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 "...나는 한마리 개에 불과했다..."라는 이탁오의 글을 본 순간부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기쁨을 주고 있다. 헤매 다녔고, 거침없는 독설가이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의리를 중시하며 눈물도 흘리는 해답을 찾는 모습에서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끊임없이 자극해 주는 책이다. 오랫만에 만난 좋은 책이다.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에, 두번째에는 그의 사유에 좀더 정성을 들이며 읽고 있다.
함께 읽고 있는책
<이탁오평전>, <주자학과 양명학>, <중국 전근대 사상의 굴절과 전개> |
|
이지(李贄, 1527~1602)의 원래 이름은 재지(載贄), 호는 탁오(卓吾)이다. 이지의 주저《분서焚書》는 벗들의 편지물음에 대한 답장으로 당대 도학자들의 폐단을 비판하는 반봉건사상과 반도학적인 입장, 동심설(童心說)과 같은 문학론 및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강건한 기개를 적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먼저 이탁오의 사상을 대략이나마 간추려 보자. 역자 김혜경은 '통합의 사유', '경전관과 비판정신', '인간평등의 철학적 논리', '자연미의 문학론' 네 가지로 나누어 이지의 사상을 정리하고 있다.
먼저 통합의 사유는 유불선의 종지가 동일하다는 삼교귀유설(三教歸儒說)로 대변된다. 대다수 연구자들이 유불도를 혼합한 이지의 통합성에 주목한다. 이지는 노장과 선종, 기독교까지 두루 섭렵한 이력으로 인해 그의 사상은 중국 근대 남방문화의 결정체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른바 유불선은 모두 같은 이름일 뿐입니다. 공자는 사람들이 명성을 좋아하는 줄 아셨기에 명교로 그들을 유인하셨고, 석가는 사람이 죽음을 무서워한다는 걸 아셨기에 죽음으로 그들에게 공포를 주셨고, 노자는 사람이 생을 탐하는 줄 알았기에 불로장생으로 그들을 유인했습니다. 모두 부득이하여 우선은 권도로 명색을 세우고 그것으로 후인들을 교화하고 유인했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었습니다."(169쪽)
둘째, 이지의 비판정신은 유가의 정통관념에 도전하는 역사평론서《장서藏書》와 경전해설서인《사서평四書評》은 그의 반복고적인 태도와 이단적인 논조를 잘 드러낸다. 이지는 스스로 이단을 자처하며 유가의 말기적 폐단을 공격하고 송명이학의 위선을 폭로하며 봉건통치의 위계를 부정하고 가부장적인 특권사상과 주술적인 숙명론에 반대한다.
셋째, 이지는 모든 사람이 각각 생지(生知)를 소유하고(天下無一人不生知), 온 대지 위의 중생들이 다 부처라는 인간평등의 논리를 펼친다. 이런 인간평등의 논리는 이지가 맹자를 비판하고 묵자에 새롭게 주목한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미의 문학론은 동심설(童心說)으로 대변되고 화공/화공(化工/畫工)론도 이에 속한다. 동심설은 노자의 적자(赤子) 관념, 맹자의 양심론(養心論), 나여방의 적자지심(赤子之心)에서 부처의 평등대비(平等大悲)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인문학적 사조를 고루 물려받아 인간의 진실과 문장의 관계를 논한 문학이론이다. 도가의 귀진론(貴真論)을 흡수하고 선종과 송명이학가들의 심성론에서 합리적인 부분을 받아들여 만든 이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저 동심이란 진실한 마음이다. 만약 동심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는 진실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무릇 동심이란 거짓을 끊어버린 순진함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처음 갖게 되는 본심을 말한다. 동심을 잃게 되면 진심이 없어지게 되고, 진심이 없어지면 진실한 인간성도 잃어버리게 된다. 사람이라도 진실하지 않으면 최초의 본마음을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요, 동심은 마음의 처음 모습이다. 대저 최초의 마음이 어찌하여 없어질 수 있는 것이랴! 그러나 동심은 왜 느닷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원래 그 시초는 듣고 보는 것이 귀와 눈으로부터 들어와 안에서 사람을 주재하게 되면 동심이 없어지는 데서 발단한다. 자라서 도리가 견문으로부터 들어와 사람의 내면을 주재하게 되면 어느덧 동심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348-9쪽)
이지는 천하의 명문은 모두 동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동심론에 근거하여 이지는 소설과 희곡과 같은 통속문학의 가치를 긍정하는 평론을 저술했다. 도학자들이 음란을 가르친다고 여기는 《서상기》라든가 도둑을 가르친다고 폄훼하는 《수호전》과 같은 통속문학이 동심에서 우러나온 고금의 명문이라고 극찬한다. 반면에 《육경》이나 《논어》《맹자》따위는 결코 동심에서 나오지 않은 말과 글들로, 그저 도학자들이 내세우는 구실일 뿐이고 거짓된 위선자 패거리들을 만드는 본원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화공론'도 이런 동심론과 일맥상통한다. 예컨대 화공(化工)은 진실하거나 자연스러운 신운미를 의미하고 천지의 조화가 자연스레 빚어낸 신의 작품으로, 이지는 《배월》과 《서상기》를 꼽는다. 반면에, 화공(畫工)이란 형식적인 조탁에만 치중한 인공미를 의미하고, 더할 수 없는 기교로 만든 인간의 작품으로 《비파기》를 꼽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