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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페두사의 문장은 우아하고, 정교하고, 아름답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부활)의 시대.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 아래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에서 민족적 각성과 통일을 염원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던 때로, ‘붉은 셔츠를 입은 혁명가’ 주세페 가리발디가 붉은 셔츠단이라 불리는 의용군들을 이끌고 통일의 대업을 완성해가던 시기였다. 바로 이 무렵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표범』은 1860년 5월, 가리발디가 의용군들과 함께 막 남부 이탈리아인 시칠리아에 상륙했다는 소식과 함께 시작된다.
주인공인 돈 파브리초는 시칠리아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수장이다. 사냥을 좋아하고 일면에서는 괴팍할 정도로 권위적인 면모를 보이나, 수학과 천문학에 관심이 많고 귀족치고는 시대의 흐름을 냉철하게 파악하며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다. 한편, 돈 파브리초가 누구보다도 아끼는 조카 탄크레디 팔코네리는 변화하는 세상에 금방 적응하는 기회주의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으로, 가리발디가 시칠리아에 상륙했을 때는 의용군에 참가했다가 이후에는 사르데냐 왕국의 군인이 되면서 자신의 정치적 야심에 따라 부와 사랑을 적극적으로 쫓는 인물이다. 돈 파브리초의 딸인 콘첸타가 아닌, 신흥 부르주아로 떠오르는 돈 칼로제로의 딸 안젤리카 세다라와의 결혼은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그에 따른 사회질서가 어떻게 재편성 되어가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모한 짓은 하지 않고 현상유지에 전념하는 것? 그렇다면 얼마 전 팔레르모의 황량한 광장에 울려 퍼진 것과 같은 메마른 총성들이 의미하는 행동이 필요한 것인가? 하지만 그런 총격전들 역시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팡! 팡!’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아! 그렇지 않니, 벤디코?” / 23p
늙은 여자의 빈 젖가슴을 닮은, 흐릿한 곡선을 그리는 빛바랜 돔들이 수도원들보다 훨씬 높이 서 있기는 했으나, 무엇보다 수도원들의 음울함과 독특한 성질과 위엄이 도시를 지배하여, 시칠리아의 강렬한 햇빛조차 지울 수 없는 죽음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영주가 마차를 달리던 무렵, 밤이 가까워진 시간, 도시 풍경은 수도원들이 지배했다. 실제로 산 위의 불들은 그런 수도원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수도원에서 사는 사람들과 아주 흡사한 사람들. 똑같이 광적이고 폐쇄적이고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습관처럼 무위도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산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키우고 있었다. / 30p
하지만 연미복을 입고 계단을 올라온 돈 칼로제로로 상징되는 시민 혁명, 자신의 딸 콘체타의 단정한 우아함을 가려 버린 안젤리카의 미모, 예상한 혁명이 초래한 변화를 재빨리 받아들이면서 관능적인 열정으로 현실적인 동기를 치장한 탄크레디. 염려스럽고 성격도 모호한 국민투표. 이 모든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앞발 하나만 들어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던 그가, 표범인 그가 받아들여야 할 수천 가지 기묘한 일들에 속했다. / 122p
‘우리는 표범,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은 자칼, 하이에나가 될 것이다.’ 이미 자신이 속한 귀족 계급에 불기 시작한 변화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던 돈 파브리초는 돈이 새로운 계급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권력과 영광 또한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수용할 수 밖에 없음을 직시한다. “저는 구시대와 신시대라는 두 마리 말 위에 걸터앉아 어느 쪽도 편치 않은 불행한 세대에 속합니다. (…) 우리 세대는 구석으로 물러나서 젊은이들이 이 화려하게 장식된 관대 주변에서 재주넘고 공중제비하는 모습이나 구경해야 합니다.” 이 같은 문장은 무너지는 봉건제 그 마지막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구체제의 몰락과 변화의 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번민과 우울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저는 부르봉 체제와 불가피하게 타협했고, 체면 때문에 애정없이 거기에 묶여 있는 구계급의 대표자입니다. 저는 구시대와 신시대라는 두 마리 말 위에 걸터앉아 어느 쪽도 편치 않은 불행한 세대에 속합니다. (…) 우리 세대는 구석으로 물러나서 젊은이들이 이 화려하게 장식된 관대 주변에서 재주넘고 공중제비하는 모습이나 구경해야 합니다. 이제는 ‘왜’ 보다는 ‘어떻게’에 마음을 열고 자신의 구체적인 관심사를 모호한 정치적 이상으로 포장하는 일, 제 말은, 양자를 조화시키는 일에 능숙한, 민첩한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 230p
“친애하는 슈발레 씨. 저는 당신에게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완벽하다고 믿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절대로 더 좋아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들의 허영심은 그들의 비참보다 더 강합니다. 낯선 사람들의 침입은, 그들이 외지인이든 독립적인 정신의 시칠리아인이든, 완벽에 도달했다는 그들의 몽상을 흔드는 사태이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만족감을 방해하는 위험입니다. 열 몇 개의 민족에게 짓밟혔어도 그들은 호화로운 장례식을 누릴 자격이 있는 제국의 과거가 있다고 믿고 있어요.” / 233p
“이들이 사라지면 다른 색 옷을 입은 다른 이들이 올 테고, 다시 붉은색 옷을 입은 자들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끝날까요? 우리 이탈리아의 상징인 ‘큰 별’이 있다고들 하죠.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고정된 별조차 사실 고정된 게 아니란 점을 영주님은 저보다 더 잘 알잖습니까.” 소설은 19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번영과 쇠락’, ‘구체제와 신체제’, ‘전통과 변화’ 앞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불안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를 고민하게 하는 『표범』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무엇보다 람페두사만의 우아하고, 정교하고, 섬세한 문장이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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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을 읽으면서 나는 이상한 이중적인 감정을 계속해서 느꼈다. 하나는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퇴락의 기운,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퇴락 속에서도 여전히 품격과 고귀함을 잃지 않으려는 주인공 살리나 공작의 태도였다. 흔히 이 작품을 "몰락하는 귀족 사회의 초상"이라고 단정하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사회 계급의 쇠퇴를 기록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시대 변화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를 보여주는 비극적이면서도 고요한 철학적 사색이라고 느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살리나 공작의 인물상이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려 안간힘 쓰는 다른 귀족들과 달리, 역사의 물줄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주세페 가리발디와 통일 운동이 일으킨 파도가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시대적 대세임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는 허망하게 무너지거나, 반대로 적극적으로 새 시대에 가담하지도 않는다. 이 지점에서 나는 묘한 존경심과 동시에 씁쓸함을 느꼈다. 마치 그는 역사의 거대한 무대에서 한 발 물러난 채, 단순히 증인이 되기를 자처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이 태도가 소설의 핵심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시대 변화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며, 결국 인간은 그것을 지켜보면서 자기 나름의 품위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의 조카 탄크레디가 보여주는 기민한 태도 역시 흥미로웠다. 그는 "모든 것이 바뀌어야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귀족 계급의 몰락 속에서 재빨리 신흥 부르주아 세력과 손을 잡는다. 이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명제라고 생각했다. 변화가 필연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변화의 수혜자가 결국 기존 권력을 갖고 있던 자들이라는 역설. 나는 이 장면에서 역사라는 것이 언제나 급격히 변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기득권이 형태만 바꿔가며 살아남는 과정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진실을 떠올렸다. 이 점에서 『표범』은 단순히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기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사회와도 깊게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작품 속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공작의 내면 독백 장면들이었다. 그는 신앙심 깊은 가톨릭 귀족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육체적 본능과 죽음에 대한 집착을 결코 숨기지 않았다. 그는 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하면서도,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신앙적 행위와 실제 내면에 차오르는 의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또한 젊은 여성을 바라보며 느끼는 육체적 욕망, 그러나 그것이 결국 죽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아는 허무함. 이런 복잡한 심리 묘사가 나에겐 굉장히 진솔하게 다가왔다. 그는 단순히 “몰락하는 귀족”이라는 상징적 인물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보통의 인간이자, 자기 삶의 마지막을 인식하면서 고통스럽게 체념하는 한 노인으로 다가왔다. 나는 『표범』을 읽으며 유독 “죽음의 그림자”가 모든 장면에 깔려 있다고 느꼈다. 화려한 연회 장면도, 신분적 계산으로 가득한 결혼 장면도, 심지어 시칠리아의 아름다운 풍광마저도, 모두 쇠락과 끝남을 예고하는 그림자 속에 들어가 있었다. 특히 후반부에서 공작이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거대한 은유였다. 한 사람의 육신이 사라지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귀족 사회라는 시대가 막을 내리는 사건이기도 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꼭 공작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의 죽음 속에서 "나도 언젠가는 내 시대를 다 살고 사라지겠구나"라는 섬뜩한 자각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소설 전반이 굉장히 느린 호흡으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거대한 전투 장면이나 정치적 격동이 아니라, 인물들의 대화와 내면 묘사, 사소한 사회적 의례들이 중심을 이룬다. 이 느림은 처음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읽다 보면 그 느림 자체가 작품의 주제와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변화가 아무리 급격해 보여도, 실제 인간의 삶은 여전히 식사, 산책, 사교, 연회 같은 일상적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의 거대한 물결도 결국 이런 사소한 삶의 결을 뚫고 들어와야만 현실이 된다. 나는 이 점에서 『표범』이 단순히 정치적 격변을 기록한 역사소설이 아니라, 변화와 일상의 교차를 포착한 인간학적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시칠리아라는 공간의 묘사가 주는 무게감도 빼놓을 수 없다. 뜨거운 햇살, 사막 같은 건조함, 황량하면서도 장엄한 풍경. 그것은 곧 귀족 사회의 쇠락과 닮아 있었고, 동시에 인간 존재 자체의 덧없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시칠리아는 언제나 제국의 변방이었고, 권력의 주류에 속하지 못한 채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땅이었다. 이 공간적 특성이 공작의 존재와 겹치며, 한 개인과 한 지역이 공유하는 운명적 퇴락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공간 자체가 하나의 인물"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표범』이 오늘날까지 고전으로 남은 이유는 단순히 귀족 사회의 몰락을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라는 이름의 필연과 그 앞에서 인간이 보이는 다양한 태도를 섬세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탄크레디처럼 변화에 편승하여 살아남고, 어떤 이는 공작처럼 품위를 지키며 죽음을 받아들이고, 또 어떤 이는 신흥 세력처럼 탐욕스럽게 부상한다. 이 모든 모습이 결국 인간 사회의 반복되는 풍경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과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시점에 와 있는가, 나는 공작처럼 쇠락을 자각하면서도 품위를 지킬 수 있을까, 혹은 탄크레디처럼 변화의 물결에 냉정하게 적응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었다. 결국 『표범』은 나에게 “삶이란 결국 죽음을 향한 긴 준비이자,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무겁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일깨워준 작품이었다. 동시에 “아무리 모든 것이 변해도, 인간은 여전히 사랑하고, 욕망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단순하면서도 근원적인 사실을 되새기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시대를 넘어선다. 단순히 19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적 격변을 그린 소설이 아니라,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읽히며 사람들을 사색하게 만드는 보편적 고전이다. 나는 이 작품을 덮으며, 묘한 씁쓸함과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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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시칠리아섬의 영주인 돈 파브리초에게 불기 시작한 바람은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나지막이 일렁이게 한다. 웅얼거리는 다른 사람들 목소리가 뒤섞여 사랑, 순결, 죽음처럼 예사롭지 않은 말들이 황금 꽃잎처럼 떨어진다. 4월 4일 공화주의자들의 폭동이 일어나자, 위험을 피해 집으로 돌아와 있는 딸들은 기숙사의 공동 침실과 수녀원에서 공유했던 친밀한 생활이 그립다. 어머니에게는 자부심과 지성을, 아버지로부터는 호색가의 기질과 경솔함을 물려받은 파브리초 영주는 제우스처럼 눈살을 찌푸린 채 끊임없이 불만을 품고 살았다. 자신이 속한 계급이 몰락하고 가문의 재산이 사라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대응책을 강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곳의 흙이란 흙은 모두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발산하였으나 이내 나른함에 묻혀버렸다. 돈 파브리초는 정처 없이 거닐었고, 기울어 가는 해가 무덤 같은 화단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다. 생각이 자꾸 깊어진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모한 짓은 하지 않고 현상 유지에 전념하는 것? 그렇다면 얼마 전 팔레르모의 황량한 광장에 울려 퍼진 것과 같은 메마른 총성들이 의미하는 행동이 필요한 것인가? 살리나 저택에서는 당시 양 시칠리아 왕국의 유행에 따라 허세가 적당히 섞인 성대한 저녁 식사를 했다. 식탁에 앉은 사람의 수(주인 부부, 자녀들, 가정교사들을 포함해서 모두 열네 명이었다) 만으로도 위용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돈 파브리초는 최근 미국에서 개발된 약을 생각해 낸다. 살리나의 영주, 그에게는 천문학이라는 훨씬 더 효과가 좋은 약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요한 별들의 왕국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회계를 담당하는 돈 치조 페라라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신뢰를 주는 안경과 깔끔한 넥타이로 자유주의자의 몽상적이고 탐욕스러운 영혼을 감춘 깡마른 남자였다. 그가 뒤적이는 회계장부에는 살리나 가문의 모든 출납이 멋진 필체로 꼼꼼히 적혀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사항들은 빠져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했다.’ 공화국으로 통일하고자 가리발디 혁명군이 전투를 일으킨 사건은, 그 시기를 통과하는 많은 변화를 담아내고 있었다, 이미. 물론 돈 파브리초는 자신이 속한 귀족 계급에 불기 시작한 변화를 냉정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고, 이 체제가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있었다. 가리발디와 그의 군대가 시칠리아에 상륙할 시기, 이제 이곳에서는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들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아끼는 조카 탄크레디가 가리발디군에 합류하는 모습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다. 한층 강렬해진 태양 아래 사물의 무게가 제거된 듯했다. 그의 무게에 소파가 신음했으나, 그는 곧 편안히 잠이 들었다. 그해 8월 영주 일행은 람핀체리 농장에 도착했다. 농장에는 거대한 건물이 한 채 있었는데 1년 중 한 달, 수확 철에만 일꾼과 노새를 비롯한 가축들이 그곳에 머물렀다. 견고하지만 망가져 버린 문 위에서 돌로 만든 표범이 춤을 추었다. 살리나 가문 문장인 표범의 다리는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부러져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표범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이탈리어로《일 가토파르도 IL GATTOPARDO》다. 이 단어가 낯설어, 생김새가 비슷하고 더 잘 알려진 ‘표범’으로 정했단다. 가토파르도는 이탈리아의 남단에 있는, 람페두사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다. 작가의 람페두사 가문 문장에 이것이 새겨져 있으며, 작품에서도 살리나 가문의 문장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표범》은 람페두사의 자전적 소설이라 불리기도 한다. 작가는 천문학자였던 증조부 줄리오 파브리초 디 람페두사를 중심으로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 생각했고 자신의 집안 얘기를 소재와 주제로《표범》을 완성한 것이다. 사흘간 이어진 여행은 끔찍했으나 이제 정말로 돈나푸가타가 가까웠다. 이곳에서 소설의 주요 인물들의 상봉이 이루어지는데……. 탄크레디는 돈 파브리초의 딸 콘체타와 약혼한 거나 다름없는 사이였으나, 전장에서 돌아온 후엔 안젤리카에게 빠져든다. 안젤리카의 아버지 돈 칼로제로는 격변하는 시대에 편승해서, 무능력한 귀족들을 이용해 벼락부자가 된 재빠르고 유능한 인물이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표범’이 사라지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할 하이에나이다. 돈 파브리초가 자식보다 더 사랑한 탄크레디는, 변화하는 세상에 금방 적응 하는 현실적인 기회주의자로, 안젤리카와의 결혼을 통해 신흥 부르주아의 결합과 연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변신한다. 소설의 특이한 점은 사랑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작가의 관점이다. 사랑의 불길과 불꽃은 일 년이면 꺼져버리고 이후 삶은 그 재로 살아갈 뿐 이라는……. 사랑은 관능적인 감각과 게으른 환상, 관습과 계산에 불과하여, 불가피하게 죽음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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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으면 책임지쇼.. 고전에다 번역서라서 읽기 힘들지만 하루에 몇 장이라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아요 역사적인 부분에서요.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완독 할 거 같아서 천천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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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정말 전설같은 영화죠. 루키노 비스콘티의 천재성과 집요한 미적 추구가 거의 폭발적일 정도로 환상적인 작품. 학부 시절 영화를 봤는데 정말 화면 안으로 뛰어들고 싶을 만큼 어떤 황홀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바로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 나왔는데 어떻게 안 살 수 있겠어요... 사실 영화가 워낙 괴물같은 명작이고 개인적으론 영화를 먼저 접했기에 괜히 소설 원작을 보고 약간 실망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만,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네요. 원작 소설은 이것대로 참 대단한 작품이네요. 추가하자면 민음사 고유의 고전적 문체랄까? 번역투도 이 소설 분위기와 꽤 잘 어울립니다. 민음사에서 출간되길 잘한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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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국민소설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시대적 배경과 등장인물들의 변화로 인해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시대나 근현대사에서 등장 인물이 겪는 이야기 이려나..? 아무래도 우리가 아는 시대상이 아니라 그런지 크게 와닿지는 않았고, 소설로써 읽는 재미도 크게 없었다. 명성에 비해 개인적으로 다소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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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페두사는 시칠리아 귀족가문의 마지막 직계혈통으로 그의 유일한 작품이 표범이다.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로 잘 알려져있고 에드워드 사이드도 “말년의 양식”이라는 글에서 다루었다. 말년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서 시대착으를 담고있고(꽤나 독특한 책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작가가 할아버지를 모티브로 차용했고 19세기 중반 가리발디 이탈리아 통일 당시의 시칠리아왕국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런데 출판은 1950년대에 했다.) 거리두기를 한다.(사이드에 따르면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표범에 공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작가가 공감을 유도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비스콘티 작품을 본적은 없지만 넷플릭스로 이 작품에 눈을 들이게 되었다. 이탈리아 귀족의 우아하고 쇠락해가는 느낌이 매혹적이었다. 책은 묘사가 더욱 과장될정도로 귀족적이라서 색다른 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추어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그의 유일한 장편 소설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놀랄일도 아니다. 회고록도 아니고 완전한 창작물도 아니고 그런데 되게 드라마틱하게 재미있고 특이한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대부가 생각났다. 이탈리아 특유의 가족중심주의, 강력한 권력을 지닌 아버지가 그러했다. 만약 이 책이 예컨대 20세기의 어떤 전업작가가 쓴 역사소설이었다면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이라면 우아한 묘사(미사시간의 햇살이 성모상에 빛나는 것이 단적인 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인물과 사건이 넘쳐난다.), 한시대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 개인의 태도(이게 가장 재밌고 시의적절하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어도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것이 시대의 변화가 아닐까? 많은 변화가 이뤄지는 현시대를 반추해본다.)다. 그 몰락의 분위기가 한 시대의 초상이 쓰러지는 것을 보는 듯 하여 압권이다. 요제프 로트의 라데츠키 행진곡과도 비슷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