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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특히 단편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짧은 글 속에 담기지 못한 여운과 숨겨진 의미들을 오래 묻고찾아 가는 데 있을 것이다. 이번 『2025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 또한 작품들의 스토리나 전개방식, 결말보다는 내게는 작품들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에 머물렀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 설명할 수 없는 관계, 끝내 말로 다 옮길 수 없는 기억들. 작품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서 만나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반려빚’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나 따뜻한 시선이 마음에 들어 계속 알아가고 싶은 김지연 작가의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제목부터 내 마음 속에 오래 남게 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살아갈 수 없다. 때로는 좋아하는 마음 없이 함께 살아야 하고, 좋아하지 않지만 관계를 이어가야 하며,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한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솔직한 사람. 숨기느니 차라리 정면 돌파를 선택하는 사람. 그래서 뻔뻔할 수 있는 사람. (…) 그런 게 궁금하다는 거잖아. 너는, 나는 너한테 설명할 자신이 없어. 그냥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게 될 뿐이야.” 특히 작가의 주제 의식이라고 나름 생각했던 "좋아하는 마음 없이 함께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내렸던 선택들을 생각했다."라는 문장이 가슴속에 깊이 남는다. 단순히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 감정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늘 명확하지 않고, 설명하려 할수록 같은 말만 반복하게 된다. 어쩌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끝내 설명되지 않는 부분까지도 함께 받아들이는 일인지 모르겠다. 김지연 작가의 자선작인 「우리가 바닷속을 지날 때」 역시 마찬가지다. “수영은 여전히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감추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두 사람은 서서히 집에 가까워졌다. 낯선 것들 사이로 익숙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기분이 들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결국에 인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모르는 상태다. 상대방도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르며, 심지어 자신의 감정조차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름 속에서도 함께 걸어가고, 집으로 돌아가며, 다시 관계를 이어간다. ‘관계의 계속됨’은 앞으로의 나에게도 큰 화두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최근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구병모 작가의 작품이어서였을까, 유독 눈길이 가고 애정 어리게 머물렀던 작품이 「엄마의 완성」이었다. “내가 없었다면 엄마가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들, 형용사와 부사를 비롯하여 질박하지 않은 장식들이 붙은 문장을 향한 조바심으로, 나는 몰아댔을 것이다. (…) 누구든 언제가는 한 손에 다 쥘 수 없는 크기의 열망과,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현실 사이의 각도를 재는 날이 올 것인데, 그에게는 지금이 그때여야 할 것 같았다. (…) 엄마의 완성은 아직 오지 않았고 엄마는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완성되어가는 길목 어딘가에서 서성이는 사람이었으며 환한 광채를 발하는 불빛은 아직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와 존재로서 생각하는 그 마음. 엄마로서의 역할자가 아닌 엄마의 인생에서 여전히 완성되어 가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부모님도 지금의 나와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예견하지 못했던 인생의 여러 돌발상황에서 힘든 과정을 헤쳐왔을 텐데, 너무나 쉽게 나는 부모님을 하나의 완성된(완벽한)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부모님 역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중한 한 사람이며, 여전히 현실과 열망 사이에서 각도를 재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그 사실을 이제야 조금씩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처음 작품으로 접해 본 권여선 작가의 「헛꽃」은 상처가 어떻게 사람을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위로받지 못한 고통은 쌓이고 굳어져 결국 세상을 무섭도록 하찮게 만드는지도 모른다고 혜영은 생각했다. 세상도 하찮고 나도 하찮고, 나같이 하찮은 존재는 아무리 하찮은 대접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해야 살 수 있게 되는지도, 그래서 하찮은 마음은 점점 더 무서운 형태의 그림자를 자기 삶에 드리우게 되는지도” 이해받지 못한 고통은 결국 자신마저 하찮게 여기게 만들고, 타인과의 연결을 끊어버리게 만든다. 그래서 "더는 훼손되고 싶지 않으니 제발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간청은 어쩌면 나의 마음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읽고 난 후의 ‘헛헛함’에 한동안 다음 작품으로 진도를 못 나갔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송지현 작가의 「유령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은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 반드시 어떤 이미지든 떠오른다. 글자를 읽지만 마침내 글자는 사라지고 하나의 장면으로 남는다는 것이, (…) 기억의 기원을 찾는 건 재밌었다. 설정한 장면이 원래의 장면과 얼마나 비슷한지 혹은 다른지 비교하는 일들. 서로가 가진 기억의 왜곡과 빈틈을 찾아내는 일들. (…) 하지만 오래도록 선택되지 않은 장면은 이유도 없이 갑자기 떠오르고, 미래에 도달함으로써 기억은 결국 탄생하고 만다. (..) 유령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뿐이라고” 우리의 기억은 늘 왜곡돼 있고, 정확하지도 않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나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의도된 왜곡들이 많이 존재하기도 한다. 오래전 봤던 영화 ‘오 수정’이 생각난다. 서로를 사랑했던 연인들 관계에서도 서로 간의 기억이 얼마나 다르고, 왜곡될 수 있는지. 서로 다른 기억은 서로 다른 삶을 만들고, 오래 선택되지 않았던 장면이 갑자기 내 앞에,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계속 새롭게 만들어진다. ‘이소 중입니다’라는 작품으로 너무도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왔던 이주혜 작가의 「괄호 밖은 안녕」은 번역이라는 소재를 통해 기억을 재소환하고 있다. “내가 본능적으로 지키려 했던 가족이라는 허상이 귀퉁이부터 푸슬푸슬 허물이지기 시작한 것은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 내가 지금 여기의 내가 아니기를. 내가 이 몸이 아니기를. 안간힘을 써가며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 잊은 몸이 되기를. 뭔가를 잃었다는 사실마저 깨끗이 망각한 몸이기를. (…) 나는 그것의 언어를 담은 괄호가 되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다른 몸이 되었는가.” 기억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유령과 환영, 허상과 같은 형태로 형태로 되돌아온다. ‘그 때 너무 힘들었지’, ‘내가 뭘 할 수 있겠어’가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며 그러한 반복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기억하고 견디는 것. 그것 또한 삶의 중요한 힘일 것이리라. 최진영 작가의 「울루루-카타추타」는 조용한 희망을 남긴다.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자기를 감추기 시작하는데, 정말 두려운 건, 그 대답이 진실이며 최선이라는 사실이다. (…) 어린 혜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했다. 절박함의 힘으로 두려움을 구겨버렸다. (…) 다시 기회를 준다. 게임과는 달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에겐 그를 되살릴 기회가 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희망을 크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다.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오해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기억은 쉽게 왜곡된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다시 시작할 시간과 어쩌면 희망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을 조용히 건네주고 있다. 지금 현재의 삶과 사회를 반영하며 무언가의 해답을 찾아가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 단편소설의 힘을 다시금 느낀다. 작품속에서 만난 인물들은 우리가 늘 마주치는 사람들과 같은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누구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기억을 품고, 상처를 안은 채 하루를 살아간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곁에 머무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어떤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세상을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이해받지 못한 채 지나치는 순간도 많다. 그럼에도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 보려는 마음,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이 작품집이 나에게 그 ‘작은 용기’를 다시 건네준 것 같다. |
| 세상이 소란스럽고 어지럽게 요란하기만 해도 문학은 묵묵히 제 길을 나아간다. 2025년에도 이토록 좋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왔다. 아마도 이 작품집에 실리지 못한 작품 중에도 빛나는 성취들이 있을 것이다. 문학은 삶보다 앞설 순 없지만, 문학없는 삶 또한 조금은 헛헛헛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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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좋아하는 마음 없이」 “어릴 때 안지는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pp.11~12) 안지가 조금 빠른 결혼을 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안지는 4년을 사귄 다음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결혼을 했고 그 아이가 아직 갓난쟁이일 때 이혼을 했다. 아이는 남편과 이혼의 원인이 된 여자가 키우기로 했다. 안지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남편이 죽고 이제 여자는 안지에게 연락을 취하여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안지의 의견을 묻는다. 안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김지연 「우리가 바닷속을 지날 때」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해저 도로, ‘세계 최저 수심 48m’에서 멈춰선 자동차 안에 있는 수영과 영재의 이야기이다. 밤마다 드라이브를 나가는 아내, 트렁크에 담배를 저장해 놓고 피우는 남편... 딱히 어떤 위험의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해저 터널처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지는 하는데... 구병모 「엄마의 완성」 “엄마의 완경은 오지 않았고 엄마는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완성되어가는 길목 어딘가에서 서성이는 사람이 있으며 환한 광채를 발하는 불빛은 아직 두 개가 남아 있었다.” (p.120) 생리불순을 걱정하며 병원에 동행을 요구하는 엄마, 아빠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연하남과 만나고 있는 엄마... 권여선 「헛 꽃」 “헛꽃, 헛꽃, 헛꽃. 그는 어디서 그런 말을 알아 와 혜영에게 붙이게 되었을까. 그가 떠난 집에 혼자 살던 때에도 혜영은 커튼을 치고, 들어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방문을 잠그고, 어둠 속에 혼자 앉아 있곤 했다. 어린 날과 젊은 날, 그 많은 날들에 혼자 문을 잠그고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자신의 마음에 대해 혜영은 생각해본다. 타인과의 접촉 차단, 세게와의 연결 중지, 더는 훼손되고 싶지 않으니 제발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간청.” (p.151) 소설 속 혜영의 마음이 되어 본 적이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렇게까지,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멈출 수 없는 자발적은 수발을 한 적이 있다. 소설 속 혜영의 할머니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혜영은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이 더욱 안타깝기도 하고...
송지현 「유령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 모두들 마음 깊숙하게 유령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세로 걸어갔다. 저마다의 술 냄새를 풍기면서, 저마다의 기억으로 나를 떠올리고 있다. 유령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뿐이라고, 이들 중 누군가가 생각했고 모두가 운동장을 빠져나가자 아이들이 설치해둔 조명이 꺼졌다.” (p.187) 죽은 이를 서술자로 삼아서 진행되는 소설이 나름 독특하다. 언젠가 비슷한 진행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 듯하지만 결이 다르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가까운 거리감 혹은 먼 거리감을 소설이 잘 살리고 있다. 이주혜 「괄호 밖은 안녕」 직전 죽은 이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어서 그랬는지, 남편과 아이를 떠올리며 여행 중인 나의 등장에 긴장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남편과 아이는 살아 있다. 그저 그들과 내가 헤어졌을 뿐이다. “... 나는 영영 내 등의 언어를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의 언어를 담은 괄호가 되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등이 쓰라렸다.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다른 몸이 되었는가. 다시 잠으로 돌아가며 나는 붉고 따스했던 그것을 향해 인사했다.” (p.219) 이 문장 뒤에 ‘안녕, 친애하는 낯선’이라는 괄호 안의 문구로 소설은 끝맺음된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최진영 「울루루-카타추타」 “울루루라는 이름은 ‘그늘이 지는 장소’라는 뜻인데 거기 사는 원주민들이 붙은 이름이야. 관광객들은 그곳을 ‘지구의 배꼽’이나 ‘세상의 중심’이라 부른대... 울루루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이며 그나마 삼분의 이는 땅속에 묻혀 있고 그 근처에는 숙소에 누워서 하루 종일 바위만 감상할 수 있는 리조트도 있다고 연이어 알려준다...” (p.250) 아버지의 서재에서 울루루의 사진을 챙겨 자신의 방으로 가져간 아들... 아버지는 아내와 아들보다 십여 미터를 앞서 겄다가 돌진하는 차량으로부터 어린 소년을 구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생명을 내놓은 이런 헌신을 모두가 칭찬할 때 그 가족은 어떤 마음일까. 소설은 그곳에 주목하고 있다. 김지연, 구병모, 권여선, 송지현, 이주혜, 최진영 / 2025 제70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 현대문학 / 286쪽 / 2025 |
| 매년 작가상 관련 소설집을 사모으는데 이상문학상과 젊은 작가상은 고정으로 사고 현대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 등 다른 문학상은 그때그때 번갈아가며 구매한다. 1년에 5권 정도는 수상작을 구매하는 셈이다. 최고의 문학상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지만 어쩐지 요즘은 많이 퇴색된 느낌이다. |
| 여름에 읽었던 김지연의 '좋아하는 마음없이'가 수상작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혼한 남편의 불륜녀와 만나 남편사망보험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좀 어이없고 찌질해보이는 상황들이 삶의 민낯아닌가.권여선의 '헛꽃'은 두 자매,어머니,외조모의 이야기다. 작가의 '안반'의 연작소설이기도 하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최진영의 '울루루-카타추타'는 남편의 사고후 남은 엄마와 아들의 그리움,원망,슬픔에 관한 이야기인데 먹먹했다.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은 기대를 져버리지않고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