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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굴라크 생존자들을 통해 본 유령적 실체
"우리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굴라크 생존자들을 통해 본 유령적 실체" 내용보기
’돌아온 희생자들(The Victims Return)‘은 소비에트와 포스트 소비에트 전문 연구자인 스티븐 코언의 책이다. 스탈린 사후 굴라크(강제 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과 방대한 자료를 해석해 써낸 이 책에서 저자는 스탈린의 희생자들 중 70 퍼센트 이상이 평범한 시민들이었음을 밝힌다. 스탈린 치하에서 희생자들이 수백만 단위에 이른 것은 한 명이 체포될 때마다 반드시 처벌
"우리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굴라크 생존자들을 통해 본 유령적 실체" 내용보기

 

 

’돌아온 희생자들(The Victims Return)‘은 소비에트와 포스트 소비에트 전문 연구자인 스티븐 코언의 책이다. 스탈린 사후 굴라크(강제 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과 방대한 자료를 해석해 써낸 이 책에서 저자는 스탈린의 희생자들 중 70 퍼센트 이상이 평범한 시민들이었음을 밝힌다. 스탈린 치하에서 희생자들이 수백만 단위에 이른 것은 한 명이 체포될 때마다 반드시 처벌할 공모자들을 찾아야 하는 형법 제 58조 때문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돌아오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을 잊지 말라는 당부를 수도 없이 들었다는 저자는 우리들에게도 그들을 잊지 말라는 당부를 한다.(이 책은 서구의 다른 소비에트 체제 관련 책보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저자는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의 모델이 된 니콜라이 부하린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쓴 미국 출신의 뉴욕 대학교 교수이다. ’돌아온 희생자들‘은 바로 그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저자의 글은 스탈린 사망 이전을 다루거나 굴라크 이후의 삶은 거의 언급되지 않은 현실에 시사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책 탄생의 배경을 언급한 부분을 통해 알 수 있듯 스탈린의 희생자들은 정치적 배경이 다양했다. 저자의 책이 출간된 기저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여건과 위험 속에서도 정보를 제공하고 선의를 베푼 의인(義人) 같은 존재들이 있다. 예브게니 그네딘, 안나 라니나, 일리야 예렌부르크 등이 그들이다. 굴라크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첫 외국인인 저자는 그 과정에서 벌일 수 밖에 없었던 첩보전적 양상을 전한다.



인터뷰 이후 30년만에 나온 특별한 책인 ’돌아온 희생자들‘을 통해 저자는 그 생존자들의 위대한 귀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임을 강조한다. 스탈린(1878 - 1953)은 1920년대 중반부터 사망시인 1953년까지 25년이 넘는 기간 소비에트 정치 체제를 전제권력과 집단 테러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 넣었다. 스탈린 사후 희생자들은 대부분 감옥 또는 수용소, 유형지 등에서 바로 풀려나기는커녕 관료적 장애물과 서류작업에 묶였다.



그 자신 독재자이지만 대규모 탄압을 일삼은 죽은 독재자 스탈린을 비난함으로써 희생자들의 무죄를 인정해준 존재가 바로 흐루쇼프(Khrushchov: 1894 - 1971)이다. 수용자들의 조건 없는 석방을 명한 것도 그였다. 돌아온 몇몇 희생자들은 자신들을 몸의 뼈대에 살가죽이 늘어붙어 있는 형상으로 묘사했다. 어떤 사람들은 불확실한 자유보다 1953년 이후 어느 정도 상태가 개선된 굴라크의 규칙적인 생활을 더 선호했다.



바실리 그로스만(Vassili Grossman: 1905 - 1964)이 ’모든 것은 흘러간다‘란 소설에서 썼듯 그들은 수용소를 떠나고자 하는 열망을 잃어버린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수용소를 떠나기를 갈망했다. 굴라크 생존자들의 삶은 인간 조건 자체 만큼 각양각색이었다. 놀랍게도 80, 90대까지 살다간 희생자들이 꽤 있었다. 굴라크 생존 후 걸출한 경력을 쌓은 사례들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우회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1930, 40년대의 정치 희생자들 중 다수가 공산당에 가입했거나 가입을 위해 애썼다.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신상의 안락을 위해, 무죄판결의 보증서로 활용하기 위해 등등이었지만 강한 정치적 신념을 위해서인 경우도 많았다. 생존자들 가운데 논쟁이 일기도 했다.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 - 2008)이 굴라크 경험을 개인적, 도덕적 구원으로도 볼 수 있다고 본 반면 시인, 극작가 바를람 샬라모프(Varlam Shalamov: 1907 - 1982)는 그곳에는 오직 인간성 말살과 죽음만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스탈린의 희생자들은 정치적 관점에 상관없이 대부분 스탈린을 증오했지만 이 부분에서조차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귀환자들은 자녀들 뿐 아니라 풀려난 가족들과도 예전의 친밀감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귀환자들의 잃어버린 삶과 남아있던 사람들이 살아낸 삶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생존자들 가운데 환영(歡迎)이 아닌 의심의 눈초리와 적대감을 감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스탈린의 세뇌 정책 때문이지만 공식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생존자들에게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란 의심이 돌아왔다.



잡혀가는 사람들을 도우려 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노력은 대부분 허사가 되었고 당사자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굴라크 생존자들의 대량 귀환과 이주로 소련 사회는 테러의 희생자와 가해자들의 깊은 반목에 휩싸였다. 일부 희생자는 스탈린의 테러는 누구에게도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기에 아무도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받아들였다. 석방과 동시에 권력의 중심부 가까이 올라간 사례도 있었다.



저자는 정치적 논리만으로는 흐루쇼프가 개인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가의 범죄를 폭로하고 생존자들을 풀어주며 도와주는 일에 앞장선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흐루쇼프의 행동을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 도덕적 지각에 의한 결과 등으로 이해했다. 반스탈린주의는 흐루쇼프의 지도부를 굳건히 하는 한편 위태롭게도 했다. 폭로는 저항을 불렀다. 흐루쇼프가 감행한 폭로의 영향으로 비밀 경찰의 장군과 굴라크의 사령관 수십명이 자살했다. 동료들의 체포를 묵인했다는 죄책감에 자살한 사람도 있었다.



스탈린 시대에 국민의 약 5 퍼센트가 비밀 정보원이었고 최소 100만명이 굴라크의 직원이었다. 흐루쇼프 역시 무고한 사람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흐루쇼프가 스탈린 시대의 범죄나 공공의 범죄를 폭로할수록 위태해짐을 의미한다. 흐루쇼프는 그럼에도 스탈린 시절의 죄악상을 조사할 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스탈린이 테러를 통해 독재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소비에트 정치체제를 경찰국가로 변형시켰다고 결론지었다.



급기야 흐루쇼프의 반스탈린 계획에 너무 많은 사람이 얽혀 있어 소비에트 체제 자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보고되기까지 했다. 결국 흐루쇼프는 反스탈린 정책 때문에 실각한다.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이 親스탈린 정책으로 전개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소비에트와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의 스탈린 희생자들의 지위는 스탈린의 공식 평판 및 흐루쇼프의 평판에 따라 계속 불안정하게 흔들렸다는 사실이다.



소비에트 관료들이 처음 흐루쇼프의 脫스탈린 정책을 지지했던 주요 이유는 폭력적 개인 독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 때문이었다. 反스탈린주의는 서구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적들이 날조한 반공산주의 슬로건으로 규탄을 받았다. 1969년 스탈린의 90번째 생일을 앞에 두고 新스탈린주의자들은 폭군 스탈린의 절대적 복권을 위한 저돌적 캠페인에 들어갔다. 스탈린 흉상이 정기적으로 꽃으로 장식되기까지 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굴라크 생존자들이 범죄 혐의를 벗지 못한 채 사망했다. 복권된 사람들도 불안에 시달렸다.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으로 인해 복권자들의 다수가 복권받지 못했다는 느낌으로 살아야 했다. 완전한 구제를 희망하는 스탈린의 희생자들은 또 다른 흐루쇼프가 언젠가 나타나리라는 생각과 흐루쇼프 시절에 대한 기억에 매달렸다. 실각한 흐루쇼프는 솔제니친의 금지된 소설들을 밀수본으로 읽고 “나도, 그 친구도 미쳤구먼”이라고 말했다.



‘수용소 군도’가 소비에트에서 출간된 1990년을 스탈린의 희생자들이 진정으로 돌아온 때라고 생각한다며 저자는 100만명 이상의 무죄를 인정해주었고 1991년 스탈린의 희생자들을 모두 복권시킨다는 내용의 포괄적 대통령령을 발표한 고르바초프를 언급한다. 저자는 스탈린의 희생자들은 비극적이면서 신성했던 사람들이라 정의한다.



학자에게 객관성은 중요한 자질이지만 고르바초프 시절 자주 시험에 들었다는 저자는 1989년 노동절 행진 행사를 앞두고 붉은 광장에서 소비에트 국영 텔레비전에 출연해 달라는 갑작스런 공식 초청에 응해 모호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스탈린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까지 자제할 필요는 없었다고 느끼고 그들을 위한 행사와 추모의 밤 행사에도 갔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가 예전부터 알았던 굴라크 생존자들은 벌거벗은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며 살아온 세월’을 뒤로 하고 새로운 상황에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흐루쇼프는 모순적이었다. 스스로 손에 피를 묻혔고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지 못했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와 바실리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을 금지했고 1956년 이후 억압적인 조치로 몇몇 노동 수용소를 다시 죄수들로 채웠지만 굴라크 생존자들에게는 감사한 존재였다.



죽은 스탈린이 러시아를 양극화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고도 시사적인 사안이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그를 수백만의 무고한 생명을 죽인 잔혹하고 무자비한 독재자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그가 정직한 시민을 탄압한 적이 없는 위대하고 지혜로운 지도자로 생각하거나 그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수는 그의 업적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저자는 러시아 근대사에서 스탈린주의는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로 그 형성에 크게 기여했고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에 노예제도가 수십년 동안 미국을 분열시켰던 것처럼 지금까지도 나라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스탈린주의 르네상스가 1990년대 포스트 소비에트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 정권하에서 아래로부터 일어났다고 설명한다. 옐친의 주도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및 복권 등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가 자유시장 자본주의로의 빠른 전환을 위해 도입한 경제안으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다. 포스트 소비에트 러시아는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 시기를 능가하는 경제적 붕괴에 직면했다.



超 인플레이션, 극단적 빈부격차, 파산자 속출, (남자들의) 평균 수명의 급격 하락 등 난세 속에서 소비에트 시대에 대한 향수와 스탈린에 대한 지지 및 재평가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불로소득 등의 특권을 누리는 계층의 등장은 스탈린의 탄압이 인민의 실제 적에 대한 응징이었다는 해석을 낳기까지 했다. 스탈린 지지도의 상승은 흐루쇼프, 고르바초프, 옐친 지지도 하락과 맞물렸다.



푸틴은 스탈린에 대한 모순적 태도를 보였다. 저자는 스탈린주의 르네상스가 한때 신성했던 굴라크 희생자들의 지위를 무참히 무너뜨렸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찬란함과 처절함이 공존하는 나라는 그 둘을 조화시키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스탈린 시대의 범죄를 둘러싼 정치 투쟁이 러시아의 최고위층에서도 다시 진행되고 있기에 희생자들의 기나긴 귀환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 결론짓는다. 우리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책 ‘돌아온 희생자들’을 적극 추천한다.

m******1 2014.11.2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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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악몽
"아직 끝나지 않은 악몽" 내용보기
종이호랑이와도 같아 보이는 러시아지만 무시할 순 없다. 거대한 영토와 넘치는 노동력, 독재를 꼭 닮은 강렬함을 지향하는 푸틴 등. 각종 국제회의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이 나라가 얼마나 전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러시아만이 아니다.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누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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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호랑이와도 같아 보이는 러시아지만 무시할 순 없다. 거대한 영토와 넘치는 노동력, 독재를 꼭 닮은 강렬함을 지향하는 푸틴 등. 각종 국제회의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이 나라가 얼마나 전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러시아만이 아니다.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누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혁명이 안정적일 순 없다.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것을 실현하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다른 국가 아닌 상대적으로 뒤쳐진 러시아에서 발생했다는 건 의외였다.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인데, 거기에는 엄청난 대가가 뒤따랐다. 극과 극은 통하기 마련인데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재빠른 변화를 도모하던 세력에 반하는 반동적인 움직임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스탈린이다. 직접 경험을 하지 아니 한 세대로서는 이 인물을 강력한 지도력의 표상 즈음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미국이나 여타 그의 정치력을 인정하기 싫어한 세력이라면 콧수염으로 대표되는 그의 캐릭터를 보다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보고자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무어라 딱히 정의하긴 어려우나 그의 정치는 폭압에 가까웠다. 남미의 많은 독재국가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람들이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스탈린 치하 러시아에서는 사람이 실종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정치적 정적을 제거하는 일은 비민주적인 사회의 지도자라면 당연시 여기는 일 중 하나다. 문제는 러시아에서 제거를 당한 이들이 결코 정치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인물은 부하린이다. 저자는 스탈린주의를 대체할 사상을 트로츠키가 아니라 부하린으로부터 발견했다고 보았다. 사실 다분히 변증법적이면서도 시장경제의 부분적인 도입을 주장했던 그의 이론은 레닌에 의해 부정당했다. 허나 마냥 이상적이지만은 않았고, 러시아 현실에 접목하기에 딱이었다. 부하린은 스탈린에 의해 1929년 지도부에서 쫓겨났으며 1938년 생을 마감했다. 그의 아내 안나 라리나와 아들 유리 라린은 자연스레 권력에서 소외됐을 뿐만 아니라 목숨의 부지를 걱정해야만 하는 차지에 놓이게 됐다. 실제로 그들과 관계를 맺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탈린 시대를 견뎌 내는 데 실패했다. 굴라크(Gulag)라 불리는 강제 수용소에 보내진 이들은 극도의 추위 속에서 끔찍한 노동을 하다 사망에 이르렀다. 스탈린이 사망하기 얼마 전 그 곳에 수감된 이들 중 일부가 운 좋게도 살아남았으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솔제니친 역시 이 곳 출신(?)이다.

스탈린의 시대와 굴라크에서의 삶을 평가하는 건 쉽지 않다. 우선 자료가 한정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이 시대의 자료를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는 저자에 의해 부정당하지만 말이다. 어쨌건 이 시대를 알기 위해선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쉽진 않았으니 같은 경험을 공유한 이들조차도 굴라크에서의 삶을 비인간적이었다, 그래도 인간적인 가치는 존중을 받았다 등 다른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건 중요한 건 평범했던 이들의 삶이 더 이상은 평범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스탈린에 분명하게 반하는 입장을 취했던 지식인들을 비롯하여, 때론 권력자의 배우자나 자녀도 굴라크에 끌려갔다. 졸지에 수감자가 된 이들의 삶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남아 있는 이들 역시 비참했다.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곧장 다른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린 이들도 있었고, 가족 구성원의 생사를 모르는 가운데서도 홀로 성공가도를 달린 인생도 있었다.

생존자들의 대다수가 고령으로 이미 사망했다. 하지만 1976년부터 시작해 2010년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가지의 주제에 매달렸던 저자는 이 책을 부하린의 배우자 안나 라리나에게 헌정했다.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시대를 거치며 스탈린에 대한 관점에 변화할 때마다 떨어야 했던 그녀 그리고 스탈린 시대의 사람들은 고르바초프가 행한 반스탈린주의로 인해 제 조국이 무너지리라는 걸 알기나 했을까.

그래도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가치관의 혼란으로 흔들리는 젊은이들이지만, 그들 역시 언젠가는 제 부모, 조부모가 감당해야만 했던 역사의 무게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바지사장(?)과도 같아 보이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총리직을 수행 중인 메드베데프가 종종 목소리를 높여가며 스탈린 희생자들을 추모할 때마다 희망을 엿본다. 더딜지라도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면 그게 진보다.

q*****2 2015.01.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