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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컬렉터가 들려주는 역사 유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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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컬렉터가 사는 법글쓴이박건호 저출판사빨간소금 평균 별점 5.0(932) -->  예스24 바로가기 닫기어쩌다보니 이 책의 리뷰만 3번째 쓰고 있다. 처음엔 이것 저것 여러 창을 띄워놀고, 동영상을 들으며 리뷰를 쓰다가 잘못해 뒤돌아가기 버튼을 눌러 리뷰를 날렸고, 두번째는 리뷰를 쓰면서 책에 있는 표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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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컬렉터가 사는 법

역사 컬렉터가 사는 법
글쓴이
박건호 저
출판사
빨간소금

어쩌다보니 이 책의 리뷰만 3번째 쓰고 있다. 처음엔 이것 저것 여러 창을 띄워놀고, 동영상을 들으며 리뷰를 쓰다가 잘못해 뒤돌아가기 버튼을 눌러 리뷰를 날렸고, 두번째는 리뷰를 쓰면서 책에 있는 표현처럼 글자 밑에 줄을 그으려고 여러 기능과 버튼을 누르다가 썼던 내용을 날려 버렸다. 쓰면서 중간 중간 임시저장을 누르지 않은 내 잘못이니 누구에게 뭐라고 따질 것도 없다. ㅠ.ㅠ


저자는 자신을 골동품 수집가로 부르기보다 '역사 컬렉터'라 칭한다. 그 말이 그 말이고, 단어 조금 바꾼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왠지 장사꾼같은 느낌의 골동품 수집가보다는 자신이 모은 역사 유물을 역사 수업에 활용하는 모습에서 스스로를 컬렉터라 칭한 모양이다.

이 책을 읽기 얼마 전에 마침 비크리 경매란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도 경매를 통해 유물을 자주 낙찰받는 저자는 이 비크리 경매에 대해 다루었다. 일반적으로 최고가 입찰금액을 제시한 사람이 그 금액에 물건을 낙찰받는 것으로 난 경매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역사 유물에 있어서는 비크리 방식의 경매가 꽤 이루어지고 있던 모양이었다. 비크리 경매란 최고가 임찰금액을 써 낸 사람이 낙찰을 받는 것은 같은데, 다만 낙찰 금액은 최고가가 아닌 차상위 금액을 써 낸 사람의 것으로 하는 것이다. 즉 내가 어떤 물건에 대해 최고가인 1백만원을 제시해 낙찰을 받았더라도 차상위 입찰 금액이 50만원이라면 낙찰 금액은 50만원만 지불하면 되는 것이 바로 비크리 경매이다. 윌리엄 비크리는 이런 경매 방식을 제안하여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는데, 그 발표가 있은지 3일만에 죽었다고 한다. 노벨상은 그 어떤 위대한 업적이더라도 절대 죽은 사람에겐 상을 주지 않으니, 어쩌면 그 며칠의 차이로 그는 노벨상은 받은 셈이다. 왜 그럼 이런 비크리 경매가 생겼을까? 이는 소위 말하는 '승자의 저주'를 막기 위한 방식이라고 한다. 한전 부지에 대해 10조 넘는 금액을 제시해 낙찰받은 현대차가 있었지만, 그 경쟁자였던 삼성전자는 4조 7천억을 제시했었다고 한다. 만약 현대 측에서 삼성의 응찰가를 알았다면 몇 조의 돈을 아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잔자리'라는 여종의 이름이 있는 호구단자를 위해 입찰한 저자는 26만 여 원의 차상위 금액으로 그 물건을 놓쳤으나, 최고가 제시액은 무려 8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이런 망할...

그가 수집한 <음악주보>에선 금수현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한문으로는 김수현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한글로 된 표현에서는 금수현이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수현이 누구인지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혹시? 하면서 금난새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정답부터 이야기하자면 금수현은 바로 금난새의 아버지이다. 금수현은 동경음악학교를 졸업한 음악가로 일제시대와 해방 후 우리 음악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우리가 아는 높은음자리표, 음표, 쉼표, 도돌이표 등의 단어를 만들어 제안한 사람이 그였다. 그는 한글 전용론자로서 음악에 있어 한글의 보급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자식들의 이름도 한글로 짓고자 했으나 첫째는 그렇지 못해 억지로 한자어를 사용한 '나라'라고 지었지만, 둘쨰는 한글 사용이 가능해 난새로 지었다고 한다. 김(金)씨로 읽는 이 한자어는 원래 '쇠 금'라서 그는 '금'씨라는 성을 썼다고 한다. 아마 그의 이런 한글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음악 용어들을 외국어 그대로 썼거나, 일본이 썼던 방식으로 썼을 것이다.

백두산 정계비에 대한 글은 2편에 걸쳐 꽤 오래 언급했다.'서위랍록 동위토문'이라고 된 토문강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록의 나라 조선에서 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리는 없겠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것으로는 소위 간도 지역의 소유원이나 백두산 천지의 소유권 문제 등 언젠가 남과 북이 통일이 되고, 그때가되어 한 마음이 되어 다시 중국과 경계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려면 이와 관련된 자료들이 더 많이 발견되과, 그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근대의 자료로는 1960년대의 엽서도 있다. '사형당한 채일병'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 결국 저자가 지인들을 통해 알아낸 것은 군대에서의 가혹행위애 대해 선임병을 쏘아 죽인 서울대생 최일병의 이야기였다. 그 당시의 학보병이란 것도 처음 알았고, 그 엄혹한 군사정부 시절에 선임병 둘을 살해한 그에게 떨어진 사형이란 형별은 어쩌면 지금도 해결하지 못한 군대의 부조리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당시에 사형당한 '최일병'과 수해 현장에서 사망한 '채상병, 그리고 아들의 사형 소식에 한강에 몸을 던진 최일병의 어머니까지, 이 땅에는 아직도 군대 문화가 도도히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그대 일에 있더서 다만 떨리고 가슴 설레는 일만 행하라. 다른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e*****u 2025.10.14.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