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석한 노엄 촘스키가 "세계의 창"이라고 부르는 국제관계 전문 시사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 《르디플로》 ') 2024년 12월 호이다. 《르디플로》는 국제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참신한 문제 제기로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민주주의, 평등박애주의, 환경보전, 반전평화 등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독립 대안언론이다. 노암 촘스키, 자크 데리다, 에릭 홉스봄,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등 세계 석학과 유명 필진이 글을 기고하는 《르디플로》는 세상을 보는 해상도를 높여준다. 위험한 생각 | 브누아 브레빌(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디플로》') 프랑스어판 발행인 브누아 브레빌은 2024년 12월 호 사설에서 유럽 각국의 긴축 정책에 대해 비판한다. 2023년 6월 유럽연합(EU)는 7개국(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헝가리, 몰타,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대한 초과 재정적자 시정 절차(EDP)를 시작하셔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GDP의 0.1%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하는 등 제재를 가하겠다고 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그리스에서 시행된 긴축 정책은 그리스 내의 실업, 자살, 약물 중독, 영아 사망률 증가 등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도 긴축 정책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리스의 GDP는 금유 위기 이전보다 무려 1/4로 줄었고 평균 임금도 회복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한편 독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예산 규제로 투자가 줄어들어 심지어 다리가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고, 도이체 반의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놀랄 정도라고 한다. 브누아 브레빌은 이러한 긴축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마디로 당위성도 효과도 없는 처방일 뿐'이라며 비판한다. 트럼프주의는 사회현상의 일부 트럼프의 승리가 백지 위임장은 아니다 | 제롬 카라벨(사회학자) 《르디플로》 2024년 12월 호 포커스 기사는 총 3개인데 이번 리뷰에서는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려 한다. 먼저 첫 번째 포커스 기사는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유에 대한 사회학자의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30년간 심화되어 온 미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득표율이 거의 엇비슷해서 트럼프처럼 부정적 속성이 많은 후보도 우선 대선에 출마하면 약 45%의 최소 득표율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사에서 미국 정치의 또 다른 특징으로 거부투표의 증가를 드는데 한국과 매우 유사해서 재미있었다. 거부투표란 한 정당에 대한 호감보다는 다른 정당에 대한 혐오감에 의해 투표하는 현상이다. 포커스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양극화는 다른 어떤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보다 심각하다고 본다. 이 기사에서는 이념적, 감정적 양극화, 거부투표의 증가,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상대적 균형이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한 원인이다. 또 미국에서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2024년 4월 역사적 최저치인 22%로 떨어졌는데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부통령을 지냈던 카멀라 해리스에겐 불리한 상황이었다. 여러 매체에서 익히 다루었듯이 2020년과 비교하면 특히 농촌 지역 주민(+15%), 18-29세 청년층(+13%), 비백인 대학 중퇴 이하 유권자(+6%), 라틴계 남성(+11%) 및 여성(+17%) 사이에서의 지지가 두드러졌고 이는 선거의 승리로 이어졌다. 이 기사에서도 2024년 선거에서 민주당에 대한 노동자 표의 이탈 현상을 지적한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좌파와 중도좌파 정당은 그들의 사회적 기반이자 이념적 나침판인 노동자 계층을 잃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오랫동안 백인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잃어왔다. 유색인종 노동자들 사이에서 공화당 표가 증가했다. 이는 민주당이 오랫동안 노동자 보호에 소극적이었던 것을 반영한 결과이다. 버락 오바마는 2008년 금융 위기 때 집을 잃은 수백만 명을 보호하기보다는 대형 금융기관을 구제했다. 공화당이 미국인들의 임금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할 때 민주당은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 보호와 같이 사회적 문화적 이슈에 대한 공약을 내세웠다. 미국 노동자 계층의 상당수는 민주당이 자신들의 존엄성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부제 '트럼프주의는 사회현상의 일부'라는 분석은 글의 말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사의 말미에 이르면 트럼프주의가 미국 역사에서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메리카 원주민 수탈, 노예제도, KKK, 20세기 초 반이민 동맹, 매카시즘 등등. 이 기사는 미국의 역사가 평등과 정의를 향한 끝없는 여정이었음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며 앞으로의 미국이 겪게 될 트럼프주의와 그에 맞서는 전통과 가치들의 충돌과 경쟁의 시기를 예견한다. 트럼프주의가 분명 미국 사회현상의 일부지만 그것이 미국을 정의하는 전부는 아님을 언급하며 글은 마무리된다. 미국의 위선, '규칙에 기반한 질서(RB0)' | 안세실 로베르(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국제이사) 두 번째 포커스 기사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국제 사회의 균열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유도하려는 목적을 가진 "국제적 규칙에 기반한 질서"(Rules Based Order, RBO)를 비판한다. RBO라는 모호한 용어는 주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세계의 흐름을 장악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RBO의 내용이 국제법과 달리 모호하고 조항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이 각자 다르다. 이 기사에서는 국제법과 RBO를 비교하면서 RBO는 본질적으로 갈등을 유발하는 성격을 안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미국이 RBO를 이용하여 국제질서를 어떻게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설정해왔는지 설명한다. 오바마와 바이든 미 대통령은 RBO에 대해 긴 연설을 할 때 국제 질서의 기초가 되는 문서나 국제법 자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미국이 지정학적 선택을 한 것인데, 적대국이나 경쟁국과의 관계를 조율할 때는 국제법보다는 매우 유연하고 조정 가능한 개념인 RBO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RBO를 통해 얻은 이점으로는 1990년대 무력 사용 규범을 어긴 미국의 행위 정당화,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모범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게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과 러시아는 BRO를 서방과 그 동맹국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발명품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 기사 마지막에서 "RBO와 함께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차지해온 국제 항공기의 조정석에 계속 앉으려 하고 있다. 이 표현을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비례해 미국의 권력 집착은 더 드러날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RBO가 유엔을 파열 직전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사이드, 국가의 방조가 키운 다면적 '여혐' 살해 | 로렌 다이카르(저널리스트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살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찾을 수 있지만 이 기사는 'femicide'라는 단어의 단어의 사용과 의미 확장, 이론화 등에 대해 다룬다. '여성 살해'라는 단어가 미디어에 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역사가 리비 도디우와 동료 프레데릭 쇼보는 이 단어의 초기 흔적을 17세기 프랑스에서 발견했다. 이 단어는 20세기 초반 여성 참정권 운동의 선구자였던 위베르틴 오클레르의 글에서 다시 등장했다. 오클레르에 의해 '페미니사이드'라는 단어는 사회적 통제나 정치적 폭력의 형태로 여성을 살해하는 행위라는 오늘날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 기사는 '페미니사이드'라는 단어의 역사를 추적하며 의미의 변천을 짚어간다. 이 단어는 1976년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여성 대상 범죄 국제 법정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 법정은 '제2의 물결' 페미니즘 운동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성과 가정 폭력에 중점을 두었다. 1980년 영국의 사회학자 리즈 켈리에 의해 여성 살해가 이론화된다. 1992년 출판된 앤솔로지 <여성 살해>에서는 여성 살해를 단순한 개인적 범죄가 아닌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편 여성 살해의 개념은 라틴아메리카에서 특히 큰 공감을 얻게 된다. 1990년대 초 멕시코 국경 도시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범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3-2003년에 발생한 여성 연쇄 살인 사건만 1,000건이 넘었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라틴아메리카는 1993년부터 이러한 희생자들을 기록하기 시작하고 후아레스 대학교 사회학자 줄리아 에스텔라 모나레즈 프라고소는 여성 살해 사건을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 시킨다. 여성 살해라는 용어는 초기 개념화부터 부부관계에 국한되지 않았다. 남성과의 권력 갈등 속에서 벌어지는 젠더 범죄인 여성 살해 행위는 단순히 생명을 빼앗는 것을 넘어선다. 모욕과 모독을 그 목적으로 한다. 멕시코 학자이자 정치인인 마르셀라 라가르데 이 데 로스 리오스는 여성 살해에 관한 원래의 정의를 확대하여 이를 '면책'의 개념에 연결하고 여성 살해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했다. UN 2012년 빈 심포지엄에서 '페미니사이드' 개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여성 살해를 유형별로 세분화한다. 친밀한 여성 살해 / 비친밀한 여성살해/ 명예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살인 유형 으로 나눌 수 있다. 2015년 '여성 살해'라는 단어가 프랑스어 사전 『르 로베르』에 등재되고 프랑스 언론의 기사에 제목에서 점점 더 많이 사용되게 된다. 소셜 미디어는 여성 살해에 대한 논의를 증폭하는 역할을 했고, 2016년부터 페이스북에는 "동반자 혹은 전 연인에 의한 여성 살해"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자발적 활동가들이 등장했다. 이 기사는 프랑스 형법에서 '여성 살해'는 여전히 공적 통계와 형법에서 벗어나 있음을 지적한다. 프랑스는 정당에 상관없이 '여성 살해'를 형범에 직접 명시하기보다는 가중처벌 시스템을 선호한다. 그리 프랑스 사법 정책은 보호 명령과 같은 장치를 제공하여 피해자가 파트너와 분리될 수 있도록 안전한 절차를 지원하고자 하지만 프랑스의 보호 명령 활용은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 한다. 이는 프랑스의 가족법원이 보호 명령 발부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전통적 가족주의에 뿌리를 둔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부모 권한을 긴급히 제한하고 공동 양육 모델을 흔들게 될 것을 우려하는 판사들이 많다고 한다. 이번 달 《르디플로》도 볼펜과 연필을 들고 열심히 줄을 그으며 읽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읽기가 제대로 되어 가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르디플로》를 활용한다. 《르디플로》의 글들이 막힘없이 술술 이해될 때, 《르디플로》에서 제기하는 현안들과 인용되는 학자들, 개념들 등에 낯설음을 느끼지 못할 때 나의 읽기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를 높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가진 읽기의 목표 중 하나일 것이다. 《르디플로》는 그런 독자에게 최고의 파트너이다. * 출판사 제공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4년12월호 #국제관계 #트럼프주의 #미국대선 #RBO #페미니사이드 #여성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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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해도 별반 없었긴 하지만, 올 해는 반 이상 정신을 못 차리고 허우적거리며 살았다. <르몽드>의 통찰력과 디테일에 기대어 한 해의 마무리를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며 다져보고 싶다. 미국 중심의 세계관으로 구성된 세상의 경계를 넓히고 싶다면 르 몽드 한국어판을 만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12월호의 다양한 주제와 장소에 관한 명징한 기사들을 읽으며 국내 상황으로부터 정신적 휴식도 누렸다. ![]() ![]() ![]() 한 달 동안 제대로 알아보고 배우기엔 늘 풍족함을 넘어서는 내용들이다. 글을 완성하기위한 노고에 못 미치는 독서라 매번 미안하지만, 소심한 내 기준으로는 펼칠 때마다 더 넓은 공간으로 확실히 걸어 나가는 기분이 든다. ![]() 폭력을 사용하는데 주저가 없는 그도, 그가 속한 정치 집단도, 인간답지 못한 수단으로 이익을 챙기는데 노골적이었고, 사람들을 가능한 잘게 쪼개는 비열한 기술을 휘둘렀다. 원래도 약자였던 이들은 날개를 달고 날뛰는 폭력에 더 위축되고, 상해를 입고, 죽임을 당했다. “여혐 살해”는 무용담이 되었다. 다양한 신체적, 사회적 폭행과 범죄들 중 일부는 폭로되고 잊히고, 다른 일부는 합당치 않게 처벌되고 또 잊혔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거리에서도 공공장소에서도 여성들은 살해되었다. 그 살해가 멈춘 것인지, 보도가 멈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양한 내용 중에서 “페미사이드femicide”와 “페미니사이드feminicide”*에 대해 배운 것을 정리해둔다. “유엔은 2012년 빈 심포지엄에서 이 개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두 단어를 구분 없이 자주 함께 사용한다고 한다. * 사회적 통제나 정치적 폭력의 형태로 여성을 살해하는 행위 관련 역사와 내용을 알 수 있어 반가우면서도, 낯설지 않은 상황들이 섬뜩하고 아프다. 언론의 행태도 유사하다. “페미니스트”란 단어가 프랑스에서는 “한 때” 여성혐오적 모욕으로 쓰였고, 한국에서는 “지금” 혐오 폭력의 “표적”으로 쓰이는 것을 제외하면. 단, 폭력의 종류는 한 가지가 아니다. “여성 살해는 강간, 고문, 성적 노예, 강제적 이성애, 강제 불임, 강제 임신(피임과 낙태를 범죄화), 정신외과 수술, 특정 문화에서 여성에 대한 영양 불균형 등을 포함하는, 여성 혐오적 공포의 연속성의 극단에 위치해 있다.” 198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 리즈 켈리 “다양한 사회적 이유로 인해 여성들이 조기에 사망에 이르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1,000건이 넘는 멕시코 국경 도시의, 미제로 남은 여성 살해 사례에서 보듯이, “2,526건의 여성 시신에 고문과 성적 절단의 흔적”이 남았다는 점에서 이 살해들은 젠더 특징적**이다. ** 체계적 성적 여성 살해, 살해된 신체와 신체를 문화적으로 짓밟는 범죄. “여성들이 살해당할 때 그들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페미니사이드>의 저자, 다이애나 러셀(1938) ![]() ![]() ![]()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혐오와 폭력을 수단으로 지지층을 만든 자들은 무엇을 경험해도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자들일수록 표가 아쉬울 때는 임신한 아내와 나이든 어머니를 앞장세운다. 박근혜 탄핵 때 나라를 구했다면 잠시 추켜세워진 (여)학생들에게 이후 쏟아진 조롱과 폭력을 생각해보면, 이번 탄핵 집회의 경험이 다양한 틈을 한 번에 메우고 갈등을 봉합하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일례로 시국선언하는 여고생들을 조롱하고 협박하는 남고생들도 ‘우연’이 아니다. 정치적 탄핵 이후에 만들어갈 세계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는 많은 시간 솔직한 논의가 필요하다. 대통령 하나 바뀌어서 망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다 좋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고단하고 먼 길이지만 그 미래를 몰라도 지더라도 가야할 길이다.. “이데올로기가 전파하는 가치와 규범은 (...)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더라도 (...) 최상의 환상이다.” 12월호를 읽고 기록하는 동안 내내 춥고 무겁던 몸에 체온이 조금 상승했다. 며칠 만에 잠을 잘 자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승리’를 과신하지도 말고 낙관하지도 말아야겠다는 산뜻한 생각이 든다. 감사하며, 조금은 달라진 2025년에 다시 만날 새로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고대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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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4.12 출판사 제공 도서입니다.
잡지《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프랑스《르몽드》의 자매지로 전세계 27개 언어, 84개 국제판으로 발행되는 월간지입니다.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라는 언론관으로 유명한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의 자매지이자 국제관계 전문 시사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국제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참신한 문제 제기로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민주주의, 평등박애주의, 환경보전, 반전평화 등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독립 대안언론입니다.
12월호 페미니사이드, 다면적 ‘여혐’ 살해
우리 나라의 갑작스러운 계엄령에 우리 모두 복잡하고 어지러운 한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12호에서는 국가의 방조 아래 남성 권력이 자행한 ‘다면적인’ 여성 혐오적 살해, 즉 ‘페미니사이드’의 기원과 현실, 대안을 다층적으로 진단했습니다.. 마치 이번 여대생들의 시위를 예견했듯이, 여성학자 로렌 다이카르의 통찰력이 놀랍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기사로는 1906년 쿠리에르 광산 폭발 사고를 전후로 노동운동에 변화에 관한 기사와, 거짓으로 가득한 미테랑의 허위 신화 등 다체로운 기삿거리가 실려 있어 기대가 됩니다. ![]()
혁명의 나라 프랑스 정부62년 만에 완전 붕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프랑스 하원은 4일(현지시간) 미셸 바르니에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고 불신임안 가결로 프랑스 정부 기능이 마비된 것은 62년 만으로, 정국이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됐다는 소식입니다. 르몽드12월호에서는 거짓으로 가득한 미테랑의 허위 신화라는 제목의 글에서 프랑수아 미테랑(1916-1996)이 평생 자신의 과거를 얼마나 능숙하게 위장해 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1930년대 청년 시절의 민족주의부터 1990년대 르완다 투치족 집단 학살에 대한 책임등 탈식민주의자가 아닌 흑역사의 이야기입니다.
“서로에게 말하고, 세상에 말하라. 인류 절반이 숨기려는 수치스러운 진실을 밝히라.”
페미니사이드, 즉 남성권력에 의한 여성살해라는 다소 무서운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최근 프랑스 언론 정치 무대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여성혐오적 살인 개념은 처음에는 앵글로색슨 국가에서 등장했지만 여성 살해가 빈번한 라틴 아메리카의 페미니즘 학계에서 주목받으면서 학술적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있는데 ‘여성살해’ 용어는 아직도 부부관계 범위에 국한되어있고 형법에서 조차 명시 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여배우가 1년간 동거하던 음악가 연인에게 맞아 결국 뇌부종으로 사망한 보도를 보면 범죄자의 폭력 이력은 대부분의 기자들에 의해 무시된 반면 사망한 여배우의 연애사만 집요하게 파헤져져 비난의 증거로 사요된다는 점입니다. 중요쟁점은 사라지고 가쉽거리로만 되는 일들이 우리사회에서도 없는 일은 아닙니다. ‘페미니사이드’라는 용어와 남성과의 권력 갈등 속에 벌어지는 ‘젠더 범죄’에 관한 다루기 쉽지 않은 기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 시대를 맞이하며 우리나라 경제, 안보 등을 다져야 할 중요한 시기인데 자기들 논리에 맞는 대립으로 국민의 안위는 무시한채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보며 반역죄로 체포되 27년간의 옥살이를 한 넬슨 만넬라와 노예제도를 종식하고 민주적 가치를 수호한 에이브러햄 링컨과 독일의 런던 공습으로부터 영국을 지켜낸 윈스턴 처칠이 생각나는 날입니다. |
| 인공지능은 흔히 중립적이라고 여겨지지만, 모자이크 처리된 오바마의 사진을 백인으로 복원한 AI의 사례를 통해, AI가 패권적 이념으로 가득 차 있으며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환경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연 이 인공지능을 맹목적으로 믿어도 괜찮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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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당면한 문제는 편향된 시각과 양극화된 입장이 심각하다고 생각됩니다. 유튜브와 숏폼의 시대에서는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세상이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현상을 파악하는 것은 고민과 숙고가 필요합니다. 이번호 글들을 읽으면서 트럼프가 왜 당선되었으며, 다른나라의 정치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었고, 뒷면에 깔려있는 편견과 부정심리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의견과 시각은 민주주의의 바탕입니다. 그래서, 르몽드 디폴로마티크의 소중한 분석과 글들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보면서 차분하게 상황을 이해하는 가이드로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르몽드디폴로마티크 @lediplo.kr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