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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를 대체 한자로 어떻게 쓰는가가 궁금했는데, '분서 갱유'라고 할 때의 그 분서이며, 다만 후자가 술목 구조인 것과 달리 이 冊題는 수식 구조라는 점이 차이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불싸질러 버려 마땅할 책'인데, 저자의 과격, 파격의 성미 한 구석을 잘 드러내는 명명이기도 하고, 제 시대와 불화를 끝내 매듭짓지 못했던 천재의 저작에 대한 역설적 내용 요약이기도 하겠다. 많은 독자들에게 내용은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문집 형식인데, 하나의 주제를 두고 체계를 갖추어 저술한 단일 포맷이 아니고, 탁오가 생전 다양한 경우에 남기고 베풀었던 숱한 장단 저술을 한 데에 묶어 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탁오의 사상 경향은 일반적으로 과격한 양명학풍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내용의 상당수는 그를 넘어 차라리 불도에 치중했다 할 만큼 뚜렷한 색깔을 보인다. 어떤 내용은 스님의 설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를 철저히 배신한 유교 관료제 전제 시스템에 대한 회의와 독설로 가득하다. 책을 읽으며 끝까지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의문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 직접 관계 있는 원칙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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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라고 하면 낯설어할 사람들도 "이탁오"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명(名)보다 자(字)로 더 널리 알려진 중국인 명사들이 꽤 많은데 국민당 정권을 1920년대 후반부터 이끈 군인 장개석이 또하나의 예입니다. 사실 이지는 본명이 임재지였다고 하니 이런 범주에 정확히 속한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지는 명대의 문사인데 출신이 회족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중국은 자기네 문화의 범주에 편입을 명시적으로 거부한 종족에 대해서만 배타적이지 일단 항복을 선언하고(?) 중화에의 복속을 자처한 이들에 대해서는 의외로 관대해지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는 회족 출신이었는데 지금 위구르 족 탄압 정책과 대비하면 떠올려지는 바가 많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회족은 꼭 영하 지역에만 몰려사는 게 아니라 멀리 당대 이래 광활한 중국 대륙 안으로 널리 침투해 들어왔으므로, 특히 송대 이후 해양 루트로도 중국과 조우한 이슬람 문화권 출신이 복건성에서 발견되는 건 아주 뜻밖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권 5에서 무려 1500년 전의 위 무제가 널리 인재를 사랑하여 등용한 고사를 거론하는데 조조 역시 확고히 뿌리를 내린 한실의 영향을 걷어내기 위해 새로운 인재를 널리 등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는 일종의 체제 교체를 위한 수단이었으며, 단 조조 본인 역시 능력이 출중한데도 출신 성분상의 핸디캡 때문에 활동 반경에 제한을 받았던 인물인 만큼 어느 정도 저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품었을 겁니다. 단 순욱의 예에서 보듯 쓸모를 다했다거나 방해가 되는 인재는 언제든 가차없이 숙청하는 잔인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이지가 특히 위 무제를 거론한 건 본인 자신이 유교적 충의사상에 큰 관심이 없었던 데다 자신과 같은 반사회적 성향의 인재를 등용하는 데 조조만한 군주, 상사가 또 없겠다는 일종의 가상 기대 때문이었으리라는 짐작이 드네요.
사마상여도 거론되는데 탁문군과의 로맨스로 우리 나라 고전 문학에도 그 이름이 자주 인용되는 문사입니다. 이지처럼 파격의 문학을 추구한 이가, 어찌보면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정형시인 부의 대가였던 그에게 이처럼 주목한 건 역설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선교사 마테오 리치를 만나 교분을 쌓고 이처럼 문집에 흔적을 남긴 것도 흥미롭습니다. 예부상서직을 지낸 서광계 같은 고위 유림도 천주교에 귀의하는 등 명대 후반 지식인의 동향을 보면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 많습니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서울국제도서전에 들렀을 때 구입했는데 당시에는 도정제 실시를 안 할 때라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를 비교적 싼 가격에 구할 수 있어서 흐뭇했었습니다. |