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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24에 담아 놓은지 얼마 안 되었다가 다른 곳에서 품절되는 걸 보자마자 얼른 주문했습니다. 검색하다가 그래픽 노블에 대해 알게 되면서 처음 주문한 책입니다. 소장용으로 보관하고 다시 한 개 더 주문할까 뜯는 걸 망설이고 있어요. 기대되요. |
| 이동진 평론가님의 추천서적을 종종 찾아보는데 그래픽 노블이 추천목록에 올라온 것은 처음이라 호기심에 찾아봤습니다. 그림 스타일도 내용도 모두 흥미로워 바로 구매했어요. 미술관에 가서 그림과 작품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도 현대미술은 이해가 어려워 고개를 갸웃이는 편이라서 이 책이 더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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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쿠시 라는 현대 조각가 대해서 알게 된 그래픽 노블 책 입니다 세기의 재판을 통해 추상미술과 조각의 기준이 되는 시발점을 열게된 브랑쿠시의 작품은 여러 분야에서 상징적으로 전시되고 지금도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래픽 노블의 편안함과 재미가 함께 하는 만화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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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게 정답보다는 질문이었다. 예술의 정의와 가치, 그 경계에 대한 커다란 질문이 여러 갈래의 형태로 나뉘어 책 속의 수많은 대화들에 녹아 있었다. 재판을 위해 두 편으로 나뉜 이들의, 예술을 가르는 기준의 낙차가 내 안에 굳건하게 세웠다 믿었던 판단의 기준에여러 균열을 낳았다. 이어진 고민은 당연하게도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진정 새인가?‘ 재판의 결론은 깔끔하게 났지만 내 안에서의 논쟁은 여전히 그들의 토론 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여전히 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에 원론적인 대답만 떠올릴뿐이다. 예술이라 인정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현실적이고 제대로 된증명을 해낼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세관원들이 몰아부치는 논리에 즉각적이고 감각적으론 단전에서 화가 끓어 오르면서도 이론적이고 이성적으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선명한 대답이 내게 있는가? 자신할 수 없다. 이 답답한 마음과 뻐근한 머리 상태가 아이러니하게도 꽤나 흡족하고 유쾌하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브랑쿠시의 작품이 새가 아니라는 이들에 대한 혼란과 흥분, 분노를 거쳐 진중한 대답으로 이르는 이 경험을 권하고 싶다. 이 재판이 열린 1926년은 분명 지금과 다르지만 ‘이것이 과연 예술인가?’라는 재판의 핵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논쟁으로 예술은 현대예술의 의미를 끌어안고 그 범주를 확장했다. 브랑쿠시측은 구상적이고 재현적인 과거의 예술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형태를 통해서도 예술의 역할을 실현시킬 수 있음을 주장했다. 결국 예술작품이란 그 대상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형태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예술적과정의 결과물로서 이해되어야 함을 법의 테두리를 넘어, 전사회적이고 전범주적으로 인정케한 주요한 사건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찾아 표현하고 있다. 전통에서 벗어 날수록 새롭고 다를수록 그것이 예술인지아닌지의 여부는 늘 논쟁이되며 개인에게 사회에게 대답을 요구할 것이다. 오늘의 자유로움의 한계는 내일 또 깨지고 부서진다. 그 열린태도 없이는 어떠한 예술 앞에서도 우린 예술가의 메시지를 읽거나 느낄 수 없지 않을까? 브랑쿠시의 작품 앞에서 분노를 일으킬만큼 시대착오적인 질문과 닫힌 해석을 해대던 세관인들과 다를바 없이 말이다. 그렇지 않기 위해 오늘 그들의 질문과 브랑쿠시를 옹호하던 예술계 전문가들의 답변을 곱씹어 본다. 우리는 오늘 외친 이 문장을 미래에 또 다시 외칠것이다. 새로운 모습을 하고 우리 눈 앞에 선 예술에, 여전한 그 내면의 가치에 놀라며, “It‘s a bi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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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평론가 이달의 책으로 선정된 책입니다. 예술가 브랑쿠시의 작품이 뉴욕에 전시될때, 유럽에서 미국으로 들여오는 물품에 관세를 매기는 과정에서 브랑쿠시의 '새'란 작품이 예술품이냐, 아니냐를 두고 1926년 벌어진 세기의 재판을 그림과 글로 표현한 그래픽노블입니다. 브랑쿠시 뿐만 아니라, 알렉산더 칼더, 페르낭 레제 , 마르셸 뒤샹 등 당대의 예술가들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