 팬 뒤 ‘이 아이가 나에게 침을 뱉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일컬어지는 가자지구 폭격은 어떤 종교적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까? 캐럴의 집요한 추적은 『예루살렘 광기』로 만들어져 종교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서 종교가 아닌, 광기 어린 폭력의 역사를 발견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u******o 2014.08.04.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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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인가 허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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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에서 이스라엘 소년이 살해되자 이스라엘은 누가 범인인지 여부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를 겨냥해 무차별 공습을 퍼붓는다. 2014년 7월 8일 하마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지역에 로켓포를 발사한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대대적인 공습을 벌였다. 휴전과 교전을 반복하며 벌어진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 2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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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에서 이스라엘 소년이 살해되자 이스라엘은 누가 범인인지 여부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를 겨냥해 무차별 공습을 퍼붓는다. 2014년 7월 8일 하마스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지역에 로켓포를 발사한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대대적인 공습을 벌였다. 휴전과 교전을 반복하며 벌어진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 2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만 명 이상이 다쳤고 1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 측의 피해는 민간인 5명과 이스라엘 군인 64명이 숨진 데 그쳤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8년. 지난 2000년간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은 자신들의 조상이 살던 옛 땅을 찾아 나라를 세운다. 그런데 이미 그곳에는 2000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수도는 텔아비브이지만 그들은 예루살렘을 수도 이상으로 생각한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인들의 신앙과 역사 그리고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알 쿠드스(Al Quds)라는 이름도 있다. 이는 무슬림들이 이 도시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 도시는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바친 바로 그 바위에 세워진 도시다. 또한 이슬람교를 탄생시킨 무함마드가 승천할 때 디뎠던 그 바위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세 십자군 전쟁은 유럽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다. 전쟁을 시작하며 유럽의 종교 지도자는 이렇게 외쳤다. “신의 이름으로 그곳을 탈환하라.” 흔히 이런 전쟁을 ‘성전(聖戰)’이란 이름으로 미화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성전이란 단어는 모순명사다. 즉 의미가 양립할 수 없는 두 단어가 들어 있는 말을 의미한다. 그러니 세상에 ‘성스러운 전쟁’은 없다. 그러나 종교는 이런 모순명사를 무시해 버렸다.

저자인 제임스 캐럴은 가톨릭 사제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머무르던 그의 신앙관이 바뀌어 사제복을 벗어 버린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그는 수 세기 동안 신앙을 들먹이며 예루살렘을 성지로 만든 이는 수많은 인간들이었고 그들은 자신의 신앙에 도취돼 예루살렘이란 땅이 메시아의 재림과 계시가 이뤄질 곳이라고 여기며 병적으로 열광·집착한다고 단언한다.

e****n 2014.10.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예루살렘 광기] 예루살렘, 오오 이토록 성스러운 '유토피아'여
"[예루살렘 광기] 예루살렘, 오오 이토록 성스러운 '유토피아'여" 내용보기
[예루살렘 광기] 예루살렘, 오오 이토록 성스러운 '유토피아'여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코너에 몰려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 코너는 그들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코너의 한쪽 벽은 서구 문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반유대주의의 오랜 역사다. 기독교 신학은 (...) 유대인들은 유대 본토로부터 추방당하게 되어 있음(예루살렘으로부터의 유대인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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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광기]

예루살렘, 오오 이토록 성스러운 '유토피아'여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코너에 몰려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 코너는 그들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코너의 한쪽 벽은 서구 문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반유대주의의 오랜 역사다. 기독교 신학은 (...) 유대인들은 유대 본토로부터 추방당하게 되어 있음(예루살렘으로부터의 유대인 배제)을 전제로 삼는다. (...) 1948년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귀한에 관한 양가서은 이 같은 맥락에서 상당 부분 설명이 가능하다(가령 바티칸은 1994년까지 이 국가를 인정하지 않았다).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취해 온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반유대주의는 아니지만, 이스라엘이 늘 비난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열쇠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 대해 다수가 느끼는 본능적인 불편함에 있다. 나머지 한쪽 벽은 식민 정책이다. 유대인들이 여전히 오랜 과거의 역사에 휘둘리고 있듯, 아랍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역사는 곧 인종차별의 역사다. 식민지의 민족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경멸 말이다. (...) 식민지 개척 세력이 예루살렘에 뿌려 놓은 유대-아랍 분쟁의 씨앗이 단단히 뿌리를 내려 버린 셈이다. (...) 그러나 그 제3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인식도, 인정도 하지 않는다. (...) 나는 바로 그 제3자를 지목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3자를 밝혀낸 뒤에야 비로소 그 힘의 작용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 저자 인터뷰

  

이 책의 저자 제임스 캐럴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예수회 계열 대학에 진학했고 아예 신학교로 옮겨 석사학위를 받는 것으로 모자라 사제가 된다. 신앙인으로서 정점을 찍었다 생각한 순간 열의가 사라지고 혼란에 휩싸였다. 마음을 잡고 영적 성숙을 위해 떠난 예루살렘 성지순례는 그에게 엄청난 확신을 심어주었고, 이 경험으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사제직을 그만 뒀지만 신앙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리고 전업 작가가 된다. 그가 몰두하고, 그를 관통하는 두 가지 주제가 있다. 하나는 아메리칸 레퀴엠전쟁의 집으로 대표되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콘티탄티누스의 칼예루살렘 광기로 대표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 예루살렘 광기는 그렇게 작가 자신의 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한 책이다. 사사로운 동기였지만 그 완성품은 창대한 역작이다.

덤비는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대개 읽는 이의 수준보다 높은 어려운(데다 두껍기까지 하면 더욱)’ 책들이 그렇다. 반가워하며 주먹 불끈 쥐고 전투 독서하며 책과 승패를 겨룬다. 이런 책 중 뭔지 모를 짜릿함에 휩싸여 읽는 내내 신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올해는 예루살렘 광기가 처음 만난 그런 책이었다. 역사, 종교,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 배경지식이 얼마나 있어야 이 책을 완전히 읽을 수 있을까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저자의 서술은 종횡무진 한. 서로 중첩되어 이어진 10개의 장은 다시 한 가지 담론을 그린다. 본문 간의 중첩이 저자가 독자를 위해 마련한 유일한 배려이다. 흔히 대중교양서가 가진 친절함(차근차근 설명하며 떠먹여주는)예루살렘 광기엔 없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중요 성지인 예루살렘, 그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과 분쟁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톨릭은 끊임없이 십자군 전쟁에 대해 속죄했지만 20년 전까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았고, 부시는 그 불편한 단어인 십자군을 다시 입에 올리며 이스라엘과 미국의 긴밀한 유대와 미국의 중동 개입을 대놓고 표를 내기 시작하였다. 빈 라덴 사후 이슬람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은 예루살렘으로 집결한다. 미국의 출연으로 이 미친 성전의 판은 오히려 더 커졌다. 저자는 예루살렘이 서구 역사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둘러싼 광기의 기원을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 제임스 캐럴은 예루살렘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과 종교의 본질을 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p.11) 이 책은 예루살렘이라는 실제 도시와 그 도시가 던져 주는 묵시종말론적 환상 간의 치명적 순환 고리에 관한 책이다. 다시 말해, 두 예루살렘에 관한 책이다. 땅의 예루살렘과 상상 속 예루살렘, 그러한 이중성은 기독교의 예루살렘과 유대교의 예루살렘, 유럽의 예루살렘과 이슬람의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언덕 위 도시라는 실제 지리상의 예루살렘과 메시아 국가라는 이상으로서의 예루살렘 간 긴장을 통해 한층 두드러진다. (p.13) 수 세기에 걸쳐 환상 속의 그 도시가 현실 속 도시를 만들어 내고, 그 현실 속 도시는 다시 환상 속 도시를 만들어 왔다. 결론은 전쟁이다. 지난 2000년간, 예루살렘의 지배 세력은 열한 차례나 거듭 전복됐고, 거의 모든 경우 극단적 폭력을 수반했으며 그 전면에는 늘 종교가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전쟁 이야기, 즉 신성한 땅이 전쟁터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토마스 무어가 주창한 유토피아는 모든 인류가 꿈꾸는 이상향이지만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모순의 공간이다. 이러한 유토피아의 속성과 가장 가까운 곳이 예루살렘이 아닐까 싶다. 예루살렘은 4대 문명 중 둘이 속한 비옥한 초승달 지역안에 있는 도시다. 유일신이 말한 약속의 땅이었고, 예수의 주 활동지였으며, 가장 오래된 이슬람사원이 있는 탐나고 탐나는 곳이다. 제임스 캐럴은 종교의 본질을 폭력과 모순으로 규정한다. 신석기혁명으로 인류는 수렵채집 생활을 멈춘다. 그러나 그때 맛본, 살육의 집단흥분이 DNA에 각인되었다. 인류는 이를 종교의식을 치를 때 희생물을 요구하는 희생제의라는 방법으로 타협점을 찾는다. 문제는 이 희생제의를 통해 폭력을 거부하는 종교의 중심에 폭력이 있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탕부터 모순이니 교리와 신앙이 비이성적인 것은 당연하다.

   

(pp.268~269) 하느님은 막강한 통치자에서 친구로 진화했다. 한 종족에게만 충실한 하느님이 아니라, 도처의 모든 인간에게 충실한 친구인 단일한 하느님이 된 것이다. 따라서 성서는 상대적 약자의 관점에서 풀어낸 사회적 서사로, 스스로 한 민족을 창조해내고 그 민족에게 자기비판의 원칙 즉 예언을 주었다. 성서는 희생자가 된 민족 스스로도 타인을 희생양 삼으려는 충동을 지니고 있음을 경고했다. 폭력의 충동을 느꼈던 성서 속 하느님이 폭력을 거부했다. 이 하느님은 홍수로 지구를 한차례 멸망시킨 뒤 이렇게 맹세했다. “다시는 아니하리라.” 당시 유럽인들은 중세시대 이래 문화적, 경제적, 종교적 대변혁을 또 한 차례 겪었으나, 이는 다시는 아니하리라라는 서사의 번복이었다. 우리는 기독교가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규정해 유대교의 부정적 이미지에 대비시키고, 유럽 대륙이 외부의 적인 이슬람교에 맞서 단일화된 문화로 결집했음을 지켜보았다. 인간 본성이 무엇이든, “네 적을 사랑하라라는 평화운동에서 출발한 종교가 또다시 전쟁의 후원자가 되었다. 천년왕국을 향한 열병에서 수많은 운동이 생겨났고, 그중 십자군운동과 그 정신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라틴인과 잔틴인 사이뿐 아니라 라틴인과 아랍인 간의 수많은 무력 충돌로 대대적인 변화가 촉발되었다.

  

그래서 팽팽하게 대립하는 각 종교간 이해관계에서 어느 누구도 승자도 선도 있을 수 없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은 이스라엘을 두고 서로 주인임을 자처하는 동시에 자신의 피해를 부각하지만 세 종교 모두 역사적으로 과오가 있다. < 예루살렘 광기는 각 시대별로, 종교별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분석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성과는 현재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한 지배적 관점이 얼마나 기독교 편향적인지 밝힘으로서 독자들이 다시 생각하도록 돕는 것이다.

 

예루살렘 광기를 관통하는 흥미로운 개념은 성서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에 입각한 묵시종말론적 사고. < 요한묵시록은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논란이 되는 성서이다. 인류의 종말과 구원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석을 놓고 수많은 교파가 갈려 이단전쟁을 낳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학자나 성직자가 조심스럽고 보수적으로 다룬다. 그러면서 신자들을 단속하는 각인기제로 강력하고 요긴하게 사용해왔다. 반유대주의의 기저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세 종교의 전쟁의 표현만 다를 뿐, 결국 묵시종말론적 사고에 입각한 성전이다. 누가 극단적 공포를 견디고 유일신의 선택을 받는지, 신의 도시의 주인인지를 놓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이 세 종교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종교의 본질을 규정한다는 것은 심한 비약의 위험한 시도일 수 있다. 그러나 네 대륙(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의 이해관계가 얽힌 유일 무일한 갈등이고, 제법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좋은 종교에 대해 고민한다. 그의 평생을 지배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종교가 있는 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문제이다. 저자의 명민한 통찰력을 통해 다각적으로 예루살렘의 특수성을 배울 수 있었고, 세계를 보는 눈을 좀 더 키울 수 있었다. 색인과 주석 등까지 포함해서 66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고 꽤 어려운 편인데도 피곤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오타도 없고 바르게 용어 표현한 바른 역자와 편집자의 꼼꼼한 작업 덕인 것 같다. 빨간 표지처럼, 한여름 더위가 싹 가실만큼 빠져들었던 강렬한 책이었다.

 

i*****7 2014.08.16. 신고 공감 0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예루살렘 광기》왜 예루살렘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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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광기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감이 찾아옵니다. 이 누적된 회의감과 피로감이 극에 달아있는 이때, 《예루살렘 광기》를 만났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의 끊임 없는 '예루살렘'에 대한 소유와 집착이 시작은 무엇이었을지 무척이나 궁금 했습니다. 이 책은 서구 역사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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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광기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하는 회의감이 찾아옵니다. 이 누적된 회의감과 피로감이 극에 달아있는 이때, 《예루살렘 광기》를 만났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의 끊임 없는 '예루살렘'에 대한 소유와 집착이 시작은 무엇이었을지 무척이나 궁금 했습니다. 이 책은 서구 역사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인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것! 피터지게 싸워서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10여 년간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추적하는 책입니다.

 

 

 

 

솔직히 가볍게 읽어 내려갈 만만한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기도 하지요. 먼저 이 책을 이야기 하려면 저자의 관점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뜨거운 감자인 '예루살렘의 소유'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어떤 시각에서 얼마나 객관적으로 써내려갔는지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겠죠.  저자 '제임스 캐럴'은  가톨릭교인이자 영어를 쓰는 미국인 남성 그리고 전쟁에 집착하는 군인의 아들이자 외부인이라고 소개합니다. 게다가 1969년 가톨릭 사제를 받았지만 하지만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 종교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면서 사제직을 그만 두기도 했죠. 그의 이력들이 말해주듯이 종교인의 입장에서도 현재 '예루살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회의감과 좌절을 품은 곳이기게 충분합니다. 가장 성스러운 곳과 가장 폭력적인 곳이 공존하는 그곳이 바로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의 이면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평화로운 곳이 오늘날 품고 있는 민낯은 처참합니다. 《예루살렘 광기》는 특정 종교를 비판하는 것도 따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스러운 곳이 현대에 어떠한 폭력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알고자 하는 책입니다. 잔혹하리만큼 배타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예루살렘'의 실상을 최대한 객관적이게 보고하려는 의도가 있죠. 앞으로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미래는 밝지만은 않습니다. SF 소설과 영화에서 흔히 다뤄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아주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광기의 어두운 세계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열병'과 '광기', '집착'을 식혀 줄 '신'은 대체 어디있는 걸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였습니다. 오늘도 전쟁으로 눈을 떠서 전쟁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그곳의 여러사람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해봅니다.

d*****9 2014.08.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